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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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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는 고개를 들었다.


넓은 방은 햇볕으로 채워져 있었다. 창호문은 대청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고, 바깥에서는 새소리가 났다. 임수는 손잡이에 팔을 대고 턱을 괸채 맞은편을 보고 있었다. 지저귀는 소리가 꺽꺽대며 죽어가는 소리 처럼 들린다. 주의를 분산 시키는 것이 너무 많았다. 흠집이 많은 목재바닥, 떠다니는 민들레의 씨앗이나 반쯤 볕에 물든 경염의 머리카락, 다리 하나가 다른 것 보다 짧은 의자, 엎질러진 찻잔과 말라붙은 얼룩까지 모든 곳이 임수의 도피처다.


눈을 감으면 차라리 편할 것이다. 속삭여지는 혼잣말이 실질적인 충고임을 알았지만, 임수는 눈꺼풀을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오래 뜨고 있어서 아려오는 눈 주위가 붉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경염은 웃고 있었다. 언제나 보던 얼굴이다. 항상 생각하고 떠올리던, 어떤 때는 물에 가라앉은듯 흐릿하기도 했던 얼굴.


경염의 앞에는 고리가 있었다. 아주 천천히, 경염이 의자 위로 올라선다. 삐걱, 균형이 맞지 않는 의자가 흔들렸다. 황자는 매듭이 제대로 매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을 몇 번 잡아당겼고, 목재 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어떤 것이든지 소리가 너무 컸다. 팽팽하게 잡아 당겨졌던 천이 경염의 손에서 놓아졌고, 물든 눈이 임수를 향했다. 임수가 주먹을 그러쥔다.


머리를 넣어. 어떻게든 단호하게 끊어낸 목소리가 울린다. 경염은 말없이 고리를 목에 걸었다. 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간다. 경염의 시선은 임수를 따라가지 않고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굳은살이 박힌 손이 섬세하게 조각된 등받이를 잡았다. 힘을 주어 당기면 경염이 떨어질 것이다. 새는 이미 죽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임수는 방의 끝 부분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았다. 다른 곳은 모두 없어진지 오래다. 이곳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곳이었다. 경염의 방.


없애야 한다. 알고 있는데도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떨어뜨려. 목소리가 들린다. 살아남아. 외침이 들린다. 수아야. 재촉이 들린다.


하지만 아버지. 나약하리만치 꺼져가는 소리에 임섭이 임수의 어깨를 쥐었다. 손톱이 벗겨지고 살이 까진 끔찍한 손. 이제는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염은 눈을 내려깐채 침묵하고 있었다. 민들레 씨앗이 볕을 통과했다가 느리게 떨어진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임수의 손도 재로 뒤덮인다. 수아야. 임수의 눈이 감긴다. 수아야.


경염의 몸이 허공에 뜬다.


끔찍하리만치 조용하다. 임수는 본능적으로 발버둥치는 다리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햇볕은 불로 바뀌고, 발을 디딘 곳은 처형장으로 바뀐다. 재로 뒤덮인 매령은 붉다. 임수는 고개를 들어 목을 맨 시체를 보았다. 까무룩 죽어있는 감정 그 자체가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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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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