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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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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임스] 독약

연성/기타 / 2016. 4. 15. 23:07



"어떨 것 같아?"


아서는 잠자코 제 손에 들린 시험관을 보고 있었다. 유리 안에 갇힌 액체는 투명했고, 임스의 웃는 얼굴이 좁은 공간에서 굴곡되어 흐려진다. 살짝 흔드니 바닥부터 기포가 올라왔다. 표면으로 올라와 맺히는 구체를 보던 아서가 뚜껑을 열고 앞에 놓인 위스키에 액체를 쏟아부었다.


독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노크 소리에 호텔의 방 문을 열었을 때 들은 말이었다. 아서는 방문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물며 그가 들고온 문제는 더더욱. 가방도 코트도 없이 서있는 임스의 손에는 시험관이 들려있었고 인사도, 다른 덧붙이는 말도 없었다.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건 들어서 알았지만 아서가 임스에게 연락을 하거나 묵고있는 호텔의 룸넘버를 알려준 적은 없었고, 임스가 그런 정보를 알아낸 것에 대한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아서는 단지 그가 뜬금없이, 아서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어쩌면 문을 닫아버렸을 수도 있었다.


귀찮게 문을 두드린데도 무시하거나 프론트로 전화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서가 임스를 안으로 들일 그럴듯한 이유는 없었다. 둘은 반년 전에 헤어졌고, 일이 겹치지 않으면 수백 킬로미터를 떨어져서 지냈으며, 중요하게 할 대화나 말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임스는 그 흔한 들여보내줄거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은채 서있었다. 아서는 문에서 한발짝 비켜섰고 임스는 거리낌 없이 방으로 들어와 카우치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서는 임스에게서 시험관을 받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액체는 위스키 안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어갔다. 잔을 돌려보던 아서가 겉에 묻은 물방울을 엄지로 쓰다듬는다. 임스는 턱을 괸채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참고로 독약이라면 치사량일거야. 죽거나, 그것보다 심해지겠지. 아주 유려한 너스레다. 아서는 손톱으로 유리잔의 가장자리를 긁듯이 만졌다.


임스를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서는 이 위스키를 마실 이유가 없었다. 임스는 독약을 마시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액체가 독약일지 아닐지를 물었을 뿐이고, 마시지 않고 대답해도 상관없을 문제였다.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지금에라도 내쫓을 수도 있다. 임스는 순순히 나가줄 것이다. 아서는 그가 그럴 것이라는걸 알았다. 몇 번이고 그랬으니까.


아서는 액체가 독약인지 아닌지 모른다. 아서는 모르는 것이 싫었다. 모르는 것은 아서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건 아서의 신경을 긁어대는 일이었다. 액체는 어쩌면 환각제일 수도 있다. 아서가 이것이 환각제라는걸 확실히 안다면, 마신 다음 일어날 일이 환각이라는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서는 그 액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마셔보기 전까지는, 어쩌면 마시고 나서도 액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만약 독약이래도 정확히 어떤 독약인지, 어떤 성분 때문에 자신이 죽는지,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서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임스는 아서가 위스키를 입에 문채로 다가와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임스는 여유롭게 아서의 키스를 받았고, 목 뒤로 정체모를 액체가 섞인 위스키의 반을 넘겼다. 달거나 비리거나, 어쩌면 마비되어 있을 수도 있는 혀가 섞이며 미끄러졌다. 한동안은 젖은 소리만 울렸다.


입술을 떨어뜨리고 팔로 닦은 아서가 방을 가로질러 코트를 들었다. 임스는 여전히 턱을 괸채 카우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떠나려는듯 풀지도 않은 가방을 든 아서가 옆을 지나쳤다.


"독약이었던 것 같아?"


아서는 임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무겁고 부드러운 호텔의 문이 안으로 열렸다가 느슨하게 닫히고, 복도에 울리는 구둣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임스는 몸을 일으켜 아서가 놓고 간 위스키 잔을 들어 조금 남은 내용물을 흔들었다. 한방울도 남지 않도록 잔을 뒤집어마신 임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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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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