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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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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분량이 얼마 안돼서 기분이 이상하네;;; 임수경염 뱀파이어au... 군님 사랑해요....







흡혈귀라고 부른다.


경염은 그런 귀신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바깥의 무서움을 모르는 임수의 손에 끌려 정처없이 밤의 저잣거리를 헤매고 돌아왔던 날이다. 임섭 장군은 철부지 어린아이들을 앉혀놓고 세상에 존재하는 귀신에 대해 가르쳤다. 죽은자의 몸으로 움직이는 강시, 사람의 살을 먹는다는 각다귀, 행인을 끌고 들어가는 수귀, 긴 손톱을 가졌다는 산호. 그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흡혈귀라고 하였다.


그들은 사람을 납치해 거꾸로 매달아놓고 생피를 빼간다. 고통에 찬 비명은 귀신의 귀에는 닿지 않고, 절망스러운 얼굴과 그들의 애원은 귀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루치 피를 전부 빼면 잠시 놔두었다가 사람에게 피가 차면 다시 매달아 놓고 일을 반복한다. 잘못해서 먹이가 죽어버릴 때 까지 계속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사람이란 먹이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먹이에 대한 동정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흡혈귀에게 잡히면, 평생을 갇혀 살다가 결국에는 죽게 된단다. 어렸던 경염과 임수는 마른침을 삼켰고, 다시는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작은 입들이 뱉었던 말은 결과적으로 잘 지켜지지는 않았으나 그것들이 겁을 주기위해 한 허구의 이야기라는걸 알기까지는 몇 년 정도가 걸렸다.


그 뒤에도 흡혈귀에 대한 것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는데, 불가사의한 일을 두고 귀신의 소행이라며 상소를 올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짐승의 짓이거나 귀신의 짓으로 보이게 꾸민 일들이었다. 몇몇 사건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어도 경염은 어린시절 이후로 그것들이 있다고 믿어본 적이 없었다. 임섭의 말이 거짓이라는걸 먼저 알았던 임수가 하도 놀려대서 그랬던걸지도 몰랐다. 12년전, 툭하면 옛날 이야기를 꺼내며 장난을 걸던 친우가 죽은 후에는,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있음을 알기에 믿지 않았고.


알게 된 경위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제위 싸움에 덤벼드는 것을 결정했던 날. 매장소는 자신이 사람의 피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말했고, 말투는 지나치게 평온했다. 경염은 속을 알 수 없는 책사가 또 자신을 기만하는 것인가 고민했다. 어떤 반응을 내보이는지 살피는 걸 수도 있었고, 어쩌면 비유일 수도 있었다. 매장소는 침묵하는 경염을 보고 웃더니 견평의 이름을 불렀다. 대기하고 있었던 듯 뒤쪽에서 견평이 사발을 들고왔다. 안에는 세 모금 정도의 피가 차있었고, 매장소는 경염의 당황한 표정도 보지 않고 그것을 한번에 들이켰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흡혈귀에게 물려 가까스로 살았다고. 빈 사발을 건네받고 그것이 진짜 사람의 피임을 확인한 경염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사람을 죽이고 있는거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매장소는 고개를 저었고, 견평이 소매를 걷어 자상을 보였다. 저잣거리에 도는 소문만큼 피가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경염이 기묘한 표정을 했다. 사실 매장소는 경염이 어렸을 때 그렸던 흡혈귀와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창백하기는 했지만 병환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사람의 색이었고, 번들대는 눈이나 커다란 이빨 따위도 없었다. 그나마 보통보다 신장이 커 팔다리가 길었으나, 그역시도 사람의 것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귀신이라 이름 붙일 외관이 아니다.


경염은 입안에 도는 질문을 섬기지는 않았다. 너무 무례한 의문들이었으니까. 경염을 대신하여 매장소가 나도는 소문들과 자신의 다른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매장소는 괴력을 가지거나 불사의 존재도 아니었고, 은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기실 보통의 완전한 흡혈귀는 그랬지만, 그들은 굳이 여러 인간의 피를 먹지 않아도 되었다. 매장소가 완전한 흡혈귀가 아닌 이유는 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고, 진짜 흡혈귀의 피를 마실 때까지는 인어마냥 반인반수의 상태일 수 밖에 없었다. 인간과 흡혈귀의 중간에 걸쳐진 귀신은 피를 마시지 못하면 눈꺼풀도 들지 못하는 천한 약골일 뿐이다. 경염은 매장소가 봄철이 되어서도 화로를 치우지 않는 것이나 강호인이면서도 칼 하나 휘두르지 못하는 것을 기억했다.


이를 아는 사람은 온 금릉에 매장소를 제외하고 네명 뿐이었다. 호위인 비류와 견평, 려강, 그리고 경염. 잠시 침묵하던 경염은 어째서 자신에게 진실을 알렸냐고 물었다. 뒷얘기를 듣지 않고, 또는 듣고서도 믿지 않고 당장 악귀라며 목을 치려고 했을 수도 있었다. 말을 들은 반요는 눈을 휘며 웃었다. 서로 숨기는게 없도록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책사가 피를 먹는 귀신이라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새 저택에는 비밀통로가 만들어졌으며 궁에서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했다. 비상한 머리를 가진 서생은 차근차근 태자와 예왕을 무너뜨렸고, 신실한 충성으로 경염의 신뢰를 샀다. 자신이 귀신이라고 고백했던 날 뒤로 매장소가 경염의 앞에서 피를 마시는 일은 없었다. 뿐만아니라 자신이 귀신이라는걸 떠올리게 할만한 어떠한 언행도 일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자 경염은 그날의 대화를 대부분 잊고 있었다. 매장소가 흡혈귀라는 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대화를 다시 상기 시키는 것은 꽤 오랜 날이 지나서였다. 침전에 침입자가 든 것을 알았을 때, 경염은 이미 팔이 붙잡힌 후였다. 머리맡에 두었던 칼을 집기도 전에 어리고 익숙한 얼굴이 불쑥 시야를 차지했다. 비류. 항상 제 책사의 곁을 지키던 호위의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거거. 수거거가. 짧은 말로 뱉어내며 억지로 저를 일으키는 통에 경염의 얼굴이 굳어졌다.


급히 발걸음을 옮긴 소택의 침전은 엉망이었다. 깨진 사기그릇과 엎어진 서책, 날뛰고 있는 귀신, 그걸 막고 있는 장정 두 명까지. 경염은 제 쪽으로 날아오는 다기를 급하게 피하다가 문지방에 어깨를 부딪혔다. 난장판이다. 시종일관 침착하기만 했던 책사가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운 소리를 냈다. 제발 진정해 달라고 애원하는 견평과 려강의 목소리도, 억지로 팔을 떼어놓으며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비류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경염이 어렸을 적 그렸던 귀신이다. 번들거리는 눈과 드러난 이빨이 흉측했고,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목을.


생각이 스치자 행동은 빨랐다. 성큼 안쪽으로 발을 들인 경염은 정신이 없는 려강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제 팔을 그었다. 말릴 틈도 없이 경염이 매장소의 뒷목을 잡아 억지로 제 팔을 향해 숙였고, 귀신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끔찍한 소리였다. 부러뜨릴듯 쥔 팔에 귀신의 손톱과 이가 박혀들어갔다. 경염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자마자 새된 소리를 지른 두 부관의 등에 소름이 퍼졌으나 경염은 생소한 아픔에 어금니를 물었을 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채였다. 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살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굳어버렸던 부관들은 경염의 낯빛이 창백해졌을 때에서야 정신을 차렸고, 황급히 달려들어 매장소를 떼어놓으려 들었다. 귀신의 반항이 거셌으나 비류가 뒤에서 힘으로 떨어뜨리자 팔에 박힌 이가 빠졌고, 그틈을 놓치지 않고 경염이 매장소의 뒷목을 쳐 날뛰던 몸을 기절시켰다.


"지혈제, 당장!"


불호령에 쓰러진 종주의 몸을 떠받치던 견평이 황급히 뛰쳐나갔다. 소매를 뜯어 상처 위쪽을 이빨로 단단히 묶은 경염이 비류가 붙잡은 매장소를 급히 살폈다. 제 피가 묻어있는 입의 안쪽에는 아직도 형형하게 송곳니가 나와있었다. 몸 곳곳에는 두드러기 같은 포진이 올라와 있었고, 피부도 시체마냥 차갑다. 무언가를 집어던지다가 생채기가 났는지 머리카락과 피가 엉겨붙은 손에도 상처가 있었다.


살피는 동안 지혈되지 않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향 때문에 도로 깨지는 않을지 어금니를 사려문 경염이 고개를 돌렸다. 대체 이지경이 될 때까지 뭘하고 있었던겐가! 하얗게 질린 려강은 고개를 숙였고, 비류는 매장소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울 것 같은 아이의 표정에 아연해진 경염이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달빛에만 의존에 절 찾아다녔을 아이였다.  절박하게 제 형님을 부르던 얼굴이 의식이 없는 귀신의 품으로 사라진다. 머리가 아픈 것이 빈혈 때문일지 확신하지 못한채로 경염이 작은 등으로 손을 뻗었다.


괜찮을거다. 뱉은 말이 제 귀로 돌아온다. 등을 쓸어주는 손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괜찮을거야. 조금 멀리서 지혈제를 든 려강이 뛰어오는 소리가 났다.






*





매장소가 눈을 뜬 것은 그 뒤로 이틀이 흐른 후였다. 정무를 보던 경염은 통로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옷을 갈무리하여 일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종을 울리라고 닥달을 해댔으니 늦게 울린 것이라면 이번에야말로 한소리를 해야할 것이다. 전영도 물리고 혼자 비밀통로를 거쳐 소택에 걸음을 들인 경염은 침전에서 겨우 일어나 앉아있는 귀신을 마주했다. 전날의 기세가 어디로 갔는지 환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매장소는 허리를 숙여 예우를 차렸고, 경염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귀신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말을 고르는듯도 했고 도저히 어떤 말을 뱉어야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시는 황자의 옥체에 흉을 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박아넣었다. 드문드문 나는 기억에는 경염이 직접 팔을 그었다지만 그렇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제 책사를 앞에 두고 경염이 먼저 말을 떼었다.


"생피를 먹으면 안된다고 하더군."


매장소가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다물었다. 피를 내줬던 밤에 견평을 들볶아서 얻어낸 답이었다. 흡혈귀가 날뛰는데 충성스러운 부관들이 피를 주지 않고 진정하라 말만 했던 이유였다. 그 전까지는 반드시 피를 밖으로 꺼내 담아 이틀을 지낸 뒤 마셨다고 한다. 죽은 피의 식감은 진흙과도 같아 차라리 안먹느니만 못한 맛이지만, 생피를 한 번 맛 본 후에는 죽은 피를 먹을 수 없게 된다. 피를 내줄 충신은 널리고 널렸으나 강좌맹의 종주는 그들의 목숨을 갈취하여 제 목숨을 늘리려는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죽은 피를 마시고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반요의 몸이라는 것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반요가 피를 원하는 것은 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죽은 피로는 널뛰는 기를 잡아누르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그런 죽은 피마저 얼마간 들어가지 못하면 귀신의 기가 몸을 찬탈하게 되어있다. 강좌맹에서는 귀신을 억지로 붙잡을 동안 다른 사람이 피를 가져올 수 있었으나 이곳은 금릉이었다. 비류까지 달려들어도 진정 시키기 어려운데 왜 피가 필요한지 아는 사람도 없는 금릉에서 갑자기 죽은 피를 구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비류가 경염의 침전까지 들이닥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디에라도 도움을 청해야 했기에.


"나 때문에 생피를 입에 대었으니 일이 꼬였겠군. 급했다고는 하나 설명도 듣지 않고 피부터 내어준 내 잘못이네."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전하가 아니었다면-"

"필요하다면 피는 내 것을 주도록 하지."


매장소가 말을 잃었다. 당황하여 반문 되어오는 말에 경염이 소매를 걷어냈다. 이런걸 무고한 사람에게 남길 수는 없으니까.


단단한 팔에 노랗고 붉게 새겨진 멍과 상처들에 매장소가 손을 그러모았다. 비틀리듯 새겨진 손자국들과 그대로 남은 손톱자국들이 괴사한 피부조직 위를 가르고 있었고, 아물기 시작한 자상의 흉터 주위로 귀신의 잇자국이 나있었다. 실로 끔찍한 몰골에 떨리는 책사의 손이 황자의 팔에 닿았다. 건드리지도 못하고 겨우 손만 주워 잡은채 고개를 숙이는 반요에게 경염이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전장에서 수십년을 구른 몸이오. 상처는 늘상 있는 일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게."


7황자 소경염은 몇 년에 한 번씩 금릉에 돌아오는 군왕이었고, 팔 밑이 멍드는 것 정도는 전쟁터에서 얻는 상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잃을뻔도 했던 팔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 매장소가 침묵했다. 경염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팔을 빼어 소매를 내렸다.


"열병을 앓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무거운 목소리에 경염이 입꼬리를 올린다. 정왕부에도 심복을 숨겨두는 모양이로군. 귀신은 대답하지 않았고, 경염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실혈이 있었으니 몸이 그것을 회복하려 하는건 크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 만에 나았고 그 외에 몸이 아프거나 변한 점은 없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경염은 똑같이 피를 주겠노라 약조했을 것이다.


생피를 먹지 않고 귀신의 기를 누르기 위해 반요가 했던 노력을 경염이 온전히 상상할 수 없었으나, 힘들었을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날뛰는 제 종주를 보고 차라리 제 피를 내어주고 싶었을 부관들의 고충도 마찬가지다. 성급한 판단으로 경염이 귀신에게 생피를 먹였고, 그러니 책임도 경염이 져야하는게 맞았다. 긴 설득에 매장소는 쓴웃음을 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귀신에게 피를 뺏기고도 자책을 하다니, 얼마나 소경염다운 생각인지.


"잘못하면 제가 전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낮은 목소리에 경염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반대가 아니오. 목숨줄을 쥐고 있는건 선생이 아니라 나지. 뻔뻔한 말투에는 매장소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경염의 말이 옳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닐겁니다."

"선생은 내가 기분이 좋아지려고 팔을 그었는줄 아는 모양이군."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걸 아시지 않습니까."

"정확히 그런 문제네. 내가 칼을 든 것은 선생을 살리기 위해서였지. 내 피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고."


간결한 말에 매장소가 경염을 마주보았다. 한없이 바르고 솔직한 얼굴이었다. 귀신에게 피를 주는 것도, 자신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것은 신뢰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경염은 매장소가 반요라서 자신을 배신하거나 절 죽일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귀신이 어떤지 직접 보았음에도.


"왜 저를 살리려는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피를 내어준 밤과는 달리 단단히 관을 틀고 옷을 갖춰입은 황자가 눈을 깜박였다. 매장소는 뱉은 질문을 회수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저 답을 기다렸다. 대체 어느새 이렇게까지 신뢰가 두터워졌나. 매장소는 비열한 수를 쓰는 책사를 혐오한다고 말하던 경염의 얼굴을 기억했다. 대나무 같은 성정 탓에 신뢰를 얻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는데, 이제는 귀신을 살리기 위해 제 목숨까지 내걸고 있었다. 경염은 곧 편안하게 웃었다. 소선생이 필요하니까.


"내 형님과 친우의, 그리고 7만 적염군의 한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선생이 필요하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선생이 그리 해줄 것을 알고."


매장소는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 자주 만나면 전영이 의심할테니 밤이 되었을 때 만나는 것이 낫겠소. 필요하면 항상 그랬듯이 종을 울리시게. 편히 웃으며 그렇게 말한 황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급히 따라 일어나 배웅하려는 것마저 앉힌 경염이 침전 문지방에 서있던 견평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택을 벗어난다. 매장소는 반쯤 일어난 어정쩡한 자세를 겨우 무너뜨렸다. 견평이 놀라 달려와 부축한다.


"...내가 멍청했다."


한숨 섞인 말에 강좌맹의 타주가 어찌 그런말을 하느냐고 눈썹을 늘어뜨렸다. 아주 오래전에, 흡혈귀의 이름만 꺼내도 경기를 일으키던 작은 아이를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생피를 빼간다는 말에 했던 겁먹고 두려운 표정을 짓던 아이는 제가 없는 동안 말쑥히 자랐고, 저보다도 강한 심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라는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기 때문에 경염을 선택한 것인데도 임수는 소경염을 오래전의 어린아이로 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엉망인 팔을 생채기로 치부하던 얼굴을 떠올린 매장소가 눈을 내려깔았다. 생피를 먹는다면 기를 다스리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종주는 하던대로 제 피를 주는게 낫지 않겠냐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는 견평에게 웃어보였다.


황자가 내리는 은혜를 거절할 수야 있겠나. 금릉에 돌아온 뒤로 가장 편해보이는 목소리가 장난스레 갈라졌다.







이건 진짜 다음을 쓸지는 잘 모르겟다 쓰고 싶은거 다 써서... 참고로 린신이랑 비류는 반요가 아니라 진짜 흡혈귀임. 매장소를 물어서 살린건 린신네 아버지. 견평이랑 려강이 막을 동안 비류가 피를 주지 못한 이유가 그건데 쓸 타이밍을 못잡았다. 참고로 피가 부족해서 날뛰는 반요는 진짜 흡혈귀보다 더 강함 살려고 발버둥 치는거라... 헉 설정충 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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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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