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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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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 민호 X 가이드 토마스


토마스가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으면 어떤 성격일까 머리터지게 고민하다가 그냥 대충 써벌임... 드악님 이제 민톰 주세요... 근데 아직 1편이라ㅇ>-<




센티넬은,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그들에 대한 취급은 양면성이 있어서 마치 카드의 앞뒷면과 비슷하다. 전쟁지역인 이 '글레이드' 구역에서는 그 양면성의 강도가 조금 심했다. 앞면은 경탄과 존경심, 예찬. 뒷면으로는 썩어서 고인 혐오감과 두려움. 센티넬들은 아주 놀랍게도 이런 취급을 생각보다 잘 견뎌주었는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정부에서의 지원은 아주 훌륭한 수준이었으니까.


센티넬이라는 무기가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전쟁기구인 위키드에서 내놓은, 개발된 인간병기는 군자금에 아주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왔다. 애초에 '센티넬'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나름의 초능력자들은 아주 예전부터 있어온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너무 약했고, 아주 강력한 몇을 제외하고는 가볍게 부릴 수 있는 장난 수준이었기에 실제의 전쟁에 파급력이 있을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위키드가 진행한 것은 말하자면 센티넬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시원찮은 마술을 대 살상용 무기로 쓸만한 수준으로.


비밀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였고 엄연히 생체실험이었으며, 사람을 무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위키드는 만만치않은 지탄을 받았으나 센티넬의 활약은 그것을 모두 덮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오랫동안 반복되었던 전쟁은 점차 판세를 뒤바꾸고 있는 중이었고, 지표면을 파괴하는 미사일이나 납탄은 점점 모습을 감추었다. 지구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식으로 말한 한 비평가는 당연히 가지고 있던 지위를 박탈당했으나 공감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센티넬들이 활약하는 곳은 그 글레이드였다. 세계 인권 선원 따위가 발톱을 들이밀 수 조차도 없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무법지대.


정부는 위키드에 대한 처벌을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로 미루기로 했고 이것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센티넬이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 지원자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센티넬에게 필요한 '가이드'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된 것이 그 놀라운 결과 중 몇가지였다.


장난 수준에 머무르는 센티넬이라도 어떠한 기폭제가 작동하여 능력이 터지게 되는 일이 있다는건 기록된 바 있는 사실이다. 영국의 좁은 땅덩이에 새겨진 거대한 크레이터나 버뮤다 삼각지 같은 미스테리한 구역 등이 그 예였다. 위키드는 이 사실에 기초해 센티넬의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이것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사실 무법지대인 글레이드가 만들어지기 전 부터 계속해서 진행 되어 왔던 프로젝트 였는데, 위키드는 연구 끝에 이 기묘한 능력을 막아놓는 것이 블랙아웃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블랙아웃이란 쓸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뇌가 정해놓고 일정 이상의 힘을 내면 근육이 찢어지거나 몸 어딘가에 이상이 오기 때문에 뇌가 강제적으로 힘을 내는 것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센티넬의 능력이 장난 수준인 것은 '이 이상 능력을 쓰면 버티지 못한다'는 뇌의 판단하에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이 블랙아웃을 무시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쉬운 것은 보조기구를 덧붙여주는 것이다.


'가이드'는, 센티넬의 보조기구였다. 능력이 폭주하는 센티넬의 호르몬을 안정 시켜주고, 센티넬 본인의 뇌 대신 센티넬의 한계를 설정해주는 존재. 글레이드에서 활약하는 센티넬들은 기본적으로 항상 폭주해 있는 상태였다.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글레이드에서 가이드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기성 상품마냥 하나의 가이드가 어떠한 센티넬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일이 그렇게 잘풀리지는 않았다. 센티넬이 가이드가 있음으로서 능력을 안정적이게 낼 수 있는 것은 센티넬이 받을 영향을 가이드가 대신해서 받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똑같은 영향을 받는게 아니니 터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센티넬이 능력을 폭주시킬 때마다 가이드의 정신은 조금씩 좀먹어 간다. 비유하자면 가이드는 소모성 제품이었다. 한 개도 벅찬 것을 두 개나 감당할 수 있을리도 없고, 애초에 가이드는 센티넬 한 명에게 맞춰져있는 전용상품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토마스는 조금 달랐다.


"두번째 센티넬?"


그것이 민호가 토마스에 대해 들었을 때 처음 뱉었던 말이었다. 코웃음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 당연한 일이었다. 민호의 전 가이드인 벤이 적군에게 총살 당한 이후에 민호는 근신처분을 받았다. 당연히 당해야할 일이었다. 가이드는 센티넬과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면 안되었고, 가이드를 지키는 것은 센티넬의 역량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이드가 전쟁통에 죽어버리는 것은 상당히 흔한 일로, 센티넬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쉽지만, 가이드가 한 번 죽으면 센티넬도 제 역할을 다시 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가이드는 센티넬보다도 취급이 좋았지만, 인력은 부족한게 현실이긴 했다.


전에 맡았던 센티넬이 가이드가 바뀌었다고 한다. 말이 돼? 민호는 눈썹을 휘어 올렸지만 뉴트는 저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을 뿐이었다. 패드에 떠있는 프로파일을 받아든 민호는 이력서에 적힌 내용에 미간을 구기고는 흰 바탕에 적힌 글씨를 천천히 읽었다. 위키드 상임 연구원.


"나이는 동갑인데."


민호의 어깨너머로 종이를 넘겨다보던 뉴트가 이상하다는 듯 덧붙였다. 애초에 위키드의 상임 연구원이 글레이드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가이드를 자처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손가락을 옮겨 아랫줄을 읽은 민호가 턱을 괴었다. 트리사라는 센티넬과 무려 3년간이나 같이 다녔다.


창백하고 마른, 전쟁통 보다는 책상 앞의 스탠드가 훨씬 어울리는 체형. 검은 머리에 밝은 헤이즐은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 사진이 지나치게 앳된 것을 보면 처음 업로드 된 이후로 한 번도 업데이트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잘도 이런 얼굴로 3년이나 가이드를. 센티넬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이드는 조금 굳건한 타입들이 많았다. 아무리 센티넬 뒤에만 붙어있어도 무기는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했고, 맷집이 없으면 힘들다. 뉴트의 가이드인 갤리만 해도 글레이드 밖으로 나가면 평균을 완전히 웃도는 수준의 덩치였는데.


만나면 조금 다르겠지. 프로파일을 폴더에 쳐박은 민호가 찌푸둥한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내일 이 토마스라는 가이드가 오면 다시 그 지겨운 정신교감을 해야한다. 휴식시간이 전부 끝났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다. 가이드만 있었으면 사실 이동은 문제도 되지 않는데. 가이드가 없는 이상 손바닥만한 아공간을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이다.


"이번 정신교감은 좀 성심성의껏 해봐. 저번처럼 중간에 폭발해서 안하겠다고 날뛰지 말고."

"웃기네. 생각으로는 2년은 질질 끌고 싶은데."

"잘릴걸?"

"자를 수나 있는지 보자."


뉴트가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 것을 힐끔 내려다 본 민호가 부츠의 끈을 제대로 매고 출입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 가이드는 정말 껄끄럽다.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인건 알고 있지만.



*



토마스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맥아리가 없었다. 3년이나 지났으니 조금 바뀌었거니 생각했는데 프로파일의 사진과 비교해서 키만 말쑥하게 컸다 뿐이지 도저히 근육량 같은게 늘어있는 것 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대놓고 혀를 차는 민호 때문에 토마스도 얼굴을 구겼으나, 곧 입술을 먹더니 오리마냥 입술을 내밀고 손을 내밀었다. 토마스에요. 입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생각보다 높다.


민호는 예의상으로라도 이름을 밝혀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냥 손만 잡고 흔들었을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처음 맞잡은 토마스의 손은 뼈가 두드러져있었다. 특정부위에 있는 굳은 살. 총과 단검을 다룬다. 손은 금방 풀어졌다. 토마스는 난감한 얼굴로 눈썹을 구겼고 방 구석에 위치한 감시카메라를 힐끔 쳐다봤지만 민호를 나무라는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민호의 심정은 이해하고 있다. 근신처분이 아직 세 달이나 남았는데 토마스 때문에 다시 전쟁통에 나가게 생겼으니 좋은 기분일리는 없겠지.


"전부 들으셨겠지만, 원래 파트너였던 센티넬이 가이드를 직접 바꿔서 제가 잉여인력이 됐거든요. 현재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은 민호씨가 유일해서."


아는 것을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이 어색한 공기를 차마 계속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민호는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래서는 정신교감이고 뭐고 일이 진행조차 되지 않을 분위기다. 민호는 토마스를 뚫어져라 쳐다만 볼 뿐 도저히 대화 주제를 꺼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토마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에 대해서는 들었어요. 아공간 사용자라고."


역시 민호는 대답이 없었다. 토마스는 머리라도 싸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 못하겠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될 일인데 움직일 기미도 없다. 어쨌든 여기서 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건 토마스의 역할인 듯 싶었다. 프로파일에 적혀있던 걸로 보면 상당한 베태랑이어쩌면 위키드의 연구원이라는 항목을 봐서 이런 반응을 내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욱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토마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벤씨에 대한건 안타깝게 생각해요."


토마스는 말을 뱉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아무리 대화주제가 없다지만. 민호는 표정변화 하나 없이 토마스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민호의 가이드는 두 번 바뀌었다. 다른 센티넬들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였지만 그렇다고 가이드에게 정을 주는 타입인 것도 아니었다. 민호의 능력등급은 S였고 전투능력에 관해서는 글레이드 내에서도 견줄 자가 없다. 가까운 인간관계로 올라와 있는 것도 뉴트 아이작과 그의 가이드인 갤리 갈릴레오 정도였다. 친화력이라고는 없을 것을 예상하지 못한건 아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토마스의 프로파일에 가까운 인간관계로 올라와 있는 것은 트리사가 다였지만.


"버려진거야?"


민호의 말은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왔다. 굳이 앞문장을 말하지 않아도 무엇에 대해 말하는건지는 확실하다. 사실 센티넬이 가이드를 직접 지정하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굳이 있는 가이드를, 그것도 3년이나 같이 있었던 가이드를 죽은 것도 아닌데 자기 멋대로 바꿔버렸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센티넬과 가이드는 기본적으로는 강한 유대감을 필요로 하는 관계였다. 정신교감도 그래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고. 정을 주는 타입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민호도 전 가이드와 벤이 죽은 직후에는 강제적인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 둘이 민호와 일한 기간은 각각 1년과 2년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3년이나 같이 일한 파트너를.


토마스는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가 곧 시선을 사선으로 올렸다. 감시카메라. 토마스의 관심은 사실 민호보다는 감시카메라에 쏠려있었다. 조금 고민하는 눈빛이다. 마치 어디까지 말해도 좋을지 재고 있는 듯한 눈. 민호는 당연히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일단은 토마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약간 난감한 신음소리와 함께 토마스의 눈이 다시 민호에게 돌아온다.


"전쟁이 곧 끝날거에요."


민호는 곧장 얼굴을 구겼다. 생각처럼 의문이 입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알맞은 반응이었다. 물어본 질문과 어떤 연관이 있는건지 모르겠는 문장이었으니 당연하다. 토마스는 다시 말을 고르는듯 가만가만 시선을 옮겼다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가 끝난 모양이었다.


"승세가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는 것 쯤은 몸으로도 느끼고 있겠죠. 적군이 발악을 하고는 있지만, 아마 오래 버티지는 못할거에요. 그리고 위키드는 이 전쟁을 더이상 끌고 갈 이유를 찾지 못했구요.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을 모두 총 동원해서 될 수 있는 한 이 전쟁을 빨리 끝낼겁니다. 민호씨는 중요한 전력이니 더이상 전선에서 물러나 계시면 안돼요. 지금 당장 가이드로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인력은 저와 에어리스가 끝이지만, 에어리스는 아직 전 파트너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쪽은 센티넬인 트리사가 알아서 케어해야 해서, 남은 제가 오게 된거죠."


민호의 얼굴이 더욱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토마스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에 놓인 녹차를 입으로 흘려넣었다. 토마스는 명령 받은 일을 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결정한 일을 말하는 듯이 얘기했다. 위키드의 상임 연구원. 과거이력으로 써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모양이다. 


"전쟁을 언제까지 끝내는게 목표인데?"

"3개월."


민호는 코웃음을 쳤다. 3개월이라니. 적군을 3개월 내에 전멸시키기라도 할 생각이라는걸까. 이 전쟁은 이미 10년 이상 지속되어온 전쟁이었다. 센티넬이 등장한지 3년이나 지났는데도 지금에서야 승기가 기울어진 수준이다. 토마스는 민호의 비아냥대는 반응에도 멀쩡한 얼굴이었다. 모든 것이 예상범위 안. 평소라면 재수없다고 혀를 찰 얼굴이었지만, 아까 난감해 하던 얼굴이 겹쳐져서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민호가 눈을 가늘게 했다.


"하지만 나랑 정신교감을 하려면 적어도 4개월은 필요할텐데. 벤이 그정도가 걸렸거든."


토마스는 다시 난감한 빛을 띄었다. 그러나 전혀 곤란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정신교감은 평균적으로 2개월에서 3개월이 걸렸다. 민호는 영 감정에 무뚝뚝해서 좀 더 걸리는 편이다. 벤은 그나마 조금 덜 걸린 수준이었다. 첫 파트너와는 장장 6개월이나 걸렸다. 평균으로 쳐서 2개월이 걸린다고 해도 3개월 안에 끝날 전쟁이라면 그 때쯤엔 사실 민호가 할 일이 거의 없을터였다. 비효율적이다. 올거였으면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왔어야 계산이 맞았다.


"나는 2주 정도로 잡고 있는데."


두번째 코웃음. 토마스는 다시 녹차를 마셨다. 존댓말이 사라졌지만 민호가 신경쓸 부분은 아니었다. 애초에 동갑이었고 토마스도 그건 알고 있다. 민호부터가 처음부터 반말이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2주라니. 가족이었으면 모를까 절대 불가능하다. 그리고 민호는 이 토마스라는 사람과 2주만에 정신을 교감할 생각이 없었다. 


이유나 들어볼 생각으로 민호가 의자에 등을 완전히 기대고 팔짱을 꼈다. 토마스는 컵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감시카메라를 봤다. 그러나 이제는 별 상관 없는듯 했다. 토마스가 기지개를 켜듯 테이블에 팔을 쭉 뻗는다.


"초기 실험 참가자죠?"


대답은 없다. 토마스는 딱히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것이 아닌듯 다시 저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안구 같은 눈동자가 도록도록 굴러간다. 다시 고민중이다. 위키드의 연구원이라는 사람이 조금 지나치게 생각하는 바가 얼굴에 잘 드러나는거 아닌가. 민호는 초침소리에 맞춰 팔에 얹어진 검지 손가락을 두드렸다. 1, 2, 3, 4, 5.


"내가 맞출 수 있어요. 다 지켜봤으니까."


민호에게서의 반응은 없었다. 민호를 힐끔댄 토마스가 다시 입술을 오리마냥 내밀었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아마 민호가 일어나서 토마스를 한 대 후려갈길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초기 실험. 센티넬이라는 이유로 어린애들을 잡아다 놓고 그동안 이론으로만 나왔던 연구들을 적용하는 첫 실험들을 뜻했다. 당연히 잘 될리가 없다. 민호가 아는 죽은 아이들만 해도 반백명이 넘는다. 트리거가 걸린 능력을 폭주시키는 실제적인 방법을 연구해야 했던 실험이었기 때문에 위험지수는 하늘을 찔렀다. 민호만 해도 제가 벌린 아공간에 먹혀들어갈 뻔 한걸 연구원들이 기겁하고 마취총을 쏜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민호는 솔직히 말해서 능력이 아공간 생성이라는 무해한 것이었기 때문에 살았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기로 쓸 것을 염두에 두고 데려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같은 실험을 받은 센티넬 아이들의 능력은 훨씬 무서운 것들이었다. 불을 쓰던 아이는 자신의 불에 타서 죽었고, 물을 쓰던 아이는 익사했다. 독심술이 능력이었던 아이가 끝내 미쳐버려서 감금 당한걸 본 적도 있었다. 염산 능력자인 뉴트는 실험 중간에 자신의 다리를 녹여버렸다. 새살이 돋았지만 뉴트는 아직도 다리를 절었다. 뉴트가 산을 내보내는 것은 손바닥이었고 녹은 것은 다리였으니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는 소문마저 있었고 민호는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토마스는 자기가 그런 실험을 모두 지켜보고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노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구원이다. 어떤식으로든 일조를 했을 것이 분명했다. 민호는 제가 처음 실험을 받았을적에 거울을 봤던 일을 떠올렸다. 토마스의 나이는 민호와 동갑이다. 그런 작은 몸으로 연구원 가운을 입고 제 또래의 아이들이 당하는 것들을 보고 있었을까. 민호의 입이 비뚤어졌다.


"하지만 난 너에 대해 모르는데."


토마스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이 불쾌해진 민호가 눈을 가늘게 뜬다. 토마스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어대고는 되도않는 수습을 하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당연히 민호의 표정이 풀어지는 일은 없었다. 토마스는 곧 웃음을 진정시키고 싱그럽다고 해도 좋을 미소를 입에 걸었다. 호박색 눈이 휘어진다. 민호의 시선이 다른 의미로 고정된다.


"그걸 알기 위한 2주인걸."


전부 알려줄게. 네가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게. 노래 하듯이 나오는 문장. 여전히 휘어진채 반쯤 떠진 헤이즐을 바라보던 민호가 비뚤어진 입을 일자로 만들었다. 2주. 민호는 누군가에게 의지를 해 본 역사가 없었다. 가이드는 그저 없으면 불편한 보조기구였다. 위키드에서 초기 실험 참가자에게 주입했던 이론이다. 이제는 상당부분이 바뀌어 있었지만 민호는 그 가치관을 바꾸지 않은채로 살았다. 그 편이 편하니까.


그러나 민호는, 자신이 토마스를 보조기구 정도로 취급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3개월. 코웃음을 쳤지만 저렇게까지 확실하게 전쟁이 끝날 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민호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통에서 발을 빼지 않는 것은 한가지 이유였다. 전쟁은 끝나야 하는 것이니까. 모두가, 심지어는 뉴트조차 10년은 더 걸릴거라며 고개를 저었는데.


걸어 볼만 한가. 민호는 토마스가 했던 것 마냥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았다.


"2주 안에 정신교감이 되지 않으면 때려칠거야."


다시 기가 죽는 듯 입술을 내밀고 어깨를 늘어뜨리는 토마스를 보면서 민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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