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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7.19 아서임스 Bomb
  3. 2014.12.30 [노기스탈]Thin air 1

[아서임스] 독약

연성/기타 / 2016. 4. 15. 23:07



"어떨 것 같아?"


아서는 잠자코 제 손에 들린 시험관을 보고 있었다. 유리 안에 갇힌 액체는 투명했고, 임스의 웃는 얼굴이 좁은 공간에서 굴곡되어 흐려진다. 살짝 흔드니 바닥부터 기포가 올라왔다. 표면으로 올라와 맺히는 구체를 보던 아서가 뚜껑을 열고 앞에 놓인 위스키에 액체를 쏟아부었다.


독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노크 소리에 호텔의 방 문을 열었을 때 들은 말이었다. 아서는 방문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물며 그가 들고온 문제는 더더욱. 가방도 코트도 없이 서있는 임스의 손에는 시험관이 들려있었고 인사도, 다른 덧붙이는 말도 없었다.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건 들어서 알았지만 아서가 임스에게 연락을 하거나 묵고있는 호텔의 룸넘버를 알려준 적은 없었고, 임스가 그런 정보를 알아낸 것에 대한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아서는 단지 그가 뜬금없이, 아서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어쩌면 문을 닫아버렸을 수도 있었다.


귀찮게 문을 두드린데도 무시하거나 프론트로 전화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서가 임스를 안으로 들일 그럴듯한 이유는 없었다. 둘은 반년 전에 헤어졌고, 일이 겹치지 않으면 수백 킬로미터를 떨어져서 지냈으며, 중요하게 할 대화나 말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임스는 그 흔한 들여보내줄거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은채 서있었다. 아서는 문에서 한발짝 비켜섰고 임스는 거리낌 없이 방으로 들어와 카우치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서는 임스에게서 시험관을 받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액체는 위스키 안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어갔다. 잔을 돌려보던 아서가 겉에 묻은 물방울을 엄지로 쓰다듬는다. 임스는 턱을 괸채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참고로 독약이라면 치사량일거야. 죽거나, 그것보다 심해지겠지. 아주 유려한 너스레다. 아서는 손톱으로 유리잔의 가장자리를 긁듯이 만졌다.


임스를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서는 이 위스키를 마실 이유가 없었다. 임스는 독약을 마시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액체가 독약일지 아닐지를 물었을 뿐이고, 마시지 않고 대답해도 상관없을 문제였다.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지금에라도 내쫓을 수도 있다. 임스는 순순히 나가줄 것이다. 아서는 그가 그럴 것이라는걸 알았다. 몇 번이고 그랬으니까.


아서는 액체가 독약인지 아닌지 모른다. 아서는 모르는 것이 싫었다. 모르는 것은 아서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건 아서의 신경을 긁어대는 일이었다. 액체는 어쩌면 환각제일 수도 있다. 아서가 이것이 환각제라는걸 확실히 안다면, 마신 다음 일어날 일이 환각이라는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서는 그 액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마셔보기 전까지는, 어쩌면 마시고 나서도 액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만약 독약이래도 정확히 어떤 독약인지, 어떤 성분 때문에 자신이 죽는지,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서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임스는 아서가 위스키를 입에 문채로 다가와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임스는 여유롭게 아서의 키스를 받았고, 목 뒤로 정체모를 액체가 섞인 위스키의 반을 넘겼다. 달거나 비리거나, 어쩌면 마비되어 있을 수도 있는 혀가 섞이며 미끄러졌다. 한동안은 젖은 소리만 울렸다.


입술을 떨어뜨리고 팔로 닦은 아서가 방을 가로질러 코트를 들었다. 임스는 여전히 턱을 괸채 카우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떠나려는듯 풀지도 않은 가방을 든 아서가 옆을 지나쳤다.


"독약이었던 것 같아?"


아서는 임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무겁고 부드러운 호텔의 문이 안으로 열렸다가 느슨하게 닫히고, 복도에 울리는 구둣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임스는 몸을 일으켜 아서가 놓고 간 위스키 잔을 들어 조금 남은 내용물을 흔들었다. 한방울도 남지 않도록 잔을 뒤집어마신 임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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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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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임스 Bomb

연성/기타 / 2015. 7. 19. 04:22
이거 흑역사 된다는데 내 전재산 검ㅅㅂ 죄송합니다 두발님






아서에게는 강박증이 있었다. 임스는 그걸 예상했다. 단순히 지나치게 깔끔한 외모만을 보고 판단 한 것은 아니었다. 아서의 강박증은 시계를 직선으로 놓거나 가방을 틀에 맞춰 정리하는 증상으로 보여지기도 했지만, 임스는 단순히 그런 '행동'만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임스는 아서와 처음 일을 끝마치고 나서 이 능력 좋은 포인트맨에게 이름표를 하나 붙였다. 폭탄.

임스에게는, 약간 심한 방랑벽이 있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의 도박장을 전전하고는 했다. 도시에서 도시로가 아니라 나라에서 나라로. 아서도 그것을 예상했다. 임스의 방랑벽이 단순히 관광의 목적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아서 또한 임스에게 이름표를 붙였다. 폭탄.

"저녁 어때?"

임스는 구겨지는 아서의 표정을 즐겁게 내려다보았다. 아서는 막 패시브를 정리하고 작업장을 떠나려던 참이었고, 아서의 '계획'에 임스가 말을 붙여오는 일은 없었을 터다. 앞을 가로막고 웃는 임스를 피곤하다는 듯 노려본 아서가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바로 미소를 표정에서 지웠다. 임스는 아서가 대놓고 표현하는 불쾌함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정말로.

"놀리는 것 좀 그만 두지 그래."

임스는 유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누굴 놀렸다고 그래, 달링? 아서는 그쯤이면 됐다는 듯 임스의 어깨를 밀고 앞으로 걸어갔다. 여유로운 발걸음이 그 뒤를 따랐다. 저녁이 싫으면 술은 어때? 내가 살게. 아서는 걸어가면서 제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임스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위조꾼이었고, 아서는 뒷조사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포인트맨이었다. 둘 다 사람의 생각을 간파하는데는 이골이 나있다. 임스는 아서가 제 생각을 읽고 있다는걸 알았다. 다만 전혀 신경쓰지 않을 뿐.

둘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는 스페셜리스트였으며, 같이 일하면 효율이 좋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코브를 통해서 같은 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서는 코브의 입에서 위조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미간을 구겼다. 말 안해도 느껴지는 불쾌함의 기운에도 코브는 일이 빨리 끝날거라며 어깨를 두드려줄 뿐이었다. 아서는 임스가 불편했고, 임스가 자신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임스는 자신을 불편해해야 마땅했다. 적어도 아서의 생각에는 그랬다.

"임스, 베이징으로 돌아가."

도저히 다른 길로 접어들 생각을 안하는 임스 때문에 골이 아파진 아서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임스는 손에서 굴리던 칩을 손가락으로 튕겼다가 다시 잡고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베이징에는 재밌는 게 떨어졌어. 아서는 걸음을 멈췄다. 아하. 단지 두 음절에 담겨있는 온갖 불쾌한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낸 임스가 아서를 지나쳐 걸었다. 찔러넣어진 손에 산뜻한 휘파람. 아서는 별 수 없이 임스를 따라 마저 걸었다. 호텔까지 쳐들어올 샘은 아니겠지.

임스와 아서의 상성은 극악이었다. 정확히 말해 아서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임스가 정확히 뭐라고 자신에게 네이밍을 했는지 까지는, 그야 초능력자가 아니니 알 수 없었지만, 저 같은 타입이 임스에게 호감으로 보일리가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임스는 통제 받는 것을 싫어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서 그곳의 특별한 룰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했고, 따라서 생긴 것이 방랑벽과 위조꾼이라는 직업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통제 되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 여기저기 튀어다니고, 예상을 벗어나거나 세운 계획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짜증이 났다. 임스는 아서가 싫어하는 것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아서는, 임스가 싫어하는 것을 그대로 압축 시켜 놓은 사람이고.

사실 아서는 임스가 절 불편해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임스는 아서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재미있어 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서가 짜증을 내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툭툭 건들고, 놀리고, 자극해서 결국에는 터지는 걸 보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임스에게 있어 아서는 분명히 폭탄이었다. 터지는 선을 잘라 그대로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종류의.

"정말 저녁 안먹을래?"

임스는 실실 웃고 있었다. 아서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겼다. 허락하면 비웃을 것이고, 끝까지 허락하지 않아도 비웃을 것이다. 아서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어차피 정해놓은 계획은 박살났다. 아서는 우두커니 서서 잠시 생각했다. 몇 초 후 저를 지나쳐 호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아서의 뒤에서 임스가 참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놀림 당할거라면 식당은 제가 골라야한다. 그정도 통제는 하게 해줄 수 있었다. 임스가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



임스는 아무런 불평없이 해산물 요리를 먹어치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가 '맛있게' 먹었다고 표현할테지만, 위조꾼이 겉으로 내비치는 감정이야 1차적으로는 믿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아서는 경험에 의해 어느정도 임스의 껍데기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지금의 껍데기에 담긴 의도는 명확했다. 놀리기.

"환상적이었어 달링. 맛있는 곳 찾아내는 솜씨가 굉장한데."

아서는 대답없이 일어나서 임스의 몫까지 값을 치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건지 말리는 말도 없다. 외투를 팔에 걸친 채 밖으로 나가는 아서를 따르던 임스가 걸음을 빨리해 친밀한 사이마냥 옆에 붙었다. 저런 맛있는 식당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맛있는 술집도 알고 있겠지? 큰 덩치로 십대마냥 재잘거리는 임스를 한 번 흘겨 본 아서가 다시 시계를 봤다. 내일 오전 비행기로 LA를 뜬다. 당분간은 코브와도 떨어져 지낼 생각이었다. 휴가는 중요했다. 휴가 계획은 더더욱 중요했고. 비행기를 놓치면 앞의 계획들도 도미노마냥 무너질게 당연했다. 당연히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아서는 호텔로 돌아가는 대신 코브와 간 적이 있었던 바로 발걸음을 틀었다. 임스는 대놓고 놀라워했다. 이 당연한 것에 목을 매는 레일 위의 남자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제나저제나 사실 임스에게는 별 상관 없는 문제기는 했다. 놀아나준다는데 거절 할 이유도 없고.

아서는 블랙 러시안을 주문했다. 임스는 떨떠름하게 아서를 봤다가 진 마티니를 시켰다. 바는 조용했다. 바가 조용하다니. 임스 같아서는 발을 들여놓자마자 다른 곳으로 내뺄 성 싶은 분위기였지만 아서와 코브를 가져다놓으면 괜찮은 시너지를 낼 터였다. 아주 배려가 없다싶이 하시는구만.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티를 안낸다고 해서 아서가 모를리는 없겠지만.

"베이징에 재미있는게 없으니 다음은 러시아인가?"

임스는 과장되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바로 무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나온 마티니를 입에 털었다. '아서식 불쾌함 표현하기'에 아서는 눈썹을 들었다가 내려놓고는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클래식이 바 전체를 돌고 있었다. 임스의 취향이 아닌 것 만은 확신할 수 있다. 행선지를 제외하면 딱히 물어볼 것도 없어서 아서는 입을 다물었다.

임스는 잔을 두드리다가 시선을 대각선으로 올렸다. 시끄러운 술집이었다면 어디든 벌어지는 판에 끼어들어 아서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소근거리는 커플들과 혼자 조명 아래에서 폼이나 잡는 사람들이 다인 공간에서는 그런 것도 불가능했다. 임스가 불쾌해하자 아서의 표정이 펴졌다. 사돈 남말하는 격이었지만 이남자도 제대로 성격파탄이다.

"이런걸로 날 통제 안에 넣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아서."
"충분히 넣은 것 같은데, 임스."

우아하게도 말씀하시지. 입을 삐죽댄 임스가 올리브를 씹으며 온 더 락을 시켰다. 이런 바에는 룰이 너무 많았다. 목소리가 음악보다 크면 안된다던지, 취해서 바닥에 뻗으면 안된다던지, 도박을 하면 안된다던지, 뭐 그런 것들. 좀이 쑤셔서 다리가 떨린다. 아서는 온 몸으로 초조함을 내비치는 임스를 만족스러운 눈으로 흘기며 잔을 기울였다. 커피향이 끼친다. 폭탄에 달린 카운트가 빠르게 닳는 소리가 환청마냥 들리는 것 같았다.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 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참 전부터 임스가 먼저 시작한 게임이다.

바텐더가 깔끔한 솜씨로 얼음 위에 위스키를 흘렸다. 임스는 머리를 감싸쥐고 위에 검은 실뭉치를 그렸다. 술 맛은 지나치게 좋았지만, 목이 꺼끌해서 맛있게 넘길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조용한거야?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드는 소리조차 음악보다 크지가 못했다. 머리를 망가뜨린 임스가 갑자기 자세를 바꿨다. 아서는 제 쪽으로 완전히 돌아앉아 턱을 괴는 임스를 보고 눈을 가늘게 했다. 웃는 표정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절대로.

"달링은 어디로 가? 도쿄?"

휴가는 비엔나에서 보낼 계획이다. 임스는 플로리다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가 헛기침으로 실수를 갈무리했다. 그거 한 번 웃었다고 시선이 집중됐다가 흩어진다. 임스는 몸을 묶고있는 투명한 줄을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다시 웃었다. 아서가 다음에 어딜 가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으므로.

임스가 온 더 락을 하나 더 시켰다. 아서의 얼굴이 구겨진다. 아까 시킨 온 더 락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라 두번째 온 더 락은 아서의 앞으로 나왔다. 블랙 러시안은 보기와는 다르게 도수가 높았고, 아서는 지금 위장에 온 더 락을 추가로 들이킬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스는 제 몫의 잔을 들었고 아서에게 끈질기게 시선을 보냈다. 그런다고 마실 아서가 아니라서 어쨌든 임스 혼자만 잔을 비우기는 했다. 상관 없었다. 임스의 표정이 즐겁게 변했다.

"난 LA에 남을 생각인데 말이야."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아서의 얼굴에 떠오른 문장에 임스가 눈을 휘었다. 재밌는게 좀 많더라고 여기가. 더 지낼만 하던데. 아서는 잠자코 임스를 봤다. 또 무슨 생각으로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는 편이 훨씬 정신건강에 유리한 편이다.

임스가 몸을 기울여 아서에게 붙는다. 아서는 그 몸짓을 알고 있었다. 골이 다 아파와서 아서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는 동안 임스는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바텐더가 흘끗 둘을 봤다가 다른 손님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미치겠군. 아서가 자연스레 잔을 잡았다.

"오전 비행기야?"
"임스, 진짜로 뭐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이러는건 아니겠지."
"성공해야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는거 알잖아."

이건 단순히 임스가 아서의 '통제'에서 튕겨져 나왔다는걸 뜻할 뿐이다. 아서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임스가 하고 있는건 그가 가장 즐겨쓰는 정보얻기 패턴이다. 예쁜 여자로 위장하기. 물론 꿈 속이 아니니 겉이 바뀔 일은 없었지만,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더라도 어쨌든 임스는 위조꾼이었다. 아서는 결국 유리잔을 입에 댔다. 안으로 들어가는 위스키를 대놓고 쳐다보던 임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시선을 끌던 말던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 임스가 잔에 남은 위스키를 마저 마셨다. 혀에 단 맛이 감겨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




아 그래서... 통제에서 벗어난 임스가 아서 불쾌하라고 수위 넘치는 농담들을 마구 던지다가 빡친(터진) 아서한테 성희롱 당하거나 호텔로 끌려가거나 그런거였는데 진짜 이걸 더 써봤자 존나 후회만 될 것 같다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저를 치시거나 때리거나 어떻게든 하시길 사랑합니다 두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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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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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스탈]Thin air

연성/기타 / 2014. 12. 30. 20:10



의미를 모르겠는 스키틀즈 기반 노기스탈. 커플링은 아니고... 노기+스탈..? 스타일즈가 스캇을 오래도록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설정...

캐붕..? 모르겠음 뭐든지 괜찮다는 사람만.




시야에는 끔찍한 시멘트 바닥이 있었다. 스타일즈는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반쯤 확신하고 쳐다본 다리가 또 다시 덫에 걸려있다. 단단히 물려있는 오른쪽 다리에서 익숙한 고통이, 아니, 왼쪽 다리일지도.

스타일즈는 다급하게 일어나 앉아 바닥을 짚고 있던 양손을 눈앞에 들어보였다. 하나, 둘, 다섯, 일곱, 열. ...열 하나. 절박하게 떨어지는 감정에 스타일즈가 양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시멘트 벽에 등을 기댔다. 벽과 닿은 부분 부터 얼어붙는다.


스타일즈는 그대로 눈을 감고 다리를 끌어모았다. 덫이 바닥에 끌리는 기괴한 소리가 공기를 긁어도 귀를 막지 않는다. 막아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얼굴에 붕대를 감은 괴한이 다리를 끌며 입을 벌릴 것 같은 지하실.


스타일즈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성대가 나가서 목구멍에 피가 올라올 때까지 계속,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 빌어먹게 차가운 공기를 긁어대고 싶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그저 머리를 파묻는다. 스타일즈의 손가락은 열 한개이고 만약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스타일즈는 그저 배게에 머리를 뉘이고 눈을 감고 있을 뿐이였다. 이건 꿈이다. 그것도 굉장히 역겨운.

내놓은 팔이 점점 얼어붙어 가고 있었지만 스타일즈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을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끔찍한 숨소리도 모두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일어나, 스타일즈. 일어나. 일어나. 초조하게 벽에 머리를 부딪혀봤지만 그리운 제 방의 천장이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제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은 뭐지?"

스타일즈는 결국 귀를 막았다. 말하지 않을거야. 숨소리가 웃음소리로 바뀐다. 스타일즈는 손을 내려 팔을 감싸고 이미 벽에 붙어있는 등을 최대한 밀어붙였다. 일어나 스타일즈. 들으면 안돼. 대답 해서도 안돼. 덜덜 떨려오는 팔을 억지로 잡아쥔다.

"스타일즈, 답을 알고 있잖아. 저번에 대답 했었으면서."

스타일즈는 무릎으로 쳐박았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가스 마스크를 쓴 듯한, 역겹게 공기를 긁어내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시야에는 붕대로 감긴 얼굴이 아닌 거울이 있었다. 아니, 거울이 아니다. 표면에 비춰지는 단순한 평면이 아니었다. 같은 얼굴, 같은 옷, 같은 자세. 차이점이라고는 웃고 있다는 것 뿐이다. 스타일즈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발 누구든.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목을 누르는 악력에 스타일즈는 짓무른 눈을 치뜨고 앞에서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뺨을 건드리는 손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절그럭거리며 덫이 다리를 따라 올라온다. 욕을 씹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노기츠네는 봉인 당했다. 그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네메톤의 힘으로 70년을 잠들어있었던 트릭스터는 다시 한 번 그 강력한 힘에 의해 강제로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사람들을 홀려서 혼란과 갈등을 만들거나 스타일즈의 머릿속에 들어차서 그의 친한 친구들과 하나뿐인 가족을 해치지도 않았다. 스타일즈는 그 사실을 상기하려 절박하게 애썼다. 이건 노기츠네가 아니야. 이건 노기츠네가 아니야. 이건 노기츠네가 아니야.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은 아니었다. 스타일즈는 처음은 아니었다, 라고 문장을 시작하기 어색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이 아이켄 하우스의 지하실에서 보냈다. 어떤 예고나 징조 같은 것은 없었다. 노기츠네가 사라지고도 스타일즈는 쉽게 불면증을 고치지 못했고, 며칠 정도는 아무 꿈도 꾸지않고 눈을 떴지만, 곧 다시 이 지하실로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다리는 언제나 덫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창백한 피부로 흐르는 생생한 피.

"뭐, 생각하고 싶은데로 생각해. 그것까지 막을 수야 없지."

어깨를 으쓱인 남자는 불시에 손에서 힘을 풀어냈다. 바닥으로 무너진 스타일즈가 거의 토악질을 할 듯 숨을 게워내며 몸을 들썩거렸다. 스타일즈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덫에 걸려있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왼쪽 다리의 고통은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으나 스타일즈는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일어나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웃고있었다. 한 쪽 입꼬리를 틀어올리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진 스타일즈를 내려다 보고 있다. TV가 에러를 일으키듯 테이프가 씹히는 소리를 내며 더러운 붕대를 감은 시체의 모습이 겹쳐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정도 장난질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스타일즈는 입술을 짓씹었고 노기츠네는 고개를 기울였다가 스타일즈의 복부를 걷어찼다. 겨우 참고있던 토악질이 쏟아진다.

스타일즈의 기억으로는 오늘은 저녁을 먹지 않았다. 사실 아침도 점심도 모조리 먹지 않은 상태였다. 올라오는건 위액뿐이었고 식도가 산성액에 지져지는 느낌이 생생하다. 노기츠네는 게워낼게 없어 위를 쥐어짜는 스타일즈를 내려다보다가 곧 짧은 머리카락을 쥐어 억지로 스타일즈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치를 떠는 표정에 노기츠네가 천천히 시선을 맞추며 몸을 숙였다.

"걱정마. 그놈의 빌어먹을 나무통 때문에 바깥으로 나갈만한 힘은 전혀 없으니까. 네 꿈 속의 존재일 뿐이지. 일단은."

눈을 휘어 웃는 모습에 스타일즈가 고개를 힘껏 털어 노기츠네의 손을 떨쳐냈다. 그만한 힘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입을 동그랗게 만든 노기츠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미 피고름이 맺힌 입술을 다시 깨물며 스타일즈가 노기츠네에게 눈을 부라렸다.

"노려봐서 어쩔건데? 죽일거야?"

히죽 웃는 얼굴에 울컥 감정이 치솟았지만 스타일즈는 팔을 움직여 자신과 똑같은 얼굴에 주먹을 꽂지는 않았다. 눈을 감거나 손을 들어 귀를 다시 막아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의 일이다. 손해를 보는 것은 스타일즈였다.

스타일즈는 무시하는 쪽을 택했고 다리를 그러모았지만 당연히 노기츠네는 사라지지 않았다. 흉내내듯 똑같이 다리를 그러모으고는 턱을 괸 노기츠네가 노래를 불렀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불러 본 적 없는, 스타일즈가 중학교 때 직접 고쳐 아직까지 소리를 내는 낡은 라디오에서 나왔던 노래. 스타일즈는 그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는, 늘어지는 박자의, 꺼질 것 같은 남자 보컬의 목소리.

"그만."

노기츠네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붉게 충혈된 눈을 노기츠네는 아주 잘 알고있었다. 그의 눈은 자신의 눈이었다. 그럼, 잘 알고 말고. 만족스럽게 끄덕여지는 얼굴에 스타일즈가 어금니를 물었다.

"원하는게 뭐야."

노기츠네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Trust me, I just want as you are. Don't change the things you do, just stay as you are.

스타일즈는 결국 주먹을 휘둘렀다. 멱살을 틀어쥐고 온 힘을 짜내서, 화가 풀릴 때까지 실실 웃고있는 자신의 얼굴을 팼다. 코가 짓이겨지고, 입술이 터지고, 눈 주위의 살이 파랗고 빨갛게 부어오르도록 만들었다. 노기츠네는 비명도 반항도 없이 스타일즈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덫이 절그럭대는 소리와 강도를 더해가는 타격음이 정신병원의 지하실에서 벽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스타일즈는 평생 누군가를 향해 그렇게 주먹을 내둘러 본 적이 없었다. 죄책감도 죄악감도 없었다. 어쩌면 아래에 깔려있는 것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거울을 단단한 물체로 깨부수고 싶은 충동은 새삼 낯선 것이 아니었으니까.

주먹에는 유리조각 대신 살비늘과 피가 박혀들었고, 스타일즈는 거의 형태가 비뚤게 일그러질 때까지 노기츠네를 패고 나서야 던지듯이 커다란 몸을 밀쳤다. 바닥에 쓰러진 노기츠네가 큰소리로 웃더니 벌떡 몸을 일으킨다. 나간 턱뼈와 코를 이리저리 맞추는 소리가 대신해서 지하에 울려퍼졌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굉장하다니까, 내가. 아무렴."
"내 말투 쓰지마."
"이게 네 말투야? 아니지, 스타일즈. 이건 우리 말투야. 너도 알고있잖아."

부드럽게 말하며 피부가 벗겨진 스타일즈의 손을 감싼 노기츠네가 멀쩡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멍도, 피도, 부러진 코도 없다. 스타일즈는 이를 악물고는 다시 벽에 바짝 붙어 다리를 접었다. 노기츠네에게 주먹을 꽂을 때는 아프지 않았던 다리에서 다시 피가 흐른다.

"난 단순히 거래를 제안하고 싶었던거야. 세레나데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지만."

어깨를 으쓱인 노기츠네가 구겨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코웃음을 친 스타일즈는 피가 덕지덕지 붙은 손을 들어 귀를 막아버렸다. 정말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였다. 듣지 않을 것이다. 저 잘난 혀에 놀아났다간 어떤 결과를 불러 들이게 될지 뻔했다. 노기츠네가 한 일은 스타일즈가 한 일이었고, 그것들 모두는 스타일즈의 머릿속에 지나치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스캇, 쉽게도 쓰러지는 사람들, 죽어가는 알리슨.

"이봐, 겁쟁이 친구. 난 너잖아. 알고 있지? 그러니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손바닥 뒤집기 하는 것 처럼 다 알 수 있다고. 네가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것처럼."

스타일즈는 더욱 몸을 움츠리고 머리를 아예 팔에 파묻었다. 노기츠네의 말이 맞았다. 스타일즈는 노기츠네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의 이 미약한 반항이 아무 소용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러나, 스타일즈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잖아. 그렇지? 스캇의 배에 칼을 쑤셔넣고 돌린 것도,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네 손에 의해 손 쓸 틈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도, 그 엿같은 알리슨이 드디어 스캇 맥콜에게서 영원히 떠나버린 것도, 사실은 전혀 미안하지 않잖아. 이기적인 스탈린스키. 말해봐. 내 말이 틀려?"

스타일즈는 도리질을 쳤다. 아니야, 아니야. 어깨에는 죄책감이 쌓여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근육이 긴장했고, 병원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잔상이 언제나 스타일즈를 따라다녔다. 스타일즈는 다시 불면증을 앓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히 상담실을 찾아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단 말이다. 자신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타일즈가 입으로 뱉는 것들은 상담실에서 하는 말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좀 아프긴 했겠지만 죽지는 않았잖아. 늑대인간이니까 금방 치유 됐을거고, 그리고 죽은 사람들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너 때문이었잖아. 내가 한게 아니라고. 네가 한거야.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멋대로-"
"그럼 알리슨은?"

턱 막혀버린 목소리에 스타일즈가 다시 머리를 팔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알리슨은? 그 가여운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건 어떻게 변명할거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스타일즈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습관처럼 손톱이 입으로 들어간다. 까득까득, 불안하게 이빨로 짧게 깎인 손톱을 씹는 스타일즈의 팔 위로 얼음장 같은 손이 얹어졌다. 불쌍한 스타일즈 스탈린스키. 가엾기도 해라. 심하게 익숙해야 할 목소리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뱀 처럼 스타일즈의 팔뚝을 가로지른다.

"괜찮아. 굳이 도덕적인척 할 필요 없어. 넌 가끔 지나치게 무리를 해. 강한척에 모든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척, 무심한척, 신경 안쓰는 척, 다 괜찮은 척. 사실은 전혀 강하지도 않고 괜찮지 않은데도 말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 네 속은 네가 사랑하는 스캇 맥콜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졌어. 네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욱 깊지. 어둡고 낯설어. 네 열렬한 짝사랑 상대는 대답도 해주지 않잖아. 어쩜 이렇게 가련할 수가. 이대로 있다가는 어차피 미쳐버리고 말걸. 우리는 그걸 알고 있잖아."

스타일즈는 핏발이 선 눈으로 지척으로 다가와있는 노기츠네의 눈을 들여다봤다. 끝도 없이 어둡게 가라앉은 눈은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에 다시 없을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순수하고 악질적인 시선. 초점은 다리의 출혈 때문에 한참 전부터 어긋나고 있었지만, 노기츠네의 눈을 볼 때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노기츠네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스타일즈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고 노기츠네는 손가락을 튕겼다. 끔찍한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던 다리에서 묵직한 쇠가 떨어져나간다.

"이제 가볍지?"

그렇게 말하고 눈을 휘어 웃은 트릭스터는 가만히 스타일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음장 같은 체온만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해주는 것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을 따라한걸지도. 스타일즈는 노기츠네의 손을 쳐내지 않은채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맹세코 알리슨의 죽음에 대해 슬픈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노기츠네도 알리슨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알리슨만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게 맞았지만, 오니에게 당해 숨이 끊어진 알리슨은 마지막까지 스캇의 품에 안겨있었고 노기츠네도 스타일즈도 그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둘 모두 스타일즈가 그 사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스타일즈는 부정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사람이면 안되었으니까.

"결국 모든 문제는 그 빌어쳐먹을 스캇 맥콜인거잖아. 안그래? 네가 자신이 싸이코패스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도, 정말로 싸이코패스이면 안되는 이유도, 바깥으로 이 혼란스러운 사실을 꺼내놓고 상담을 받아서는 안되는 이유도."
"난 싸이코패스가 아니야."
"그래, 넌 싸이코패스가 아니지. 넌 그냥 평범한 청소년이야. 조금 길고 복잡한 짝사랑을 하고 있는."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뺨을 쓰다듬으며 눈썹을 누그러뜨렸다. 곧 죽을 작은 소동물을 보는 듯한 눈. 스타일즈는 문득 노기츠네의 손을 쳐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구겨넣은채 그대로 시멘트를 들이부어 가둬놓은 것만 같았다. 숨이 불편하다.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뺨에서 손을 떼고 뒤를 돌아 조금 떨어진 드럼통 위에 올라앉았다. 스타일즈는 그 드럼통이 처음부터 이 아이켄 하우스의 지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편하게 허리를 굽힌 자세에서 다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린다. 공중에 늘어진 후드의 긴 끈이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그래서, 어쩔까? 그 얄미운 여우 계집애를 죽여줄까?"

스타일즈는 무언가가 목을 틀어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라. 노기츠네는 그정도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말들을 뱉고 있었다. 원하는 방식으로 죽여줄게. 알리슨은 칼로 죽었으니 그 여자애는 고슴도치로 만들어줄까? 질식사는 어때? 역겨운 늑대인간들이 한 것 처럼 꾸미는건? 아이작이라는 애를 몰아넣어보자.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죽이지 않을거야."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내뱉은 문장에 노기츠네는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빛을 띄웠다. 탕탕, 불만스럽게 드럼통이 발 뒤꿈치로 두들겨진다. 노기츠네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단호한 스타일즈의 눈빛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중요한 순간에 재미가 없어지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나.

"그럼 다리만 불구로 만드는건?"
"난 키라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을거야!"
"해를 입힌게 너라는걸 스캇에게 들키면 미움 받을테니까?"

다시 입을 다무는 스타일즈를 바라보던 노기츠네가 입꼬리를 올렸다. 스타일즈가 힘 없이 두어번 고개를 젓는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스타일즈는 노기츠네가 몰아붙였던 말들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남이 상처입는 것을 싫어했다. 원인이 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노기츠네는 자신의 혀가 지어낸 말들이 효력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 문드러진 속과 다르게 머리쪽은 조금의 틈을 주면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는다.

노기츠네는 멈췄던 다리를 다시 번갈아서 흔들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아까와는 달리 시끄러운 소리가 고요하기 짝이 없는 지하실에서 울려퍼진다.

"가만히 있는건 지겹지 않아?"

스타일즈가 고개를 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듯 구겨지는 미간을 다시 웃는 상으로 내려다보던 노기츠네가 턱을 괴었다. 드럼통을 두드리는 소리는 메트로놈 처럼 일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스타일즈의 귀에 쌓인다.

"네 사랑스러운 스캇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잖아. 계속 보기만 할거야? 그만 참을 때도 됐지. 이젠 너도 움직여야지, 스타일즈. 언제까지 만족한척 하고 있을거야. 네 위치를 봐. 조금 똑똑할 뿐인 늑대인간의 평범한 인간 친구. 언제든 우두머리에게 버려져서 뒹굴어도 이상할게 없지. 넌 그냥 필사적으로 옆에 붙어있으려고 매달릴 뿐이야. 넌 언제나 그애의 옆에 있었는데, 스캇은 너한테 어떻게했지? 네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널 돌아보지 않는거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어? 오, 물론, 해본 적 있지. 아주 많이. 그 애가 좋아하는 애들은 죄다 특별하잖아."


스타일즈는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읊어지는 사실의 연속. 던져지는 말에서 부정할 부분을 찾으려 뇌가 의미없이 돌아간다.

"난 네 부름을 듣고 온거야. 스캇이 듣지 못하는 그 처량한 울부짖음 말이야. 난 그런 것들을 좋아해. 굉장한 맛이 나거든. 네 어둠은 최상품이야. 몇 년 동안 진득하게 썩어 농밀해졌지. 어딜 가도 이만한 걸 찾기는 힘들걸. 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네 정신이 다른 멍청한 인간들보다 약해서 내가 기어들어온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런건 별로 상관 없거든. 넌 스스로를 정신병원의 지하에 가두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덫을 물리고 있어. 우리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있지.

스타일즈, 너는 특별해질 권리가 있잖아. 거래하자. 난 네 덫을 없애줄 수 있어. 이 지겨운 지하에서 나가는거야. 특별해지면 공중으로 흩어진 스캇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 애는 널 돌아볼거야. 사랑해줄거라고. 그걸 원하지 않아? 단단히 잠궈놓은 그 더러운 희망사항 마저 모조리 풀어놓자. 도와줄게. 할 수 있다는걸 알잖아. 스타일즈, 우리는 할 수 있어. 따라잡을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먼지에 무게를 더하자. 흩어진 시선을 잡아뭉개서 끌어내리자. 스캇, 스캇 맥콜. 그 멍청한 늑대인간을 옆에 붙잡아놓자고. 뭘 망설여?"

탕.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진 듯한 커다란 파열음. 스타일즈는 귀에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 어금니를 물었다. 듣고있는게 아니었다. 중간에 멈춰세웠어야 하는건데.

노기츠네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들여우는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여 간단하게 몸을 뺏고 모든 것을 지배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죽어가는 알리슨을 떠올린다. 화살에 온 몸이 뚫려 쓰러지는 키라의 모습도 겹쳐본다. 알리슨 때 처럼 키라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스캇의 모습도 생각한다. 그를 위로해주는 자신도.

스타일즈는 도리질을 쳤다. 멍청한 스타일즈 스탈린스키. 스타일즈는 자신의 다리에서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있는 덫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가 말라붙은 검은 사냥덫은 입을 벌리고 망연하게 엎어져있었다. 덜덜 떨리는 하얀 손이 덫으로 향하는 것을 보던 노기츠네가 질린다는 듯이 혀를 찼다.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찢어지는 비명에 묻힌다. 노기츠네는 얼굴을 구기고 지하실에서 메아리치는 그 처절한 울음을 들었다. 이미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진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비명을 멈춘 스타일즈는 숨을 몰아쉬며 다시 짓무른 눈으로 노기츠네를 노려보았다. 단호하고 선명한 헤이즐.

"Let, me, out."

어금니 사이로 나온 또렷한 문장에 노기츠네가 과장되게 눈을 위로 굴렸다. 드럼통에서 내려온 마른 몸이 발소리를 내며 스타일즈에게로 다가온다. 스타일즈는 피하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바로 앞에서 무릎을 굽힌 노기츠네가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스타일즈의 턱을 틀어쥐었다.

"언젠가는 날 찾게 될거야. 네 생각과는 달리, 들여우도 거래라는걸 하거든. 쥐고있는 패가 없을 때는 특히 더."

스니커즈가 덫에 걸린 다리를 짓이긴다. 상상도 못했던 고통에 스타일즈가 본능적으로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이켄 하우스의 지하실이 끔찍한 소리로 한가득 채워지는 것과는 달리 스타일즈의 의식은 점점 흐려진다. 급박하게 다리를 붙잡았지만 노기츠네는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다리를 짓누를 뿐이었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팍 튀었을 때, 스타일즈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스타일즈는 지끈대는 머리로 흘러들어오는 익숙한 노래를 들었다.

Trust me, I want you just as you are,
Don't change the things you do, just stay as you are...

침대 옆 협탁에 낡은 라디오가 지지직댄다. 스타일즈는 손을 뻗어 잡은 라디오를 그대로 벽에 던졌다.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노래가 멈춘다.

이불을 들어보면 멀쩡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한 일인데도 한숨을 돌린 스타일즈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손가락도 정상적으로 열 개였고, 책상에 올려져있는 책의 글귀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시계바늘은 오전 5시를 가리키며 멈추는 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났다. 인터넷이라도 켜 볼 목적으로 핸드폰을 들면 살짝 열린 방문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편한 옷을 입은 마을의 보안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스타일즈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큰소리가 나서."
"죄송해요. 잠결에 좀."

스탈린스키는 부숴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라디오를 눈에 담았다. 스타일즈가 처음 자신의 손으로 고쳤던 라디오다. 새 것을 사주겠다는 말에도 애착이 간다며 고개를 저었던 물건인데.

스타일즈는 다시 자신에게로 시선을 힐끔 돌리는 스탈린스키에게 여전히 조금 어색하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저번보다 훨씬 말랐다. 스타일즈는 그 사건의 이후로 조금씩 체격이 줄어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한 번에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고, 스탈린스키도 하나뿐인 아들의 식사량까지 모조리 신경쓸 정도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움푹 패인 눈가가 짓물러 있는 것을 본 스탈린스키는 문 너머로 보이지 않는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마른 입술을 핥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있던 스타일즈는 눈썹을 누그러뜨리며 웃었다. 저어지는 고개에 스탈린스키의 눈이 안도의 빛을 띈다.

"그럼 괜찮은거지?"
"그럼요. 문제 없어요. 깨워서 죄송해요. 주무셔야하는데."

스탈린스키는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다시 한 번 스타일즈의 안색을 살폈다. 정말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는 얼굴에 복잡한 표정을 지은 스탈린스키가 조금 더 자두라는 말을 남기고는 방문을 닫았다. 곧게 펴고 있던 스타일즈의 허리가 무너진다.

눈을 감으면 꺼진줄 알았던 라디오에서 다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게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I reached out to hold you and found nobody there, You turn into air.

"Trust me, I want you just as you are."

Don't change.

스타일즈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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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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