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8)
(8)
연성 (42)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공지사항

태그목록

최근에 올라온 글

센티넬버스 AU 민톰

*약간 먼치킨적 요소 주의... 나도 싫지만 필요한 설정이야... 뒤지고 싶다...






이틀째. 민호는 익숙한 침대에서 일어났다. 글레이드에서 약간 떨어져있는 센티넬의 숙소는 나름대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넓고, 채광도 좋고, 필요한 것은 전부 있다. 원한다면 인테리어도 제 맘대로 바꿀 수 있었다. 어차피 민호의 경우에는 그리 넓을 필요도 없긴 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민호는 뻑뻑한 눈을 돌려 옆을 봤다.

세걸음 정도 떨어져있는 반대편 침대에는 낯선 얼굴이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져있었다. 정신교감이 아직 되지 않은 센티넬과 가이드는 제대로 정신교감이 되고 테스트를 통과할 때 까지 필수적으로 24시간 동안 붙어있어야 한다. 징글징글 했지만 지나치게 잘짜여진 시스템이니 뭐라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껄끄럽다. 어쨌든 필요한 과정이라는건 동의하는 바였다.

햇볕이 이렇게나 강하니 아무리 좋게봐줘도 정오는 지나있다. 민호는 아침잠이 없는 편이었고, 7시 정도에 일어나 아래층 편의점에서 아침밥까지 사온 뒤 할 것이 없어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던 참이다. 딱히 깨울 마음까지는 들지 않아서 언제 일어나나 기다리다가 좀 졸았지만, 더 잤어도 일어나니 상대도 일어나있었다, 같은 전개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이봐."

뭐라고 불러야할지 감이 서지 않아서 일단 그렇게 뱉은 민호가 토마스의 몸을 흔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말랐지만 실제로 닿는 거죽은 상상이상이었다. 위키드 상임 연구원이라면서 밥도 제대로 안먹나. 토마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칭얼거림을 뱉으며 이불에 파고들 뿐 통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긴 속눈썹이 덮인 점투성이 얼굴이 하얀 이불에 숨겨진다. 마음 같아서는 놓고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스템을 만든 연구원들중 한 명이었다.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 예상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민호는 한 번 더 신경질적으로 토마스를 흔들었다. 솜이불 안에서 이번에는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트리사, 10분만. 제발."

꽉 잠긴 목소리. 민호는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트리사 좋아하네. 이불의 가장자리를 잡은 민호가 그대로 토마스와 함께 이불을 바닥으로 패대기 쳤다. 한심스러운 비명과 함께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토마스가 이불이 감싸주지 못한 뒤통수를 붙잡고 바닥을 몇 번 굴렀다. 하나, 둘, 셋.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주변과 팔짱을 낀채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민호를 보더니 혼란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가라앉히고 매우 어색한 웃음을 띄우는 것이다. 민호는 비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트리사라는 사람은 센티넬이 아니라 네 보모였나보지?"

민호 본인이 듣기에도 기온이 낮은 목소리다. 토마스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사과를 시도했다. 물론 시도는 실패했고 민호는 아까 챙겨놓았던 묵직한 가방을 들고 문으로 턱짓을 했다. 10분 줄테니까 준비하고 나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는 토마스를 한 번 흘겨본 민호가 그대로 걸음을 옮긴다. 토마스가 일어나면 아공간을 한 번 벌려볼 생각이었는데 도움을 받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전 센티넬에 묶여있는 가이드에게 뭘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덕분에 연단장까지 또 걸어가게 생겼다. 민호가 닫힌 문에 대고 혀를 찼다.


*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연단장은 센티넬 전용이었다. 각 센티넬마다 개인 연단장이 있고, 대련을 위한 곳도 따로 있다. 물론 서로를 죽이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어 있었고 대련장 이외의 곳에서 타인에게 능력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강아지 마냥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토마스가 보이지 않게 눈을 굴린 민호가 막 연단장으로 들어가려는 뉴트를 발견하고 눈인사를 했다. 시시덕거리던 뉴트와 갤리의 시선이 소풍 나온 어린애마냥 온갖 곳을 두리번대는 토마스에게로 향한다.

입밖으로 내지 않아도 이미 시선으로 보내지는 확인질문에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갤리의 얼굴이 구겨진다. 하기야 갤리도 몇 안되는 가이드 실험 피해자였고, 뉴트에 대해 알고 있으니 위키드의 연구원이 곱게 보일리 없다. 토마스는 또 입술을 오리마냥 내밀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소리가 날 것 만치 눈동자가 굴러간다.

"뉴트 아이작이야."

험악한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꺼낸건 뉴트였다. 내밀어진 손에 얼굴이 환해진 토마스가 얼른 뉴트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토마스 에디슨이야. 민호는 그제야 이력서에 적혀있던 토마스의 성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당연히 토마스를 질색할줄 알았던 뉴트의 반응이 그러니 갤리의 표정도 조금 풀어졌으나, 토마스가 조심성 없이 뉴트의 다리를 한 번 힐끔댄 것으로 다시 험악해졌다. 민호를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면 뉴트의 다리에 대해서도 모를리가 없다. 뉴트는 어깨를 으쓱였고 갤리가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찰나에 토마스가 입을 열었다.

"불편하지는 않아?"

민호는 하마터면 토마스의 뒤통수를 후려칠뻔 했다 갤리는 그딴걸 질문이라고 하냐며 이를 갈았고 뉴트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토마스는 갤리의 기에 눌렸는지 다시 어깨를 움츠렸지만 질문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뉴트의 다리를 힐끔댔다. 갤리는 완전히 날뛰려고 했고 그것을 막은 것은 뉴트였다. 갤리는 물론이고 토마스의 눈까지 토끼마냥 동그래진다.

"이젠 괜찮아."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마치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것을 입밖으로 내는 듯한. 민호는 할말을 잃었다. 뉴트의 다리에 대한 일은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갤리도 민호도, 물론 뉴트도 그 주제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토마스는 동그래진 눈을 깜박였다가 곧 표정을 바꿨다. 정말로 기쁜듯이 환한, 안심한 웃음.

"다행이다."

그리고는 저 혼자 세 명을 지나쳐 연단장으로 들어가버렸다. 갤리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고 민호의 표정은 기묘하게 일그러져있었다. 토마스의 뒷모습을 쫓던 뉴트는 불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경박하고 높게 울리는 웃음.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어댄 뉴트는 곧 민호에게 같이 안들어가냐는 듯 연단장 안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주춤거리던 민호가 곧 갤리에게 눈치를 보내며 연단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토마스를 찾은건 층계참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지도를 보며 심각하게 얼굴을 구기고 있다가 민호가 어깨를 건드리자 소스라치게 놀라 바닥에서 5cm는 떴다. 아마 들어오기는 했는데 민호의 연단장이 어디인지 물어보는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런 얼빠진 행동에도 물론 한소리 할게 있었지만, 당연히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질문을 한거야? 뉴트 아니었으면 멍 하나 새기는걸로 끝나지도 않았어."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눈을 몇 번 깜박인 토마스가 시선을 사선으로 올렸다. 또 재고 있다. 민호는 슬슬 토마스의 뇌를 해부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뉴트가 아니었으면, 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까딱했다간 뉴트 본인의 손에 얼굴이 녹을 수도 있었던 뻔뻔한 질문이었다. 생각이 없는건지 대담한건지, 아니면 단순히 뉴트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이기적인 질문이었는지- 토마스는 입술을 안으로 오므렸다. 대충 챙겨입고 나온 날씨에 비해 두꺼운 야상 주머니 안에서 꼼지락대는 손이 저절로 머리에 그려진다.

"그게 좀,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거든. 괜찮은지."

민호의 얼굴이 대뜸 찌푸려진다. 토마스는 거기서 말을 마칠 생각인지 민호에게 연단장의 위치를 물었다. 민호의 연단장은 지하에 있었고 굳이 그 사실을 못알려줄 것도 없었지만, 민호는 말로 그것을 말하는 대신 바람소리가 날만치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아까처럼 강아지마냥 쫓아오는 발소리가 조금 거슬린다.

토마스가 위키드의 연구원이라는 사실은 솔직히 말해 민호에게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실험은 끔찍했고 죽은 사람도 수십이지만 토마스는 어린아이였다. 그당시에 어떤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대체 어떤 생각이었는지 민호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고 관심도 없었다. 민호는 목표가 있었고 그것 이외에는 놀라울 정도로 뭐가 어떻게든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토마스는 민호에게 배정된 가이드다. 그리고, 아마도, 전쟁을 끝낼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의중을 알 수 없는 기분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수준이라면 차라리 낫다.

민호의 연단장은 기본적으로 넓은 공간 외에는 준비되어 있는 장애물이나 지형이 없었다. 바꾸고 싶다면 바꿀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시스템을 켜면 홀로그램이 나타날 것이고 평소라면 민호가 창이나 기타 연습하고 싶은 무기로 그것들에게 타격을 주겠지만, 오늘 연단장에 온 것은 그걸 위한 것이 아니다. 토마스는 또 아기새마냥 입을 벌리고 하얀 타일에 둘러쌓인 공간을 둘러보기 바빴다.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알고있지?"

토마스는 말 잘듣는 학생마냥 고개를 주억거렸다. 민호는 기본적으로는 아공간을 벌려 안에서 무기를 끄집어 내 싸웠다. 그 외에는 포탈 처럼 입구를 두개 뚫어 먼거리에서 적을 화살로 맞추거나, 위에서 뭔가를 떨어뜨리거나, 기타등등 나름의 활용을 해서 알아서 싸우는 식이다. 가이드가 없을 때는 손바닥만한 입구를 하나 벌리는게 고작이고, 최대로는 50개를 동시에 벌려본 적이 딱 한 번이었다. 벤이 이틀 동안 꼼짝없이 기절해 있어야했지만.

센티넬의 능력은 가이드에 역량에 달렸다. 사실 센티넬의 능력등급은 활용도에 좌우되는 것이라 그다지 쓸모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이드의 등급은 다르다.

민호는 이력서에서 읽었던 토마스의 가이드 등급이 어느정도였는지 기억해내려 애썼다. 벤은 B였고 그 전 가이드는 B+정도다. 하지만 민호는 애초에 자신이 가이드의 등급이 전투를 좌지우지하는 종류의 능력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D등급이어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민호의 능력은 부가적인 것이었다. 넣어놓기만 하면 어느 무기도 꺼낼 수 있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었으나 어쨌든 민호는 무기를 들고 제 몸으로 싸웠다. 무기를 꺼낼 만큼의 아공간만 벌릴 수 있다면 전선에 설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만 테스트 할거니까 집중해."

토마스는 또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유리창틀에 걸터앉았다. 자신의 쪽에서 맞출 수 있다고 매우 자신감 넘치게 말했으니 시원치 않으면 발로 차줄 의향도 있었다. 민호가 하려는 것은 상성 테스트다. 정신교감을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일종의 관례였다. 벤과 했을 때는 민호가 들어갈만한 아공간 두 개가 끝이었다. 그것도 B등급치고는 상당한 결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테스트는 간단했다. 민호가 일정한 크기의 아공간을 하나씩 벌릴 때 마다 괜찮은지 묻고, 가이드가 어지럽다고 말하거나 쓰러지면 테스트 종료다. 민호는 별 가감없이 바로 아공간을 하나 벌렸다. 아공간의 입구는 괴수가 입을 벌린 것 같은 외형이었다. 끝도 없이 어두운 동굴 같은 느낌. 민호의 아공간은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아니라, 아니,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 맞았지만, 쓰기 편리하도록 민호가 일부러 구역을 나눠놓고 구역마다 필요한 것을 쑤셔넣은 구조였다. 비유하자면 서랍장이다.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물건이 있는 구역에 입구를 벌려놓고 손을 집어넣어 꺼내는게 일반적인 사용법이었다.

민호가 처음 연 아공간 구역에는 창이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고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토마스는 멀쩡한 얼굴이었으므로 민호는 어깨를 으쓱이고 다시 한 구역을 열었다. 벤은 여기서 기브업을 외쳤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나 뭐라나. 다행히 토마스의 머리는 깨지지 않는 모양이다. 민호는 토마스를 흘기다가 아공간을 하나 더 열었고, 역시 토마스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하나. 토마스의 얼굴이 미묘하게 구겨진다. 멈추라는 말은 없었다. 열 둘, 열 셋, 열 넷, 열 다섯-

"야, 힘들면 말해."

결국 민호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미 열 다섯개나 열었다. 벤과는 정신교감 이후로도 한 달은 지나서야 열었던 숫자였다. 토마스는 입에 풀이라도 붙인 것 마냥 입술을 꾹 다물고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집중하라고는 했지만 말은 들어야할거 아니야. 혀를 찬 민호가 입을 일자로 만들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민호가 언질도 하지 않고 한꺼번에 다섯개를 열었다. 토마스의 눈이 처음으로 깜박여졌다.

"민호, 귀찮다고 몰아서 하면 못써."

지나치게 평온한 말투다. 민호는 이제 괴상한 파충류를 보는 듯한 눈으로 토마스를 보았다. 감각이 있기는 한건가? 토마스는 오히려 민호의 시선에 한쪽 눈썹을 휘어올렸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민호는 대화를 포기하고 10개를 더 열었다. 30.

몰아서 하면 안된다니까. 툴툴대는 소리가 들려서 민호는 아예 열린 아공간들을 죄다 닫아버렸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검은 입들에 토마스가 얼굴을 구겼다. 물론 그 얼굴은 민호가 성큼성큼 다가와 멱살을 잡아 올리자 밀가루 반죽마냥 펴져서 하얗게 질렸다. 형광등 불을 반사하는 헤이즐에 혼란이 들어찬다.

"뭐하는 놈이야 너?"

토마스는 당황한 빛이 역력한 얼굴로 일단 민호의 팔목을 잡았다. 물론 그런다고 풀어질 손이 아니긴 했다. 정신교감도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30개라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연히 토마스가 쓰러질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한 숫자였다. 으르렁대기라도 할 것 만치 이를 드러내는 민호 때문에 식은땀을 흘린 토마스가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 내가 맞출 수 있다고 했잖아! 전혀 안믿었던거야?!

내가 맞출 수 있어요. 전날에 들었던 소리긴 했지만, 그게 이런 뜻일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정신교감은 기본적으로는 시너지 효과가 전제였다. 한쪽이 제멋대로 파장을 맞춘다고 해서 해결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효과가 없는건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20%에서 25%, 그것도 최대로 생각해야 그정도다. 그런데 30개라니. 정신교감이 된지 2년째에 50개를 연 것으로 벤은 이틀이나 블랙아웃을 겪었다. 민호는 토마스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곧 던지듯이 멱살을 놓았다. 조금 켁켁거린 토마스가 얼굴 가득 억울함을 담고 구겨진 셔츠를 폈다.

"설마 내 프로파일도 안 읽어봤어?"
"읽었거든?"
"내 가이드 등급이 몇인지는 알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토마스는 입을 다무는 민호를 노려봤다가 가방에서 패드를 꺼냈다. 흠집 하나 없는 새하얀 패드가 토마스가 손가락을 움직임에 따라 화면을 바꿨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 토마스의 프로파일 맨 하단에 적혀있는 가이드 등급의 모양은 M이였다. M? 민호가 눈썹을 구부리자 토마스가 민호에게서 패드를 뺏어 가방에 도로 집어넣으며 신경질을 냈다.

"Master의 M이야. 벤의 등급은 B였잖아! D C B A S M! 내쪽에서만 파장을 맞추는걸로도 50개 정도는 문제 없다고. 마음에 안들어한다는건 알겠지만 나한테 관심 좀 가져줄래? 제발?"

민호는 조금 생각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했다. M이라는 등급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말은 이 상황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토마스는 단단히 토라진 모양새였고 눈을 굴리던 민호는 사과를 시도했으나 정확히 뭐라고 사과하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분일줄 누가 알았겠나. 멀뚱히 저를 쳐다보는 민호를 노려보던 토마스가 또 시선을 사선으로 올렸다. 위화감이다. 뭘 재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데.

그러나 토마스의 표정이 곧 누그러졌으므로 민호는 추궁은 하지 않기로했다. 토마스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유리창턱에 걸터 앉았다. 맞잡은 손이 의미없이 꼼질댄다.

"미안해. 좀 서운해서 그랬어. 그게 난, 그러니까, 네가 내 이름이랑 내가 위키드의 연구원이라는 것 밖에는 알려고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서 프로파일에서 그 항목을 삭제해달라고 했었는데 잘 안됐거든..."

귀나 꼬리가 있었으면 땅끝까지 쳐졌을 분위기다. 민호는 눈썹 한쪽을 들어올렸다. 마음에 안들어한다느니 말하더니 결국은 그놈의 연구원 타이틀인가.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는건 민호도 인정하는 바지만 그런걸 이유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아침부터 죄인마냥 굴던 원인이 밝혀진 셈이었다. 민호는 한숨을 쉬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위로나 어깨를 토닥이는 것도 전문이 아니지만, 저렇게 눈치나 보고 축 쳐져있는걸 계속 보고만 있는 것도 성미에 안맞는 일이다.

"그냥 단순히 네가 그렇게 굉장한 놈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아서 그랬던거야. 딱히 너한테 관심이 없다던가 적개심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니까. 2주만에 전부 알려준다며? 0에서 시작하는거 아니었냐?"

토마스의 허리가 펴진다. 민호는 연단장의 컨트롤 박스로 걸어가 공간을 2배 가까이로 늘이고 돌아왔다. 50개까지는 문제 없다고 했겠다. 눈짓을 하자 느낌표를 띄운 토마스가 입을 꾹 다물고 정면을 주시했다. 허세였는지 겸손이었는지는 금방 판결이 나겠지.

빠르게 열리기 시작하는 아공간의 검은 입구가 하얀 타일을 채우기 시작했다.


*


"그만 먹을래."

토할 것 같다는 감상을 얼굴에 띄우고 포크를 내려놓는 것을 민호가 대놓고 노려보자 토마스가 도저히 무리라고 식탁에 엎어져버렸다. 속이 울렁거려. 차가운 유리에 볼을 붙이고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뱉길래 어쩔 수 없다는듯 민호가 토마스 몫의 스파게티를 제앞으로 끌어왔다.

테스트 결과 토마스의 발언은 겸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50개를 넘어가서도 말이 없길래 별 생각없이 80개까지 열어버렸더니 81개째에서 바로 토해버린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지럽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여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못말했단다. 그래도 기절하지 않은게 어디야. 등을 두드려주며 한 말에는 바로 원망이 돌아왔지만.

못걷겠다는걸 팔을 잡고 질질 끌어서 식당까지 오기는 했는데 역시 위에 뭘 밀어넣을 상태는 못되는듯 했다. 그나마도 민호가 계속 노려보는 바람에 반 정도는 들어가긴 했다.

식당은 센티넬 숙소의 지하에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메뉴판이 바뀌고 가격은 외부보다 싼 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맛이 한정적이라 직접 만들어먹는 사람도 많다. 민호는 요리는 젬병이라 대부분의 식사는 이 식당에서 했다. 연단장은 두리번거렸던 토마스도 식당은 익숙한듯 싶었다. 아니면 차마 외부에 관심을 둘 수도 없는 상태거나.

"유리에 붙겠다 아주."

소스 튄 자국 하나 없이 스파게티 그릇을 비운 민호가 턱을 괸 채로 불퉁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거나말거나 반쯤은 잠에 빠진 토마스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공중에 휘젓는다. 무리 시켰다는건 당연한 사실이기야 했지만.

한 번 해볼까. 그리 나쁜 기회로 보이지는 않는다. 눈을 굴리던 민호가 팔을 뻗어 테이블에 늘어져있는 토마스의 손목을 주워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난 토마스가 감겨있는 민호의 눈을 보고 곧 놀라서 올라갔던 심박수를 가라앉힌다. 곧추 세워졌던 허리도 편한 자세로 약간 구부려졌다.

토마스의 손목은 뼈에 가죽이 달라붙어있는 모양새였다. 엄지로 쓸기라도 하면 피부가 바스라질 것 같기도 했다. 손바닥에 눌린 안쪽 손목에서 부터 천천히 심박수가 울려온다. 민호는 작은북에서 시작한 소리가 팀파니 수준까지 묵직하고 크게 내려가는 것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위키드에서 권고하는, 센티넬과 가이드가 정신교감을 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다. 물론 가이드의 위가 정상이 아닌 상태로 식당에서 시도하라는 지침은 없다.

민호가 눈을 떴을 때는 토마스가 지나치게 빤히 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음에도 시선이 돌아가거나 피해지는 일이 없다. 토마스는 동물원에서 기린을 처음 본 어린애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경탄에 찬, 반짝거리는 시선. 민호는 얼굴을 구겼고 토마스는 그제서야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시선을 피했다. 민호는 직후에 얼굴을 구긴 것을 후회했다.

"다 먹었으면 갈까?"
"트리사라는 센티넬, 능력이 뭐였어?"

손목을 빼며 반쯤 일어선 토마스를 붙잡은 것은 민호가 되는대로 뱉은 문장이었다. 손가락 끝이 아직 민호의 손에 걸쳐져있다. 토마스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시선을 사선으로 올렸다. 민호의 얼굴이 구겨졌으나 토마스의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젯밤 패드에 재미로 검색했던 트리사라는 센티넬의 프로파일에는 토마스와 똑같은 문장이 있었다. 위키드 상임 연구원.

"텔레파시였어. 그 왜, 작전 전달을 하는..."

말은 흐려졌지만 민호는 머릿속으로 들렸던 강단있는 여자의 목소리를 어렵지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지휘관. 과연, 이라는 단어가 혀끝에 걸렸다가 사라졌다. 위키드의 상임 연구원 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글레이드에 무슨 볼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토마스는 말을 꺼낸 것을 약간 후회하는듯 복잡하게 얼굴을 구겼지만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말해주지 않았어도 민호가 알아냈을 것이다.

민호는 그쯤하고 토마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릇과 식기들을 쟁반에 담아 한 팔로 받치는 것을 멀뚱히 보기만 하던 토마스가 민호의 흘기는 시선에 제대로 땅에 선다.

"걸을 수 있겠어?"

토마스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한 걸음을 떼자마자 의자를 쓰러뜨릴뻔 했다. 혀를 찬 민호가 알아서 오라는듯 먼저 식기 반납대로 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돌아가면 아마 쓰러져서 잠들어버릴게 뻔하니 굳이 친절을 베풀 이유도 없다. 토마스가 의자를 차지 않도록 노력하며 민호의 뒤를 따랐다.








벤은 2개가 끝이었는데 토마스는 한 번에 80개까지 열 수 있었던건 그니가... 벤과의 상성테스트 때는 서로 이름만 알았던 수준이었고 토마스 때는 토마스 쪽 하나라도 맞춰져있었기 때문에 차이가 난 것도 있고(꽤 엄청난 차이임 벤 때도 그랬다면 10개는 열었을 것)5등급에서 3등급 올리는거랑 3등급에서 1등급 올리는 것의 그....... 그게 다르듯이 가이드의 등급은 위로 올라갈 수록 올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힘들어져서 3등급 차이라도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 애초에 M등급은 두 명ㅇ밖에 업슴 에어리스랑 토마스 '^`) 먼치킨이지만 괜찮아 그럴만하니까...(뒤져버림


'연성 > Maze Runn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갤톰1  (0) 2015.05.10
민톰 센티넬버스AU 3  (7) 2015.04.18
민톰 센티넬버스AU 1  (0) 2015.03.30
늍갤 타투이스트AU 조각  (0) 2015.03.29
[토민호] 소설가x프로게이머 현대AU 조각글  (0) 2014.12.03
Posted by 콩식빵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