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잭슨... 이랑 비슷한 올림푸스 데미갓 세계관. 각각 아프로디테 뉴트 아레스 민호 헤르메스 토마스 하데스 갤리. 놔둬도 더 안쓸 것 같은데 길어서 안올리기 아깝길래... 이것도 적어도 5개월전 글. 빙님이 풀어주셧던 썰이었던 것 같다... 자잘한 설정 안쓸게여 귀찮음
"안녕, 갤리."
"아 제발."
갤리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몸을 말아 엎드리고 말았다. 시발, 악몽이면 제발 깨기를. 특정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악몽 자체에 가까운 존재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런 소리를 지껄이게 만드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뉴트는 실실 웃으며 반으로 접힌 갤리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다시 목소리를 지껄였다. 잘잤어?
이 극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데미갓이 햇빛이라고는 들지않는 지하세계에 뜬금없이 쳐들어온지 이제 이틀이 되었다. 밤낮 구분도 안되는 유황가스가 가득한 영혼의 둥지에 걸어다니는 대리석 조각이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몇몇 간수들이 뉴트가 페르세포네와 똑같은 과정을 통해 끌려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카더라 통신을 쑥덕이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뉴트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았다.
사실 갤리의 입장에서는 그것말고도 문제가 많았다. 일단 간수들의 카더라 통신은 당연히 개소리였다. 갤리는 아버지가 저의 정부인을 지하세계로 끌어들인것 마냥 뉴트를 납치한 적이 없었다. 납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되도록이면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다는게 사실이었다. 등장하면 모두가 알게모르게 한걸음씩을 물린다는 하데스의 데미갓은 이 자기 어머니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아온 대리석 조각의 옆에서 수근거림을 받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따라서 한 달에 두어번 있는 데미갓의 회의장에서도 절대로 뉴트에게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 않았다.
사실 갤리가 얘기를 섞는 데미갓이래봤자 몇 없기는 했다. 끽해야 토마스나 민호 정도일까. 그래도 뉴트는 갤리에게 있어 일종의 기피대상이었다. 그 외모를 보고 누가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회의장에 나타나기만 하면 온갖 시선을 다 끌어오는건 갤리나 뉴트나 마찬가지였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물과 기름,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 자의 사랑을 받는 미의 여신의 아들과 산 자의 마지막을 받아가는 죽음의 신의 아들. 토마스가 계속 쳐다보는 것 같다고 옆구리를 찔러대도 정전기때문에 따갑다고 성질을 부린 것이 다였다. 그러니 더욱더 황당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정착선언이라는 해괴한것 말이다.
중요한 선언이 있다고 일어나길래 갤리도 당연히 뉴트에게 시선을 줬었다. 두어번 헛기침을 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뉴트는 자신의 인기가 너무 피곤하다는 말을 자기입으로 지껄였다. 어이가 없었으므로 갤리는 그쯤에서 바로 신경을 꺼버렸다. 뉴트는 말대로 외모 덕분인지 뭔지 남녀를 가리지않고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으므로 태클은 들어오지 않았다. 몇몇 신봉자는 아예 고개를 맹렬히 끄덕이거나 네가 귀찮게 해서 그런 것이라고 다른 사람의 팔을 찌르기도 했다.
지랄하네 진짜. 짧게 끝났을 회의를 굳이 이어붙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갤리는 앞에 나와있는 빵을 손으로 집어 하릴없이 입으로 넣었다. 두 번 정도 씹었을 때 뉴트가 이제 자신은 한사람에게 정착하고 싶다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하긴, 이런데서 공식적으로 선언하면 더이상 작업이 걸리지 않을테니 원전차단의 현명한 방법이기는 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는건 아니라고 선언한다고 진짜로 작업이 끊길리는 없겠지만, 임시방편은 되겠지.
회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기대에 가득찬 눈을 한 사람이 못해도 열댓명은 되는 것으로 보아 피곤하다고 한 것 치고 자신의 인기를 있는데로 누렸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갤리는 빵을 여덟번 정도 씹었고 이제 빵은 목 뒤로 삼켜도 괜찮을 수준으로 뭉개졌다. 딱히 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갤리는 목울대를 움직였고, 동시에 뉴트가 여러 데미갓들 사이를 훑던 손가락을 갤리에게 겨누고는 여러사람 뒤로 넘어가게 만드는 웃음을 지었다. 난 이제부터 갤리한테만 붙어있을거야.
회의장은 경악에 물들었다. 갤리는 반쯤 넘어간 빵을 소리나게 삼켰고, 곧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는 민호가 앉아있었고 그는 회의장에서 유일하게 평안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민호가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았다면 뉴트가 선택한게 저가 아니라 민호인줄 알았을 것이다. 갤리는 어깨에 올라온 민호의 손을 봤다가 곧 온세상의 놀라움과 영문모름을 끌어모은 듯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세워 본인을 가리켰다.
나? 너무 황당해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갤리는 입모양과 표정만으로 의사전달에 성공했다. 뉴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회의장은 비로서 침묵을 깨고 태초의 혼란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몇 명은 울기까지 했다. 넓은 회의장 안에서 갤리와 뉴트를 보기위해 대부분의 데미갓이 중앙 쪽으로 몰려들었고, 엄청난 수근거림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갤리는 한 손에 먹다남은 빵을 든채로 입을 다물줄을 몰랐고 뉴트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갤리의 앞에서 멈춰서서는 무릎과 허리를 굽혔다. 시야가 딱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더니 입에 빵이 아닌 것이 닿았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갤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이 없는건 아니었다. 한 단어가 끊임없이 머리에서 돌아다니고 있기는 했다. 씨발.
그리고 3주를 지하에 쳐박혀있었다. 세상에. 갤리의 어머니는 지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고는 지하의 입구까지 찾아와 아들에게 도망쳐다니는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충고했다. 엄마도 도망쳐다니다가 이꼴이 났잖니. 역마살까지 유전되는지 알았다면 지하세계로 보내지 않았을텐데.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의 손은 다정했고, 갤리는 웃었지만, 그렇다고 지상에 다시 올라갈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와의 재회가 끝나고 내려오자마자 입구의 가디언들에게 뉴트가 기웃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망할 새끼. 세간에서 사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저일텐데.
그리고 대망의 3주 후 갤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뉴트는 모로 누워 턱을 괴고 웃고 있었다.
그리웠어, 내 사랑.
미친. 갤리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낙하의 고통에서 벗어난 갤리가 처음 한 일은 일단 뉴트의 몸을 미친듯이 더듬어보는 것이었다. 죽었어? 죽은거야? 패닉상태에 빠진 갤리를 꺄르륵거리는 소리가 날것만치 웃으며 보던 뉴트는 일단 갤리의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쪽. 멍해진 틈을 타 얄미운 목소리가 파고든다. 미인계 좀 썼지. 안죽었으니까 걱정마. 좀 더 만져줄래?
일단 주먹을 날릴 계획이었으나 그 곱상한 얼굴이 때릴거냐고 묻는 통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익은 얼굴로 당장 나가라고 윽박을 질러도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팔을 뻗어 얽혀들어오는 통에 밀어내다가 또 떨어질 뻔 했다. 3주나 기다리게 해놓고 정말 너무하다고 우는척을 해대는걸 간수를 불러 끌어내려다가 하데스에게 허락 받고 들어온거라는 말이 너무 황당해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거짓말이지? 반 분이 지나서야 나온 한마디에 뉴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지.
그래서 뉴트는 갤리에게 뒷목이 잡혀 지상으로 질질 끌려갔다. 중간에 뱃사공과 문지기에게 유황불에 구워지고 싶냐는 윽박을 내지르는 것도 물론 잊어버리지 않았다. 햇빛 가득한 지상에 뉴트를 던져버리고 손을 턴 갤리는 미련없이 지하의 문을 닫으려고 했고, 뉴트는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강제로 틈을 만들고는 억지로 버텼다. 잠깐! 잠깐! 보여줄거 있어! 잠깐만 봐봐! 보면 마음이 바뀔거야!
되도않는 수작 부리지 말라고 억지로 문을 닫으려고 하는 갤리에게 뉴트가 다급하게 내민 것은 무려 석류알이었다. 시발. 육성으로 나오는 욕과 함께 순간적으로 갤리의 팔에서 힘이 빠진다. 틈을 놓치지않고 문을 열어재낀 뉴트가 안쪽으로 뛰어들어왔다. 득의양양한 표정이 아주 때려주고 싶을만큼 얄미워서 갤리가 뉴트의 정강이를 실제로 차버리고는 다시 윽박을 질렀다. 그거 내놔 이 미친 싸이코 새끼야!
당연한 얘기지만 뉴트는 석류알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한 번만 쫓아내려고 들면 이걸 먹어버릴거라고 협박을 일삼기까지 했다. 확인차 한 알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돌려봐도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짜 지하의 석류알이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는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뉴트의 손에는 아직도 다섯개가 넘는 석류알이 있었고, 확실히 말하지만, 이건 미친짓이었다. 대체 어디서 난거냐는 추궁에 뉴트는 페르세포네의 이름을 댔다. 뒷목이야. 갤리는 될 수 있다면 소리라도 질러버리고 싶었다.
페르세포네. 지하세계의 안주인. 널리고 널린 데미갓들 중에서 하데스의 데미갓이라고 알려진 사람은 갤리가 유일했다. 하데스가 원채 지하세계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인 탓도 물론 있었지만, 안주인의 한이라는 것이 워낙에 강해서기도 했다. 하데스가 제우스같은 소위 난봉꾼이 아닌탓에 헤라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지하세계의 안주인 성정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를 따라 꽃만 잘 피우다가 갑자기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인생이 저당답힌 이 불쌍한 여인은 수세기의 겨울동안 지하에 살면서 하데스의 옆을 지키다가 혹시라도 하데스가 불륜을 저지르면 친히 철퇴를 내렸다. 억지로 끌려와서는 지극정성으로 사랑받느라 미운정 고운정 다 들은 탓도 있긴했지만 약탈혼을 당했는데 남편이 불륜까지 저질렀을 때의 분노는 이루말할 수 없는 수준임이 당연했다.
갤리가 자신이 데미갓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을 때 쯤 갤리의 어머니는 페르세포네에게 밟혀죽어 민트가 되었다는 님프인 멘테의 이야기를 해주며 살고싶으면 조용히 있는게 상책이라는 말을 해주었고 갤리도 이것에 동의했다. 데미갓이고 뭐고 아버지 없이도 자신을 이미 훌륭하게 키워낸 굉장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정부인에게 밟혀서 무언가의 풀로 변모하는 것은 갤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조용히 산다고 티가 안나는 것은 아닌듯 갤리가 열일곱이 되던 해에 무려 페르세포네가 모자를 찾아왔다. 자기소개를 받자마자 갤리는 경악했고 어머니는 침착하게 야구배트를 들고 있었으나 페르세포네는 다행히 모자를 폭행하거나 어머니의 머리채를 쥐어뜯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일단 갤리를 안아주었다. 바짝 얼은 갤리가 어떻게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고 있는 중에 갤리에게서 떨어진 페르세포네는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고생이 많으셨다는 얘기를 꺼냈고, 어머니는 야구배트를 든채로 울컥 울음을 토해냈다. 처음보는 눈물이었다. 어머니가 진정이 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페르세포네는 원망은 하데스에게 모두 쏟아놓고 왔다면서 어쩔줄 모르는 갤리에게 웃어보였다.
솔직히, 같이 지낸 햇수가 몇인데 아들 하나 밖에서 만들었다고 예전처럼 분노 하기에는 좀 어렵죠. 페르세포네는 홍차를 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지상에 돌아다니는 데미갓이 몇 명인데 한 명 정도는 있어도 아무렇지 않달까, 오히려 자기 아들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다고 얘기하는 미모는 가히 인간의 것이 아닌게 확실해 보였다.
물론 한 세기쯤은 각방을 쓸거지만 어차피 갈릴레오씨도 꼬임 당한걸테니까 더이상 뭐라고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마친 페르세포네는 나중에 일자리를 구하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갤리 모자에게 지도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선명하게 적혀있는 Underground라는 글자에 갤리는 침묵했고, 페르세포네는 깔깔 웃으며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지하에 들어간다고 영영 헤어져야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원하는 때에 만날 수도, 원한다면 한 50년쯤 후에 와도 상관없다는 말에 갤리 모자는 서로를 마주봤다.
제가 심심해서 그래요. 페르세포네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예전이었다면 당연히 갤리와 갤리의 어머니는 초전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너무 오래 지하에 있었고, 지하에는 재밌는거라고는 끌려온 영혼들을 괴롭히는 것 정도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권태기고 뭐고 이제는 질투하기도 귀찮고, 남편의 아들이면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법하니 지하에서 일하는걸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다.
페이는 어떻게 되는데요? 이게 갤리가 겨우 뱉은 말이었다. 그래, 사실을 말하자면, 경제사정이 좀 어렵기는 했다. 어머니 혼자 벌어서 대기에는 학비가 갈 수록 비싸지고 있었고, 몇 달 뒤면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페르세포네는 웃었다. 당연히 원하는 만큼 드리죠. 괜히 플루토스라고 불리는게 아니랍니다.
그래서 갤리와 갤리의 어머니는 지하의 입구가 있는 근처의 도시로 이사왔다. 처음 마주한 하데스는 매우 무서웠다. 크고, 음, 컸다. 갤리도 덩치라면 어딜가도 뒤지지 않는다지만 신하고 비교해서야. 하데스가 갤리에게 처음 한 것은 사과였다. 갤리는 태어나서 17년만에 만난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과를 얼결에 받아들였고, 정식 데미갓으로 인정 받은 뒤 지하의 업무를 담당했다. 어머니는 만날적마다 혈색이 좋아지더니 친구들과 다니는 여행에 대해서 떠들어주었다. 그동안 혼자 갤리를 키우느라 뼈빠지게 고생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린다는 뿌듯함이 좋았고, 지하의 업무는 의외로 갤리의 적성에 맞았다. 원래부터 여기가 제자리였다는 양 지하는 매우 익숙했다. 몇 년 지나서는 영혼들이 유황불에서 질러대는 소리를 자장가로 삼아 잘 수도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천직이라 하겠다.
이야기가 빠졌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자면, 페르세포네는 일단 갤리를 아꼈다. 아들처럼 생각된다고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갤리가 실수를 저지르면 하데스를 구슬려 벌을 받지 않게 해준다거나, 갤리가 바쁘지 않으면 온종일 같이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나 말했듯이 지하에서 사는 것은 수세기가 지나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페르세포네는 또한 재미있겠다 싶은 일에는 발벗고 나서는 성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 뉴트가 미인계를 써서 산채로 지하에 들어와 자신이 회의장에서 저지른 일과 갤리가 3주동안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페르세포네에게 전했다면, 뉴트가 부탁도 하지 않은 석류알을 넘겨주며 갤리를 구워삶을 이야기를 들려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였다. 아, 양어머니. 차라리 갤리를 미워해서 한 일이라면 가서 따지기라도 하지.
결론적으로 갤리는 뉴트를 쫓아내지 못했다. 억지로 뺏으려고 하기가 무섭게 입에 털어넣어버리길래 기겁해서 뒤통수를 갈겨 뱉어내게 한 뒤로는 나가라는 말의 나자도 꺼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뉴트는 갤리가 하는 일을 구경하려다가 케로베로스에게 다리를 뜯길뻔하고 얌전히 페르세포네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루종일 안보이길래 어쩌면 돌아갔겠구나 싶어서 안심했더니 잠자리에 눕자마자 문을 열어재끼고 뛰어들길래 다시 급하게 케로베로스를 불렀더랬다. 주인의 절규를 들은 케로베로스는 충직하게 뉴트를 방 밖으로 끌고나갔고, 그래서 나름대로 편안하게 간밤을 보냈는데.
"케로베로스는 대체 어쨌어? 방 앞에서 지키고 있었을텐데."
"공놀이 되게 좋아하던데. 페르세포네님 방에서 잘 놀고있을테니까 걱정마."
아, 양어머님. 단단하게 맞물린 팔을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갤리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뒤로 드러누웠다. 아주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타려는 몸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져버리자 뉴트가 징징대며 도로 몸을 붙여왔다. 이걸 진짜 어떻게 해야 돼. 갤리는 이제 막다른 길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도 도망쳐다니다가 이꼴이 났잖니. 젠장.
"뭐때문에 이따위로 나오는거야? 너 나 알아? 아주 매정한 사실을 하나 말해주자면, 난 너 모르거든. 언제 그렇게 얘기를 나눴다고 지금- 아니, 너 그런 눈 하지마. 하지말라고. 그만 못둬? 내가 열뻗쳐서 진짜."
버려진 사슴 같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뉴트에게 성질을 부린 갤리가 배게를 들어 뉴트의 얼굴에 대고 눌러버렸다. 저놈의 얼굴. 뉴트는 킥킥대며 갤리의 팔을 잡아내리더니 배게를 안고 손가락에 입술을 눌렀다. 잡힌 팔에 소름이 돋는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당장 빠져나가려는 손을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던 뉴트가 기어이 혀를 내어 손가락 사이를 핥았다. 갤리가 두번째 배게로 뉴트의 얼굴을 강타해버린다.
"대답이나 해 미친새끼야! 너 나 아냐고!"
이젠 슬슬 진짜로 무서워진 갤리가 기겁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나한테 자기를 아녜! 데굴데굴 구르는걸 발로 차버려서야 겨우 멈춘 뉴트가 예고없이 벌떡 일어나서는 또 갤리에게 입을 맞췄다. 슬슬 얼굴이 다시 익기 시작한다.
"당연히 알지. 부끄러우면 성질내고, 스킨쉽하면 얼굴 빨개지고, 잘생기고 예쁜 사람한테 약하고. 어떻게 모르겠어. 되게 섭섭한데. 설마 진짜로 몰랐어?"
"그러니까 대체 뭘-"
"내가 너 좋아하는거."
다시 배게가 얼굴을 강타한다. 이번에는 갤리도 당황했는지 반쯤은 과장스러운 액션으로 꽥소리를 내며 쓰러진 뉴트를 황급히 일으켜 세우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반사작용 급으로 쳐놓고 미안해하다니. 아직도 어버버거리는 얼굴을 앞에 두고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뉴트가 갤리의 얼굴을 주물거렸다. 갤리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몰랐을만 하나. 네가 눈치가 조금만 있었어도 이런 도박수는 안뒀을거라고."
도박수라니. 자기자신도 이게 어이없는 짓이라는걸 알고 있다는 것이 제일 웃기는 부분이다. 갤리는 자신을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를 구겨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곧 눈을 위쪽으로 굴렸다. 눈치, 눈치라. 페르세포네나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유도리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들은적은 있었지만 눈치라고 하면 나름 있는 편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적응력이 뛰어났고, 지하의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으니 정말 뉴트의 말대로 눈치가 개똥이었다면 진작에 떨어져 나가버렸을 것이었다.
갤리는 여전히 구긴 얼굴로 다시 뉴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아프로디테의 아들 타이틀에 걸맞는 훌륭한 얼굴이다. 갤리는 손을 들어 이번에는 자신이 뉴트의 얼굴을 잡고 주물럭대기 시작했다. 뺨을 쭉 늘렸다가 입이 튀어나오도록 눌러보기도 하고, 위아래로 흔들거나 휙휙 양옆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초반에 언급했다고 생각하지만 갤리는 뉴트와 딱히 얽혀들고 싶지 않았다. 미의 여신의 아들과 난봉꾼이라는 타이틀이 같이 곁들여져 있는 놈을 뭐가 좋아서 쳐다보겠는가. 그리고 말했듯이 물과 기름이다. 관심을 보였대도 연애쪽엔 영 경험이 없는 갤리로서는 알아봤을지 확실하지 않기는 했다. 갤리는 주물거리던 손을 멈추고 뉴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기억, 기억. 데미갓의 회의장에 나가게 된지는 꽤 오래됐다. 첫 날은 흐릿하다. 다만 하데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여러의미로 모든 청중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의장은 제우스의 데미갓인 알비였고, 민호와 프라이도 있었다. 토마스는 회의장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1년이나 2년. 뉴트. 뉴트는 언제부터 있었나. 갤리는 지하에서도 깨끗하게 빛나는 금발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라고 물으면.
갤리는 떠올리는 것을 포기하고 뉴트의 얼굴을 놓았다. 회의장에 처음부터 있었대도 크게 달라질건 없다. 갤리가 신경쓸 일은 차고 넘쳤다. 지하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이 터지고, 회의장에서 하는거라고는 앉아있다가 의제나 의제에 따른 반응이 마음에 안들면 불퉁하게 얼굴을 구기는 것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