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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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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스탈]Thin air

연성/기타 / 2014. 12. 30. 20:10



의미를 모르겠는 스키틀즈 기반 노기스탈. 커플링은 아니고... 노기+스탈..? 스타일즈가 스캇을 오래도록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설정...

캐붕..? 모르겠음 뭐든지 괜찮다는 사람만.




시야에는 끔찍한 시멘트 바닥이 있었다. 스타일즈는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반쯤 확신하고 쳐다본 다리가 또 다시 덫에 걸려있다. 단단히 물려있는 오른쪽 다리에서 익숙한 고통이, 아니, 왼쪽 다리일지도.

스타일즈는 다급하게 일어나 앉아 바닥을 짚고 있던 양손을 눈앞에 들어보였다. 하나, 둘, 다섯, 일곱, 열. ...열 하나. 절박하게 떨어지는 감정에 스타일즈가 양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시멘트 벽에 등을 기댔다. 벽과 닿은 부분 부터 얼어붙는다.


스타일즈는 그대로 눈을 감고 다리를 끌어모았다. 덫이 바닥에 끌리는 기괴한 소리가 공기를 긁어도 귀를 막지 않는다. 막아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얼굴에 붕대를 감은 괴한이 다리를 끌며 입을 벌릴 것 같은 지하실.


스타일즈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성대가 나가서 목구멍에 피가 올라올 때까지 계속,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 빌어먹게 차가운 공기를 긁어대고 싶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그저 머리를 파묻는다. 스타일즈의 손가락은 열 한개이고 만약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스타일즈는 그저 배게에 머리를 뉘이고 눈을 감고 있을 뿐이였다. 이건 꿈이다. 그것도 굉장히 역겨운.

내놓은 팔이 점점 얼어붙어 가고 있었지만 스타일즈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을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끔찍한 숨소리도 모두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일어나, 스타일즈. 일어나. 일어나. 초조하게 벽에 머리를 부딪혀봤지만 그리운 제 방의 천장이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제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은 뭐지?"

스타일즈는 결국 귀를 막았다. 말하지 않을거야. 숨소리가 웃음소리로 바뀐다. 스타일즈는 손을 내려 팔을 감싸고 이미 벽에 붙어있는 등을 최대한 밀어붙였다. 일어나 스타일즈. 들으면 안돼. 대답 해서도 안돼. 덜덜 떨려오는 팔을 억지로 잡아쥔다.

"스타일즈, 답을 알고 있잖아. 저번에 대답 했었으면서."

스타일즈는 무릎으로 쳐박았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가스 마스크를 쓴 듯한, 역겹게 공기를 긁어내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시야에는 붕대로 감긴 얼굴이 아닌 거울이 있었다. 아니, 거울이 아니다. 표면에 비춰지는 단순한 평면이 아니었다. 같은 얼굴, 같은 옷, 같은 자세. 차이점이라고는 웃고 있다는 것 뿐이다. 스타일즈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발 누구든.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목을 누르는 악력에 스타일즈는 짓무른 눈을 치뜨고 앞에서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뺨을 건드리는 손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절그럭거리며 덫이 다리를 따라 올라온다. 욕을 씹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노기츠네는 봉인 당했다. 그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네메톤의 힘으로 70년을 잠들어있었던 트릭스터는 다시 한 번 그 강력한 힘에 의해 강제로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사람들을 홀려서 혼란과 갈등을 만들거나 스타일즈의 머릿속에 들어차서 그의 친한 친구들과 하나뿐인 가족을 해치지도 않았다. 스타일즈는 그 사실을 상기하려 절박하게 애썼다. 이건 노기츠네가 아니야. 이건 노기츠네가 아니야. 이건 노기츠네가 아니야.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은 아니었다. 스타일즈는 처음은 아니었다, 라고 문장을 시작하기 어색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이 아이켄 하우스의 지하실에서 보냈다. 어떤 예고나 징조 같은 것은 없었다. 노기츠네가 사라지고도 스타일즈는 쉽게 불면증을 고치지 못했고, 며칠 정도는 아무 꿈도 꾸지않고 눈을 떴지만, 곧 다시 이 지하실로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다리는 언제나 덫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창백한 피부로 흐르는 생생한 피.

"뭐, 생각하고 싶은데로 생각해. 그것까지 막을 수야 없지."

어깨를 으쓱인 남자는 불시에 손에서 힘을 풀어냈다. 바닥으로 무너진 스타일즈가 거의 토악질을 할 듯 숨을 게워내며 몸을 들썩거렸다. 스타일즈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덫에 걸려있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왼쪽 다리의 고통은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으나 스타일즈는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일어나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웃고있었다. 한 쪽 입꼬리를 틀어올리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진 스타일즈를 내려다 보고 있다. TV가 에러를 일으키듯 테이프가 씹히는 소리를 내며 더러운 붕대를 감은 시체의 모습이 겹쳐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정도 장난질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스타일즈는 입술을 짓씹었고 노기츠네는 고개를 기울였다가 스타일즈의 복부를 걷어찼다. 겨우 참고있던 토악질이 쏟아진다.

스타일즈의 기억으로는 오늘은 저녁을 먹지 않았다. 사실 아침도 점심도 모조리 먹지 않은 상태였다. 올라오는건 위액뿐이었고 식도가 산성액에 지져지는 느낌이 생생하다. 노기츠네는 게워낼게 없어 위를 쥐어짜는 스타일즈를 내려다보다가 곧 짧은 머리카락을 쥐어 억지로 스타일즈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치를 떠는 표정에 노기츠네가 천천히 시선을 맞추며 몸을 숙였다.

"걱정마. 그놈의 빌어먹을 나무통 때문에 바깥으로 나갈만한 힘은 전혀 없으니까. 네 꿈 속의 존재일 뿐이지. 일단은."

눈을 휘어 웃는 모습에 스타일즈가 고개를 힘껏 털어 노기츠네의 손을 떨쳐냈다. 그만한 힘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입을 동그랗게 만든 노기츠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미 피고름이 맺힌 입술을 다시 깨물며 스타일즈가 노기츠네에게 눈을 부라렸다.

"노려봐서 어쩔건데? 죽일거야?"

히죽 웃는 얼굴에 울컥 감정이 치솟았지만 스타일즈는 팔을 움직여 자신과 똑같은 얼굴에 주먹을 꽂지는 않았다. 눈을 감거나 손을 들어 귀를 다시 막아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의 일이다. 손해를 보는 것은 스타일즈였다.

스타일즈는 무시하는 쪽을 택했고 다리를 그러모았지만 당연히 노기츠네는 사라지지 않았다. 흉내내듯 똑같이 다리를 그러모으고는 턱을 괸 노기츠네가 노래를 불렀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불러 본 적 없는, 스타일즈가 중학교 때 직접 고쳐 아직까지 소리를 내는 낡은 라디오에서 나왔던 노래. 스타일즈는 그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는, 늘어지는 박자의, 꺼질 것 같은 남자 보컬의 목소리.

"그만."

노기츠네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붉게 충혈된 눈을 노기츠네는 아주 잘 알고있었다. 그의 눈은 자신의 눈이었다. 그럼, 잘 알고 말고. 만족스럽게 끄덕여지는 얼굴에 스타일즈가 어금니를 물었다.

"원하는게 뭐야."

노기츠네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Trust me, I just want as you are. Don't change the things you do, just stay as you are.

스타일즈는 결국 주먹을 휘둘렀다. 멱살을 틀어쥐고 온 힘을 짜내서, 화가 풀릴 때까지 실실 웃고있는 자신의 얼굴을 팼다. 코가 짓이겨지고, 입술이 터지고, 눈 주위의 살이 파랗고 빨갛게 부어오르도록 만들었다. 노기츠네는 비명도 반항도 없이 스타일즈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덫이 절그럭대는 소리와 강도를 더해가는 타격음이 정신병원의 지하실에서 벽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스타일즈는 평생 누군가를 향해 그렇게 주먹을 내둘러 본 적이 없었다. 죄책감도 죄악감도 없었다. 어쩌면 아래에 깔려있는 것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거울을 단단한 물체로 깨부수고 싶은 충동은 새삼 낯선 것이 아니었으니까.

주먹에는 유리조각 대신 살비늘과 피가 박혀들었고, 스타일즈는 거의 형태가 비뚤게 일그러질 때까지 노기츠네를 패고 나서야 던지듯이 커다란 몸을 밀쳤다. 바닥에 쓰러진 노기츠네가 큰소리로 웃더니 벌떡 몸을 일으킨다. 나간 턱뼈와 코를 이리저리 맞추는 소리가 대신해서 지하에 울려퍼졌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굉장하다니까, 내가. 아무렴."
"내 말투 쓰지마."
"이게 네 말투야? 아니지, 스타일즈. 이건 우리 말투야. 너도 알고있잖아."

부드럽게 말하며 피부가 벗겨진 스타일즈의 손을 감싼 노기츠네가 멀쩡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멍도, 피도, 부러진 코도 없다. 스타일즈는 이를 악물고는 다시 벽에 바짝 붙어 다리를 접었다. 노기츠네에게 주먹을 꽂을 때는 아프지 않았던 다리에서 다시 피가 흐른다.

"난 단순히 거래를 제안하고 싶었던거야. 세레나데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지만."

어깨를 으쓱인 노기츠네가 구겨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코웃음을 친 스타일즈는 피가 덕지덕지 붙은 손을 들어 귀를 막아버렸다. 정말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였다. 듣지 않을 것이다. 저 잘난 혀에 놀아났다간 어떤 결과를 불러 들이게 될지 뻔했다. 노기츠네가 한 일은 스타일즈가 한 일이었고, 그것들 모두는 스타일즈의 머릿속에 지나치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스캇, 쉽게도 쓰러지는 사람들, 죽어가는 알리슨.

"이봐, 겁쟁이 친구. 난 너잖아. 알고 있지? 그러니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손바닥 뒤집기 하는 것 처럼 다 알 수 있다고. 네가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것처럼."

스타일즈는 더욱 몸을 움츠리고 머리를 아예 팔에 파묻었다. 노기츠네의 말이 맞았다. 스타일즈는 노기츠네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의 이 미약한 반항이 아무 소용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러나, 스타일즈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잖아. 그렇지? 스캇의 배에 칼을 쑤셔넣고 돌린 것도,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네 손에 의해 손 쓸 틈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도, 그 엿같은 알리슨이 드디어 스캇 맥콜에게서 영원히 떠나버린 것도, 사실은 전혀 미안하지 않잖아. 이기적인 스탈린스키. 말해봐. 내 말이 틀려?"

스타일즈는 도리질을 쳤다. 아니야, 아니야. 어깨에는 죄책감이 쌓여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근육이 긴장했고, 병원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잔상이 언제나 스타일즈를 따라다녔다. 스타일즈는 다시 불면증을 앓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히 상담실을 찾아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단 말이다. 자신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타일즈가 입으로 뱉는 것들은 상담실에서 하는 말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좀 아프긴 했겠지만 죽지는 않았잖아. 늑대인간이니까 금방 치유 됐을거고, 그리고 죽은 사람들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너 때문이었잖아. 내가 한게 아니라고. 네가 한거야.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멋대로-"
"그럼 알리슨은?"

턱 막혀버린 목소리에 스타일즈가 다시 머리를 팔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알리슨은? 그 가여운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건 어떻게 변명할거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스타일즈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습관처럼 손톱이 입으로 들어간다. 까득까득, 불안하게 이빨로 짧게 깎인 손톱을 씹는 스타일즈의 팔 위로 얼음장 같은 손이 얹어졌다. 불쌍한 스타일즈 스탈린스키. 가엾기도 해라. 심하게 익숙해야 할 목소리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뱀 처럼 스타일즈의 팔뚝을 가로지른다.

"괜찮아. 굳이 도덕적인척 할 필요 없어. 넌 가끔 지나치게 무리를 해. 강한척에 모든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척, 무심한척, 신경 안쓰는 척, 다 괜찮은 척. 사실은 전혀 강하지도 않고 괜찮지 않은데도 말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 네 속은 네가 사랑하는 스캇 맥콜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졌어. 네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욱 깊지. 어둡고 낯설어. 네 열렬한 짝사랑 상대는 대답도 해주지 않잖아. 어쩜 이렇게 가련할 수가. 이대로 있다가는 어차피 미쳐버리고 말걸. 우리는 그걸 알고 있잖아."

스타일즈는 핏발이 선 눈으로 지척으로 다가와있는 노기츠네의 눈을 들여다봤다. 끝도 없이 어둡게 가라앉은 눈은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에 다시 없을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순수하고 악질적인 시선. 초점은 다리의 출혈 때문에 한참 전부터 어긋나고 있었지만, 노기츠네의 눈을 볼 때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노기츠네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스타일즈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고 노기츠네는 손가락을 튕겼다. 끔찍한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던 다리에서 묵직한 쇠가 떨어져나간다.

"이제 가볍지?"

그렇게 말하고 눈을 휘어 웃은 트릭스터는 가만히 스타일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음장 같은 체온만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해주는 것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을 따라한걸지도. 스타일즈는 노기츠네의 손을 쳐내지 않은채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맹세코 알리슨의 죽음에 대해 슬픈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노기츠네도 알리슨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알리슨만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게 맞았지만, 오니에게 당해 숨이 끊어진 알리슨은 마지막까지 스캇의 품에 안겨있었고 노기츠네도 스타일즈도 그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둘 모두 스타일즈가 그 사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스타일즈는 부정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사람이면 안되었으니까.

"결국 모든 문제는 그 빌어쳐먹을 스캇 맥콜인거잖아. 안그래? 네가 자신이 싸이코패스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도, 정말로 싸이코패스이면 안되는 이유도, 바깥으로 이 혼란스러운 사실을 꺼내놓고 상담을 받아서는 안되는 이유도."
"난 싸이코패스가 아니야."
"그래, 넌 싸이코패스가 아니지. 넌 그냥 평범한 청소년이야. 조금 길고 복잡한 짝사랑을 하고 있는."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뺨을 쓰다듬으며 눈썹을 누그러뜨렸다. 곧 죽을 작은 소동물을 보는 듯한 눈. 스타일즈는 문득 노기츠네의 손을 쳐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구겨넣은채 그대로 시멘트를 들이부어 가둬놓은 것만 같았다. 숨이 불편하다.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뺨에서 손을 떼고 뒤를 돌아 조금 떨어진 드럼통 위에 올라앉았다. 스타일즈는 그 드럼통이 처음부터 이 아이켄 하우스의 지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편하게 허리를 굽힌 자세에서 다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린다. 공중에 늘어진 후드의 긴 끈이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그래서, 어쩔까? 그 얄미운 여우 계집애를 죽여줄까?"

스타일즈는 무언가가 목을 틀어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라. 노기츠네는 그정도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말들을 뱉고 있었다. 원하는 방식으로 죽여줄게. 알리슨은 칼로 죽었으니 그 여자애는 고슴도치로 만들어줄까? 질식사는 어때? 역겨운 늑대인간들이 한 것 처럼 꾸미는건? 아이작이라는 애를 몰아넣어보자.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죽이지 않을거야."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내뱉은 문장에 노기츠네는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빛을 띄웠다. 탕탕, 불만스럽게 드럼통이 발 뒤꿈치로 두들겨진다. 노기츠네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단호한 스타일즈의 눈빛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중요한 순간에 재미가 없어지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나.

"그럼 다리만 불구로 만드는건?"
"난 키라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을거야!"
"해를 입힌게 너라는걸 스캇에게 들키면 미움 받을테니까?"

다시 입을 다무는 스타일즈를 바라보던 노기츠네가 입꼬리를 올렸다. 스타일즈가 힘 없이 두어번 고개를 젓는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스타일즈는 노기츠네가 몰아붙였던 말들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남이 상처입는 것을 싫어했다. 원인이 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노기츠네는 자신의 혀가 지어낸 말들이 효력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 문드러진 속과 다르게 머리쪽은 조금의 틈을 주면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는다.

노기츠네는 멈췄던 다리를 다시 번갈아서 흔들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아까와는 달리 시끄러운 소리가 고요하기 짝이 없는 지하실에서 울려퍼진다.

"가만히 있는건 지겹지 않아?"

스타일즈가 고개를 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듯 구겨지는 미간을 다시 웃는 상으로 내려다보던 노기츠네가 턱을 괴었다. 드럼통을 두드리는 소리는 메트로놈 처럼 일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스타일즈의 귀에 쌓인다.

"네 사랑스러운 스캇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잖아. 계속 보기만 할거야? 그만 참을 때도 됐지. 이젠 너도 움직여야지, 스타일즈. 언제까지 만족한척 하고 있을거야. 네 위치를 봐. 조금 똑똑할 뿐인 늑대인간의 평범한 인간 친구. 언제든 우두머리에게 버려져서 뒹굴어도 이상할게 없지. 넌 그냥 필사적으로 옆에 붙어있으려고 매달릴 뿐이야. 넌 언제나 그애의 옆에 있었는데, 스캇은 너한테 어떻게했지? 네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널 돌아보지 않는거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어? 오, 물론, 해본 적 있지. 아주 많이. 그 애가 좋아하는 애들은 죄다 특별하잖아."


스타일즈는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읊어지는 사실의 연속. 던져지는 말에서 부정할 부분을 찾으려 뇌가 의미없이 돌아간다.

"난 네 부름을 듣고 온거야. 스캇이 듣지 못하는 그 처량한 울부짖음 말이야. 난 그런 것들을 좋아해. 굉장한 맛이 나거든. 네 어둠은 최상품이야. 몇 년 동안 진득하게 썩어 농밀해졌지. 어딜 가도 이만한 걸 찾기는 힘들걸. 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네 정신이 다른 멍청한 인간들보다 약해서 내가 기어들어온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런건 별로 상관 없거든. 넌 스스로를 정신병원의 지하에 가두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덫을 물리고 있어. 우리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있지.

스타일즈, 너는 특별해질 권리가 있잖아. 거래하자. 난 네 덫을 없애줄 수 있어. 이 지겨운 지하에서 나가는거야. 특별해지면 공중으로 흩어진 스캇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 애는 널 돌아볼거야. 사랑해줄거라고. 그걸 원하지 않아? 단단히 잠궈놓은 그 더러운 희망사항 마저 모조리 풀어놓자. 도와줄게. 할 수 있다는걸 알잖아. 스타일즈, 우리는 할 수 있어. 따라잡을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먼지에 무게를 더하자. 흩어진 시선을 잡아뭉개서 끌어내리자. 스캇, 스캇 맥콜. 그 멍청한 늑대인간을 옆에 붙잡아놓자고. 뭘 망설여?"

탕.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진 듯한 커다란 파열음. 스타일즈는 귀에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 어금니를 물었다. 듣고있는게 아니었다. 중간에 멈춰세웠어야 하는건데.

노기츠네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들여우는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여 간단하게 몸을 뺏고 모든 것을 지배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죽어가는 알리슨을 떠올린다. 화살에 온 몸이 뚫려 쓰러지는 키라의 모습도 겹쳐본다. 알리슨 때 처럼 키라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스캇의 모습도 생각한다. 그를 위로해주는 자신도.

스타일즈는 도리질을 쳤다. 멍청한 스타일즈 스탈린스키. 스타일즈는 자신의 다리에서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있는 덫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가 말라붙은 검은 사냥덫은 입을 벌리고 망연하게 엎어져있었다. 덜덜 떨리는 하얀 손이 덫으로 향하는 것을 보던 노기츠네가 질린다는 듯이 혀를 찼다.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찢어지는 비명에 묻힌다. 노기츠네는 얼굴을 구기고 지하실에서 메아리치는 그 처절한 울음을 들었다. 이미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진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비명을 멈춘 스타일즈는 숨을 몰아쉬며 다시 짓무른 눈으로 노기츠네를 노려보았다. 단호하고 선명한 헤이즐.

"Let, me, out."

어금니 사이로 나온 또렷한 문장에 노기츠네가 과장되게 눈을 위로 굴렸다. 드럼통에서 내려온 마른 몸이 발소리를 내며 스타일즈에게로 다가온다. 스타일즈는 피하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바로 앞에서 무릎을 굽힌 노기츠네가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스타일즈의 턱을 틀어쥐었다.

"언젠가는 날 찾게 될거야. 네 생각과는 달리, 들여우도 거래라는걸 하거든. 쥐고있는 패가 없을 때는 특히 더."

스니커즈가 덫에 걸린 다리를 짓이긴다. 상상도 못했던 고통에 스타일즈가 본능적으로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이켄 하우스의 지하실이 끔찍한 소리로 한가득 채워지는 것과는 달리 스타일즈의 의식은 점점 흐려진다. 급박하게 다리를 붙잡았지만 노기츠네는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다리를 짓누를 뿐이었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팍 튀었을 때, 스타일즈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스타일즈는 지끈대는 머리로 흘러들어오는 익숙한 노래를 들었다.

Trust me, I want you just as you are,
Don't change the things you do, just stay as you are...

침대 옆 협탁에 낡은 라디오가 지지직댄다. 스타일즈는 손을 뻗어 잡은 라디오를 그대로 벽에 던졌다.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노래가 멈춘다.

이불을 들어보면 멀쩡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한 일인데도 한숨을 돌린 스타일즈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손가락도 정상적으로 열 개였고, 책상에 올려져있는 책의 글귀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시계바늘은 오전 5시를 가리키며 멈추는 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났다. 인터넷이라도 켜 볼 목적으로 핸드폰을 들면 살짝 열린 방문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편한 옷을 입은 마을의 보안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스타일즈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큰소리가 나서."
"죄송해요. 잠결에 좀."

스탈린스키는 부숴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라디오를 눈에 담았다. 스타일즈가 처음 자신의 손으로 고쳤던 라디오다. 새 것을 사주겠다는 말에도 애착이 간다며 고개를 저었던 물건인데.

스타일즈는 다시 자신에게로 시선을 힐끔 돌리는 스탈린스키에게 여전히 조금 어색하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저번보다 훨씬 말랐다. 스타일즈는 그 사건의 이후로 조금씩 체격이 줄어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한 번에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고, 스탈린스키도 하나뿐인 아들의 식사량까지 모조리 신경쓸 정도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움푹 패인 눈가가 짓물러 있는 것을 본 스탈린스키는 문 너머로 보이지 않는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마른 입술을 핥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있던 스타일즈는 눈썹을 누그러뜨리며 웃었다. 저어지는 고개에 스탈린스키의 눈이 안도의 빛을 띈다.

"그럼 괜찮은거지?"
"그럼요. 문제 없어요. 깨워서 죄송해요. 주무셔야하는데."

스탈린스키는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다시 한 번 스타일즈의 안색을 살폈다. 정말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는 얼굴에 복잡한 표정을 지은 스탈린스키가 조금 더 자두라는 말을 남기고는 방문을 닫았다. 곧게 펴고 있던 스타일즈의 허리가 무너진다.

눈을 감으면 꺼진줄 알았던 라디오에서 다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게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I reached out to hold you and found nobody there, You turn into air.

"Trust me, I want you just as you are."

Don't change.

스타일즈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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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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