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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딘

연성/Supernatural / 2016. 1. 14. 16:25

카스티엘은 인간을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천사에 비한다면 한없이 미개한 그 존재들은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어리석으며, 때로는 아주 보잘 것 없지만,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한없이 강했다. 자신의 손으로 앞일을 결정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건 천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오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오만함은 창세기 때 부터 계획되어 왔던 멸망을 막고, 끝끝내 자신들을 구했다.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도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너무나 미개해서 자신들의 실수에서도 배우는 것 없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에 여생을 보내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어떠한가. 그 멍청함도, 그런 자기파멸도,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한 부분이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그들은 깊이 절망하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카스티엘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웃는 그들의 입근육이나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간들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런 숭고함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래야만 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으로 숭고함을 만든다. 

그들이 카스티엘에게 고마움을 표하거나 저를 믿어줄 때면, 제 이름을 불러주거나, 필요하다고 말해줄 때면 카스티엘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창세기 때 부터 은연중에 찾아 헤메던 존재 이유의 해답인 것만 같았다. 카스티엘은 그들을 돕고, 또한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리라. 그러나 카스티엘이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들은 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카스티엘은 인간들을 존경했다. 아버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으로, 카스티엘은 인간들을 사랑한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카스티엘은 앞에서 튕겨지는 손가락에 맞춰졌던 초점을 뒤쪽으로 옮겼다. 맥주병을 든채 쇼파에 누워있다 싶이 앉은 딘이 한쪽 눈썹을 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에 있는 어떤 녹음보다 아름다울 색은 온전히 카스티엘을 향해 있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축구경기의 해설과 응원소리가 낡은 오두막을 채운다. 카스티엘은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딘이 자주 하는 것 처럼 윗니를 내보이는 웃음이 아닌, 물결 같은 미소였다.

"인간들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러시겠지. 딘의 시선은 다시 화면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공의 움직임을 따라 바쁘게 시선을 옮기다가 탄식을 내뱉기도 하고, 환호를 하며 병을 치켜들기도 했다. 카스티엘은 멀지 않은 의자에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제 손에 들린 맥주병을 내려다봤다. 처음과 똑같은 양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병은 소중하게 감싼 손에서 온기가 옮아 미지근해져 있었다. 딘은 병따개 없이는 맥주를 따지 못하는 카스티엘을 위해 미리 뚜껑을 열어놓았다. 이것 또한 인간들의 사랑스러움 중 하나였다.

카스티엘은 눈을 감고 병 표면에 맺힌 물기가 흘러 손을 적시는 것을 기다렸다. 카스티엘은 축구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저 병을 쥐고만 있을 생각이었다. 딘은 화를 내겠지. 그래도 상관 없었다. 한없이 경이로운 존재가 저를 위해 열어준 병이었다. 카스티엘의 손 안에 담긴 것은 사랑스러움이다.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감정이고, 제 존재의 이유기도 한. 

딘은 여전히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고, 경기가 끝나면 카스티엘에게 시선을 돌려줄 것이다. 카스티엘은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형제들이나 아버지가 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그렇기에 카스티엘은 인간들이 사랑스러웠다. 형제나 아버지보다도 더, 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만큼.




부제: 카스티엘은 딘 윈체스터를 통해 인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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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카테고리 없음 / 2015. 10. 17. 23:27



2011년 단국대 

산문 : 수족관




 인어는 수조 중간에 가로로 떠있었다. 짙푸른 머리와 창백하게 질린 피부, 아래로 이어진 비늘과 천조각 마냥 흔들리는 지느러미. 어느것 하나 물에 불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인어의 앞으로 상어가 지나간다. 전면유리로 볼 수 있게 뚫려있는 수조는 바닷물로 가득 차있다. 바닷물이 인어를 죽인거야. 내가 중얼거린다. 바닷물이 인어를 죽였어.

 폐장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수조 안의 물을 울렸다. 의자에서 일어나 물 하나 고여있지 않은 바닥을 건넌다. 폐장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어린아이를 보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의 신발이 만들어놓은 끌린 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상어 수조 다음은 바다 동굴이 있다. 나는 사람을 압도하는 면이 있는 통로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온갖 열대어와 산호를 집어넣고 유리로 막아놓은, 마치 바다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곳.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경거리였다. 망설이다가 한 발을 뻗는다. 안내 방송이 거슬릴 만큼이나 반복 되고 있었다. 통로의 안에는 청소부 한 명이 걸레자루를 쥐고 있다. 열대어나 종류를 알 수 없는 물고기 따위가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고개를 바닥으로 쳐박고 최대한 빠르게 동굴을 벗어난다. 청소부를 지나치기 전에 그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오늘도 오셨네요. 질문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말을 어물댄다. 네. 억지로 당겨 웃은 입꼬리가 내 얼굴이 아닌 것 마냥 갑갑했다.

 "소문은 들었어요. 여기 아쿠아리스트였다면서요?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을걸. 아쿠아리스트들 하고는 말 섞기가 쉽지 않거든요. 내가 청소를 할 때쯤이면 전부 퇴근해 있으니까. 늙은이한테 들려줄만한 경험담은 없수?"

 사람 좋게 웃는 얼굴에는 나이에 걸맞는 주름이 지어져있었다.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 나는 그런 반짝거리는 눈을 앞에 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내 것이 아닌 얼굴을 하고 있다. 귀상어가 새하얀 배를 보이며 동굴 안을 휘젓고 다녔다. 커다란 것이 내 위를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를 만들며 물결무늬를 지웠다. 초조하게 주먹을 쥔 내가 위쪽을 힐끔댔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인어는 여전히 퉁퉁 불은 채로 그곳에 있다.

 내가 한참을 말없이 있자 청소부의 눈썹이 쳐졌다. 늙은이가 쓸데없는 말을 했나보네. 가는 사람 잡아서 미안해요. 나는 손사레를 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바닥을 향해 인사한 뒤 급한 걸음을 놀렸다. 어느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즐거운 아쿠아리움의 세계, 오늘은 이만 영업을 종료합니다. 아직 남아계시는 관객분들은 화살표를 따라 출구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욕조에 잠긴다. 차디찬 물이었다. 발끝부터 피부 껍질이 불어 떨어져나간다. 머리 끝까지 물 안으로 들이밀었다가 참기가 힘들어져 녹슨 몸을 끌어올렸다. 젖은 머리카락이 맨 어깨에 달라붙어 끝이 부서진다. 멍하니 천장을 본다. 낡고 곰팡이가 슨 형광등이 따갑게 눈을 찔렀다. 30초. 다시 물 속에 얼굴을 들이밀자 인어가 보였다. 작디작은 몸체. 고스란히 감긴 눈의 속눈썹 까지도 기포가 달라붙어 있다. 보드라운 팔을 쓸어보면 그대로 피부가 벗겨질 것만 같았다. 왜 그랬어? 입밖으로 목소리를 내도 기포만 올라올 뿐이다. 왜 바닷물에 들어갔어? 인어는 답이 없다. 검은 머리가 끝부터 푸르게 녹이 슬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했어야하는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수조를 깼어야 했을 수도 있다. 구명 밧줄을 찾아서 내려보내야 했을 수도 있고. 나는 그저 서있었다. 공포에 질린채로, 멍하니. 그 아이는 수영을 잘했다. 바닷물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계곡과 강에서 헤엄쳐본 적은 있었지만, 바다에서는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넓고 차가운 물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청소부는 앉아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았고, 폐장 시간이라는 안내 방송도 없었다. 시계를 확인했다. 겨우 6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다.

 "어제 그 질문,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우. 그런 사정이 있었을거라고는......."

 숙여지는 고개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뒤늦게 일어났다. 아니에요, 사과는 무슨. 계속 보고 있던 상어수조를 힐끔댄다. 인어는 상어에게 이리저리 떠밀려 유리벽 가까이 까지 떠내려와 있었다. 지느러미는 붕대 마냥 흩날리고 있다. 청소부는 처연한 눈으로 바닥을 보다가 고개를 뒤로 꺾어 수조를 바라보았다. 인공적이라고 부를 만큼 새파란 물. 어린아이 몇 명이 유리에 달라붙었다가 상어가 가까이 다가오면 짧게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아이의 부모는 약간 뒤에서 휴대폰을 잠깐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 아이는 나가는 길에 있는 기념품 샵에서 상어인형을 사달라고 부모를 조를 것이다. 부모는 터무늬 없는 비싼 가격에도 떼를 잠재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형을 사줄 것이고.

 "딸이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딸은 물과 상어를 좋아했다.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내가 옆에 있으니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바닥이 그렇게 미끄러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냥 보여주려던 것이었는데. 그 아이는 정말 예뻤는데.

 바닷물이 죽인 딸은 상어와 함께 있다. 청소부는 말이 없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상어의 꼬리가 수족관 벽을 치고 지나갔다.

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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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딘 Crush on2

연성/Supernatural / 2015. 10. 6. 09:19
상담원은 약간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꺾고 위를 쳐다보았다. 쳐다봐야 할 것이 앉은 자리에서 눈만 올려다보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키를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딘이 무해한 웃음을 지어서야 도로 데스크안의 컴퓨터를 쳐다봤지만, 결국 몇 번인가 더 위를 힐끔거려야했다. 상담원은 망설였다. 이런걸 물어봐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딘은 여전히 무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니터를 보기 위해 노력하던 상담원이 결국 입을 열었다.

"두 분 사이에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으신거죠?"
"여러가지 종합적인 문제가 있죠. 충동적으로 싸우고, 신경질적이게 굴고, 뭘 막 집어던지거나- 라스 선생님이 전문가라고 들어서요. 저희는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거든요."
"아, 네..."

상담원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들은대로 적기는 했지만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대충 둘러대고 선생님께 제대로 말할 생각일 수도 있다. 보통은 상담원에게 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담원은 다시 위쪽을 힐끔거렸다. 충동 조절과 폭력 문제, 라는 글자 옆에 커서가 깜박였다. 거짓말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퍽이나 믿음직했다. 특히 딘이 달고있는 눈쪽의 멍을 보자면 그랬다. 상담원의 시선이 딘의 옆으로 굴러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종이봉투에 테이프는 좀.

상담원은 단지 상담원이었고 카드로 미리 상담료를 결제했기 때문에 샘과 딘은 어렵지 않게 대기자를 위한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샘은 종이봉투가 불편한지 연신 안에서 바람을 불어댔다. 딘은 샘이 옆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오다가 주운 차가운 돌맹이를 멍 든 눈에 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대며 샘과 딘을 지나쳤다. 하나같이 둘에 대해 수근거렸지만 둘은 그걸 바로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초한건 샘-샘 생각에는 딘-이었기 때문에.

"자기야, 이거 풀어주면 안돼?"

딘은 샘을 노려봤다. 숨구멍으로 뚫어준 종이봉투의 유일한 구멍에서 샘의 간절한 눈빛이 쏟아져나왔다. 자기야 좋아하네. 투덜대는 말에 샘이 더욱 간절한 눈을 보내며 테이프로 묶인 손을 내밀었다. 다신 안할게. 한 번만 믿어줘.

아침. 딘은 쏟아지는 햇빛에 기분 좋게 일어났다. 원배드의 모텔방은 상쾌한 향이 났다. 술병이 몇 개 굴러다니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풍경이었을테지만 그건 너무 익숙한 기본옵션이었던 터라 딘의 말끔한 심경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계획은 착착 쌓였고 어떻게 할지는 정해놨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최선책을 선택할 수 밖에. 딘은 가뿐하게 샤워하고, 옷을 챙겨입고는 모텔방을 나서려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방 안으로 쓰러진 샘을 내려다보며 약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딘은 기함을 토했다. 샘은 제 모텔방 문 앞에 기대앉아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겁해서 깨우는 손길에 엉망인 상태로 눈을 뜬 샘이 딘의 손을 붙들어 제 눈에 가져다댔다. 좋은 아침, 딘.

말로는 새벽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나왔다는데, 아니, 내가 여기에서 자고 있다는건 어떻게 알았는데? 심지어 딘이 있는 곳은 원래의 모텔도 아니었다. 샘은 아주 태연하게 말을 늘어놨다. 모텔 주인이 형이 나가는걸 봤다길래 방향을 물었지. 좀 가다보니 임팔라가 보여서 물어보니까 호수를 가르쳐주던데. 감시카메라가 있는데다 직원의 눈이 이상해서 문을 못따겠길래 그냥 죽치고 있었다는 말이 추가로 따라왔다. 딘은 머리를 짚었다. 그래도 억지로 안들어온게 어디야. 어차피 찾아갈 계획이기는 했다. 이번 작전에는 샘이 필요했으니까.

딘의 작전은 이랬다. 아주 불행하고 또한 예상했던대로 피해자들이 다니던 상담소는 연애상담을 주전문으로 하는 작은 상담소였다. 서치를 해봐도 불법적인게 걸리지 않아서 무작정 FBI 신분증을 내밀며 쳐들어갈 수는 없었고, 상담사를 쉽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샘이 필요했기 때문에, 딘은 샘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가 문제가 있는 애인 사이인 것 처럼 연기해서 그 싸이코 상담사를 만나야 해.

샘은 앞뒤를 모두 잘라먹어 듣고는 아주 뛸 듯이 기뻐했다. 샘은 딘에게 곧장 키스를 퍼부으려고 했고, 딘은 예상했다는 듯이 커다란 덩치를 막고는 다시 종이봉투와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제 스스로 주먹을 날려 눈에 멍을 새기고는 시무룩한 샘을 억지로 일으켜 죄수를 연행하듯 임팔라에 태웠다. 차문을 닫고 시동을 켜면서 옆을 돌아본 딘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커플이군.

딘은 별 수 없이 상담원에게 가위를 빌려 샘의 테이프를 끊어줬다. 상담사를 만났을때도 이상태면 제압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옆에 앉아있던 빨간머리의 여자가 둘을 힐끔대기 여념이 없었다. 딘은 그 여자에게도 무해한 웃음을 지어주었고, 종이봉투를 벗으려는 샘의 손을 억지로 누르고 도로 봉투를 씌웠다. 머지않아 둘의 이름-스티브 윌시와 빌리 그리어-가 불렸고, 여전히 종이봉투를 쓴 샘이 더듬더듬 딘의 뒤를 따랐다.

상담실은 구실을 잘 하고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는 내담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방음 또한 잘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적절히 반쯤 내려온 블라인더가 실내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샘은 문을 닫으면서 살짝 잠금장치를 건드려 상담실을 잠궜다.

상담사, 라스 맥코이는 친절한 얼굴로 뒤를 돌았다가 샘에게 씌워져있는 종이봉투를 보고 흠칫 놀랐다. 딘은 세번째로 무해한 웃음을 짓고는 의자를 못찾아서 더듬대는 샘을 끌어 제 옆에 앉혔다. 뭐가 있는지 파악하는척 하면서 허벅지며 어깨를 더듬거릴때쯤 가서는 딘이 샘의 손을 꺾어야했지만, 보이지는 않았는지 라스는 어렵게 표정을 갈무리해 다시 친절한 웃음을 입에 띄웠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추천을 받고 오셨다면서요. 말콤씨의 친구분이시라고...?"
"네. 그 친구가 우리 문제에 많은 도움을 줬었죠. 고등학교 동창이라."

딘은 자신이 우리라는 단어를 뱉었을 때 사랑스럽다는듯 감싸여진 제 손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문제가 있는 커플 연기를 해야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쥐뿔도 생각하고 있지 않고있는듯 했다. 종이봉투를 씌우기를 백 번 잘했다. 평소의 샘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며 투덜거렸을 제안을 잔소리 하나 없이 패스하게 된건 좋은 일이었지만, 딘은 연기고 뭐고 바로 책상을 발로 차 엎고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절 꺼내달라며 상담사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자켓을 챙겨입은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거의 어깨까지 소름이 쫙 올라와있는걸 발견당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터였다.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다. 딘은 샘에게 발기부전 문제가 있고, 그건 연인 사이에 아주 커다란 시련이며,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자신은 술에 손을 대 알코올 중독 초기증세가 있다고 얘기했다. 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발기부전 문제는 많은 연인들의 골칫거리죠. 치료는 받고 있으신가요? 종이봉투를 쓰고 있는 샘은 라스의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는지 대답이 없었다. 딘은 봉투를 뚫고 나올듯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아니요, 빌리는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요. 비뇨기과에 가는걸 달가워하지 않아요.

"원인은 찾아보는게 좋을텐데요. 혹시라도 어디에 이상이 있는거라면-"
"사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빌리를 억지로 비뇨기과에 데려가지 않아도 원인은 알아요. 저희 둘 다 우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걸 자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딱히 이별 컨설턴트를 받으러 이곳에 온건 아니거든요. 저는 저희가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가기를 원해요. 서로한테 실망하지 않고, 그냥 쇼파에 앉아 맥주나 기울이면서 옛날 영화를 보고, 시덥지 않은 것에 웃고, 별것도 아닌 것에 싸우던 시절로요."

라스는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그렇게 로멘틱 하게 들리지는 않네요. 딘은 라스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라스가 서류에 뭔가를 적는걸 넘겨다보던 딘이 타이밍을 쟀다.

"저희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건 아시겠죠?"
"저 종이봉투를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말콤이 그러던걸요. 선생님께 너무 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고 상담을 했더니 며칠 후에 환상의 연인을 만났다고. 저희 문제도 그렇게 고쳐주실 수 있나요? 대가는 무엇이든 지불할게요. 정말 간절하거든요."

딘은 눈썹을 쳐지게 해 정말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스는 마음이 동했는지 자신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딘은 그 얼굴에서 싸이코패스의 징조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딘의 전문은 괴물이지 정신나간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어렴풋이 맞겠지 싶은 근거없는 확신만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라스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가 두 분에게 해드릴 만한게 있을 것 같네요.

의자에서 일어나는 라스를 눈짓으로 쫓으며 딘이 총의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확실한 증거만 눈에 들어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이 지긋지긋한 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딘은 신호로 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종이봉투가 바스락 대는 소리가 들려서 딘이 뒤를 돌았다가 영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자세를 잡고 있는 샘을 맞는 방향으로 돌렸다. 찬장을 뒤지던 라스가 곧 뭔가를 발견한듯 기쁜 얼굴로 뒤를 돌았다.

들려있는 유리 항아리에 딘이 눈을 깜박였다가 급하게 샘의 어깨를 잡아눌렀다. 샘은 튀어나가려다 말고 영문을 모른채 도로 앉았고, 라스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항아리를 책상까지 가져와 내려놓고는 허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두 분 같은 케이스에게는 이거면 직빵이죠.

"이건... 그러니까..."
"50년 동안 숙성 된 흰 코끼리의 고환이랍니다. 어디가서 구하기 정말 힘들어요. 웬만한 분들에게는 보여드리지도 않는건데, 정말 간절해보이셔서 특별대우 해드리는거에요. 좀 비싸기는 한데 감수할만 하실겁니다. 제가 보장해요."

딘은 입을 뻐끔대다 횡설수설 말을 더듬었다. ㅇ,이런거 말고 그 뭐냐, 맞으면 사랑에 빠지는 도금된 화살이라던가, 금빛 고수머리를 가진 디카프리오 같은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던가, 저희가 원하는건 그런 특별대우인데요. 라스는 딘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깔깔 웃었다. 그런 것들 보다는 이게 더 좋다니까요. 달여마시면 금방 효과가-

딘은 그쯤이면 됐다는듯 책상을 걷어차고는 라스에게 권총을 겨눴다. 겁에 질린 라스가 손을 들어올리고는 잔뜩 물음표를 띄운다. 샘이 반사적으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종이봉투 때문에 그 이상의 행동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라스의 멱살을 잡은 딘이 머리 끝까지 열이 뻗친 소리를 질러댔다.

"무슨 연기를 하고있는 건지는 몰라도 다 알고 왔으니까 허튼 수작 부릴 생각마! 에로스가 소환이 안되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려줘? 나야! 내가 그새끼를 덫에 가둬놨다고! 네가 그 타이타닉 주인공을 소환해서 사람들 멋대로 조종한거 다 들켰단 말이야! 머리통 날아가기 싫으면 당장 에로스랑 했던 계약 무르고, 내 동생 원래대로 돌려놔. 당장!"

총구를 들이밀며 소리치는 통에 라스는 거의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벌벌 떨며 신을 찾던 라스는 딘이 총구를 더 들이밀때 마다 어깨를 움찔거렸다. 샘은 드디어 종이봉투를 살짝 벗었다. 보이는게 상담실 구석이라서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려야하긴 했지만, 상상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라스는 이제 울면서 빌고 있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맹세해요. 에로스니 뭐니 하는거 전혀 모른다니까요.

"딘."
"넌 빠져있어, 새미! 당장 계약 무르라니까!"
"딘, 거쓰가 계약자의 오른팔에는 문양이 새겨져있을거라고 했잖아. 기억해?"

조심스럽게 어깨를 잡으면서 하는 말에 딘이 샘을 쳐다봤다가 라스를 노려봤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의자에 밀쳐 앉혀놓고 딘이 곧바로 라스의 소매를 걷었다. 말라서 핏줄이 도드라진 팔은 좀 타긴 했지만 아무런 문양도 없었다. 샘과 눈을 마주친 딘이 떨떠름하게 라스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니까..."
"사람 잘못 짚은것 같은데. 난 형이 실수할 때가 제일 귀엽더라."

딘은 보지도 않고 샘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라스는 대화와 분위기를 보더니 곧 벌떡 일어났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길길이 화를 내는 라스에게 진정하라는듯 손바닥을 들어보인 딘이 이빨을 내보이며 네번째로 무해한 웃음을 지었다. 당연스럽게도 전혀 먹히지 않았고, 라스는 경찰을 부르겠다며 휴대폰을 들었다. 재빨리 휴대폰을 뺏어든 딘이 샘과 눈을 마주쳤다. 샘도 이번에는 그 터무늬없는 시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딘은 도망치듯 상담소를 나오자마자 샘의 손에 도로 테이프를 붙이려고 했지만, 라스를 묶는데에 테이프를 다 써버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종이봉투도 라스에게 씌워주고 나오는 길이라 마찬가지였다. 자유가 된 샘은 딘에게 엉겨붙어왔고 딘은 거의 체념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서지를 않았다. 분명히 그 상담소에 모든 피해자들이 다녔던게 맞는데. 유일한 공통분모를 잃어버리다니.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는 딘의 손을 샘이 안타깝게 말리며 임팔라로 향했다.

이 상담소는 주차장 위치가 너무 거지 같았다. 딘은 꼭 이런 더러운 골목을 지나야만 하는지 같은 사소한 문제에도 짜증이 일었다. 그것도 이런 커다란 어린애를 달고서. 새미, 어깨에 손 치워. 샘은 또 강아지 같은 얼굴을 했다. 아 진짜 못살겠네.

"스티브 윌시씨?"

딘과 샘은 고개를 들었다. 골목을 가로막은 인영에게서 긴 그림자가 뽑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딘이 인상을 구기는 새에 인영이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나온다. 눈을 가늘게 하고 앞을 쳐다보자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낯이 익은데.

"안녕하세요. 캐시라고 해요. 우리 구면이죠?"

빛을 받는 빨간머리. 딘은 눈을 깜박였다. 아까 그 상담소 대기실에서 옆에 앉아있던 여자.

높은 하이힐과 향수 냄새, 머리색 만큼이나 선명한 색의 코트. 딘은 샘이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넣는걸 느끼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한 몸짓이다. 샘은 딘의 취향을 알았다. 샘은 사랑에 빠진거지 기억을 잃어버린게 아니었으니까. 딘이 바에 앉아 있었다면 당연히 윙크를 보냈을 외모와 몸매였고, 아무리 딘이 지금의 샘한테 학을 뗀다지만 작은 동생의 불안을 가라앉혀주기 싫은 정도는 아니었다. 딘이 어깨에 걸쳐진 샘의 손을 붙잡았다. 샘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걸 확인한 딘이 캐시를 향해 웃었다. 저 쫓아온거에요? 엄청 영광인데.

캐시는 또각거리면서 더러운 골목길을 걸어왔다. 구정물이 곳곳에 고여 썩은내가 나는 곳이었다. 샘과 딘은 주춤 물러났다가 캐시가 딘과 불과 한걸음의 거리를 남겨두고 멈춰서자 눈짓을 주고 받았다. 캐시는 경계어린 남자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유쾌하게 웃었다.

"나한테 반하기라도 하셨나. 너무 가까이 서있는것 아닙니까?"
"눈치가 빠르시네요."

딘은 샘의 발을 밟았다. 그가 제 어깨를 거의 부술듯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샘은 반사적으로 힘을 풀었지만 절대 딘에게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딘은 입꼬리를 당겨 웃으면서 샘을 고갯짓 해보였다. 죄송한데 파트너가 있어서요. 아까 종이봉투 쓰고 있던 애인이 이 사람이라.

"그정도는 덩치를 보면 알아요. 이름이 뭐였더라. 빌리 글래머?"
"그리어인데요. 무슨 볼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쪽하고는 상관 없는 볼일이에요. 전 골키퍼는 신경쓰지 않는 주의거든요. 특히 애인 눈을 멍들게 하고 테이프에 손이 묶여서 심리 상담소에 끌려오는 골키퍼는."

샘은 코웃음을 쳤다. 딘은 어깨를 으쓱였다. 종이봉투와 테이프가 수상해서 힐끔대는줄 알았더니 목적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이놈의 인기. 딘은 샘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만약 골이 공을 원하지 않으면요? 캐시는 붉은 쉐도우가 발린 눈을 접어 웃었다. 라스 선생님의 치료가 굉장했나봐요.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죠.

캐시가 갑자기 거리를 좁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샘의 한 팔은 딘에게 둘러져 있었고, 허리는 딘의 팔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반사신경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캐시는 딘의 입술에 제 입술을 뭉개면서 손을 들어 딘의 눈을 가렸다. 1초도 안돼서 캐시가 바로 얼굴을 떼었고, 딘의 얼굴을 우악스레 잡아 샘에게로 돌려 둘이 입을 맞추게 만들었다.

샘은 자신을 쳐다보는 생생한 초록색 눈동자를 보았다. 샘의 눈꺼풀에 닿을듯한 속눈썹이 눈의 깜박임에 따라 그림자를 만들었고,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던 주근깨가 눈이 아플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최초의 입맞춤. 입이 열리거나 이빨이 부딪히는 것도 없이, 그저 여러장의 꽃잎이 겹쳐져있는 듯한, 약한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은 키스였다. 둘은 천천히 멀어졌다. 샘은 물들인 손톱 같은 색을 한 딘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샘의 광대에 주먹이 꽂혔다.

샘은 골목 바닥에 쳐박히면서 이마를 부딪혔다. ? ?? ??? 영문을 모르고 얼굴 반쪽을 감싸쥔 샘이 자세를 갈무리하고 딘이 있을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샘은 멍하니 동작을 멈췄다.

샘이 본 것은 혐오였다. 그 표정을 그런 단어 하나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샘은 차라리 기뻤을 것이다.

딘은 거칠게 입술을 문지르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샘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다가 다시 딘의 시선을 받았다. 딘은 샘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딘의 시선에는 순수한 혐오와, 그보다 더한 무언가들이 들어있었다. 샘은 기능을 잃은 것 같은 눈을 돌려 여전히 몇걸음 뒤에 있는 캐시를 보았다. 샘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캐시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무슨 짓 했어."
"꺅, 이게 무슨 짓이에요! 경찰에 신고할거에요!"

능청스레 연기하는 얼굴에 샘이 주먹을 쥐었다가 곧 캐시의 오른팔을 억지로 끌어 소매를 걷어냈다. 하얀 피부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문양. 모텔에 돌아가 찾아볼 필요도 없다. 샘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캐시의 왼손목을 빼내어 비틀었다. 작은 비명과 함께 손 안에서 차가운 화살이 떨어졌다. 납 화살. 샘은 멱살을 잡은 그대로 캐시를 벽에 밀쳤다.

"이걸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어."
"어머, 에로스가 말 안해줬어요? 사랑의 화살은 에로스가, 증오의 화살은 내가. 그런식의 딜이었거든요. 전 제가 이야기를 끝내는걸 좋아해서."
"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지?"
"라스 선생님은 상담실 관리가 게으르셔서요. 도청기가 반 년 동안 붙어있어도 영 알지를 못하신다니까요. 상담사들이 가장 신경써야하는 부분인데, 뭐 아시다싶이 썩 좋으신 상담사는 아니셔서. 종이봉투에 테이프에, 멍에, 겉으로만 봐도 알만해서 극적으로 다시 사랑하게 만들면 아름다운 사랑얘기가 될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도청기를 켰던건데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줄줄 나오더라구요? 어쩐지 소환해도 안온다 했어. 그럴 애가 아닌데."

픽 웃는 캐시를 더욱 벽으로 밀어부친 샘이 말을 짓씹었다. 당장 계약 물러. 캐시는 아까 샘이 한 것 처럼 코웃음을 쳤다. 에로스를 먼저 풀어주면요.

샘은 망설임없이 총을 집어들었다. 다시 반복되는 명령에 캐시가 지루하다는듯 눈알을 굴렸다. 아까 라스 선생님에게도 그러더니, 당신들은 대체 왜그래요? 뭐가 잘못틀어지면 무조건 총 들이대고. 툭툭, 캐시가 총구를 몇 번 두들기자 샘이 공중에 총을 발포했다. 넌 내가 널 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아주 큰 착각이야. 난 지금 뵈는게 없다고. 바로 턱끝까지 들이밀어지는 총에 캐시가 웃었다.

익숙한 사이렌이 들렸다. 골목 근처에서 멈추는 차소리. 샘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새에 캐시가 힘을 가득 실은 무릎을 샘의 명치에 꽂아넣었다. 주춤한 새에 총을 뺏어 던져버린 캐시가 샘의 얼굴을 쥐고 절 마주보게 했다. 캐시의 눈은 시리도록 파랬다. 더러운 골목길에서 안광이 날 정도로.

"아폴론이 되어봐요. 당신의 사랑스러운 사람을 월계수로 바꿔보라구요. 그렇게 해줄거죠? 저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샘이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에 캐시가 소리를 질렀다. 보안관님! 여기에요! 골목쪽으로 이동하는 발소리들에 샘이 욕을 씹으며 캐시를 밀쳐내듯 내팽겨쳤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딘이 없었다. 이름을 외쳐도 대답이 있을리 없다. 이를 갈던 샘이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들에 급한대로 방향을 틀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캐시는 골목에 주저앉아 우는척을 하다말고 샘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기대하고 있다니까. 푸른 눈이 구정물에 반사된 빛을 받았다.



공미포 7600자.

사실 캐시같은 싸이코를 좋아한다. 그냥 저주 풀고 끝낼까 했는데 아폴론과 다프네 얘기가 생각나서... 보안관들이 타이밍에 온건 캐시가 샘딘 상대하기 전에 미리 악질 스토커한테 시달리고 있다고 신고를 넣었기 때문. 퍼펙잡을 하는ㄴ이블빗취 취향 때문에 발암 일으켜서 죄송한...

스티브 윌시와 빌리 그리어는 Carry on my wayward son을 부른 Kansas의 보컬과 기타. 가명을 대부분 올드락 가수들이나 영화 콤비 이름에서 따온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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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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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딘 Crush on

연성/Supernatural / 2015. 9. 28. 07:12



샘딘인지 딘샘인지 샘+딘인지 커플링은 맞는지... 그냥 에피소드 하나 쓴다는 느낌으로.


시즌8이지만 스포 하나도 없음. 스포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도 신경쓰이는 분은 뒤로.






"딘, 사랑한다니까."


딘은 임팔라의 트렁크를 소리나게 닫았다. 신경질적인 소리에 사슴 같은 눈으로 거의 빌고있다 싶이 하던 샘이 어깨를 튄다. 눈을 부라리며 돌아보는 얼굴에 샘이 다시 눈썹을 누그러뜨렸다. 사랑해 딘, 진심이야.


차 문이 닫힌다. 샘은 입에 붙여져있는 테이프를 노려봤고, 딘은 한결 낫다는 표정으로 될 수 있는 한 오디오를 크게 틀었다. 테이프가 둘둘 감긴 손하며. 노려보는 눈이 원망에 차있었지만 딘이 시선을 던지자 금방 헤실거리며 풀어졌다. Oh God, 제발. 머리라도 감싸쥘 기세로 절망스러운 목소리를 낸 딘이 차를 잠시 멈추고 뒷자리에서 샘에게 씌울만한 봉투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딱 4시간째였다. 샘이 저 상태가 되어버린지. 둘은 신문에서 일어난 있을 수 없는 결혼과 그들의 죽음에 대해 보았고, 그대로 임팔라를 몰아 사우스 다코타에 왔다. 둘은 마녀에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술 주머니 포함한 그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아 며칠째 난항을 겪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세 명이고 세 명 모두 애인에게 살해당했다. 맺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상대가 미칠듯이 싫어져서 죽였다는 증언이었다. 심지어는 죽인걸 후회하지도 않았다.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다나. 이상한 것은 세 커플 모두 전에 만난적도 없는 사람과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 준비 까지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딘과 샘은 바에서 죽치거나 모텔에서 랩탑을 두드리면서 비슷한 일-애인을 죽이는 것 말고, 만난적 없는 사람과 갑자기 사랑에 빠진 일-이 없나 조사했다. 총 여섯 커플 정도로 수사망을 좁혔고 가짜 FBI 신분증을 들이밀며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두 커플 정도는 허탕이었지만 나머지는 사랑에 빠져 행복해지기 전 만났던 남자에 대해 입을 모았다. 금빛 고수머리가 눈과 같이 흰 목과 진홍색의 볼 위에서 물결치는, 감히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묘사에 샘과 딘이 서로를 마주봤다. 이젠 디카프리오가 연애사업도 도와주나? 샘은 고개를 저었고, 끔찍한 치정 살인의 가해자들에게 찾아가 물어보자 그들도 같은 증언을 냈다.


실질적인 진짜 가해자의 정체를 밝힌 것은 언제나 그렇듯 샘의 랩탑이었다. 딘은 에로스라는 단어에 맥주를 마시다 말고 얼굴을 구겼다. 그거 무슨... 큐피드 친척 쯤 되는 애 아니냐? 샘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는 정보를 읊었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고, 금빛 머리를 가졌다고 묘사되며, 맞으면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는 화살과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화살을 갖고 다닌다.


"하지만 걔는 완전 어린애잖아. 포동포동하고, 조그맣고 귀여운 날개에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고. 어디의 삽화에서 봤는데."

"그건 프쉬케랑 사랑에 빠지기 전의 이야기야. 아프로디테가 프쉬케를 추남과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시켰는데, 프쉬케가 너무 아름다워서 놀란 나머지 자기가 사랑의 화살에 찔려버렸데. 그리고는 펑, 청년으로 변한거지."

"그러니까 뭐야, 예전 그리스 신의 아들이, 사우스 다코타에 와서는 그냥 무작위로 사람들한테 화살을 쏘고 다닌다고?"

"그것도 사랑의 화살이랑 증오의 화살을 번갈아서. 시트콤 하나 만드는 것 같은데."


딘은 맥주를 마저 마시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거 소환하고 죽이는 방법은? 샘은 어깨를 으쓱였다. 마저 알아보지 뭐.


그리고 정확히 15시간 후에 둘은 에로스를 만난다. 가해자와 미래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들이 했던 묘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후드를 쓰고 있는데도 미모가 가려지질 않았다. 과연 비너스의 아들인데. 옆구리를 찌르는 딘을 못말린다는듯 흘긴 샘이 덫에 갇힌 에로스에게 다가갔다. 에로스는 눈을 크게 굴리며 완전히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희 완전 헛수고 하고 있는거야."

"그것 참 깜직한 등장대사구나, 큐피드 친척."

"너 그 큐피드라는게 내 이름의 영어 발음이라는건 알아? 난 걔네 친척이 아니라고. 걔네 조상에 가깝지."


에로스의 불평에 딘이 무안한듯 코를 긁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샘이 낡은 칼과 등불을 보여주자 에로스의 얼굴이 굳었다. 딘이 비웃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프쉬케의 칼이랑 등불이잖아. 그거 어디서 구했어."

"우리 아버지가 이것저것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서. 대답이 좀 필요한데. 왜 그 불쌍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지?"


에로스는 이를 갈다가 곧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뒤집던 에로스가 어깨를 늘어뜨린다. 나도 원해서 그런게 아니야. 웬 싸이코패스한테 소환당한 것 뿐이라고. 투덜투덜. 큐피드의 조상이라는게 뭐가 저리 불평 가득인지. 딘이 샘에게서 칼을 건네받아 덫 앞에 섰다. 그럼 그 소환한 놈 이름을 대. 에로스는 칼을 노려봤고, 곧 몇 걸음을 뒷걸음질 쳤다. 적당히 거리가 벌려지자 딘과 샘의 얼굴이 구겨진다. 에로스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후드 안에서 둘을 쳐다보다가 말문을 뗐다.


"너희가 멍청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그러니까, 그 칼을 구하고는 이 덫을 그릴 때 말이야. 꽤 잘그렸거든. 엄청 공들인 것 같은데. 몇 번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을거야. 안그런 것 같지만."


복잡한 덫을 꾹꾹 밟으며 혼잣말 마냥 이어지는 얘기에 딘과 샘이 서로를 마주봤다. 지금 허세 부려서 좋을거 없을텐데. 소환한 사람이 누군지 안불면, 그냥 널 죽여도 상관 없거든. 네가 없으면 어쨌든 그 망할 화살의 효과도 없어질테니까. 딘의 맞대응에 에로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내가 허세 부리는걸로 보여? 나가지도 못하는 덫에 갇혀서 하는 말 치고는 기개가 있어서 딘이 어깨를 으쓱였다. 에로스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직감이 이상한지 샘이 살짝 뒷걸음질을 친다. 


딘. 경계하라는 뜻이었던 이름에 딘이 뒤를 돌아보고, 찰나를 놓치지 않은 에로스가 후드의 뒤쪽에서 화살을 뽑아들어 그대로 딘에게로 던졌다. 동작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딘을 끌어당기던 샘의 손등에 화살이 꽂혔다. 꽂혔다기 보다는 스쳤다는 말이 어울리긴 했다. 쇳소리를 내며 화살이 떨어지고, 이번엔 딘이 급하게 샘을 끌어당겼다. 손등이 화끈거리는지 쥐고 있던 샘이 고개를 들어 딘을 마주했다.


"화살은 원거리 무기잖아, 멍청이들아. 활이 없거나 덫에서 못움직여도 던질 수 있지롱."


두 손을 들어보이는 에로스를 노려보던 딘이 설 수 있는 샘을 내버려두고 놓쳤던 프쉬케의 칼을 집어들어 성큼성큼 에로스에게 다가갔다.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에로스가 비실비실 웃는다.


"구하느라 고생 좀 한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걸로는 못죽여. 엄청 아프고 움직일 수도 없게 되기는 한데 말이야, 죽이는 도구는 아니거든. 잘못된 도구로 목을 베어버리면 주인한테 돌아간다는건 알고있지, 선샤인?"

"거짓말."

"오, 그래? 그럼 그걸로 내 목을 베어보던가.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딘은 눈을 부라렸다가 그대로 칼을 들었다. 딘은 정말로 에로스의 목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딘은 에로스의 조롱에 화가 나있었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어차피 반반의 확률이었다. 뒤에서 저를 구속하는 팔만 아니었다면야 당장 실행했을 계획이다. 딘은 하마터면 프쉬케의 칼을 뒤로 휘두를뻔 했다.


"샘?"

"딘-"


급하게 칼을 쥔 손에 제동을 걸고 옆을 쳐다본 딘이 입을 뻐끔댔다. 커다란 덩치로 완전히 딘을 감싼 샘이 등딱지마냥 딘에게 밀착 되어있었다. 에로스가 휘파람을 분다. 급하게 바닥으로 시선을 향하자 황금색 화살이 조롱하듯이 시멘트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미친- 딘이 욕을 하던 말던 샘은 딘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오리마냥 뒤뚱뒤뚱 걸었다. 억지로 붙들린 딘도 강제로 뒤뚱뒤뚱 제자리에서 한바퀴를 돌았고, 이건, 정말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샘, 새미! 허리를 제대로 조이고 있는 팔을 어떻게든 풀려고 애쓰며 소리치자 샘이 얼굴을 휙 들어 딘과 눈을 마주했다. Holy... 다급하게 샘의 애정 넘치는 눈을 손으로 막아버린 딘이 웃겨서 죽어가는 에로스를 노려봤다.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아 그게, 내 소관이 아니라서 말이야. 나랑 프쉬케 얘기 들어봤지? 나도 한 번 찔린건 어쩔 수가 없어. 내가 죽거나, 이경우에는 계약자를 찾아서 내가 받은 명령을 철회하게 하고 내가 돌아가게 해줘야겠지."

"그럼 계약자 이름을 대라고, 망할! 좀 떨어져!"

"그건 안돼. 계약자의 정보를 발설 안하는 것도 계약의 일부거든. 너희가 찾아서 날 풀어줘야 해, 도날드 덕과 데이지."


경례까지 하는걸 이를 박박 갈며 쳐다보던 딘이 기어코 샘의 배에 팔꿈치를 꽂아 자신에게서 떨어뜨렸다. 배를 감싸쥐고 정신을 못차리는 샘을 놔두고 프쉬케의 칼을 들어 에로스의 허벅지에 꽂아버린 딘이 비명을 지르는 에로스의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말을 씹었다. 내가 맹세하는데, 계약자니 뭐니 하는 그 빌어먹을 놈을 찾아 계약을 풀면 네 목부터 날아가게 할거다. 목 닦아놓고 기다리라고 망할 새끼야.


그리고나서의 4시간은 아주 끔찍했다. 샘은 끊임없이 딘에게 사랑고백을 해댔고, 그 커다랗고 순진한 눈망울에 간절한 빛을 넣어 자신을 봐주지 않는 제 사랑을 쳐다봤다. 딘은 가쓰에게 전화해 에로스를 죽이는 방법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고, 그 뒤에 탐문 수사를 하는 동안 정말 목을 매달고 지옥인지 연옥인지에라도 떨어지고 싶었다. 조사는 안하고 옆에 붙어서 그놈의 간절한 시선만 보내는 바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둘의 사이를 오해했고, 참다 못한 딘은 샘을 임팔라에 쳐박아두고 혼자 조사를 나갔다. 그것도 한 번만 안아주고 가면 안되냐는 부탁을 들어주고 나서야 할 수 있던 일이었다. 딘을 안은 샘은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고 딘은 총을 제 머리에 겨누지 않으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조사에서 건진게 있었다. 성사된 네개의 커플 중 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심리 상담소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해는 전부 져버렸고 매우 긴 하루였으며, 상담소의 영업시간은 지난지 오래였기 때문에 딘은 임팔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딘이 오자마자 샘은 반색을 했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심지어 샘은 딘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었는데, 딘은 딘에게, 까지만 읽은 후 편지를 바로 여섯갈래로 찢어 라이터로 태워버렸다. 상처 받은 샘은 시무룩해 하다가 또 간절한 사랑고백을 시작했던 것이다.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채 종이봉투를 쓴 샘을 모텔에 밀어넣자 가쓰에게서 연락이 왔다. 죽이는 방법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계약자의 오른팔에 에로스의 문양이 새겨져 있을거라는 말에 딘이 고맙다는 말을 돌리고는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던졌다. 너무 피곤해서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딘은 샘을 노려보다가 종이 봉투를 벗기고 입에 붙였던 테이프를 한 번에 떼어주었다.


"입만 벙긋 해봐, 재갈을 물려서 화장실에 쳐넣어줄테니까."

"하지만, 딘-"


딘은 즉각적으로 휴지를 뭉쳐서는 샘의 입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급하게 테이프로 묶인 손을 들어 그걸 제지한 샘이 알아서 제 입에 지퍼를 잠궜다. 차라리 증오의 화살을 맞은거라면 사정이 나았을 것이다. 딘은 어렸을 때 과자를 숨겨뒀던 날 이후로는 본적도 없는 시선을 받아내면서 샘을 두들겨 팰 수가 없었다. 자켓을 대충 벗어던진 딘이 침대에 쓰러졌다. 샘이 슬슬 눈치를 보며 제 침대에 앉는다.


"딘."


딘은 답이 없었다. 샘이 제 손에 감긴 테이프를 보다가 다시 딘을 봤다. 풀어주면 안돼? 딘은 역시 답이 없었다. 그래, 겨우 손에 테이프 붙어있는 건데 뭐. 그냥 잘게. 중얼거린 샘이 그대로 침대에 모로 누웠다. 그 때까지도 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랑의 화살인지 뭔지 정말 빌어먹게 짜증나는 물건이었다. 풀어줄테니까 그만 울어! 딘의 외침에 샘이 얼굴을 환하게 폈다.


"눈이 뜨인 기분이야. 생각해보면 어떻게 형을 사랑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어. 형은 내 모든 것이었잖아. 안그래? 어렸을 때 부터 계속 말이야."

"그런 놈이 대학에 가겠다고 가뿐히 짐 싸서 나갔었냐? 입에 침은 바르고 말해라, 샘."

"중요한건 지금의 내가 형을 사랑한다는거야. 원한다면 무릎을 꿇을 수도 있어. 어렸을 때 부터 형이 내 모든 것이었다는거 거짓말 아니야. 형은 완벽하잖아! 매일 정크푸드를 먹고 재미없는 개그를 쳐대는 것만 빼면."


딘은 질린다는듯 눈을 위로 굴렸다. 날 사랑하는 상황에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구나. 테이프를 칼로 끊어 구속을 풀어주자 샘이 덥석 딘을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 딘. 나한테 해줬던 그 모든것들 말이야. 딘은 허공에 손을 띄워놓고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그래. 알아주니 고맙다. 이제 그만 놔주지 않을래? 샘은 딘을 놔주고나서도 한참이나 딘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샘? 어색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 팔을 툭툭 치자 샘이 다시 딘을 끌어안았다. 이걸 원한건 절대 아니었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무릎치기를 먹여야하나 고민하는 새에 던져놨던 핸드폰이 울렸다. 떠있는 가쓰의 이름에 당장 샘에게서 벗어나 휴대폰을 챈 딘이 생명줄이라도 되는양 휴대폰을 붙들었다.


"제발 성과가 있다고 해. 나 진짜 창문으로 뛰어내려버리고 싶다고."

"미안, 성과가 있는건 아니고, 아까 해주려고 했는데 까먹었던 말이 생각났어. 샘이 에로스의 황금 화살을 맞은거라고 했지?"

"불행하게도?"

"에로스나 그의 라틴어 이름인 쿠피도는 추상명사를 그대로 갖다 쓴건데, 그리스 고대의 신들은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 아니면 단어를 신의 이름에서 따오거나, 그의 아내인 프쉬케의 이름도-"

"본론만 말해, 가쓰."

"그게, 원래 단어가 가리키는 뜻이 사랑이기는 한데, 굳이 사랑들 중에서도 분류를 하자면 욕정을 뜻하는거라서-"


나 같으면 방을 따로 잡을거야. 엄숙한 말에 휴대폰을 떨어뜨린 딘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샘에게 시선을 돌렸다. 샘도 통화를 들었는지 입을 뻐끔거렸고, 곧 자신이 무해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지만, 당연스럽게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딘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방을 나가버리는 것을 잡지도 못한 샘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손을 들었다가 놨다. 우는척까지 해서 테이프 풀어놨더니. 중얼거린 샘이 곧 다 포기한듯 침대에 누워 스탠드를 껐다. 







저주를 푸는게 2편 내용이 되어야하겟지만 쓸지는 모르겠군ㄴ요... 슈내 재밌..음..ㅠ 에로스에 대한 지식은 위키에 나와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라면서... 슈내 이교도 신 죽이기 정말 마음에 안드는데 생각나는게 없어서. 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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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리 전력 60분

주제: 해피엔딩






갤리는 옛날 이야기를 알았다.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한 두개, 그나마도 두리뭉술하게 알 뿐이다. 누워서 사과를 먹는 아이에게 대고 어디의 공주마냥 새하얗게 될거라고 비아냥대는 정도였다. 여러가지가 섞인 것도 있었다. 인어공주가 자신이 인어인 것을 늑대에게 들켜서 결국 늑대를 돌로 때려죽였다더라, 예쁘고 가난한 여자가 야수를 만났다가 요정의 힘을 빌려 힘들게 탈출했다더라.


입에 올릴 때 마다 결말도 과정도 다르다. 글레이드에는 동화책이 없었다. 누구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모르고, 그걸 알아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옛날 이야기는 토마토를 자라게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토마토를 자라게 해줬으면 하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희망은 진짜가 아니었고.


"그래서 마녀를 쫓아내고 성을 지켜서 다들 잘 살았어. 얘기 끝."

"그거 거짓말이지? 그사람들이 마녀를 쫓아낼 수 있었을리가 없잖아."


척은 툴툴댔다. 어린애 취급을 받은 느낌인 모양이었다. 술을 들고 통나무에 대충 앉아있던 갤리는 벌건 얼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래 애송아. 거짓말이다.


술이 넘어간다. 앞에는 모닥불이 있었다. 오랜지 빛이 넘나들며 풀들을 하얗게 새게 해버리고, 미로의 벽과 글레이더들에게 번진다. 그런 색채는 강렬했다. 수채화 보다는 싸인펜으로 죽죽 그어 놓은 그림 같다. 여기저기 겹치고 색이 덧발려서 더러운, 한없이 선명한. 그런 어린 아이의 그림에는 얼굴이 없다. 색이 덮여서 분간이 힘들다. 어쩌면 술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 당연히 술 때문이지. 갤리는 손에 들린 술을 더 마셨다. 주황색 잉크가 엉망으로 꾹꾹 눌린 얼굴에 이목구비를 그린다. 삐뚤삐뚤하게, 4살 짜리가 그리는 얼굴처럼 엉망으로. 노을에 담갔다 빼놓은 얼굴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웃는 얼굴도 있다. 자는 얼굴도, 하품을 하는 얼굴도, 멍한 얼굴도, 우울하거나 울거나, 한숨을 쉬는 얼굴도 있었다. 갤리는 얼굴들의 숫자를 세었다. 술을 더 마신다.


"성을 지킨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갤리는 시선을 내렸다. 색소에 반만 담궈진 커다란 빵이 떠들고 있었다. 갤리는 제가 떠올린 생각이 웃겨서 웃었다. 빵에도 얼굴을 그려넣는다. 궁금한 얼굴. 귀여운 얼굴. 가장 어린 얼굴.


"거짓말이라더니."

"마녀를 죽인게 아니라 그냥 쫓아낸거잖아.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까? 내 말은, 마녀가 그렇게 사악하다면 말이야."


갤리는 물끄러미 빵을 보았다. 내 말은 무시하고 조잘조잘 잘도 떠드네. 갤리는 술을 더 마셨다.


"그런 일은 없어."


빵이 구겨졌다. 다른 빵들은 흐물흐물 녹아서 모닥불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주황색으로 빛나니 머리가 불덩이인 요정들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을 잡고 모닥불 주변에서 원을 그리며 돈다. 춤이 점점 빨라져서 어쩌면 유성우 같기도 했다. 타는 것. 전부 타고 있다. 실제로 타는 것은 나무장작이었지만, 불은 모두를 태우고 있었다. 밝고 선명하게. 그렸던 얼굴들이 뭉게져서 갤리는 인상을 구겼다.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기도 했다. 해먹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그냥 풀밭에서 자고 싶었다. 벌레들이 많으니 그렇게는 안된다. 갤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그럴 수도 있잖아. 마녀라며."

"멍청아, 내가 아까 뭐라고 했냐. 얘기 끝이라니까. 그 뒷 부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야. 해피엔딩이라고. 옛날 이야기 들어본 적 없냐?"


반죽이 입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갤리가 위에 심통난 얼굴을 그렸다. 반죽은 옛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궁에서 끌려나온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갤리도 그걸 알았다. 갤리는 술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반죽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반죽의 두피는 안에 뼈라도 들은 듯이 딱딱했다. 반죽이 고개를 털어버린다. 반죽 주제에. 갤리가 반죽의 목에 팔을 걸고 끌어왔다. 반죽은 반항하나 싶더니 헤드락을 걸고 머리를 더 쓰다듬자 곧 그만 두었다. 갤리는 불이 태운 오렌지 색 반죽을 한 팔에 가두고 웃었다.


"듣고 싶으면 옛날 이야기 정도는 계속 해줄게. 내가 약속한다."

"진짜? 언제라도?"


반죽은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다. 볼을 잡고 늘인 갤리가 새끼 손가락이라도 필요하냐고 비뚤게 웃었다. 반죽은 다시 화를 낼 테세다. 그래도 제안이 나쁘지 않았는지 얌전했다. 갤리는 반죽을 건 채로 통나무에서 일어났다. 흡사 인질을 갖고 있는 분위기다. 술 때문에 갤리의 몸이 휘청인다. 그래도 반죽을 놓거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멀리서 새까맣게 탄 반죽이 소리친다. 신참 괴롭히지 마 갤리. 반죽이 벗어나려 버둥거린다. 갤리는 선심 쓰는듯 반죽을 놔줬다.


"진짜 옛날 이야기 계속 해줄거지?"

"그래 이새끼야. 어린게 말을 못믿어."

"전부 해피엔딩인걸로?"


갤리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안그래도 솟아있는 모양이 조명을 밀어내며 올라간다. 반죽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눈도 없으면서 신나서 갤리를 올려다본다. 갤리는 손을 들어 반죽의 이마와 눈을 덮었다. 반죽은 작아서 한 손에 들어온다.


"평생 해피엔딩만 들을 수 있게 해줄게. 땡깡 피우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


반죽은 손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으로 웃는다. 온 몸으로 웃는다. 손 안에서도 웃는다. 반죽은 갤리를 꼭 안아주고는 총총 해먹으로 뛰어갔다. 불에서 멀어지며 반죽이 탄다. 새까맣게, 새까맣게, 갤리가 그린 얼굴이 보이지도 않도록 새까맣게. 다른 아이들도 슬슬 일어나 불에서 멀어져갔다. 갤리가 술을 집어들고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모닥불로 향했다. 지나치는 아이들이 툭툭 건드리며 자기 할 말을 하고 간다.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 봐, 잘 자. 모든 반죽들이 탄다. 갤리는 모닥불 앞에 혼자 섰다.


마침내 불이 태우고 있는 것이 갤리 혼자가 되었을 때, 갤리는 마시다 남은 술을 불에 부었다. 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갤리는 발을 들어 약해진 불을 밟았다. 계속 밟는다. 장작이 무너져서 불이 꺼질 때 까지.


갤리는 탄 장작을 봤다. 아무것도 물들이지도, 태우지도 못하고 멀거니 남아 죽은 재를. 시체를.


그리고는 뒤를 돌았다. 알고 있는 모든 해피엔딩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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늍톰 꿈 02

연성/Maze Runner / 2015. 9. 9. 03:50




********데스큐어 스포주의*********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고등학교 설정입니다.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지만 제가 편하기 위해.







식은땀이 끈적거린다. 뉴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눕게 된지 한 달이 지나가는 침대가 서늘하게 식어있다.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른 뉴트가 침대 옆 탁자의 물컵을 집었다. 비어있어서 다시 내려놓는다. 기대놓은 목발을 집어든 뉴트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냉장고 빛은 생강 같다. 매운 눈을 비비고 물을 꺼내 병째로 마신 뉴트가 식탁에 몸을 기댔다. 꿈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반복재생. 끝나고 난 후에는 다시 반복재생. 랜덤 트랙처럼 뒤죽박죽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뉴트는 순서가 어떤지 알고 있었다. 오늘 꾼 것은 토마스의 시작이었다. 사실 아마도, 라고 짐작할 뿐이다. 뉴트의 시작은 머리가 텅 빈채로 알 수 없는 곳에 내던져지는 것이었으니 토마스의 시작도 그럴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전의 기억이 더 있는지 어떤지 알 길은 없다.

병원에 있는 한 달과 나온 한 달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번호는 교환했지만 이렇다할 연락이 주고받아진 적도 없었다. 뉴트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토마스도 마찬가지다. 뉴트는 사실 그냥 기다리는 중이었다. 멋대로 찾아가도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만난 후로는 헌화는 그만 둔 모양인지 퇴원 직전에 들른 민호가 결국 범인을 못잡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변태새끼 얼굴이라도 봤어야하는건데. 여자면 어쩌려고? 여자라도 변태는 변태지, 완전 징그럽잖아. 혀를 내두르는 얼굴을 앞에 두고 환자복을 입은 뉴트는 웃었다. 변태가 아니라고 두둔해줄 생각도, 제가 얼굴을 봤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보면 내막을 알아도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자신이 꿈에서 죽인 사람을 위해 헌화를 하다니.

토마스가 뉴트를 죽이는 꿈은 뭉게져있다. 인지상태가 바르지 않아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감정도 확실하지 않았다. 감정이 확실하지 않은지 오래된 상태라서 그랬다. 토마스는 장면이 뭉게지지도, 감정이 모호하지도 않은채로 뉴트를 죽였을 것이다. 고마워했는지, 그를 혐오했는지, 단순히 기뻤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뉴트는 죽었으니까.

다시 물을 마신다. 생강 빛이 닫히고 목발을 집어든다. 영상을 되새기며 계단을 오른다. 슬리퍼가 닿는 바닥이 어두웠다.




*




토마스는 뉴트 옆에 서있는 민호를 보고 입을 가만두지 못했다. 몇 번을 열었다 닫았다, 곧 확 다물고는 어색하게 인사한다. 안녕. 민호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뉴트의 옆구리를 찔렀다. 쟤가 그 변태라고? 뉴트는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야. 토마스, 이쪽은 민호. 다시 입이 벌려졌다가 닫혔다. 악수조차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안절부절, 가방끈을 쥐었다가 결국에는 똑같은 말이 나왔다. 안녕.

토마스를 발견하는건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었다. 하교시간은 비슷했지만 짐작했듯 영재반이라서 강제야자였고, 언제쯤 저녁을 먹으러 나오는지도 확실치 않아서 내내 죽치고 있었다. 뉴트의 다리 때문에 월담이 불가능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변태를 만나게 해줄테니 같이 가자는 말에 혹해서 끌려왔던 민호는 하품만 대여섯번 하느라 눈밑이 부었을 정도다. 뒤늦게서야 매점이나 급식실에서 석식을 먹을 가능성을 생각해냈을 때는 민호가 당장 가방을 맸지만, 약간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에 토마스가 나와서 어찌저찌 만남이 성립 된 것이다. 토마스는 뉴트와 민호를 보고서는 밀랍인형이라도 된 듯 꼼짝도 못했다. 덕분에 붙들기는 쉬웠지만.

"저녁 먹으러 나가?"
"대충..."

마른 것에 비해 덩치가 있는 모양새인데도 겁먹은 토끼 같은 얼굴이다. 불편해서 금방이라도 도망가고 싶어하는게 눈에 뻔하게 보여서 민호가 혀를 찼다. 제가 한 짓이 변태 같았다고 알기는 하는 모양이지. 민호의 생각 보다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토마스는 뒷머리를 긁었다가 뭐라도 뱉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너희는? 이라는 질문을 돌렸다. 뉴트는 자기들도 그렇다는 답을 했다. 우리가 언제? 다치지 않은 발로 민호의 발을 콱 내려찍은 뉴트가 점점 더 하얘지는 토마스의 얼굴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같이 먹을래?




*



토마스는 답답할 정도로 깨작거리며 음식을 먹었다. 평소에도 비슷하다고 변명을 하기야 했지만 얼굴에 속이 불편하다고 타이포그래피를 해놓아서야. 깨작거리기 보다는 아예 먹지를 않은 뉴트가 제가 시킨 음식을 덜어줬을 때는 정말 질색하는 표정을 했다. 먹어, 토미. 일부러 쓴 것이 명백해 보이는 호칭에 토마스가 거의 세 번은 토한 듯한 얼굴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옆에서는 진작에 제 몫을 끝낸 민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토미라고 했냐? 뉴트는 당연스럽게도 질문을 무시했다. 민호는 남아있는 뉴트의 몫을 끌어와 전부 먹었다.

"토마스라고?"

그나마 음식을 밀어넣고 있던 토마스가 목에 음식이 걸린 듯 급하게 물을 찾았다. 뭔 말을 못하게 해. 민호가 한껏 떨떠름한 얼굴을 할 동안 뉴트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물 한 잔을 다 들이켜서야 정신을 차린 토마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토마스인건 사실이었으니까.

"무슨 토마스인데? 토마스가 성이야?"
"이름인데, 성은 에덤스."

이번엔 뉴트가 눈을 깜박였다. 아, 하긴. 성이 없을리가 없겠군. 자신도 뉴트 아커만이었으니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민호는 별 감흥없이 콧소리를 냈을 뿐이다. 예의상 하는 질문에 불과했다. 뉴트가 노려봐서 토마스는 허겁지겁 다시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민호의 눈썹이 갈 수록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애초에 왜 자신이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든 접시를 비워낸 토마스가 헛구역질 까지 목 뒤로 간신히 넘겼다. 핑계거리가 됐으면 좋겠는데 주워진 저녁시간은 30분이나 남았다.

"왜 책상에 꽃 따위를 놓은거야? 대답 잘하는게 좋을걸, 이거 물어보려고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알면 놀랄거다."

일부러 인상을 구기며 하는 말에 토마스의 어깨가 쫄아들었다. 시선이 뉴트에게로 힐끔 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호의 쪽은 꿈을 안꾸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설명해봤자 의미가 없다. 일부러 목을 가다듬지 않은 상태로 토마스가 목소리를 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말투.

"ㅊ,친구가, 쟤를 좋아해서, 부탁하는걸 들어준건데... 미안,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친구? 어떤 빌어먹을 친구길래 매일마다 꽃을 갈아치우는 중노동을 시키고 그걸 들어줘?"
"좋아하는 애였어. 내가."

뉴트의 입이 동그래진다. 민호가 약간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뭐? 토마스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포크를 만지작거렸다. 민호가 입을 다물어버린다. 뉴트 앞에서는 못했던 빛깔 좋은 변명이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에게 꽃을 주기를 원하고, 자신은 그 애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부탁을 들어준다. TV에서 봤던걸 좀 배끼기는 했지만 반쯤은 사실이었다. 뒤는 완전히 거짓말이었지만. 어쨌든 이정도까지 거짓말 같으면 거짓말이라는 생각도 못하게 된다. 민호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 친구가 누군데?"
"그건 말하고 싶지 않아."
"뭐?"
"그것까지는 부탁 받지 않았어. 말하게 할 셈은 아니지? 진짜 잔인한 짓이라고."

이제는 민호를 노려보기까지 한다. 뉴트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심정이었다. 민호는 당황해서 어물어물 입을 닫았다. 하긴, 이름을 말해주면 대리고백을 해주게 되는 셈이다. 친구라는 사람한테나 토마스한테나 잔인한 일은 맞았다. 거짓말이라는게 문제긴 했지만. 결국 민호는 질문을 포기했다. 니들 알아서 해라. 가방을 집어들고는 가버리는데 토마스도 뉴트도 잡지 않았다.

민호가 유리문 밖으로 나가 사라지자 토마스가 속에 쌓인 한숨을 한 번에 뱉고는 테이블에 엎드렸다. 긴장이 풀려서 잠이라도 잘 수 있을듯 했다. 뉴트는 웃음을 최대한 절제하며 턱을 괴었다. 넌 꿈속의 너랑 대화도 해?

"그런건 아닌데, 그냥 그러고 싶을 것 같아서... 묻어주지도, 헌화를 하지도 못했잖아. 나는 그냥... 아, 내가 이걸 입밖으로 내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는듯 팔을 그러모아 머리를 쥐어뜯은 토마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걸 말할 생각은 없었다. 꿈은 꿈일 뿐이다. 토마스는 제 인생의 많은 시간을 꿈 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분리 시키는 것에 쏟아부었다. 최근 몇 년까지도 잘 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환자취급을 피하려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란스러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토마스가 뉴트한테 헌화를 하고 싶었을거라고 생각해?"

토마스는 팔 안에서 얼굴을 들었다. 뉴트는 여전히 턱을 괴고 있었다. 토마스는 의식적으로 천천히 자세를 바르게 했다. 몇 번이고 반복된 꿈. 뉴트가 죽는 꿈은 가장 선명한 장면이었다. 다른 꿈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장면은 어딘가에 칼로 새겨놓은 것 같았다. 가장 첫번째 꿈에서 건네받았던 나이프. 그것으로 뉴트의 이름 위에 가로선을 긋는 자신. 아니, 토마스. 토마스는 공연히 입안을 씹었다가 손바닥으로 눈을 문질렀다.

"왜 3층에서 떨어졌어?"

작년에 시간떼우기를 위해 갔던 축제에서 뉴트를 보았고, 얼마전에 누군가가 3층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루머는 자극적이다. 투신자살이 아니라 구조물이 약해져서 일어난 사고라고 이야기가 정정 됐지만 토마스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담을 사이에 두는 남고에는 중학교 동창들이 많았고, 정보는 쉽게 얻었다. 소문의 아이가 뉴트라는 확신이 생기자 어딘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꿈 속과 자신을 분리해 놓은 벽. 사실 그건 벽이라기 보다는 댐이었다. 얼기설기 엮어놓았던 비버댐은 도움으로 인해 튼튼하게 지어올려졌다가, 축제에서 뉴트를 봤을 때 반쯤 무너졌고, 1년 새에 다시 단단해졌었다. 목숨은 건졌는데 다리가 부러졌데. 평생 절거라는데. 토마스는 꽃집에서 하얀 꽃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부탁 받았다는 생각은 억지로 설정한 한계선에 불과했다. 토마스는 뉴트를 원망했다. 잘 되어가고 있었던 공사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꽃을 책상에 놓고 담을 넘은 후에는 항상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몇번이고 확인하고, 그 후에서야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목발을 짚은 뉴트를 만난 후에야 말할 것도 없었다. 번호를 교환했지만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다. 뉴트는, 역시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지만.

뉴트는 눈을 내려깔고 있었다. 모든게 너무나 꿈과 똑같았다. 토마스는 그것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 엄청난 죄책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건 토마스가 한 일이 아니었다. 이해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토마스는 꿈 속의 토마스를 너무 잘 알았고, 토마스는 그였으며, 뉴트와의 만남 이후 제 자아를 분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민호까지 봤다. 꿈을 꾸지 않는 모양이었고 토마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위기였지만, 그것을 빼고는 마찬가지로 꿈 속과 분리해내기가 어려웠다. 토마스가 눈을 감는다. 뉴트의 말이 귀로 떨어진다.

"조금이라도 같아지고 싶었거든."

같이 시켰던 음료수에서 얼음이 녹는다. 토마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뉴트는 빨대로 음료수를 젓다가 깁스가 되어있는 제 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창틀의 구조물이 약해져 있었다는건 사실이었다. 헛디뎠다는건, 거짓말이었다. 뉴트는 교실 끝에서 열린 창문까지 전력을 다해 뛰었고, 뉴트가 몸을 들이받은 구조물은 부서졌다. 결과는 보는대로였다.

잘못하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어도 상관 없었을 것이다. 뉴트는 기억과 매우 닮아있는 꿈이 주는 괴리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꿈 속의 자신은 자신이었지만,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은 부모님이 있었고 원할 때 무언가를 먹거나 잘 수 있었으며 다리도 절지 않았다.

뉴트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만을 했다. 병원에서 일어났을 때 죽지 않았고 한쪽 다리만 부러졌다는 것과, 평생 절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뉴트는 희열을 느꼈다. 드디어 뭔가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토마스를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책상에 헌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희열은 더 커졌다. 온통 잘못된 조각 뿐인 퍼즐판에 제대로 된 조각이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래서 번호를 물어봤다. 되도록이면 계속 만나고 싶었다. 토마스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지만.

"난 네가 날 죽여줬으면 좋겠어."

굳게 닫힌 속눈썹이 떨린다. 뉴트는 빨대로 젓던 음료수 컵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탄산이 뭔가를 태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넘쳐흐른다. 댐이 무너진 저수지처럼.

토마스는 가방을 매고 나가는 뉴트를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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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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늍톰 꿈 01

연성/Maze Runner / 2015. 9. 6. 23:32


*****데스큐어 스포주의******

톰른 전력 60분
주제: 꽃





입원한 뉴트의 책상에는 꽃이 있었다.

누군가는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죽은 것도 아닌데 책상에 꽃이라니.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뉴트와 친했던 아이가 꽤 큰소리로 투덜거려도 다음날도, 다음날에도 꽃이 있었다. 쌓이는게 아니라 하루 걸러 하루 씩 꽃이 바뀌고 있다. 누군지 몰라도 참 정성이지. 꽃은 항상 아침에 바뀌었고 소문은 무성했다. 매일 가장 먼저 오는 아이는 제가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지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꽃은 바뀌었지만 종류는 한정되어 있었다. 하얀 꽃. 백합, 국화, 뭐 그런 것들. 한 송이일 때도 있고 다발일 때도 있다. 기분이 나빠서든 신경을 안써서든 꽃이 치워지는 일은 없었다. 뉴트가 입원한지 두 달이 지난 요즘에는 옆학교 학생의 짓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아침에 담을 넘어서는 책상에 꽃을 올려놓고 다시 나간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멀리서 봤다는 못믿을 증언들이 몇 개 있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곳은 공학이었기 때문에 여학생의 짓인지에 대한 수근거림도 돌았다.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뉴트는 실제로 인기가 있었고, 놓여있는게 꽃이었으니까. 물론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얀 꽃은 계속 놓여졌다. 그곳이 무덤인 것 마냥.

뉴트는 민호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누가 그런 귀찮은 짓을 한데? 민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뉴트가 집중해서 깎아놓은 사과를 집어먹었다.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돌아다니기가 여의치 않아 시작한 취미였다. 이젠 제법 껍질을 끊지 않고 깎을 수 있게 됐다.

조심해, 널 죽이겠다는 협박일 수도 있다고. 짐짓 진지한듯 농담을 던지는 민호에게 어처구니 없다는 웃음을 돌린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시지. 반박할 말은 없다. 민호는 그쯤이면 됐다는듯 가방을 들어올렸다. 오기도 귀찮은데 언제쯤 퇴원해? 입원한 뒤로 처음 들리는거면서 생색만은 굉장하다. 뉴트는 간호사의 말을 떠올렸다. 한 달쯤 남았나. 민호가 혀를 찬다.

"평생 절거래?"

뉴트는 말이 없었다. 민호는 뒤통수를 좋을대로 헤집었다. 3층에서 떨어졌으니 다리만 부러진 걸로도 엄청난 행운이다. 원인은 아무도 몰랐다. 뉴트는 발을 헛디뎠다고 했다. 창문이 열려있었고, 철창이 낡아서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고. 안믿을 이유가 없으니 다들 위로를 했다. 뉴트는 어깨만 으쓱였다. 어차피 몸 쓰는 일 하는 것도 아닌데요.

걱정하는 사람은 부모님과 민호가 전부다. 가방을 든채로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민호를 쳐다보던 뉴트가 새로운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원죄. 날에 깎여나가는 붉은 껍질이 접시로 툭툭 떨어진다.

"설마 그놈의 빌어먹을 꿈 때문인건 아니지?"

결국 민호가 입밖으로 문장을 냈다. 뉴트의 손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꿈. 눈을 내려깔았던 뉴트가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벽과 미로. 끔찍한 기계음. 부유감. 항상 다리를 절던 자신. 껍질을 뚫고 나온 칼날이 엄지에 닿는다. 뉴트는 놀라거나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눈을 떴다. 간호사 누나한테 혼나겠군. 칼과 사과를 내려놓는다.

"그냥 헛디딘거라니까."

부정을 차단하는 목소리다. 민호는 찝찝한 얼굴이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입학 초기 이후로는 입에 담지 않았다. 그나마도 흘리듯이 말했을 뿐이다. 악몽을 꾸는데 항상 다리를 절어. 병신같이 절뚝거리며 뛰어다니는데, 너도 그곳에 나와. 웃기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선명한 꿈인데 말이야.

그당시의 민호는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소름끼치니까 농담이라고 해. 뉴트는 웃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고 흐지부지 넘어간 일이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충격이 크긴 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뉴트가 3층에서 떨어진게 충격이었거나, 아니면 꿈에서처럼 평생 다리를 절게 된 것이 충격이었거나.

시계는 6시를 향해 가고 있다. 밥 먹으러 안가도 돼? 축객령에 민호가 여전히 찝찝한 얼굴로 뒤를 돌았다. 꽃 놓고 다니는 새끼 잡아놓을테니까 빨리 와. 뉴트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까와는 달리 미련 없는 태도로 민호가 병실을 나갔다.




*




"안녕."

어깨가 1m는 족히 튄다. 뉴트는 사각에 있는 그늘에 앉은채로 웃고 있었다. 목각인형 처럼 뒤를 돌아보는 얼굴에 선명하게 점이 찍혀있다.

오전 5시30분. 아무도 못 볼만 하군. 혹시 몰라서 거의 한시간쯤을 일찍 온 뉴트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담에 매달려있는 아이를 훑었다. 옆 학교의 마크가 새겨진 와이셔츠가 잠겨지지 않은채로 검은 반팔 위에 입혀져있었다. 각도 때문에 명찰이 안보였다. 소문이 반쯤은 맞아 떨어졌던 모양이다. 손에는 하얀 라일락. 뉴트는 문득 오늘 제 책상에 놓여있을 꽃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목발을 짚고 일어선다.

"맞춰볼게. 영재반 소속이지?"

말이 없다. 옆 학교의 영재반은 6시 등교가 일반적이었다. 팔에 힘이 빠진건지 도망쳐도 아무것도 안될거라고 알았는지 아이가 담에서 뛰어내렸다. 명찰에 선명하게 이름이 써있다. 토마스.

식은땀과 담의 먼지가 범벅 된 손을 바지에 문지른 토마스가 입을 우물거리다 뒤통수를 긁었다. 말을 걸은데다 라일락를 뚫어져라 쳐다보는걸 보면 다 알고 온 모양이었다. 한숨을 쉬고는 말을 고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뉴트는 삐딱한 자세였다. 목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토마스는 깁스가 되어있는 다리를 본 후로는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리, 절게 되는거야?"

뉴트는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그럴 것 같대. 목이 매이는 기분이라 헛기침을 해야했다. 꽃과 얼굴, 명찰의 이름까지. 그냥 단순한 추측이었다. 민호는 꿈을 꾸지 않는 모양이었고, 그럴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하필이면 네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토마스가 진정하려는 듯 숨을 깊게 쉬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꽃은, 소문대로의 의미는 아니었어. 그러니까, 네가 죽었으면 한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누군가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길래 무시할 수가 없어서... 물론 다른 소문 처럼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갖다놓은 것도 아닌데- 나는-"

이거 진짜 바보 같이 들리겠다. 갈수록 발음을 뭉게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말을 끊은 토마스가 짜증을 내며 머리를 거칠게 긁어댔다. 빛깔 좋은 변명 정도 만들어두면 좋았을텐데. 없다는건 아니었지만 본인 앞에서 변명을 꺼내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입원한 병원이 꽤나 멀었고, 들리는 얘기로는 퇴원은 2주나 남았다고 했는데. 목발을 봐서는 트리사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특별한 감정이 있었던게 아니야?"

토마스가 아래로 끌려갔던 얼굴을 든다. 뉴트는 한쪽 목발에 완전히 기댄채로 웃고 있었다. 토마스는 눈을 깜박이다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말이 제대로 안나와서 또 입술만 우물댄다. 떠보는 질문들은 싫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맞는건지 영 알 수가 없다. 답이 없는 토마스를 두고 어깨를 으쓱인 뉴트가 목발을 짚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춤 뒤로 물러났던 토마스가 착실하게 다가오는 뉴트를 곤혹스럽게 바라봤다. 마주칠 생각은 없었다. 평생 레벨로. 얼굴을 가까이 할 생각은 더더욱. 뉴트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손이 내밀어진다. 토마스는 의문스러운듯 미간을 구긴채로 뉴트와 손을 번갈아보다가 곧 제 손을 위에 올려놓았다. 웃음을 터뜨린 뉴트가 다른 손을 움직여 토마스의 손에 있는 라일락을 가져왔다. 순식간에 새빨개진 얼굴 앞으로 라일락을 든 뉴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봄철도 아니니 구하기 힘들었을텐데. 가져온 보람없이 뉴트가 다시 토마스에게 라일락을 건넸다. 받아. 주는거니까.

"내가 산 건데...?"

얼빠진 목소리에 다시 뉴트의 웃음이 터졌다. 목발을 짚지 않았다면 어깨라도 두드려줬을 것이다. 안받기도 껄끄러운지 토마스가 라일락을 받았다. 불편한 얼굴로 라일락을 보는 토마스를 빤히 쳐다보던 뉴트가 손을 뻗어 라일락의 꽃잎을 하나 땄다.

"토미."

토마스가 훽 고개를 든다. 귀엽게까지 보일 정도라 입꼬리를 올린 뉴트가 꽃잎을 빙빙 돌렸다. 멍청하게 벌려져있던 입이 의식적으로 닫힌다. 토마스가 다시 라일락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뉴트가 웃는채로 입을 연다.

"휴대폰 번호라도 교환하는게 어때?"

학교 근처에서 마주치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하거든.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토마스가 몇 초 뒤에야 허둥지둥 폰을 꺼내들었다. 내주는 손에 라일락 향기가 베어 들어 있었다.





흰 라벤더의 꽃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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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톰 Waiting

연성/Maze Runner / 2015. 8. 16. 23:54



톰른 전력 60분

주제: 기다림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실텐데 민톰 맞습니다... 도저히 뭘 써야할지 생각이 안나서 예전에 썼던 썰의 뒷부분이라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런거 전력으로 내도 되나 너무 양심찔린다...





마지막 축제는 화려하게, 시작할 때 처럼.




"뭘 기다리고 있나요?"


상담사는 친절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편안함을 주는 미색의 벽지와 천천히 돌아가는 햇볕. 의자가 너무 푹신해서 땅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상담사는 기다려주었다. 어차피 바로 대답을 하는 사람을 찾는다는게 더 어려운 일이다.


남자가 이 상담실을 찾은지 오늘로 꼭 두번째였다. 이런 후미진 바닷가 마을에는 병원도, 상담실도 적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더 적었고. 남자의 ID에 적힌 주소는 여기서 한참이나 떨어진 도시 근교였고, 그것에 대해 물었을 때는 일 때문에 체류중이라는 답이 나왔다. 무슨 일이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진작가거든요. 수중 사진 전문. 상담사는 남자가 이곳의 바다 때문에 무거운 카메라를 끌고 왔음을 깨달았다. 여기 바다가 좀 아름답기는 하죠. 남자는 바로 수긍했다. 그 뒤로는 대화가 끊기더니 도저히 안되겠다면서 뒷목만 긁다가 돌아갔다.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하늘이 무너지던 밤에."


남자는 상담사와 눈을 맞추지 않은채로 입을 열었다. 쏟아지는 별가루를 얻어맞은 사람이 있었죠. 상담사가 소리를 내지 않고 앞에 있던 차를 마신다.


"그 사람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별가루가 속눈썹에 맺혔고, 가끔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온 길에는 물에 잠긴 별가루들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블라인더에 조각조각 나뉘어진 햇볕이 차소리에 지워졌다가 다시 차오른다. 남자는 먼 일을 회상하는 사람처럼 약간 입을 벌리고 있다. 별가루. 사실은 말이지, 유성우가 타고 남은 조각 같은 로맨틱한 것을 말하는게 아니야. 조곤조곤한 목소리. 하늘이 무너지는 밤.


"셰익스피어인가요?"


상담사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웃었다. 남자는 픽 웃어버리고는 뒤통수를 긁었다. 역시 누군가한테 상담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상담사는 일어나는 남자를 잡지 않았다. 원래 그러지 않는게 암묵적인 룰이기도 했다. 떠나고 싶어하는 내담자를 잡을 권리는 상담사에게 있는게 아니니까.


남자는 외투를 챙겼고, 아직 식지도 않은 커피를 입에 털어넣어 삼켰다. 혀뿌리가 단번에 쓴 맛에 감싸여 찝찝함을 남긴다. 마시지 말걸 후회해도 식도에는 가라앉은 설탕이 들러붙어 필사적이었다. 그가 말한 별가루 처럼.


"정말 뭘 기다리고 있는건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상담을 받는 목적에는 기억이 혼란스럽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어느 기억이 혼란스러운지부터를 묻는게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남자가 처음 입을 열었을 때 낸 것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나가면 역시 다시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는 문턱에서 뒤를 돌아봤다가 눈썹을 누그려뜨렸다. 약간 사나운 인상이었던 얼굴이 난감한 빛을 띄었다가 곧 한숨과 비슷한 웃음을 올렸다.


"인어요.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남자가 문을 나선다.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에서는 소금 냄새가 났다. 햇볕이 다시 한 번 차소리에 지워지고, 컵 바닥에 늘러붙은 커피에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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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님, 폴님 톰갤 트윈지에 들어갔던 축전. 내가 썼던 썰이 원작이라 책 내주시는거 정말 감사해서ㅠㅁㅠ 썰에 없었던 토마스랑 갤리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를... 축전으로 줬었다... 4페이지 분량이라 짧지만 티슷에도 올려봄.





"좋아해."


갤리는 가방을 들쳐매다 말고 뒤를 돌았다. 강의실에는 아직 노을이 지지 않고 있었다. 넓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크기. 책상은 줄지어 늘어져있고 의자는 산만하게 흩어져있었다.


갤리는 칠판 위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갤리가 졸다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앞에, 아니 뒤에 있는 사람은 거진 30분을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갤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볼 필요성이 있었다. 하얀 얼굴에 짧은 앞머리, 별처럼 뿌려진 점. 형광등 때문이 아니더라도 남자는 매우 창백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단순히 얼굴이 하얀 것 보다는 좀 더, 뭐랄까, 입술도 파랗고. 갤리는 그제서야 남자가 방금 자신에게 뱉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했다. 아. 갤리가 무의식적으로 한 마디를 뱉자 남자의 어깨가 튀었다. 앞으로 어깨가 굽어서 몸집이 더 작아보였다.


너무 자주 듣는 소리다 보니까 단어의 무게를 잊어버린 참이다. 갤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침음성이 차가운 벽과 인조 대리석에 부딪힌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제 입을 때리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갤리는 남자를 훑어봤다. 같은 과, 는 아니다. 30분 전에 진행 된 강의는 교양이었고 전공 수업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살펴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갤리는 문득 그런 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했다가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저한테 하신 말이에요?”


남자는 어쩔 줄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창백했던 얼굴이 점점 귀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갤리는 잠자코 남자를 쳐다봤다. 모르고 물어본 질문일 리가 없었다. 강의실에 남은 건 갤리와 남자가 전부이고 남자가 유령을 볼 수 있을 확률도 희미했다. 단지 갤리는 말문을 틀만한 문장이 필요했다. 남자는 입을 어물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숙이더니 소심하게 목을 움직였다. 갤리는 잠시 눈을 위로 굴렸다. 예상 못한 반응은 아니지만 대화가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갤리는 가방을 다시 들어올렸다.


“계속 앉아있었던 겁니까?”


남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안 깨우고? 이 질문에는 반응이 없었다. 갤리는 뱉은 직후에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저도 모르게 좋아한다는 말을 뱉을 정도면 무슨 생각을 했었을지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었다. 깨웠을 리가. 갤리는 헛기침을 했다. 제 목에도 슬슬 열이 올라오고 있는 듯 했다. 강의실 공기 전체가 난감한 빛을 띄고 있다. 뻣뻣한 페인트 냄새.


남자는 선고를 기다리는 듯 한 분위기로 축 늘어져있다. 갤리는 제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키 탓으로 동그란 정수리가 정면으로 보였다. 입을 비뚤게 한 갤리는 신발바닥으로 강의실 바닥을 몇 번 비볐다. 문득 여기서 계속 있다가는 시계 초침이 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갤리는 발을 움직였다. 다른데서 얘기하죠. 남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얼굴을 더 창백하게 했다. 갤리는 뭐라고 말해야할지 난감해져서 강의실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싫어요? 남자는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갤리는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강의실을 나왔다. 남자가 급하게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갤리는 자연스레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가 곧 기다리고 있을 얼굴들이 생각나서 방향을 돌렸다. 학교 안 까페도 괜찮아요? 몇 걸음 뒤에서 쫓아오던 남자는 뒤를 돌아보는 갤리 때문에 거의 넘어질 뻔 했다. 곧이라도 쓰러질 듯한 분위기에 갤리가 알맞은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웃음을 흘렸다.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갤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듣기나 했는지 모를 일이다. 갤리는 대학 부지 내에 있는 까페로 향했고, 남자도 허둥지둥 갤리를 따라왔다. 약간 처음 기르는 개를 산책 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



“이름이?”


남자가 정말 기절할 것 같은 모양새라 갤리가 대신해서 커피를 받아왔다. 남자는 가늘고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토마스. 흔한 이름이다. 갤리는 얼음이 떠있는 커피를 빨대로 저었다. 이 질문을 꺼내야할지 말아야할지. 습관대로 뒤통수를 긁은 갤리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우리?


“ㄸ,따로 만난 적은, 없고, 그러니까, 교양 몇 개가 겹치는데, 아까거랑, 역학 수업, 이, 그. 동기니까, 말은. 죄송합니다.”


남자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역학 수업이라니, 강의명에 역학이 들어가는 강의가 몇 개인데 그런 설명을. 그러나 역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으므로 갤리는 질문을 참았다. 적어도 제 기억력이 잘못 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충분한 양의 커피가 빨대를 통해 갤리의 입으로 들어갔다. 멍한 머리가 약간 깨워지는 느낌에 갤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고 했던거지? 그냥 확인차.”


남자는 대답 없이 머리를 그대로 박고 있었다. 충분한 답이 되었으므로 갤리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까. 갤리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자신을 기다리며 말싸움을 하고 있을 두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앞에 있는 동그란 정수리를 쳐다봤다. 어떻게 반했는데? 마치 남의 연애담을 묻는 듯한 말투에 남자가 여전히 엎드린 채로 어물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몸을 물릴 정도로 절박한 눈이 열기에 차있었다.


마치 이것만큼은 눈을 맞추고 말해야겠다고. 그런 말을 하는 시선.


“ㅊ,책을, 주워줬는데, 세 달 쯤 전에.”


세 달? 갤리는 약간 황당해져서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반문을 뱉었다. 세 달 전에 반했단 말이야? 갤리는 남자를 오늘 처음 봤다. 그 전 까지는 이름도 몰랐는데. 그보다 겨우 책을 주워줘서 반했다니. 갤리의 표정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초조하게 손을 말아쥐었다.


“복도였는데, 책이 완전 쏟아지는 바람에... 그냥 내가 주우려고 했는데 갑자기 손이 나와서. 올려다 봤는데, 햇볕이, 그게-”


남자는 입을 몇 번 금붕어처럼 뻐끔대다 다시 엎드려버렸다. 뭔가 열심히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이었다. 갤리는 그제서야 어렴풋하게 세 달 전의 일을 기억해냈다. 확실히 누군가의 책을 주워준 것 같은 기억. 후드를 뒤집어 쓰고, 안경을 쓴 채인. 햇볕에 반사되는 옅은 갈색 눈과 선명한 점. 갤리는 혀를 움직여 감탄사를 내었다. 그 때의.


“귀여웠던.”


남자는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갤리는 뱉은 말을 수정하거나 입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귀 끝까지 붉어지는 창백한 얼굴과 색이 돌아오는 입술. 고른 치아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갤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통유리로 된 까페의 창문에서 세 달 전보다 훨씬 약한 햇빛이 들어왔다. 갤리는 빨대를 입에 넣고 언젠가 성격이 나빠보인다고 지적 받았던 웃음을 지었다. 좋아한다고 했지.


“사귈까, 그럼?”


남자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경악스럽게 벌려진 입에 갤리가 배를 잡고 웃어대는 소리가 의자가 넘어지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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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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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임스 Bomb

연성/기타 / 2015. 7. 19. 04:22
이거 흑역사 된다는데 내 전재산 검ㅅㅂ 죄송합니다 두발님






아서에게는 강박증이 있었다. 임스는 그걸 예상했다. 단순히 지나치게 깔끔한 외모만을 보고 판단 한 것은 아니었다. 아서의 강박증은 시계를 직선으로 놓거나 가방을 틀에 맞춰 정리하는 증상으로 보여지기도 했지만, 임스는 단순히 그런 '행동'만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임스는 아서와 처음 일을 끝마치고 나서 이 능력 좋은 포인트맨에게 이름표를 하나 붙였다. 폭탄.

임스에게는, 약간 심한 방랑벽이 있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의 도박장을 전전하고는 했다. 도시에서 도시로가 아니라 나라에서 나라로. 아서도 그것을 예상했다. 임스의 방랑벽이 단순히 관광의 목적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아서 또한 임스에게 이름표를 붙였다. 폭탄.

"저녁 어때?"

임스는 구겨지는 아서의 표정을 즐겁게 내려다보았다. 아서는 막 패시브를 정리하고 작업장을 떠나려던 참이었고, 아서의 '계획'에 임스가 말을 붙여오는 일은 없었을 터다. 앞을 가로막고 웃는 임스를 피곤하다는 듯 노려본 아서가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바로 미소를 표정에서 지웠다. 임스는 아서가 대놓고 표현하는 불쾌함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정말로.

"놀리는 것 좀 그만 두지 그래."

임스는 유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누굴 놀렸다고 그래, 달링? 아서는 그쯤이면 됐다는 듯 임스의 어깨를 밀고 앞으로 걸어갔다. 여유로운 발걸음이 그 뒤를 따랐다. 저녁이 싫으면 술은 어때? 내가 살게. 아서는 걸어가면서 제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임스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위조꾼이었고, 아서는 뒷조사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포인트맨이었다. 둘 다 사람의 생각을 간파하는데는 이골이 나있다. 임스는 아서가 제 생각을 읽고 있다는걸 알았다. 다만 전혀 신경쓰지 않을 뿐.

둘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는 스페셜리스트였으며, 같이 일하면 효율이 좋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코브를 통해서 같은 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서는 코브의 입에서 위조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미간을 구겼다. 말 안해도 느껴지는 불쾌함의 기운에도 코브는 일이 빨리 끝날거라며 어깨를 두드려줄 뿐이었다. 아서는 임스가 불편했고, 임스가 자신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임스는 자신을 불편해해야 마땅했다. 적어도 아서의 생각에는 그랬다.

"임스, 베이징으로 돌아가."

도저히 다른 길로 접어들 생각을 안하는 임스 때문에 골이 아파진 아서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임스는 손에서 굴리던 칩을 손가락으로 튕겼다가 다시 잡고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베이징에는 재밌는 게 떨어졌어. 아서는 걸음을 멈췄다. 아하. 단지 두 음절에 담겨있는 온갖 불쾌한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낸 임스가 아서를 지나쳐 걸었다. 찔러넣어진 손에 산뜻한 휘파람. 아서는 별 수 없이 임스를 따라 마저 걸었다. 호텔까지 쳐들어올 샘은 아니겠지.

임스와 아서의 상성은 극악이었다. 정확히 말해 아서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임스가 정확히 뭐라고 자신에게 네이밍을 했는지 까지는, 그야 초능력자가 아니니 알 수 없었지만, 저 같은 타입이 임스에게 호감으로 보일리가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임스는 통제 받는 것을 싫어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서 그곳의 특별한 룰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했고, 따라서 생긴 것이 방랑벽과 위조꾼이라는 직업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통제 되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 여기저기 튀어다니고, 예상을 벗어나거나 세운 계획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짜증이 났다. 임스는 아서가 싫어하는 것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아서는, 임스가 싫어하는 것을 그대로 압축 시켜 놓은 사람이고.

사실 아서는 임스가 절 불편해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임스는 아서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재미있어 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서가 짜증을 내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툭툭 건들고, 놀리고, 자극해서 결국에는 터지는 걸 보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임스에게 있어 아서는 분명히 폭탄이었다. 터지는 선을 잘라 그대로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종류의.

"정말 저녁 안먹을래?"

임스는 실실 웃고 있었다. 아서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겼다. 허락하면 비웃을 것이고, 끝까지 허락하지 않아도 비웃을 것이다. 아서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어차피 정해놓은 계획은 박살났다. 아서는 우두커니 서서 잠시 생각했다. 몇 초 후 저를 지나쳐 호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아서의 뒤에서 임스가 참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놀림 당할거라면 식당은 제가 골라야한다. 그정도 통제는 하게 해줄 수 있었다. 임스가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



임스는 아무런 불평없이 해산물 요리를 먹어치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가 '맛있게' 먹었다고 표현할테지만, 위조꾼이 겉으로 내비치는 감정이야 1차적으로는 믿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아서는 경험에 의해 어느정도 임스의 껍데기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지금의 껍데기에 담긴 의도는 명확했다. 놀리기.

"환상적이었어 달링. 맛있는 곳 찾아내는 솜씨가 굉장한데."

아서는 대답없이 일어나서 임스의 몫까지 값을 치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건지 말리는 말도 없다. 외투를 팔에 걸친 채 밖으로 나가는 아서를 따르던 임스가 걸음을 빨리해 친밀한 사이마냥 옆에 붙었다. 저런 맛있는 식당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맛있는 술집도 알고 있겠지? 큰 덩치로 십대마냥 재잘거리는 임스를 한 번 흘겨 본 아서가 다시 시계를 봤다. 내일 오전 비행기로 LA를 뜬다. 당분간은 코브와도 떨어져 지낼 생각이었다. 휴가는 중요했다. 휴가 계획은 더더욱 중요했고. 비행기를 놓치면 앞의 계획들도 도미노마냥 무너질게 당연했다. 당연히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아서는 호텔로 돌아가는 대신 코브와 간 적이 있었던 바로 발걸음을 틀었다. 임스는 대놓고 놀라워했다. 이 당연한 것에 목을 매는 레일 위의 남자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제나저제나 사실 임스에게는 별 상관 없는 문제기는 했다. 놀아나준다는데 거절 할 이유도 없고.

아서는 블랙 러시안을 주문했다. 임스는 떨떠름하게 아서를 봤다가 진 마티니를 시켰다. 바는 조용했다. 바가 조용하다니. 임스 같아서는 발을 들여놓자마자 다른 곳으로 내뺄 성 싶은 분위기였지만 아서와 코브를 가져다놓으면 괜찮은 시너지를 낼 터였다. 아주 배려가 없다싶이 하시는구만.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티를 안낸다고 해서 아서가 모를리는 없겠지만.

"베이징에 재미있는게 없으니 다음은 러시아인가?"

임스는 과장되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바로 무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나온 마티니를 입에 털었다. '아서식 불쾌함 표현하기'에 아서는 눈썹을 들었다가 내려놓고는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클래식이 바 전체를 돌고 있었다. 임스의 취향이 아닌 것 만은 확신할 수 있다. 행선지를 제외하면 딱히 물어볼 것도 없어서 아서는 입을 다물었다.

임스는 잔을 두드리다가 시선을 대각선으로 올렸다. 시끄러운 술집이었다면 어디든 벌어지는 판에 끼어들어 아서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소근거리는 커플들과 혼자 조명 아래에서 폼이나 잡는 사람들이 다인 공간에서는 그런 것도 불가능했다. 임스가 불쾌해하자 아서의 표정이 펴졌다. 사돈 남말하는 격이었지만 이남자도 제대로 성격파탄이다.

"이런걸로 날 통제 안에 넣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아서."
"충분히 넣은 것 같은데, 임스."

우아하게도 말씀하시지. 입을 삐죽댄 임스가 올리브를 씹으며 온 더 락을 시켰다. 이런 바에는 룰이 너무 많았다. 목소리가 음악보다 크면 안된다던지, 취해서 바닥에 뻗으면 안된다던지, 도박을 하면 안된다던지, 뭐 그런 것들. 좀이 쑤셔서 다리가 떨린다. 아서는 온 몸으로 초조함을 내비치는 임스를 만족스러운 눈으로 흘기며 잔을 기울였다. 커피향이 끼친다. 폭탄에 달린 카운트가 빠르게 닳는 소리가 환청마냥 들리는 것 같았다.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 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참 전부터 임스가 먼저 시작한 게임이다.

바텐더가 깔끔한 솜씨로 얼음 위에 위스키를 흘렸다. 임스는 머리를 감싸쥐고 위에 검은 실뭉치를 그렸다. 술 맛은 지나치게 좋았지만, 목이 꺼끌해서 맛있게 넘길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조용한거야?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드는 소리조차 음악보다 크지가 못했다. 머리를 망가뜨린 임스가 갑자기 자세를 바꿨다. 아서는 제 쪽으로 완전히 돌아앉아 턱을 괴는 임스를 보고 눈을 가늘게 했다. 웃는 표정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절대로.

"달링은 어디로 가? 도쿄?"

휴가는 비엔나에서 보낼 계획이다. 임스는 플로리다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가 헛기침으로 실수를 갈무리했다. 그거 한 번 웃었다고 시선이 집중됐다가 흩어진다. 임스는 몸을 묶고있는 투명한 줄을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다시 웃었다. 아서가 다음에 어딜 가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으므로.

임스가 온 더 락을 하나 더 시켰다. 아서의 얼굴이 구겨진다. 아까 시킨 온 더 락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라 두번째 온 더 락은 아서의 앞으로 나왔다. 블랙 러시안은 보기와는 다르게 도수가 높았고, 아서는 지금 위장에 온 더 락을 추가로 들이킬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스는 제 몫의 잔을 들었고 아서에게 끈질기게 시선을 보냈다. 그런다고 마실 아서가 아니라서 어쨌든 임스 혼자만 잔을 비우기는 했다. 상관 없었다. 임스의 표정이 즐겁게 변했다.

"난 LA에 남을 생각인데 말이야."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아서의 얼굴에 떠오른 문장에 임스가 눈을 휘었다. 재밌는게 좀 많더라고 여기가. 더 지낼만 하던데. 아서는 잠자코 임스를 봤다. 또 무슨 생각으로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는 편이 훨씬 정신건강에 유리한 편이다.

임스가 몸을 기울여 아서에게 붙는다. 아서는 그 몸짓을 알고 있었다. 골이 다 아파와서 아서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는 동안 임스는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바텐더가 흘끗 둘을 봤다가 다른 손님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미치겠군. 아서가 자연스레 잔을 잡았다.

"오전 비행기야?"
"임스, 진짜로 뭐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이러는건 아니겠지."
"성공해야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는거 알잖아."

이건 단순히 임스가 아서의 '통제'에서 튕겨져 나왔다는걸 뜻할 뿐이다. 아서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임스가 하고 있는건 그가 가장 즐겨쓰는 정보얻기 패턴이다. 예쁜 여자로 위장하기. 물론 꿈 속이 아니니 겉이 바뀔 일은 없었지만,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더라도 어쨌든 임스는 위조꾼이었다. 아서는 결국 유리잔을 입에 댔다. 안으로 들어가는 위스키를 대놓고 쳐다보던 임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시선을 끌던 말던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 임스가 잔에 남은 위스키를 마저 마셨다. 혀에 단 맛이 감겨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




아 그래서... 통제에서 벗어난 임스가 아서 불쾌하라고 수위 넘치는 농담들을 마구 던지다가 빡친(터진) 아서한테 성희롱 당하거나 호텔로 끌려가거나 그런거였는데 진짜 이걸 더 써봤자 존나 후회만 될 것 같다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저를 치시거나 때리거나 어떻게든 하시길 사랑합니다 두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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