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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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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Supernatural'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01.14 샘딘 It's A Terrible Life 2.
  2. 2016.01.14 샘딘 / 황금나침반au 2.Pilot(2)
  3. 2016.01.14 샘딘 / 황금나침반au 1.Pilot(1)
  4. 2016.01.14 샘딘 It's A Terrible Life 1.
  5. 2016.01.14 캐스딘
  6. 2015.10.06 샘딘 Crush on2
  7. 2015.09.28 샘딘 Crush on 1


4.
"오늘만 출근 안하면 안될까... 오늘만..."

배게에 얼굴을 파묻은채 내는 좀비 같은 소리가 퍽 서글프다. 옷까지 전부 갖춰입고 커피마저 든 채인 샘이 난감하게 침대를 내려다봤다. 알람이 울린지 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건 지금이라도 일어나지않으면 꼼짝없이 지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딘, 일어나야 돼.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맨채 죽어가는 동물의 소리를 낸 딘이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어제까지 포함해 무려 사흘 동안 밤을 샜으니 이런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예사는 아니었다. 어제는 심지어 샘이 임팔라를 운전해 집으로 왔다. 웬만하면 재깍재깍 일어나는 편이었지만 그정도 수준이라면 세상이 또 한 번 멸망한다고 해도 잠을 자야한다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샘부터가 아직 자고 있겠지. 

결국 커피를 내려놓은 샘이 딘을 거의 안듯이 일으켜 세웠다. 세상을 살면서 들어볼 수 있는 가장 험한 욕들이 불경처럼 흘러나왔다. 샘, 진짜 죽는게 아닐까. 내 말은, 반 백 번도 더 죽을 뻔하긴 했지만, 이번엔 진짜로 말이야. 죽을지도 몰라. 죽을거야. 혼미한 정신으로 쏟아지는 오열을 달래듯 커피가 들이밀어졌다. 포션이라도 되는양 사약 같은 물을 들이킨 딘이 그제서야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딘은 그러고도 거의 5분 동안을 침대 헤드에 널브러진 채 회사에 저주를 퍼부었다. 샘이 미리 치약을 짜놓은 칫솔을 내밀자 포기한 듯 칫솔을 입에 넣으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는 통에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옷을 챙겨든 샘이 딘의 뒤를 쫓았다. 널찍한 집은 깔끔한 편이라고 보기에는 약간의 결함이 있었다.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나 단검, 낱장으로 된 프린트들이 이것저곳에 흩뿌려져 있었고, 비뚤어진 러그의 밑에는 악마의 덫이 반쯤 빠져나와 있다. 발에 채이는 권총 때문에 샘이 비명도 못지르고 몸을 구겼다. 며칠 안들어왔다고 이런 상태라니, 하기사 샘이 집에 못들어온다는 것은 딘도 정리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얘기기는 했다. 그 고생을 했는데 임무성공과는 별개로 허탕이었던걸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원래 이런 일이라지만, 위쪽에서 질책이라도 하면 딘이 어떻게 나올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한 일이 있으니 해고 당할 일은 없겠지만 또 시말서라도 쓰게 되면 정말 스트레스로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딘의 마인드는 군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뭣도 모르면서 예산이나 계속 들먹이는 상사는 상사로 쳐주지도 않았다. 그놈의 돈. 때려치우고 카드사기나 치면서 돌아다니자는 농담이 수시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충 씻고 나온 딘이 거리낌 없이 옷을 벗어 던지며 새 옷을 받아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속옷차림으로 셔츠를 꿰입는 딘을 뒤에 두고 핸드폰과 총을 자켓 주머니에 끼워넣은 샘이 짧은 시간 동안 거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러그를 위치에 맞추고 단검을 케이스-세네개의 단검과 네댓개의 총이 있는 서류가방-에 던져넣거나 옷가지들을 줍던 샘이 셔츠 아래 깔려있던 술 병을 집어들었다. 텅 빈 스카치 병을 얼마간 노려보던 샘이 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바지까지 입고 손목시계를 차던 딘과 눈이 마주친다.

"이걸 다 마셨어?"
"음..."

대답을 미루며 괜히 손목시계를 절걱대는걸 노려보자 딘이 대놓고 시선을 피했다. 그냥 기분상 좀 마시고 싶어서... 샘이 기가 막힌다는듯 숨을 뱉는다. 혼자 있을 때는 안마시기로 약속 했었잖아. 따지고 드는 음성에 재빠르게 자켓을 껴입은 딘이 차키를 채왔다. 먼저 가있을테니까 천천히 와. 뻔뻔하게 뺨에 입까지 맞춰가며 도망치는걸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쳐다본 샘이 병을 대충 쇼파에 던졌다. 분명히 다 치워버렸던 것 같은데 아직도 남은 술이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청소 겸 집안을 다시 털 계획을 세운 샘이 밖에서 들리는 클락션 소리에 신발을 구겨신었다. 




5.
리더기에 카드를 읽히자 엘레베이터가 움직인다. 위쪽으로는 평범한 회사가 있었지만, 뒷문 쪽에 있는 엘레베이터는 고장 표시가 붙어있는데다 버튼도 없었다. 지하로 계속 내려가는 상자 안에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딘이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술 때문에 단단히 골이 난건지 샘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TOSE UP의 본부는 기본적으로 지하에 있다. 애초에 비밀기관인데다가 노출 되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지부가 지하에 지어졌는데, 사원들은 갇혀서 노동하는 기분이라며 이 환경을 극도로 싫어했다. 채광 좋은 고층 빌딩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염원은 어느부서나 컸지만 하는 일이 일이다보니 근무시간 중 햇빛을 보는 사람들은 현장요원들 뿐이었다. 어차피 현장요원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갈등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환기 시스템이라도 고장나면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국장인 바비는 빗발치는 청원에 대해 '고층빌딩이 좋으면 옥상 난간에 올려줄 수는 있다' 고 대답해 원망을 끊어낸 전적이 있었다. 바비의 발언 이후 대놓고 항의서를 올리는 일은 없어졌지만 무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는 농담은 여전히 자주 쓰였다. 불만이 많아봤자 지하에 있는 본부를 위로 끌어올릴 능력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그럭저럭 다니고 있다.

도착을 알리는 전자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여전히 휴대폰을 보고있는 샘과 기지개를 펴는 딘이 거대한 악마의 덫을 익숙하게 밟고 지나갔다. 로비에는 출근으로 바쁜 사원들이 계단과 엘레베이터로 엇갈려 뛰어가고 있다. 지하에 있다는 것과 곳곳에 악마 방지용 주문이나 오컬트 상징들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극히 평범한 회사 풍경이었다. 다만 여기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반절은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심히 편한 옷차림에 더해서 눈 그림자를 달고 있다. 입고있는게 죄수복이었다면 사실 회사보다는 수용소에 가까울 것이기는 했다.

억지로 왔다는 티를 팍팍내며 걷던 딘이 리더기에 사원증을 읽혔다. 가상 스크린에 정보가 떴다가 꺼진다. 이동용 엘레베이터에 탄 후에는 사냥 부서가 있는 버튼이 눌려졌다. 이어서 탄 사람들도 각자 맞는 버튼을 누르자 자동문이 닫혔다. 함께 탄 사람들이 딘과 샘을 힐끔거린다. 아포칼립스 이후로는 언제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꼭 이걸 나눠야 할까? 그냥 출입용에 버튼만 달면 되잖아.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딘의 투덜거림에 샘이 어린애 같이 징징대지 말라고 일갈했다. 대놓고 아직 화나 있다고 광고하는 말투였다. 머슥해진 딘이 층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엘레베이터에서 내린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인사를 대충 받아준 딘이 공용 테이블에 올려진 간식들을 채며 데스크로 향했다. 현장요원의 데스크는 규정상 파트너의 것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샘도 언짢은 얼굴로 딘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중요한 브리핑이 있으니 바로 나갈 수도 없고, 쌓여있는 딘의 물건들을 신경질적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한 샘이 하도 안써서 거의 삐걱대는 의자에 앉았다. 분위기가 불안해서인지 부서 사람들이 둘을 힐끔거렸다. 부팅 된 컴퓨터를 붙잡은 딘이 어제 읽다만 서류들을 가져오며 입으로 잼쿠키의 포장을 뜯었다. 꼰대들한테 브리핑 하고, 할당량 검색하고, 항의서 내고, 이메일 확인하고, 들어온 조사요청 해치우고... 할 거 더럽게 많군. 스케줄을 속으로 외우며 혀를 찬 딘이 서류를 던지고 의자를 밀어 샘의 옆에 붙었다. 브리핑 자료를 훑어보는 눈이 퍽이나 서늘하다.

"데이트 할래?"
"아니."

단호한 거절이다. 아랫 입술을 내밀고 턱을 당긴 딘이 다시 의자를 원위치했다.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겠군. 애교를 피운다고 화를 풀 사안도 아니었다. 보통 때라면 술병 따위는 진작에 밖에 버렸을텐데 계속 밤샘이 이어지다 보니 그런걸 챙길 정신이 없었다. 사실 언제 마셨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틀 째에 마셨던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느껴지는 한기를 최대한 멀리내며 폴더를 열자 끔찍하게 죽은 시체 사진들이 모니터를 빼곡하게 채운다. 감흥없이 잼쿠키를 먹으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누군가가 데스크 벽을 두드렸다.

"좋은 아침-"

거스가 해맑게 웃는 얼굴을 한 채 책 한 권을 내밀며 서있다. 쿠키를 입에 털어넣고 책을 받아든 딘이 우물대느라 바쁜 입 대신 손으로 인사를 돌렸다. 저번에 부탁했던 지역자료를 구해온 모양이었다. 회사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은 백업요원은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현장 요원들에게 자주 부탁을 띄우고는 했다. 약간 해진 표지를 넘겨 대충 내용을 훑던 딘이 잼쿠키가 넘어간 입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하마터면 플로리다까지 갔다와야할 판이었는데. 어차피 가는김에 구해온거라고 특유의 무해한 웃음을 지은 거스가 다른 곳보다 온도가 10도는 낮은 듯한 샘의 데스크를 보고 입꼬리를 양옆으로 당겼다. 싸웠어? 직구로 던져지는 질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어깨를 튀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말끝을 흐린 딘이 책의 페이지를 성의없이 넘겼다. 샘은 아예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둘을 번갈아서 바라보던 거스가 눈을 가늘게 했다. 보통 같이 출근하는 날에는 샘이 딘의 성질을 막아주니 부서가 훨씬 평화로운데 오늘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래서야 퇴근할 때 쯤이면 온 부서 사람들이 어깨에 담이 걸릴 지경이다. 헛기침을 한 거스가 아침은 먹었냐고 새로운 대화주제를 꺼냈다. 딘이 잼쿠키를 들어보인다. 샘은? 역시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먹었다는 답이 들려왔다. 딘이 눈썹을 한쪽을 휘어올렸다.

"대충 먹었다고? 뭘 먹었는데?"
"스카치가 아닌거."

부서 사람들이 단체로 들리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또 술 때문이구만. 거스도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주변 반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샘은 자료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딘이 입을 여닫다가 머리를 헤집고는 의자를 아예 샘 쪽으로 돌렸다. 꼭 일하는데 이래야겠냐? 샘이 눈을 감고 입안을 씹더니 딘의 쪽으로 돌아 앉았다. 그럼 꼭 술을 마셨어야 했어? 미간을 눌러잡은 거스가 부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술 창고를 털어온줄 알겠다? 겨우 스카치 한 병이거든?"
"스카치 한 병은 술 아니야? 안마시기로 맹세까지 했잖아!"
"그래! 잘 지키고 있었잖아! 한시간에 한 병씩 비우는 것도 아니고 거의 한 달만에 딱 한 병 마신건데 그것도 못봐주냐!"
"마신건 마신거지! 그거 의존성 알콜중독이라고! 한 두번도 아니고 한 달 전에도 다시는 안마시겠다고 해놓고는 이러는데 화 안나게 생겼어?!"

죄송합니다. 나중에 돌아올 때 간식거리라도 사올게요.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하는 거스에게 괜찮다고 웃어보이는 얼굴들이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딘과 샘은 TOES UP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들이었고, 그만큼 사냥 부서를 비롯해 온갖 부서의 크나큰 방패막이였지만, 비등하게 악명도 높았다. 주는 영향력이 큰 만큼 이런식으로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말릴 사람도 없었다. 꼼짝없이 사랑싸움 따위를 들어야하는 사냥 부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자긴 했지만 기분파인 딘이 저기압으로 돌변하면 다른 부서 사람들도 한 번 들을 욕을 두 배로 먹고는 했다. 그와중에도 열 명이 할 분량을 둘이서 해치우는데다 도와달라고 비는 건 힘 닿는데까지 모두 해결해주니 욕을 하기도 애매한 것이다. 가끔 왈왈대며 싸우는걸 듣는게 대가라면 사실 밑지는 장사기도 하니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듣기 괴로운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특히 딘의 알콜 중독 문제 같은 경우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벤트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포칼립스 이후 샘이 딘에게 금주를 권했을 때, 딘을 포함해 누구도 그것이 성공할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딘은 근무시간에도 데스크 아래에 버번병을 다섯개는 쟁여놓고 사는 심각한 알콜 중독자였고, 본인의 개선 의지마저 희박했다. 웬만하면 취하는 일도 없었고 물이 싱거워서 마시는 수준이었지만 건강에 안좋은건 물론이고 근무태도 평가에서 매번 마이너스를 찍었기 때문에 딘도 헬스장에 가는 사람마냥 한 번 해볼까, 싶은 태도로 샘과 약속을 했다. 이런식으로 끈질기게 싸워댈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거절했을 것이다.

"나도 한 번에 끊는게 힘들다는거 알겠는데-"
"아는 놈이 이렇게 빡빡하게 구냐!"
"노력도 안하잖아!"
"한 달이나 안마셨잖아!"
"기록이 무슨 훈장이야?! 잘못해놓고 뭘 그렇게 당당하게-"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둘의 고개가 동시에 앞으로 숙여졌다. 강타당한 뒤통수를 부여잡고 책상에 엎어져 죽는 소리를 내는 둘의 뒤에서 바비가 욕을 뱉었다. 하여간 지랄맞은 것들. 회사가 너희집 안방이냐? 거스가 허리를 깍듯이 숙인다. 오셨습니까 국장님.

"이것들 좀 에덴 동산에 버리고 와라. 전직 구세주라는 것들이 이따위로 행동하니까 천사고 악마고 우릴 살붙은 뼈다귀로 밖에 안보는거 아니냐."
"아 무슨 축지라도 쓰세요? 오면 온다고 티 좀 내주면 안됩니까?"
"나불나불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구만. 브리핑 준비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고하라고 한게 언제인데 쳐싸우고 앉아있어? 네 눈에는 내가 갓 입사한 인턴 나부랭이로 보이냐? 다 늙은 국장이 오라고 부르면 재깍재깍 와야할거 아니야, 재깍재깍."

서류철로 딘의 머리를 내려치며 화를 내는 바비에게 성질이 꺾여버린 샘이 공손히 브리핑 자료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쪽은 제 때 사과를 하니 편하다. 자료를 받아든 바비가 마지막으로 딘을 한 대 더 때리고는 데스크에 늘어놔진 잼쿠키를 채와 뜯었다. 니들 싸운다고 이번 브리핑 망치면 구세주고 뭐고 얄짤없이 잘릴 줄 알아. 세금 도둑짓도 얌전히 해야 봐주지. 자료를 넘기며 투덜대듯 협박하는 바비의 앞에서 샘과 딘이 얌전한 개처럼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 국장이 악마에게 살해당한 이후 거의 반억지로 맡은 직위지만 바비는 투덜대면서도 전 국장보다 200배는 일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전 국장과는 다르게 30년이 넘게 직접 활동 했고, 샘과 딘을 도와 멸망까지 막아냈던 사람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주정뱅이 낚시꾼 같은 차림으로 설렁설렁 부서를 돌아다녀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바비가 국장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상사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TOES UP에서 깍듯이 인사를 받는 유일한 사람이다. 당연히 일일이 브리핑에 대한걸 검토하러 오지는 않았지만 이번 브리핑은 특별하기가 지나쳐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자료를 끝까지 본 바비가 샘의 데스크에 종이뭉치를 던졌다.

"좀 부풀려서 말해. 피해자 수 뒤에 0 하나쯤 더 붙이고. 지옥의 왕이랑도 계약서를 쓰는데 그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딘과 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윗선들에게 브리핑을 자주하는 팀은 따로 있었지만, 이번건은 둘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이었다. 제발 성질 좀 죽이고, 이놈아. 마지막으로 딘을 한 번 더 내려친 바비가 그럼 수고하라며 부서를 나선다. 전 국장이었다면 죄다 일어나서 인사했어야겠지만 바비는 유독 그런걸 싫어하는 통에 목소리만 나왔다. 아직 앞에 서있던 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싸우는거 들으니 딘이 잘못했고, 샘도 고집스럽고, 내가 보기엔 둘 다 아주아주 바보 같았어. 그럼 난 플로리다로 돌아갈테니까 브리핑 잘 해! 나중에 보자-"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한 거스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던 샘과 딘이 닫히는 자동문에 그냥 서로를 마주봤다. 30초. Bitch. Jerk. 한마디씩 뱉고 나서 다시 등을 돌린 두명이 알아서 할 일을 시작한다. 한시름 놓은 부서 사람들도 각자 업무로 돌아갔다. 






6.
"그래서 그쪽을 중점적으로 조사해서..."
"잠깐, 그러니까 그 '용'들이, 연옥을 열려고 한다는거지. 고대에 아서왕한테 죽임 당했던?"
"...조사에 의하면-"
"걔들이 연옥을 열어서 뭘 어쩔 계획인데?"
"바베큐나 구워 먹겠죠, 물론."

샘이 딘의 발을 지긋이 밟았다. 빈정거림을 들은 소위 말하는 '윗선'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속으로 한숨을 쉰 샘이 PPT를 넘겼다. 화면에 뜨는 끔찍한 시체의 사진에 윗선들이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이런 것 좀 빼면 안되겠나? 올 때마다 이런걸 봐야하니 원. 딘의 이마에 힘줄이 올라오는걸 곁눈질한 샘이 절차상 어쩔 수 없다고 사과를 입에 담았다. 절차고 뭐고 죽은 사람들 사진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그따위라니 좋아할래도 좋아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헛기침을 한 샘이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들어 괴물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몇 괴물들이 자신들의 알파에 대해 언급하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일삼고 있어요. 저희는 그들이 연옥에서 꺼내려는 것이, 그러니까 탈출 시키려는 것이 그 어머니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알파?"
"모든 괴물들에게는 시초가 있죠. 뱀파이어든 웨어울프든 용이든 스킨워커든, 처음 생겨난 시초. 별로 동족의식이 없는 괴물들도 그런 알파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세기 동안 동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어머니에 대한 일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한걸로 추측됩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 뭐 때문에 우리가 돈을 대준다고 생각해? 가서 죽이고 오라고. 모가지라도 댕겅 잘라서 로비에 장식해놓으면 되는 일 아니야?"

샘이 다시 한 번 딘의 발을 밟았다. 열었던 입을 도로 다문 딘이 마른 세수를 했고, 샘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서요.

"첫번째로, 괴물들의 무조건적인 복종이 문제가 됩니다. 의지로 거부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알파가 원한다면 자살무장이나 엇비슷한 것도 무릎 쓸 수 있구요. 평범하게 사람만 죽이려는 괴물들도 상대하기 힘든데 그런식으로 나오면 저희 요원들도 막기가 쉽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이들은 군대를 조직하려고 하고 있어요. 스킨워커의 경우 개로 위장해 있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저를 키우는 사람들을 물어 변하게 하는 수법으로 이미 집계된 것만 세자리에 가까운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이런식으로 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기관이 설립된 이후로도 처음 겪는 일이라 애를 먹고 있고, 직접적인 피해자를 줄이는게 우선이니 알파들에 대한 조사도 느려지고 있죠. 자길 보호할 군대도 만들고, 동시에 저희 시선까지 돌리고 있는겁니다."

윗선들의 얼굴이 드디어 심각해졌다. 이어서 알파에게는 평범한 사냥수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과 사실상 죽이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말이 나오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확실한거냐는 물음에 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알파를 잡아야죠. 저희가 요청드리는건 천사의 그릇에 대한 지원의 확대와 크라울리와의 계약에 대한 허가입니다."
"크라울리? 콜트를 넘겨줬다는 그 교차로의 악마?"
"이제는 지옥의 왕이죠. 여기 계시는 분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겠네요. 네, 좀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나쁜 점은 이 '크라울리'가 아주 다른 차원의 개자식이라는 것이고, 더 나쁜 점은, 새로운 지옥의 왕이 비즈니스맨이라는 겁니다."

지옥의 왕이라는 말에 파리하게 질렸던 얼굴들이 의문으로 일그러졌다. 샘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도 없던 의자에 갑자기 인영이 생긴다. 윗선들이 기겁해서 의자를 물리자 크라울리가 옷을 정리하며 일어나 아주 밝은 웃음을 지었다. Hello boys.

"크라울리입니다. 지옥의 왕이시죠."

딘이 소개하며 칼을 들어 금방이라도 크라울리를 찌를듯 등에 가져다댔다. 걱정마세요, 악마 전용 칼이니까요. 허튼짓을 하면 바로 죽여버릴 수 있습니다. 놀이기구 안내를 하듯 가볍게 나오는 말에 임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금니를 물었다. 칼이 등에 닿든말든 셰익스피어 연극마냥 팔을 벌리고 허리를 숙인 크라울리가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꺼냈다.

"사전 공지없는 등장에 대해서 사과의 말씀을 먼저 드리죠. 미리 알리면 누구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걱정과는 다르게, 말을 안듣거나 무례하다고 해서 터뜨리지는 않을테니 너무 쫄지 마세요. 어차피 한 20년 후에는 아주 자주 보게될텐데 좀 일찍 본다고 탈 나지는 않을겁니다."

크라울리가 눈을 깜박여 검은눈을 보이자 윗선들의 얼굴이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 샘은 자리에 앉아 천사의 칼을 던졌다 받았고, 크라울리가 손을 튕겨 회의실의 문을 잠갔다. 그럼 신사분들, 브리핑을 이어볼까요. 


예전에 썼는데 포스타입에는 안올려서.... 지금이라도 올림. 더 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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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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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침 먹을거야?"

샘이 임팔라 안에서 고개를 저었다. 뒷자리 시트를 전부 차지하고 누운 헤일은 하품을 했고, 주유구 옆에 서있던 마일리는 딘이 던져주는 햄을 공중으로 뛰어 받아먹었다. 기본적으로 데몬은 음식을 먹지 않지만 마일리는 햄 종류라면 맛을 보기 위해 가끔 받아먹고는 했다. 칼로리바를 대충 뜯어먹은 딘이 오일건을 뽑아내고 운전석에 탔다. 마일리가 운전석 시트 아래로 들어와 딘의 옆으로 고개를 뺀다. 

제리코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샘은 아직도 신용카드 사기를 치냐며 딘을 나무랐고 마일리가 대신해서 어깨를 으쓱였다. 사냥꾼이라는게 벌이가 좋은 직업은 아니잖아. 헤일이 뒷좌석에서 코웃음을 쳤다.

"카세트 테이프부터 업데이트 하지 그래."
"카세트 테이프가 어디가 어때서?"
"메탈리카에 모터 헤드랑 블랙 새비스? 쓰레기 록들이잖아."
"말 조심해, 새미. 그리고 규칙 알잖아. 선곡은 운전수가 하고-"
"-조수는 입 닥치고 있는다."

샘과 헤일이 불만스럽게 얼굴을 구기는 동안 딘과 마일리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시동을 걸자 AC/DC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새미라고 부르지마. 어린애 같잖아. 투덜대는 목소리에 딘이 귀 옆에 손을 붙이고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 음악소리가 커서 잘 안들려! 샘이 됐다는듯 반대쪽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는 동안 마일리가 키득댔다. 2년이나 지났는데 도통 바뀐게 없다. 헤일도 같은 생각인지 눈을 감고 체념한 듯이 시트에 턱을 얹었다. 차를 꽉 채우는 음량을 약간 낮춘 딘이 웃는채로 샘을 힐끔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샘이 입을 비뚤게 틀었다. 행복하게. 마일리가 언짢은 얼굴로 시트를 넘어가 헤일을 습격했다. 등에 올라타 머리를 발로 꾹꾹 누르자 헤일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뒤로 돌렸다. 앞발로 헤일의 주둥이를 막은 마일리가 물리기전에 키득대며 시트 아래로 뛰어내렸다. 딘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우회전을 했다.

"자세히 말해줄만한건 없어? 제리였나? 여자친구 얘기 좀 해보던지."
"제시카야. 할 얘기 없어."
"딱딱하게 굴지 말고. 2년만인데."

시트에 얼굴을 얹은 마일리가 헤일의 얼굴을 장난치듯 크게 핥는다. 벌써 두번째로 한숨을 쉰 헤일이 느리게 마일리의 얼굴도 핥았다. 목적 달성 후 다시 앞좌석으로 넘어온 마일리가 시트에 기댄 딘의 등 뒤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머리만 샘 쪽으로 쏙 빼냈다. 어서 말하라는듯 저를 빤히 쳐다보는 마일리를 노려보던 샘이 다시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시카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 없어. 같은 과고 조별 과제하면서 만났었어. 헤일을 신경 쓰지 않는척 해줬었고."
"맞춰볼게. 똑똑하고, 아량 넓고, 이해심이 많은데다 엄마처럼 챙겨줬지?"
"물어보는 저의가 뭐야?"
"한 대 치겠다? 동생 애인이잖아! 소개 받아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그리고 데몬이 보더 콜리였으니까.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

딘의 말투도 얼굴도 별다른 감정이라고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동생을 놀리는 즐거움이 담겨있는 정도다. 샘은 그게 화가 났고, 그 사실에 화가 난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화가 났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마일리가 딘을 쿡 찔렀다. 힐끔 샘을 쳐다본 딘이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신호등이 임팔라를 멈춰세웠다.

"나도 2년 동안 잘 지냈어. 궁금하진 않겠지만."

화제를 돌리려는 노력에도 샘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왜저렇게 민감하게 구는거야? 어린애처럼 입이 나오려는걸 억누른 딘이 정면을 주시했다. 엄마처럼 굴어서? 혹시 '그 일'때문에 물어보는거라고 생각하는거라면-

딘은 고개를 털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대신해서 마일리가 딘의 등으로 더 파고들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신호등이 바뀜에 따라 딘이 엑셀을 밟았다.

"아버지는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샘은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헤일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였고, 차 안은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딘이 말을 덧붙였다. 행복한 삶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임팔라가 약간 거칠게 속도를 올렸다.







3.
"저번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죠?"

보안관은 인상을 구기며 둘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옆에 서있는 헤일에게 향하는 눈을 가로막듯이 딘이 뱃지를 들어보였다. FBI입니다. 보안관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요원을 하기에는 젊어보이시는데요. 여전히 헤일을 힐끔거리는 보안관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딘이 현장을 둘러보며 질문을 반복했다.

"네, 1마일쯤 위에서요."
"피해자가 아는 사람이었나요?"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서로 모를 수가 없죠."

그의 데몬인 페렛이 옷 안에서 쑥 얼굴을 내민다. 보안관은 마일리에게 시선을 던진 후에는 경계심을 약간 푼 것 처럼 보였다. 군견을 데몬으로 가지면 이런점에서 혜택이 있었다. 딘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동안 헤일과 마일리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모든 유령사건이 그렇듯이 피해자의 체취만 약간 감돌 뿐이다. 냄새를 쫓아서 다리 끝 쪽으로 가던 헤일을 마일리가 급하게 물었다. 뭐냐는듯 짜증스럽게 절 쳐다보는 노란 눈을 마일리가 경고하듯 노려봤다. 눈을 돌리자 꽤나 멀리 떨어져버린 제 인간들이 보였다. 드러냈던 이를 닫은 헤일이 조사를 포기하고 마일리를 따라 샘과 딘에게 돌아갔다. 뭔가 건진게 있냐는듯한 시선에 고개를 젓자 딘이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 같은 경찰에게 기대는 말아야겠군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발 신경 좀 쓸 수 없어?"

경찰들이 멀어지자마자 마일리가 이를 문채로 목소리를 낮췄다. 헤일은 답이 없었고 샘은 눈썹을 휘어올린채 마일리를 쳐다봤다. 대답은 딘에게서 나왔다. 또 허용치 이상으로 멀어졌었어. 샘의 입이 일자로 다물어졌다.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진짜 FBI 요원들에게 태연하게 인사한 딘이 임팔라에 타 시동을 걸었다. 클래식 카가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동안 마일리가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런식으로 해서 어떻게 대학생활을 했던거야?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데몬도 없었을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대학 생활하면서는 냄새 따위에 집중할 일이 없었다고!"
"오 그래? 그것 참 새로운 소식이네! 참 편하고 재밌었겠군!"

데몬들이 뒷좌석에서 싸우는 동안 샘과 딘은 말없이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데몬과의 거리. 딘과 마일리는 아직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아직 마일리가 족제비니 사나운 핏불이니 하는 것들로 변하기를 좋아했을 시절에, 둘은 혼자 남아서 블럭을 갖고 노는 샘을 발견했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정말 좋지 않은 일.

작은 동물로 변해서 옷 속에 숨어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헤일은 보이지 않았고, 그건 딘과 마일리를 상당히 불안하게 했다. 헤일은 어디있어? 마침내 근처에 숨어있을 헤일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 물었을 때, 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버스 정류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가방에서 뭔가를 떨어뜨렸는데 그걸 가지러 갔다는 이야기였다.

샘도 물론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갑게 질린 딘의 얼굴과 털이 바짝 선 여우의 눈. 샘은 딘과 마일리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순진하게 깜박여지는 눈을 보고 마일리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당장 헤일 불러들여. 당장! 불호령에 놀란 샘은 블럭을 떨어뜨렸고, 딘도 소리를 질렀다. 누가 보기 전에 당장 불러들이라고!

샘은 몰랐다. 존과 아퀼라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존이나 딘은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딘과 마일리는 항상 붙어다니기는 했지만 그건 둘의 사이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샘도 헤일이 좋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옆에서 떨어뜨려놓고 싶지는 않았으니 그냥 그런거라고. 보통 사람들은 데몬과 떨어지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몰랐다. 샘은 그냥 제 느린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보다는 새로 변한 헤일이 혼자 갔다오는게 편할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헤일이 아무리 멀어져도 샘은, 아무렇지 않았다. 정말로.

아버지한테 들키면 안돼. 딘은 거의 아플 정도로 샘의 어깨를 쥐고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고, 샘이 무서워할만큼이나 두려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뒤늦게 돌아온 헤일은 샘보다도 호되게 혼이 났다. 절대로 샘을 놔두고 혼자 나다니지마! 숫사자로 변한 마일리가 갈기를 곤두세우며 그렇게 소리를 질렀고, 헤일은 영문도 모르고 쥐로 변해 샘에게로 숨어들었다. 이후로 헤일이 일정 거리 이상으로 벗어날때마다 딘과 마일리가 그것을 막았다. 데몬은 동물과는 달랐다. 셰퍼드 무리에 마일리가 껴있다고 해도 모두가 마일리가 데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 떨어져다니는 데몬을 말할 것도 없었다. 분리 훈련을 한 데몬들은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어렸을 때는 형태를 바꿀 수 있으니 괜찮았지만 샘이 14살 무렵에 헤일이 늑대로 정착하고 나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늑대 데몬을 한 번 보고 잊어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딘은 일정거리 이상으로 데몬이 벗어나면 끈이 당겨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아주 아프고, 모든 신경이 데몬에게 쏠려 당장 거리를 좁히지 않고는 못배긴다고. 샘은 혹시 헤일과 저의 유대가 약해서 그런건지 불안했지만 사실을 확인시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샘과 헤일도 웬만해서는 정해진 거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오늘처럼 헤일이 뭔가에 집중할 때면 잊어버리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그때마다 딘과 마일리는 필요이상으로 신경질적이게 굴었다. 

"...미안."

거의 으르렁대던 데몬들의 소리가 멈췄다. 마을쪽으로 차를 몰던 딘이 샘을 힐끔거렸다. 뭐가. 간단한 대답에 샘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냥, 여러가지. 얼버무렸지만 딘은 샘이 무엇을 사과하는지 알았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딘이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런걸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거 알지?"

샘은 답이 없었다. 마일리는 귀를 뒤로 눕혔다가 앞좌석으로 건너와 시트 아래에 몸을 파묻었고, 헤일은 세웠던 다리를 굽히고 뒷좌석에 엎드렸다. 딘과 마일리가 화를 내는 것은 걱정 때문이다. 샘과 헤일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둘을 피했다. 늑대인 것 까지는 그런데로 괜찮았다. 드물기는 해도 이상한 일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데몬과 훈련없이 분리를 한다는건,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었다. 딘은 그런것에 샘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 동생이 얼마나 평범해지고 싶어하는지를 아는 이상 더더욱.

차가 마을로 들어왔다. 적당히 주차할 곳을 찾아 임팔라를 멈춰세운 딘이 문을 열자 마일리가 먼저 뛰쳐나갔다. 딘이 내리고, 샘이 내리고, 헤일이 열린 창문으로 몸을 빼내 마지막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딘이 입을 비뚤게 틀었다. 그럼 에이미라는 사람부터 한 번 찾아볼까. 마일리가 호기롭게 한 번 짖고는 앞장섰다.







4.
[허위 신고라니, 새미. 불법이라는건 알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샘이 웃으며 헤일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칭찬 고마워. 얘기 좀 하자는 딘의 말을 시작으로 그간 알아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헤일 때문에 기자라는걸 믿도록 설득하는데 조금 걸렸지만 어쨌든 콘스탄스의 남편은 부정을 저질렀고, 상대하는게 백의의 여인인 것은 확실했다. 의문인건 왜 존이 시체를 진작에 태워버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남편의 말대로라면 존도 시체가 옛 집의 뒷뜰에 묻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다. 이유야 어찌됐건 샘은 그 쪽으로 임팔라를 몰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그곳에 있을거라는 말에 번번히 말이 끊겼던 딘이 역정을 냈다. 아까부터 말하려던거잖아! 아버지는 제리코를 떠나셨어. 조수석에서 털을 고르고 있던 헤일이 인상을 구기며 전화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아버지의 일기를 갖고 있거든.]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으시잖아."
[이번에는 그러셨는걸.]

헤일과 샘이 눈빛을 주고 받았다. 뭐라고 써있는데? 어디로 오라고 지시하실 때랑 똑같은 힌트라는 말에 샘이 골치가 아프다는듯 입 안을 씹었다. 좌표. 어디냐는 질문에 딘이 아직 모른다는 답을 냈다. 존이 아직까지 제리코에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했던게 멍청했다. 헤일이 대신하듯이 한숨을 쉬었다. 고생길이군. 동감한다는듯 입꼬리를 내렸던 샘이 휴대폰에서 들리는 잡음에 얼굴을 구겼다. 딘. 딘? 휴대폰을 툭툭 치며 이름을 반복하는 동안 헤일이 갑자기 털을 세우며 핸들에 앞발을 뻗었다. 동시에 뭔가를 친 임팔라가 도로에 급정거했다. 눈을 크게 뜬채 숨을 몰아쉬던 샘이 백미러에 잡히는 여자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넣었다. 데몬이 없다. Shit.

"집에 데려가 주세요."

헤일이 위협하듯 목울대를 울렸다. 상대하는게 데몬이거나 동물이었다면 즉각 효력이 있을 법한 무시무시한 소리였지만, 안타깝게도 늑대의 울음은 유령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집에 데려가 주세요. 갸냘프다기 보다는 화가 난 듯이 단호한 목소리였다. 마른침을 삼킨 샘이 부정의 답을 냈다. 여자가 고개를 기울이자 문의 잠금장치가 잠겼다. 멋대로 눌러지는 엑셀과 돌아가는 핸들에 샘이 입안쪽을 씹었다. 하필 딘도 없을 때.

여자가 손을 젓자 덤벼들던 헤일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높은 소리를 냈다. 헤일! 덩치 큰 늑대가 꼼짝없이 늘어지는걸 급하게 감싸안는 새에 임팔라가 낡은 주택 앞에 멈춰섰다. 확인하지 않아도 콘스탄스의-여자의 집인 것 같았다. 전 집에 돌아갈 수 없어요... 슬픈 목소리에 이를 악문 샘이 여자를 노려봤다. 집에 돌아가기 두려운가보지?

여자가 순식간에 샘의 위로 자리를 옮겼다. 손이 닿은 부분부터 얼어붙어가는 것 같았다. 샘이 아직 늘어져있는 헤일을 계속해서 곁눈질 했다. 잠깐 기절한 것 뿐인 것 같았고, 데몬은 회복력이 빠르니 금방 일어날 것이다. 시선이 돌아가는게 마음에 안드는지 여자가 손에 힘을 넣었다. 저를 안아주세요. 속삭이는 듯이 낮은 목소리다. 너무 추워요. 트랙터가 몸을 짓누르는 것 처럼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생경한 고통이 흉곽을 뚫듯이 퍼졌다. 

"날 죽일 수는 없을 걸...! 난 부정을 저지를 생각 없어,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에 여자가 불쌍하다는 듯이 입을 비틀어 웃었다. 뺨에 닿는 손가락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Oh Deer, 하지만 그런 기분이잖아. 안그래?"

뱀처럼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샘이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힘을 줬다. 시야 구석에서 헤일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소용 없다는걸 알면서도 발톱을 세워 허공을 휘두르자 전파가 불안정한 TV 화면처럼 여자의 모습이 지직거렸다. 화를 돋군듯 이를 드러낸 여자가 더욱 무게를 싣는다. 샘이 터뜨리듯 비명을 내지르기 무섭게 총소리가 들렸다. 두 세번의 총성에 여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총성. 마일리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린다. 여유를 찾자마자 허리를 일으킨 샘이 운전대를 잡았다. 원한다면 집에 데려다 주지. 딘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한채 샘이 엑셀을 밟았다.







5.
"좌표에 쓰여있는건 여기야. 콜로라도의 블랙워터 릿지."

Sounds chaming.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시트를 도는 셰퍼드의 목을 눌러 제지시킨 딘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마나 멀어?

백의의 여인을 멋지게 처리한 뒤의 임팔라는 공기가 덥혀져 있었다. 샘도 딘도 분명 허리께니 등이니 하는 곳에 멍이 들어서 제대로 앉아있기도 아픈 상태였고, 운전석 쪽의 유리는 깨져있었지만,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어찌되도 상관 없는 것 같았다. 호흡을 맞춰본지 2년만이었는데도 나름 훌륭하게 잘 해냈고, 객관적으로도 멋들어진 마무리였다. 존의 다이어리에서 다음 목적지도 찾았고. 마일리도 신나 있었지만 헤일도 훌쩍 뒷좌석으로 건너간 마일리의 장난을 기꺼이 받아줬다. 덩치가 커서 겨우 차의 뒷좌석에서는 크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오늘 새벽과 비교하자면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차 흔들리니까 적당히 해 마일리. 꾸중 같지도 않은 딘의 나무람에 거의 키득대듯이 웃은 샘이 아까의 질문에 답했다. 600마일 정도 걸려.

"괜찮네. 내일 아침 쯤에는 도착할거야."

불쑥 시트 위로 얼굴을 내밀며 말한 마일리가 딘의 무릎으로 뛰어내려왔다. 야, 야! 순간적으로 가려진 시야 때문에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좀 얌전히 있으라는 호통에 마일리가 자리가 좁아서 그런거라고 노래하듯 말했다. 한동안 둘이서만 다녔으니 조수석은 항상 마일리의 차지였는데 이젠 존이랑 다닐 때보다도 공간이 없다. 딘이 픽 웃어버릴 동안 샘이 초조하게 입술을 핥았다. 저, 딘. 헤일이 뒷좌석에서 한쪽귀를 옆으로 돌렸다. 뭐냐는듯 올라가는 눈썹에 샘이 망설이는 목소리를 냈다. 난... 마일리가 핸들을 쥔 딘의 양 팔 사이로 훅 고개를 내밀었다.

"돌아갈거라고 하는건 아니지?"
"면접이 10시간 후에 있어. 가야해."

헤일이 고개를 들고 샘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상기 되어있던 공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얼굴을 구긴채인 딘이 샘을 힐끔거렸다. 헤일이 곧 시선을 거두고 평소처럼 엎드렸고,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일리가 먼저 팩 고개를 돌리고 딘의 무릎 위에서 몸을 말았다. 딘이 신호등을 무시하고 핸들을 꺾어 좌회전을 했다. 마음대로 해. 데려다줄테니까.

"딘, 이해 해 줘야 해."
"이해라는게 언제부터 그렇게 강요적인 단어였냐?"

빈정대는 어투에 샘이 입 안쪽을 씹었다. 말이 다시 반복 되지는 않았다. 딘은 딱딱한 표정으로 차를 몰았고,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샘은 눈이 감기질 않았다. 헤일은 평소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제리코에서 스탠포드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샘은 시트에 기대 억지로 바깥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사냥을 다니던 시절에는 매일 있었던 일이지만, 오랜만이라 그런지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유령의 손이 닿았던 곳이 화상을 입은 듯 욱신댄다. 침묵의 밑에서 아까의 목소리가 기어올라온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잖아. 안그래?

임팔라가 약간 거칠게 멈춰섰다. 눈을 감고 있던 헤일이 멎은 엔진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켰고, 샘도 내려놨던 짐을 집어들었다. 마일리는 여전히 등을 돌린채였다. 아버지 찾으면 연락 할거지?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딘이 약간 쓰게 웃었다. 차에서 완전히 내린 헤일이 열린 창문에 앞발을 올렸다. 나중에 도우러 갈게. 꼬리가 축 쳐진 마일리가 꾸물대며 몸을 돌렸다. 그래. 늘어진 귀가 퍽 미련을 남게 했다. 한참이나 마일리와 마주보고 있던 헤일이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망할 유령이 한 말 때문에 이러는거면, 넌 천하의 답 없는 멍청이야."

쓰인 단어치고는 차분하기만한 목소리에 샘이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임팔라는 샘의 등이 사라지자마자 시동을 걸어 길을 빠져나갔다. 그런거 아니야. 안믿는다는듯 콧방귀를 뀐 헤일이 먼저 계단을 올라가 문 앞에 섰다. 열기나 하라는듯한 고갯짓에 샘이 더플백을 어깨에 매고 열쇠를 꺼낸다. 잠금쇠가 풀리는 동안 헤일이 눈을 가늘게 하고 문 밑으로 코를 디밀었다. 왜 그래? 몇 번 코를 킁킁거리던 헤일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떨떠름한 얼굴에 샘이 인상을 구겼다. 뭐 잘못 됐어? 답답하다는듯 재촉하는 소리에 헤일이 약간 멍한 목소리를 냈다. 믹의 냄새가...

"당장 문 열어."

낮은 목소리에 샘이 즉각적으로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빠르게 풀린 잠금쇠에 문고리를 돌려 열자 헤일이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제시카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간 집은 기괴한 정적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 제스? 불안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걸음을 뻗던 샘이 탁자에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 쿠키 위에 얹어져있는 익숙한 필체. 보고 싶었어! 사랑해!

잉크가 눌러붙은 메모를 쥔 샘이 헤일이 사라진 침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끝에서부터 빠르게 몸을 타고 올라오는 기시감. 속도를 올리는 박동이 채찍질하듯 샘의 걸음을 독촉했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잡아 끄는듯 쉽사리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걸음씩 위태롭게 뻗던 걸음이 침실에 닿았다. 멍하니 위쪽을 쳐다보고 있는 헤일의 모습이 보였다. 

샘. 허망한 목소리였다. 하얀 시트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올려다본 천장에는 제시카가 있었다. 배가 갈린 채 샘을 내려다보는, 놀란 그대로 굳어버린 시체가.

"안돼..."

그건 차라리 신음에 가까웠다. 안돼! 비명을 신호탄으로 제시카의 시체에서부터 불이 뻗어져나왔다. 헤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입으로 샘의 옷을 잡아당겼다. 가야 해! 타오르는 화마가 비현실적이다. 바깥에서 문을 차서 여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렸다. 샘! 연기 때문인지 콜록이는 소리와 함께 마일리가 먼저 뛰쳐들어왔다. 일순 천장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어금니를 문 채 헤일을 도와 샘의 옷을 물어 힘껏 당긴다. 뒤늦게 들어온 딘이 아예 샘의 몸을 들쳐업다 싶이 집에서 끌고 나왔다. 안돼, 제스! 제스! 처절한 목소리가 타오르는 재들에게 먹혀들었다. 손에서 떨어진 제시카의 메모가 불에 닿아 순식간에 타버렸다. 버티려고 몸부림 치는 샘을 억지로 끌고 나오며 딘이 119를 호출한다. 아래나 옆에 사는 이웃들이 천으로 입을 막은채 밖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완전히 나오자 유독가스 탓인지 죽을듯이 기침이 터져나왔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도로 들어가려는 샘의 어깨를 붙든 딘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정신차려 멍청한 새끼야! 이가 망가질 정도로 악다문 샘이 욕을 씹어뱉었다. 젠장, 구해야 한다고! 당장 놔! 

"이미 늦었어! 데몬이 없었다고! 다시 들어가는건 미친 짓이야!"

뱉어지는 말들이 수직으로 내려꽂혔다. 몸부림을 치던 샘이 울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젠장, 제기랄, 망할- 휘청거리는 몸을 떠안은 딘이 입안쪽을 씹은채 타들어가는 건물을 바라봤다. 신고를 받은 구조대가 울리는 사이렌이 점점 가까워진다. 마일리가 다가와 딘의 다리에 몸을 바짝 붙였다. 군견의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날과 똑같다. 메리가 죽었던 그 때와-

"우리 때문이야..."

새어나오는 소리에 딘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가지만 않았어도. 헤일이 허망한 눈으로 집을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일리가 입을 열었지만 샘이 딘의 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빨랐다. 야, 새미- 한 번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성큼성큼 뻗는 걸음이 임팔라로 향한다. 잡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보던 딘과 마일리가 시선을 마주쳤다. 어쩌면 위로를 하는게 가장 최악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뜻은 아니었어."

임팔라의 트렁크에서 무기를 챙기던 샘이 아래쪽으로 흘끗 시선을 돌렸다. 못 돌아올거라고 했던거. 늑대의 목소리는 재를 들이켜 바짝 말라있었고, 답지않게 어수선했다. 장전되는 샷건 너머로 소방차가 도착한다. 정말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허망한 목소리가 공중에 뜬다. 난 그냥... 딘을 만나면, 제시카한테 돌아가지 못할거라는 뜻이었어. 쉬어버린 소리가 고해를 하듯이 작아졌다. 샘은 묵묵히 다른 총을 집어들었다. 늑대가 젖은 바닥에 다리를 굽히고 몸을 말았다. 아무것도 보기도 듣기도 싫다는 듯이 머리를 집어 넣고 최대한 작고 꼼꼼하게, 마치 스스로를 가두듯이.





에피 하나씩 골라서 이런식으로 쓰고 나머지는 건너뛰고 그럴듯. 1편에 몰아넣어야했던 내용들인데 길어서 나눔. 기본적으로는 슈내 스토리라인과 똑같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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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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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침반에서 설정만 가져옴. 황금나침반 스포 없음. 왜냐면 저도.. 설정만 압니다.. 기본 설정은

1.인간들은 태어나서부터 '데몬'이라는 말하자면 소울 메이트와 같이 태어남. 정신적, 육체적으로 연결 되어 있고 일정거리 이상으로 떨어지면 고통스러우며 데몬이 죽으면 인간도 죽고 반대도 마찬가지. 소울메이트지 주종관계가 아니며 보통은 반대의 성별을 가지지만 드물게 같은 성별을 가질 수도 있음. 랜덤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님. 여기에서는 딘의 데몬은 여자, 샘의 데몬은 남자.

2.대부분은 동물의 형태고 어렸을 때는 형태를 바꿀 수 있다가 12~16살 정도에 인간의 성격? 본질?에 따라 한가지로 정착함. 기본적으로 먹지는 않지만 잠은 자고 피곤함이나 고통도 다 느끼는데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죽을 수도 있다.

3.먹지 않고 동물 형태라는 것만 제외하면 인간이랑 똑같음. 말하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다만 초면에 다른 사람의 데몬과 직접 이야기하거나 그에 대해 묻는건 무례한 행동. 특히 남의 데몬을 억지로 만지려고 하는건 매우 금기시됨.

이정도만 알면 되고 자세한건 글에서 언급하면서 설명함미다






1.
샘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대학 근처에 그럴듯한 플랫을 구한 뒤의 새벽에 그는 대부분 누워 있었고, 잠드는 일 없이 눈을 감고 있기 일쑤였다. 제시카는 파티에 지쳤는지-아니면 그 이후에 있었던 일에 지쳤는지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으며 그녀의 데몬인 보더 콜리 믹은 시트에 몸을 파묻고 고롱대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걸 제외한다면 사방이 조용했다. 눈꺼풀 안은 어두웠고,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만 더 버티다보면 어떻게든 잠에 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샘이 할로윈 파티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오늘은 괜찮은 날이었다. 월요일에 있는 면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합격한거나 마찬가지였고, 그건 샘이 준비해가던 미래가 귀퉁이에 맞게 착착 진행 되어가고 있다는걸 의미했다.

그의 데몬인 헤일은 침대 밑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커다란 회색 늑대는 이따금 꼬리나 귀를 몇 번 움직였다. 잘못 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샘은 바닥으로 절 잡아 당기는 듯한 불안감을 누를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 거품마냥 부푼다. 샘은 커다란 풍선에서 바람을 빼듯 그것들을 눌렀다. 이제는 제법 능숙해졌다고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스탠포드로 혼자 떠나온 뒤로 그런 느낌은 꽤나 자주, 시도때도 없이 샘을 압도하려 들었다. 제시카를 만난 뒤로는 줄어들었지만 이런식으로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시점이 오면 어김없이 불안감이 들었다. 그건 혹시라도 일상이 망쳐질까봐 걱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헤일이 한쪽 눈을 뜨고 저를 쳐다보는 것을 알았지만 샘은 눈을 뜨거나 그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불안감은 잦아들었고, 드디어 수마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닫힌 눈꺼풀 아래로 커튼이 내려왔다. 샘은 이불에 좀 더 몸을 파묻었다. 아무것도 이상한 건 없었다. 그는 그가 꿈꿨던 삶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헤일이 고개를 들었다.

단 한 번 부스럭거린 소리는 샘에게도 들렸다. 굳게 감겼던 눈꺼풀이 곧바로 뜨였고, 헤일은 이미 바닥에서 일어나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제시카를 돌아본 샘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나왔다. 집안은 조용했다. 믹이 소리를 들었을까? 창문에서 비춰지는 빛은 해가 뜨기 시작한 시간이라는걸 알려주고 있었다. 샘이 헤일에게 시선을 던졌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늑대가 뒤로 걸음을 옮겨 침실을 보호하듯 가로막았다.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지만 문간에서 실루엣이 지나갔다. 샘은 심호흡을 한 후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광원이 적은 실내에서 그림자가 얽혔고, 침입자가 샘의 공격을 막으며 반격을 가했다. 내질러진 팔을 피하고 몸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샘은 미친듯이 주위를 둘러봤다. 데몬. 데몬이 어디있지? 그러나 침입자는 샘이 그의 데몬을 찾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샘은 밀려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겨우 뾰족한 귀의 형상을 봤을 뿐이다.

실랑이는 샘이 바닥에 밀어붙여지며 끝났다. 이를 악물고 벗어나려던 샘은 헤일이 다급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뉘앙스가 아니었다. 걱정이나 화가 났다기 보다는 마치 당장 그만 두라는 듯 꾸짖는 투였다. 약한 새벽빛에 침입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Easy Tiger.

"딘?"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비현실적이었다. 머리맡에서 발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위쪽에서 블랙탄 셰퍼드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 샘. 아주 즐거운 표정이다. 놀랐잖아! 당황해서 한 톤이 올라간 목소리에 딘의 웃음이 짙어졌다. 연습을 좀 더 해야겠는데. 당장 얼굴을 구긴 샘이 순식간에 자세를 반전시켰다. 딘이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자 셰퍼드-마일리가 점잖게 말을 이었다. 혹은 아니거나.

"일으키기나 해."

딘의 위에서 내려온 샘이 손을 잡아 딘을 일으켰다. 헤일이 다가와 코를 찡그린다. 향수 뿌렸어? 탐색하듯 주위를 돌며 나오는 언짢은 목소리에 마일리가 콧소리를 냈다. 놀래켜주려고 내 코를 좀 희생했지. 헤일이 못마땅하게 코를 털었다. 장난이 성공한게 재밌는지 딘과 마일리는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헤일의 노란 눈이 과장되게 굴러갔다.

"대체- 여기서 뭐하는거야?"
"맥주 좀 찾으러 왔지."
"딘. 여기서 뭐하는거냐고."

낮은 목소리에 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좋아, 얘기 좀 하자고. 샘의 옷을 툭툭 털어내며 말을 끝마치자 마자 불이 켜졌다. 문간에서 제시카가 눈을 문지르고 있었고, 믹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따라왔다. 샘? 졸음에 겨운 목소리에 마일리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오. 소리가 안났다고 해서 딘이 감탄 중이지 않은건 아니었다. 마일리가 재촉하듯 제 어깨로 샘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샘은 손으로 얼굴을 쓸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둘을 소개시켰다. 딘, 이쪽은 내 여자친구인 제시카야.

"오, 혹시 형인 딘이에요?"
"저희도 스머프를 좋아하죠."

제시카가 난감하게 웃으며 제 티셔츠를 내려다봤다. 믹, 옷 좀 가져다줄래? 보더 콜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지기 전에 딘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No를 반복하며 다가갔다. 지금도 괜찮아요. 정말로. 솔직히, 제 동생한테는 아까운 분이시네요. 매끄럽게 이어지는 말들에 제시카가 입꼬리를 더욱 올렸다. 마주 웃어준 딘이 샘에게로 약간 뒷걸음질을 했다. 죄송하지만 가족 일로 상의할게 있어서요. 잠깐이면 되는데. 믹이 약간 불안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헤일이 다가가 코를 부비자 마주 부벼주긴 했지만, 마일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셰퍼드는 무해한 얼굴로 허리를 바로 세우고 있었다. 샘은 딘과 데몬들을 쳐다봤다가 제시카에게 다가갔다. 아니, 뭐가 됐던, 제스 앞에서 말해도 돼. 이번엔 마일리가 과장되게 눈을 한바퀴 굴렸다.

"아버지가 안돌아오셔."
"자주 있는 일이잖아. 금방 돌아오실거야."

태평한 목소리였다. 일부러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린 딘이 무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아퀼라가 찾아왔었어."

믹에게 얼굴을 부비던 헤일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일리는 여전히 허리를 세운 채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고, 샘도 헤일도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샘의 말을 막듯 딘이 나머지 말을 뱉었다. 사냥을 하러 가셨던거야. 며칠 동안 들어오지 않으셨고. 헤일의 관심이 믹에게서 완전히 떨어졌다.

"...미안 제스, 잠깐만 기다려줄래?"






*




"알겠지만 그냥 한밤중에 내가 사는 집에 쳐들어와서는 안돼!"
"아퀼라가 찾아왔었다니까."
"드물긴 하지만 큰 일은 아니잖아! 내 말은, 아퀼라와 아버지는 분리 훈련을 한지 꽤 오래 됐다고. 폴터가이스트 때 기억해? 한 달이나 집에 안돌아 오셨었잖아! 아퀼라가 두 세번 들렸었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며 하는 말에 마일리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아퀼라한테서 좋은 소식을 입수해서 파티하려고 온 것 같아? 헤일은 아까부터 얼굴을 찡그린채 말없이 따라오고만 있었다.

아퀼라는 존의 데몬의 이름이었다. 사냥꾼들 중 일부가 그렇듯이 분리 훈련을 한 매 데몬이었는데, 존이 사정이 안될 때면 들러서 사정을 말해주고는 했다. 파트너를 닮아 그녀 자신도 매우 무뚝뚝했고, 샘과 헤일은 그녀를 좋아해 본 전적이 없었다. 그녀가 물어다주는 소식이야 언제나 존이 무엇을 사냥하고 있고 언제쯤 돌아올 것 같다는게 끝이었고 후자는 지켜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소식을 전하자마자 그녀는 곧장 존에게로 돌아갔고, 심지어 어렸을 때는 딘하고만 얘기한 뒤 돌아가기도 했다. 괴물들에 관해 몰랐을 때여서 그랬다고는 했지만 그녀는 적어도 어린 샘이 안도할 수 있게끔 존의 소식을 가려서 전달해줄 수도 있었다. 딘의 말로는 그 끔찍했던 사건 전에는 다정했다지만 샘이나 헤일의 알 바는 아니었다. 정말로.

"아퀼라가 무슨 얘기를 했는데?"
"아버지가 뭔가를 찾고 있고,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그게 뭐?"
"그게 뭐? 듣기는 했냐? 럭비공이나 찾고 있는데 나한테 아퀼라까지 보냈을거라고 생각해? 분명 위험한거야. 우리가 도와야한다고."
"우리?"

딘의 걸음이 멈췄다. 자동적으로 샘도 몇 계단 위에서 멈췄고, 딘이 돌아봤을 때 계단의 난간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마일리는 거의 으르렁대고 있었다. 억지로 화를 누르는 듯한 표정의 딘이 잇사이로 목소리를 뱉었다. 도와줄거야 말거야? 샘이 입 안쪽을 씹었다.

"안 가. 사냥 같은건 그만뒀다고."
"아버지가 위험하다니까!"
"언제나 위험 하셨잖아! 이번에도 잘 하실거야. 난 그 생활에 질렸어. 지금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같이 안갈거야. 형은 우리를 내버려 둬야 해."

팽팽한 대립 상태가 이어졌다. 마일리와 딘은 샘을 노려보고 있었고, 헤일은, 계단 위에서 초조하게 입술을 핥으며 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난간을 붙잡은 손에서 마디가 불거졌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 집 얻어서 정착하고 여자친구랑 같이 사는게?"
"그래! 평범하고 안전한 삶이고, 내가 평생 동안 원했던거야. 형이 마음대로 쳐들어와서 전부 망쳐버릴 수는 없는거라고!"
"평범하고 안전한 삶?"

마일리가 코웃음을 쳤다. 헤일이 이를 드러냈지만 덩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헤일에게 겁을 먹는 일은 없었다.

"넌 윈체스터야!"
"그게 어쨌다는거야? 윈체스터는 평범하게 살면 안돼?"
"그냥 윈체스터도 아니고, 늑대 데몬을 데리고 있는 윈체스터지. 진심으로 이런식으로 계속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헤일을 강아지라도 되는듯이 포장시키면서?"

샘이 입을 다물었다. 딘은 시선을 피하는 헤일을 노려보면서 마저 말을 이었다. 꽤나 노력했지, 안그래? 안봐도 뻔하다고. 네 여자친구의 데몬이 헤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는데 얼마나 걸렸어? 한 달? 세 달? 헤일이 위협하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듯 샘이 어금니를 물었다. 2주였어.

"그것 참 신기록이네."
"그래서 온거야? 우릴 비웃으러?"
"아니, 난 도움을 청하러 온거야. 마일리랑 둘이서만은 못하겠다고."
"할 수 있잖아!"
"그래,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말을 받은 마일리가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다시 대치상태였다. 한참이나 서로를 노려보던 시선은 샘의 쪽에서 먼저 거둬졌다. 입술을 깨물며 아래로 고개를 내렸던 샘이 다시 얼굴을 들었다. 대체 뭘 찾으신다는건데? 딘이 마저 앞장서 계단을 내려갔다. 알아내는 중이야.

"알아내는 중이라고?"
"아퀼라가 말해주질 않았어. 알잖아. 전할것만 전하고 휙 날아가버리는거."

딱딱하기 짝이 없는 매의 표정을 떠올린 샘이 언짢게 얼굴을 구겼다. 분리 훈련을 했어도 인간인 이상 데몬과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은 치명적이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들들에게는 좋지 못한 단점이었다.

바깥에는 익숙한 임팔라가 주차되어 있었다. 트렁크를 열자 절대 평범하지는 않은 무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마일리가 앞발을 트렁크에 기댄채 무언가를 물고 내려왔다. 반동을 이용해서 던지자 헤일이 받아낸다. 인쇄 된 종이 뭉치였다. 헤일이 건네는걸 받아들어 살펴보던 샘이 눈썹을 휘어올렸다.

"아버지랑 형이 조사하던거야?"
"정확히는 존이 조사하던거야. 나랑 딘은 다른 일이 좀 있었거든. 뉴올린스에서 부두교 관련으로."
"아버지가 너랑 형이 알아서 사냥하게 놔뒀다고?"
"우리 스물 여섯이거든."

이번엔 딘이 녹음기를 던졌다. 공중에서 잡아챈 샘이 미간을 구기고 녹음기를 살폈다. 긁힌 자국이 있는걸로 봐서는 아퀼라가 들고왔던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의 제리코에서 지난 20년간 10번이 넘는 실종사고가 일어났고, 점점 빈번하게 발생하는 터라 존이 조사를 하러 나갔다. 그리고 3주 후에 아퀼라가 찾아와 소식을 전하고는 녹음기를 주고 갔다는 것이다. 대체 왜? 헤일이 녹음기의 냄새를 맡는 동안 질문하자 딘이 어깨를 으쓱였다. 틀어봐.

"...목소리 뒤로 들리는거 EVP야?"
"실력은 녹슬지 않았는데."

씩 웃어보인 딘이 녹음기를 넘겨받으며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속도를 느리게 하고, 돌비 채널로 돌린 후에, 잡음을 없앴더니 이런 소리가 났어. 녹음기에서 들리는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에 헤일이 반사적으로 털을 곤두세웠다.

"집에 돌아갈 수 없어요?"
"유령인건 확실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조사하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잠깐만, 그럼 존이 너희한테 사건을 맡겼다는거야? 자기가 없는 동안에 해결하라고?"
"아마도."
"그래서 형이랑 너는 이걸 맡을거고?"
"그래. 무슨 의미가 있든 어쩔 수 없이 그곳부터 시작해야해. 아는 단서라고는 그게 전부니까."

녹음기를 던져넣고 트렁크를 닫은 딘이 임팔라에 기대 샘과 헤일을 쳐다봤다. 갈거야? 마일리는 꼬리를 느리게 흔들며 기대감이 있는 눈으로 둘을 쳐다봤고, 샘은 약간 망설이는듯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2년 동안 귀찮게 한 적 없었잖아. 딘의 목소리는 약간 보채는 듯이 들렸다. 헤일은 샘의 옆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결정하든 지지할거라는 신뢰의 시선을 마주보며 샘이 입을 열었다. 그래. 하지만 월요일 전까지는 돌아와야해.

"월요일은 왜?"
"면접이 있어."
"일자리? 그냥 못간다고 해!"
"로스쿨 면접이고, 내 인생이 달려있어."
"로스쿨?"
"그렇게 하기로 한거야. 여기서 기다려."

말을 이을 새도 없이 샘과 헤일이 빠르게 안으로 사라졌다. 약간 얼굴을 찌푸린채였던 딘이 입술을 물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일리를 쳐다봤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마일리는 입꼬리를 뒤로 당기며 딘을 올려다봤다. 최선이라는거 알잖아. 둘이서는 못해. 어두운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딘이 곧 다리를 접고 제 데몬의 목을 감싸 안아 얼굴을 묻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쳐진 꼬리가 힘없이 양 옆으로 흔들린다. 어깨에 기대 머리를 부비던 마일리가 딘의 얼굴을 애정 어리게 핥았다. 괜찮을거야. 다정한 목소리에 딘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




"하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한적 없었잖아! 그래놓고 한밤중에 떠나서 주말을 보내고 오겠다니..."

믹이 불안하게 헤일의 주위를 맴돌았다. 헤일이 친근하게 귀를 핥아줬지만 그런다고 안심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샘은 대충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더플백에 집어넣으며 제시카를 안심 시키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월요일에는 돌아올 것이고 잘못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샘은 제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그런 말들을 반복했다. 한숨을 쉰 제시카가 다리를 굽혀 믹을 안았다. 돌아오는거 맞지? 보더 콜리가 약간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샘은 제시카를 돌아봐야한다는걸 알았지만 쉽사리 고개가 돌려지지 않았다. 불안을 억지로 삼키며 샘이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괜찮을거야. 겨우 주말 동안인데 뭐."

제시카는 대답 대신 믹의 목을 쓰다듬었고, 샘은 지퍼를 잠근 더플백을 헤일에게 둘렀다. 돌아올거야. 약속할게.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인다. 믹은 가늘게 한 번 울고는 옆을 지나치는 헤일에게 미련있는 시선을 던졌다. 그럼 적어도 어디로 가는지만 알려주면 안될까? 복도를 빠르게 통과하던 샘이 멈출 생각도 못하고 급하게 목적지를 알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헤일이 샘을 계속 힐끔거렸다. 굳은 무표정이 딱딱하다. 헤일이 계단 중간에서 샘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겠어? 보통 성인보다도 커다란 체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간을 붙잡고 멈춰선 샘이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게... 모르겠어."
"샘, 원한다면 거절해도 괜찮다는거 알잖아. 우린 머무를 수도 있어."

침착한 목소리에 샘이 머리를 긁으며 제시카가 있을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헤일의 말이 맞았다. 딘을 따라갈지 말지는 온전히 샘의 선택이었고, 싫다면 거절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정말 주말 뿐이었다. 존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샘은 월요일에 이곳으로 돌아올 터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샘은 불면증을 기억해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야기하는 수많은 원인들도. 그 꿈. 제시카가 천장에 붙어 타오르는, 반복되는 불길한 영상. 하지만 그것이 불면증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샘은 흔히 볼 수 있는 데몬과는 동떨어진 제 데몬을 내려다봤다. 늑대. 데몬들은 인간보다 덩치가 작은게 보통이었고, 마일리만 해도 데몬 중에서는 큰 편에 속했다. 하지만 단순히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포식자인 데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불안을 심어준다. 그중에서도 늑대는. 제 데몬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짓는 표정을 떠올린 샘이 입술을 깨물고 헤일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괜찮을거야."

일부러 힘을 준 목소리에 헤일이 한숨을 쉬었다. 긴 몸으로 한 번에 세 칸씩 계단을 뛰어내린 헤일이 샘의 옆에 붙었다. 그냥 들어만 둬. 샘이 걸음을 재촉하며 헤일을 힐끔거렸다. 딘은 바깥에서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일리는 운전석 시트 아래쪽에 있겠지. 헤일이 움직임에 따라 등에서 더플백 속의 내용물이 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우리는 다시 못돌아올거야."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였다. 입을 일자로 만든 샘이 문을 여는 소리가 약간 크게 들렸다. 







날조주의... 에피를 전부 쓰지는 않을거고 대충대충 넘길듯함. 참고로 데몬과 다른 인간끼리 얘기를 직접적으로 주고받는건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대부분 안그래서. 그래서 딘이랑 제시카가 말할 때 마일리와 믹이 조용한거고. 왜 이런거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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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슨스미스au




1.
스산한 골목에서는 불길한 냄새가 났다.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총을 든채로 조심스럽게 갈라진 시멘트 바닥을 밟았다. 워커의 밑창에 돌가루들이 깔려 조용히 비명을 지른다. 전파가 잘 안통하는지 잡음이 들렸다. 신경질적으로 인이어를 몇 번 문지른 남자가 바닥처럼 갈라진 모퉁이에 붙었다. 셋하면 돌면서 겨눠. 귀에서 들리는 명령에 남자가 총을 고쳐잡는다. 모퉁이 쪽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철컥, 총이 장전된다. 둘. 워커가 땅을 단단히 디뎠다. 셋.

"움직이지마!"

좁은 골목에 높은 비명소리가 울렸다. 쓰레기통 위에서 몸을 겹치고 있던 남녀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난다. Oh, shit. 욕을 뱉은 샘이 짜증난다는듯 이를 사려물었다. 남녀는 무슨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듯 서로에게 달라붙어 떨었고, 샘은 총을 내리고 다시 지지직거리는 인이어를 만졌다. 진짜 재미없거든, 딘. 이어커프 너머에서는 또 잡음만 흐른다. 망할 무전기. 그렇게 바꿔달라고 찔러도 들은 척도 안한다니까. 총을 뒷주머니에 찔러넣은 샘이 죄송하다는듯 손을 들어보이고 뒤를 돌았다.

시골도 아닌데 무슨 전파가 이렇게 안터지는지 모를일이다. 임팔라에 스무디를 쏟은게 일주일 전인데 아직도 그걸로 심술을 부린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한참 지지직거리던 인이어가 드디어 제대로 된 소리를 낸다. 사과할테니까 근무시간에 이딴 장난 좀 그만쳐. 억울한 말에 건너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멍청아, 여자!

뒤에서 훅 끼쳐오는 살기에 샘이 황급히 다리를 접었다. 바로 위를 통과하는 발톱이 흉흉하게 샘의 머리카락을 스친다. 욕을 뱉으며 바로 총을 뽑아들자 하이힐이 손을 후려쳤다. 날아간 총이 바닥에 쳐박히자 샘이 되는대로 여자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정통으로 맞고도 데미지가 없는지 순식간에 여자의 팔이 샘의 팔에 감긴다. 부러지기전에 여자의 배를 발로 차 밀어낸 샘이 몸을 던져 총을 잡았다. 발목이 잡혀 순식간에 시야가 반전된다. 쏴! 인이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샘이 여자의 이마에 총알을 박았다. 피가 터지며 발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널브러진 샘이 뒤늦게 욕을 뱉었다.

[살았냐?]
"그래, 빌어먹을."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샘이 확인차 여자의 시신에 총알을 두어개 더 박았다. 스크린을 꺼내 드러난 이빨과 발톱을 대조해보던 샘이 찾아다니던 웨어울프가 맞음을 확인했다. 딘이 보고 받았다는 형식적인 말을 꺼낸다. 한시름 놨다는듯 한숨을 쉰 샘이 아직 구석에서 떨고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입을 뻐끔대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의 쪽으로 한 발을 뻗는다. 남자는 거의 쓰레기통에서 떨어질뻔 했다. 손을 들어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지어보인 샘이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한장을 꺼냈다. 남자가 겁먹지 않도록 바닥에 천천히 명함을 내려놓은 뒤로 몇걸음을 무른다. 옷차림이 다 흐트러진 남자가 거의 기어서 몸을 내밀고 글자를 확인했다.

"그, 오늘 본 것에 대해서 혹시 상담을 받고 싶으시면 적혀진 전화번호로 연락 해주시면 됩니다. 전문 상담사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남자가 정신없이 명함과 샘을 번갈아보다가 폭탄이라도 집는마냥 명함을 주워들었다. 어색하게 웃은 샘이 다시 인이어를 만졌다. 복귀한다는 말에 딘이 파이나 사오라고 말하고는 먼저 통신을 끊었다. 왜이렇게 신경질적이래. 고개를 저은 샘이 남자에게 다시 한 번 웃어주고는 여자의 시체를 어깨에 짊어졌다. 남자는 샘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모습을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명함의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깔끔한 디자인의 직사각형에는 검은색으로 글자가 써져있다.

TOSE UP
The Organization Examinating Supernatural&Uncanny Phenomena

S.Wesson. / Hunting department

P. ***-***-****




2.
"아 그러니까 그걸 왜 우리한테 떠넘기냐고! 천사들 뒤치다꺼리는 천계부서 담당이잖아! 우리가 왜 네피림을 찾아? 뭐? 이것들이 말이라고- 야, 나도 너희들 일하기 좆같은거 알겠는데, 여기라고 팽팽 놀고있는줄 알아? 윗선한테 찌르던가! 툭하면 인원부족 핑계대는거 지겹지도 않냐?!"

마이크를 터뜨릴 기세로 울려대는 목소리에 샘이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유리문 안쪽으로 들어왔다. 인사해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준 샘이 머리 끝까지 열이 뻗쳐있는 딘의 데스크까지 다가가 파이 상자 중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마에 힘줄을 달고 알아서 하라고 빽 소리를 지른 후에는 인이어가 데스크 벽에 던져졌다. 신경질적으로 파이 상자를 채온 딘이 인사도 안하고 파이부터 베어물었다. 다람쥐마냥 부푼 뺨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본 샘이 인이어를 주워든다. 허구한날 던져대니 전파수신이 그따위지. 순식간에 한조각을 다 먹어치운 딘이 식어버린 커피를 원샷했다. 옆에 늘어선 커피잔들이 고개를 젓는 것 같이 보였다.

"좀 친절하게 하면 안돼? 무시 당하는게 일상인 사람들인데."
"잔소리 하지 말고 보고서나 내놔."

파이 한 조각을 마저 들며 딘이 손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다는듯 가져온 보고서를 손에 얹어준 샘이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했다. 무리는 더 없는 것 같고, 알파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 같아. 빼곡한 글자들을 대충 읽던 딘이 그거면 됐다는 듯 보고서를 한켠에 던졌다. 사람이 정성껏 쓴걸. 기력이 빠지거나 말거나 모니터 앞으로 의자를 끌어온 딘이 잔뜩 떠있는 탭들을 훑었다. 샘이 보내온 사진들을 포함해 시체 처리에 대한 허가서와 다른 부서에 보내는 항의서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습관처럼 컵을 기울였다가 커피가 없자 유리를 깨뜨릴 기세로 컵을 내리친다.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박은채인 딘이 손을 내저었다. 여긴 됐으니까 찰리한테 가봐.

"데이트 할래?"
"아니."

단호한 거절이다. 가상의 귀를 축 늘어뜨린 샘이 데스크벽에 팔을 얹고 매달렸지만 끈질긴 퍼피아이도 쳐다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커피잔의 수도 그렇고 거의 이틀은 밤을 샌 것 같았다. 그말인 즉슨 오늘도 데이트는 커녕 살가운 대화조차 없다는 뜻이다. 샘은 빠르게 포기하고 그냥 명령대로 기술부서로 가는쪽을 택했다.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조디가 어깨를 거의 땅에 붙이고 있는 샘을 보고 눈썹을 휘어올렸다. 거의 세 발자국으로 거리가 좁혀져서야 조디를 알아본 샘이 힘없이 인사를 했다.

"우리 카우보이가 또 심술 났나봐?"
"말도 말아요. 아까 저주 담당 부서에서 저번 레코드건을 우리 부서 책임으로 떠넘기는 바람에 완전 폭풍이었어요. 딘이 밥도 못먹고 항의 하느라 세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니까요. 그와중에 웨슨씨 백업하고, 끝났다했더니 천계쪽에서 네피림 건까지 떠넘기려고 해서... 하여간 여기가 봉이죠 뭐."

도나가 조디에게서 보고서를 넘겨받으며 한탄을 늘어놨다. 총이나 칼 쓸 일만 생겼다하면 온갖 부서에서 죄다 일을 떠넘기려 하니 딘이 최전선에서 막아주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 입사 초기만 해도 저렇게 입이 거칠지는 않았는데, 하기사 이곳에서 6년이나 굴러먹다보면 자연스럽게 욕이 붙기는 했다. 샘만 해도 예전에 비하면 거의 갱단마냥 욕을 써대고 있었으니 할 말 다한 셈이다. 조디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도나에게 커피와 도넛을 내밀었다. 원래도 밝은 얼굴이 태양마냥 밝아지는걸 흐뭇하게 바라본 조디가 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웨어울프건 끝났으니까 내일이면 여유 뜰거야. 힘내라고.

"그러길 바래야죠. 조디는 그 유니콘건 어떻게 됐어요?"
"샷건으로 쐈는데 사라지기만 하고 다시 나타나더라고. 마녀 짓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웃기는 짓거리라..."
"트릭스터가 아닐까 해요. 진짜 트릭스터요."
"대천사가 또 내려온거라면 이번에야말로 그 부서 전체를 해고 시켜야할걸."

천계 부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샘도 그부분에서는 동의하는 바였다. 진짜 트릭스터면 처리하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주세요. 가브리엘한테 좀 보내게. 도나가 맡겨만 주라는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믿음직한 사람들이다. 그럼 수고하라며 손인사를 한 샘이 긴 다리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뒤쪽에서 인이어에 대고 다시 화를 내는 딘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3.
"자.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 했어."

건네지는 스크린을 받아든 샘이 좀 더 간편하게 바뀐 보안화면을 훑었다. 고마워 찰리. 돈받고 하는 일이라고 어깨를 으쓱인 찰리가 커피가 든 컵을 기울였다. 이쪽도 눈그림자가 장난이 아니다. 기술부서야 밤샘이 보통이라고는 하지만, 저번에 악마들한테 보안이 뚫린 후로 무지막지하게 들볶인 것이 틀림 없었다. 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엎어져있는게 초파리만 날아다닌다면 멸망 후의 모습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침까지 흘리며 자고있는 애쉬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본 샘이 파이 상자를 전달했다. 일어나면 나눠먹어. 환호할 기운도 없는지 힘없이 고맙다는 말만 전한 찰리가 눈을 비볐다.

"웨어울프건 성공했다며. 인이어 전파가 불량하다고 하던데."
"딘이 하도 던져대서 그런 것 같아. 그냥 새로 지급만 해주면 해결 될거야."

방해전파 때문이었다면 또 3일 밤을 새야했을거라고 농담아닌 농담을 한 찰리가 잔뜩 쌓여있는 인이어 상자 중 하나를 건넸다. 가장 자주 부숴지는 물건 중 하나다보니 아예 쌓아놓고 주기로 한 모양이다. 백업팀이 인이어를 망가뜨리는 일은 몇 없었지만 현장 요원들의 인이어는 임무 하나당 하나씩 망가뜨려오는 형국이었다. 날아가고 쳐박히는게 일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나마 샘은 깔끔하게 가지고 돌아오는 편이지만, 반대로 딘이 허구한날 망가뜨려서 어차피 팀으로 치면 비등비등하다. 미안하다는 얼굴을 해보인 샘에게 찰리가 이것도 가져가라면서 케이스를 하나 내밀었다.

안에 들은게 무엇인지 묻기도 전에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샘과 찰리가 떠들어도 반응도 없던 기술부 사람들이 노이로제라도 걸린것 처럼 단체로 고개를 들었다. 카스티엘이 원래 무엇이였는지 모를 기계를 들고 어색하게 서있자 찰리가 거의 기절할듯 창백해졌다.

"또! 또!! 미치겠네 정말!! 내가 제발 제대로 갖고오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카스티엘이 면목이 없다는듯 고개를 숙였다. 샘이 둘이 대화할 수 있도록 물러나며 카스티엘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했다. 샘의 인사를 받아준 카스티엘이 두 손으로 공손히 망가진 기계를 전달했다. 어쩌다 이랬냐는 불호령에 차에 치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샘이 기겁했다. 베슬 몸 좀 아껴달라니까! 총체적으로 변명할 말이 없는지 카스티엘이 눈을 굴려댔다. 어차피 치유했을테니 죽을 일이야 없겠지만, 목격자라도 있으면 곤란해지는건 베슬인 지미와 천계부서였다. 상황에 따라서는-어떤 메커니즘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사냥 부서가 뒤치다꺼리를 해야할 수도 있었다.

"임무는 해결했다."
"그래요, 카스티엘. 그건 사냥 부서에 보고하고... 아... 이거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찰리를 따라 온 부서 사람들이 머리를 감싸쥐거나 데스크에 머리를 박았다. 아포칼립스 이후 카스티엘과 발티자르 같은 천사들이 남아 용병일을 해주는 것은 임무 성공에 있어 뛰어난 효율을 가져왔지만, 기술팀에게는 매우 악몽 같은 일이었다. 천사들은-특히 카스티엘과 사만드리엘 같은 경우 건네주는 장비들을 모두 부숴서 오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감안해줄 수 있지만 굳이 부숴서 오는 것은 무어란말인가. 찰리가 부숴진 기계를 붙잡고 딘에게 보고 할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카스티엘이 손으로 얼굴을 덮고 창세기 때부터 살아온 생명체만이 낼 수 있는 한숨을 쉬었다. 부숴진 기계의 잔해가 너무나 적나라 했으므로 아무도 카스티엘을 위로해주지 않았다.

"교통사고 건도 말할거야."
"제발, 샘... 자비를 가져라."
"저번에 모텔 위에서 뛰어내린 것 때문에 투신자살 기사까지 났었잖아! 더는 안돼. 제대로 잔소리 듣고, 또 기사가 나면 재커라이어한테 항의할테니까 그렇게 알아. 근신처분 당해도 안도와줄거야."

카스티엘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기술팀들이 단체로 무언의 응원눈빛을 보내온다. 천사한테 막대할 수 있는 사람이야 온 부서를 통틀어서 딘이나 샘 정도가 다였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카스티엘이 모습을 감췄다. 사냥 부서에 보고하러 간 모양이다.

불쌍한 지미. 찰리가 고개를 젓는다. 성실한 회계사가 피곤한 일에 익숙한듯 웃는 모습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때려쳤을텐데, 안타깝게도 지미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 베슬들에게 들어가는 입금액이 천문학적이라도 샘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베슬역이라면 질색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샘의 경우는 좀 다른 이유이긴 했지만, 하여간 베슬들은 마주치기만하면 온 부서 사람들에게 토닥임을 받는 존재들이었다. 알피가 보고서 때문에 공강시간에 들리면 간식이니 선물이니 하는 것들을 팔에 쌓느라 한바탕 난리가 날 정도다.

찰리가 기계를 흔들며 새 일거리라고 절망적인 목소리를 냈다. 곳곳에서 곡소리와 신음들이 솟구친다. 관련 없는 샘이야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는 수 밖에. 대표격으로 찰리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 아직 손에 들려있는 케이스를 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이 얌전하게 들어있는걸 확인한 샘이 눈썹을 휘어올렸다.

"성유에 그을린 안경이야.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하나씩 지급하래."
"교차로 악마들 계약에는 손대지 않는게 룰이잖아. 일을 얼마나 늘이려고..."
"비상 상황이라니까. 크라울리가 헬하운드로 감시망이라도 깔까봐 걱정하는 모양이던데."

하여간 쓸데없는 걱정들은 잘하는 양반들이다. 안경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샘이 케이스를 닫았다. 딘 것도 있으면 전해주겠다는 말에 현장 요원들만 해당하는 거라는 말이 돌아왔다. 딘은 반쯤은 현장 요원이잖아. 백업하다 안되면 뛰쳐나오기 일쑤인 제 파트너를 떠올리며 말하자 찰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백업 안할 때는 계속 같이 있잖아. 괜찮은거 아니야?

딱히 할말이 없어진 샘이 따라서 어깨를 으쓱이고는 케이스를 주머니에 꽂아넣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 할일이야 보고서를 내는게 끝이었으니 진작에 퇴근했어도 됐지만, 먼저 들어갔다가 딘한테 무슨 원망을 들을지 생각하면 피가 식었다. 백업팀이나 현장요원이나 명줄 짧은건 똑같은데 왜 백업팀만 온갖 잡무를 떠맡는지 모를 일이다. 띵즈나 스트레스나 사망원인으로는 비등한데. 예전에 백업팀이었을 때 생각했던 불만을 그대로 되새긴 샘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온 문자가 없는걸 보면 아직도 천계부서와 씨름하고 있거나 저주 부서에서 깽판을 치고 있을 것이다. 가는거냐고 묻는 찰리에게 그래야할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인 샘이 인이어 박스를 흔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작작 던지라고 좀 해줘. 공장제지만 귀여운 애들이라구.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인 샘이 나중에 보자면서 웃어보였다.


"그래, 그 전에 과로로 죽지만 않는다면야..."

힘없이 웃은 찰리가 고철 덩어리를 올려놓는다. 어색하게 웃어준 샘이 고갯짓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한 뒤 유리문을 나섰다. 일 합시다, 일- 듣기만해도 지쳐보이는 목소리를 따라 똑같이 지친 목소리들이 영혼 없는 환호성을 냈다.






헌팅도 보고 싶고 회사생활도 보고 싶으면 짬뽕 시키면 되지! 아포칼립스 이후고 샘과 딘은 사귄지 꽤 된 배경. 과거 일은 더 쓰게 되면 천천히 풀 듯.


약자인 TOES UP은 직역하면 발가락을 들고 걷는다는 숙어로 '죽어서' 라는 뜻이 있음. The Organization Examinating Supernatural&Uncanny Phenomena 은 번역하자면 초자연적이고 밝혀지지않는 현상들을 조사하는 기구. 간단하게 Crime of Supernatural Investgation으로 하려고 했는데 줄이니까 CSI라서..ㅋㄱㅋㄱㄱㄱㅋㄱㄱㅋㄱㅋㄱㅋㅋ핑구님 진짜 감사합니다.. 핑구님 천재.. 핑구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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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딘

연성/Supernatural / 2016. 1. 14. 16:25

카스티엘은 인간을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천사에 비한다면 한없이 미개한 그 존재들은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어리석으며, 때로는 아주 보잘 것 없지만,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한없이 강했다. 자신의 손으로 앞일을 결정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건 천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오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오만함은 창세기 때 부터 계획되어 왔던 멸망을 막고, 끝끝내 자신들을 구했다.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도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너무나 미개해서 자신들의 실수에서도 배우는 것 없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에 여생을 보내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어떠한가. 그 멍청함도, 그런 자기파멸도,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한 부분이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그들은 깊이 절망하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카스티엘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웃는 그들의 입근육이나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간들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런 숭고함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래야만 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으로 숭고함을 만든다. 

그들이 카스티엘에게 고마움을 표하거나 저를 믿어줄 때면, 제 이름을 불러주거나, 필요하다고 말해줄 때면 카스티엘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창세기 때 부터 은연중에 찾아 헤메던 존재 이유의 해답인 것만 같았다. 카스티엘은 그들을 돕고, 또한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리라. 그러나 카스티엘이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들은 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카스티엘은 인간들을 존경했다. 아버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으로, 카스티엘은 인간들을 사랑한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카스티엘은 앞에서 튕겨지는 손가락에 맞춰졌던 초점을 뒤쪽으로 옮겼다. 맥주병을 든채 쇼파에 누워있다 싶이 앉은 딘이 한쪽 눈썹을 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에 있는 어떤 녹음보다 아름다울 색은 온전히 카스티엘을 향해 있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축구경기의 해설과 응원소리가 낡은 오두막을 채운다. 카스티엘은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딘이 자주 하는 것 처럼 윗니를 내보이는 웃음이 아닌, 물결 같은 미소였다.

"인간들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러시겠지. 딘의 시선은 다시 화면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공의 움직임을 따라 바쁘게 시선을 옮기다가 탄식을 내뱉기도 하고, 환호를 하며 병을 치켜들기도 했다. 카스티엘은 멀지 않은 의자에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제 손에 들린 맥주병을 내려다봤다. 처음과 똑같은 양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병은 소중하게 감싼 손에서 온기가 옮아 미지근해져 있었다. 딘은 병따개 없이는 맥주를 따지 못하는 카스티엘을 위해 미리 뚜껑을 열어놓았다. 이것 또한 인간들의 사랑스러움 중 하나였다.

카스티엘은 눈을 감고 병 표면에 맺힌 물기가 흘러 손을 적시는 것을 기다렸다. 카스티엘은 축구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저 병을 쥐고만 있을 생각이었다. 딘은 화를 내겠지. 그래도 상관 없었다. 한없이 경이로운 존재가 저를 위해 열어준 병이었다. 카스티엘의 손 안에 담긴 것은 사랑스러움이다.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감정이고, 제 존재의 이유기도 한. 

딘은 여전히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고, 경기가 끝나면 카스티엘에게 시선을 돌려줄 것이다. 카스티엘은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형제들이나 아버지가 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그렇기에 카스티엘은 인간들이 사랑스러웠다. 형제나 아버지보다도 더, 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만큼.




부제: 카스티엘은 딘 윈체스터를 통해 인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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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딘 Crush on2

연성/Supernatural / 2015. 10. 6. 09:19
상담원은 약간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꺾고 위를 쳐다보았다. 쳐다봐야 할 것이 앉은 자리에서 눈만 올려다보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키를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딘이 무해한 웃음을 지어서야 도로 데스크안의 컴퓨터를 쳐다봤지만, 결국 몇 번인가 더 위를 힐끔거려야했다. 상담원은 망설였다. 이런걸 물어봐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딘은 여전히 무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니터를 보기 위해 노력하던 상담원이 결국 입을 열었다.

"두 분 사이에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으신거죠?"
"여러가지 종합적인 문제가 있죠. 충동적으로 싸우고, 신경질적이게 굴고, 뭘 막 집어던지거나- 라스 선생님이 전문가라고 들어서요. 저희는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거든요."
"아, 네..."

상담원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들은대로 적기는 했지만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대충 둘러대고 선생님께 제대로 말할 생각일 수도 있다. 보통은 상담원에게 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담원은 다시 위쪽을 힐끔거렸다. 충동 조절과 폭력 문제, 라는 글자 옆에 커서가 깜박였다. 거짓말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퍽이나 믿음직했다. 특히 딘이 달고있는 눈쪽의 멍을 보자면 그랬다. 상담원의 시선이 딘의 옆으로 굴러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종이봉투에 테이프는 좀.

상담원은 단지 상담원이었고 카드로 미리 상담료를 결제했기 때문에 샘과 딘은 어렵지 않게 대기자를 위한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샘은 종이봉투가 불편한지 연신 안에서 바람을 불어댔다. 딘은 샘이 옆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오다가 주운 차가운 돌맹이를 멍 든 눈에 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대며 샘과 딘을 지나쳤다. 하나같이 둘에 대해 수근거렸지만 둘은 그걸 바로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초한건 샘-샘 생각에는 딘-이었기 때문에.

"자기야, 이거 풀어주면 안돼?"

딘은 샘을 노려봤다. 숨구멍으로 뚫어준 종이봉투의 유일한 구멍에서 샘의 간절한 눈빛이 쏟아져나왔다. 자기야 좋아하네. 투덜대는 말에 샘이 더욱 간절한 눈을 보내며 테이프로 묶인 손을 내밀었다. 다신 안할게. 한 번만 믿어줘.

아침. 딘은 쏟아지는 햇빛에 기분 좋게 일어났다. 원배드의 모텔방은 상쾌한 향이 났다. 술병이 몇 개 굴러다니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풍경이었을테지만 그건 너무 익숙한 기본옵션이었던 터라 딘의 말끔한 심경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계획은 착착 쌓였고 어떻게 할지는 정해놨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최선책을 선택할 수 밖에. 딘은 가뿐하게 샤워하고, 옷을 챙겨입고는 모텔방을 나서려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방 안으로 쓰러진 샘을 내려다보며 약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딘은 기함을 토했다. 샘은 제 모텔방 문 앞에 기대앉아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겁해서 깨우는 손길에 엉망인 상태로 눈을 뜬 샘이 딘의 손을 붙들어 제 눈에 가져다댔다. 좋은 아침, 딘.

말로는 새벽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나왔다는데, 아니, 내가 여기에서 자고 있다는건 어떻게 알았는데? 심지어 딘이 있는 곳은 원래의 모텔도 아니었다. 샘은 아주 태연하게 말을 늘어놨다. 모텔 주인이 형이 나가는걸 봤다길래 방향을 물었지. 좀 가다보니 임팔라가 보여서 물어보니까 호수를 가르쳐주던데. 감시카메라가 있는데다 직원의 눈이 이상해서 문을 못따겠길래 그냥 죽치고 있었다는 말이 추가로 따라왔다. 딘은 머리를 짚었다. 그래도 억지로 안들어온게 어디야. 어차피 찾아갈 계획이기는 했다. 이번 작전에는 샘이 필요했으니까.

딘의 작전은 이랬다. 아주 불행하고 또한 예상했던대로 피해자들이 다니던 상담소는 연애상담을 주전문으로 하는 작은 상담소였다. 서치를 해봐도 불법적인게 걸리지 않아서 무작정 FBI 신분증을 내밀며 쳐들어갈 수는 없었고, 상담사를 쉽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샘이 필요했기 때문에, 딘은 샘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가 문제가 있는 애인 사이인 것 처럼 연기해서 그 싸이코 상담사를 만나야 해.

샘은 앞뒤를 모두 잘라먹어 듣고는 아주 뛸 듯이 기뻐했다. 샘은 딘에게 곧장 키스를 퍼부으려고 했고, 딘은 예상했다는 듯이 커다란 덩치를 막고는 다시 종이봉투와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제 스스로 주먹을 날려 눈에 멍을 새기고는 시무룩한 샘을 억지로 일으켜 죄수를 연행하듯 임팔라에 태웠다. 차문을 닫고 시동을 켜면서 옆을 돌아본 딘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커플이군.

딘은 별 수 없이 상담원에게 가위를 빌려 샘의 테이프를 끊어줬다. 상담사를 만났을때도 이상태면 제압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옆에 앉아있던 빨간머리의 여자가 둘을 힐끔대기 여념이 없었다. 딘은 그 여자에게도 무해한 웃음을 지어주었고, 종이봉투를 벗으려는 샘의 손을 억지로 누르고 도로 봉투를 씌웠다. 머지않아 둘의 이름-스티브 윌시와 빌리 그리어-가 불렸고, 여전히 종이봉투를 쓴 샘이 더듬더듬 딘의 뒤를 따랐다.

상담실은 구실을 잘 하고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는 내담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방음 또한 잘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적절히 반쯤 내려온 블라인더가 실내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샘은 문을 닫으면서 살짝 잠금장치를 건드려 상담실을 잠궜다.

상담사, 라스 맥코이는 친절한 얼굴로 뒤를 돌았다가 샘에게 씌워져있는 종이봉투를 보고 흠칫 놀랐다. 딘은 세번째로 무해한 웃음을 짓고는 의자를 못찾아서 더듬대는 샘을 끌어 제 옆에 앉혔다. 뭐가 있는지 파악하는척 하면서 허벅지며 어깨를 더듬거릴때쯤 가서는 딘이 샘의 손을 꺾어야했지만, 보이지는 않았는지 라스는 어렵게 표정을 갈무리해 다시 친절한 웃음을 입에 띄웠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추천을 받고 오셨다면서요. 말콤씨의 친구분이시라고...?"
"네. 그 친구가 우리 문제에 많은 도움을 줬었죠. 고등학교 동창이라."

딘은 자신이 우리라는 단어를 뱉었을 때 사랑스럽다는듯 감싸여진 제 손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문제가 있는 커플 연기를 해야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쥐뿔도 생각하고 있지 않고있는듯 했다. 종이봉투를 씌우기를 백 번 잘했다. 평소의 샘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며 투덜거렸을 제안을 잔소리 하나 없이 패스하게 된건 좋은 일이었지만, 딘은 연기고 뭐고 바로 책상을 발로 차 엎고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절 꺼내달라며 상담사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자켓을 챙겨입은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거의 어깨까지 소름이 쫙 올라와있는걸 발견당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터였다.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다. 딘은 샘에게 발기부전 문제가 있고, 그건 연인 사이에 아주 커다란 시련이며,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자신은 술에 손을 대 알코올 중독 초기증세가 있다고 얘기했다. 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발기부전 문제는 많은 연인들의 골칫거리죠. 치료는 받고 있으신가요? 종이봉투를 쓰고 있는 샘은 라스의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는지 대답이 없었다. 딘은 봉투를 뚫고 나올듯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아니요, 빌리는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요. 비뇨기과에 가는걸 달가워하지 않아요.

"원인은 찾아보는게 좋을텐데요. 혹시라도 어디에 이상이 있는거라면-"
"사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빌리를 억지로 비뇨기과에 데려가지 않아도 원인은 알아요. 저희 둘 다 우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걸 자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딱히 이별 컨설턴트를 받으러 이곳에 온건 아니거든요. 저는 저희가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가기를 원해요. 서로한테 실망하지 않고, 그냥 쇼파에 앉아 맥주나 기울이면서 옛날 영화를 보고, 시덥지 않은 것에 웃고, 별것도 아닌 것에 싸우던 시절로요."

라스는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그렇게 로멘틱 하게 들리지는 않네요. 딘은 라스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라스가 서류에 뭔가를 적는걸 넘겨다보던 딘이 타이밍을 쟀다.

"저희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건 아시겠죠?"
"저 종이봉투를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말콤이 그러던걸요. 선생님께 너무 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고 상담을 했더니 며칠 후에 환상의 연인을 만났다고. 저희 문제도 그렇게 고쳐주실 수 있나요? 대가는 무엇이든 지불할게요. 정말 간절하거든요."

딘은 눈썹을 쳐지게 해 정말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스는 마음이 동했는지 자신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딘은 그 얼굴에서 싸이코패스의 징조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딘의 전문은 괴물이지 정신나간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어렴풋이 맞겠지 싶은 근거없는 확신만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라스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가 두 분에게 해드릴 만한게 있을 것 같네요.

의자에서 일어나는 라스를 눈짓으로 쫓으며 딘이 총의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확실한 증거만 눈에 들어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이 지긋지긋한 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딘은 신호로 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종이봉투가 바스락 대는 소리가 들려서 딘이 뒤를 돌았다가 영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자세를 잡고 있는 샘을 맞는 방향으로 돌렸다. 찬장을 뒤지던 라스가 곧 뭔가를 발견한듯 기쁜 얼굴로 뒤를 돌았다.

들려있는 유리 항아리에 딘이 눈을 깜박였다가 급하게 샘의 어깨를 잡아눌렀다. 샘은 튀어나가려다 말고 영문을 모른채 도로 앉았고, 라스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항아리를 책상까지 가져와 내려놓고는 허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두 분 같은 케이스에게는 이거면 직빵이죠.

"이건... 그러니까..."
"50년 동안 숙성 된 흰 코끼리의 고환이랍니다. 어디가서 구하기 정말 힘들어요. 웬만한 분들에게는 보여드리지도 않는건데, 정말 간절해보이셔서 특별대우 해드리는거에요. 좀 비싸기는 한데 감수할만 하실겁니다. 제가 보장해요."

딘은 입을 뻐끔대다 횡설수설 말을 더듬었다. ㅇ,이런거 말고 그 뭐냐, 맞으면 사랑에 빠지는 도금된 화살이라던가, 금빛 고수머리를 가진 디카프리오 같은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던가, 저희가 원하는건 그런 특별대우인데요. 라스는 딘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깔깔 웃었다. 그런 것들 보다는 이게 더 좋다니까요. 달여마시면 금방 효과가-

딘은 그쯤이면 됐다는듯 책상을 걷어차고는 라스에게 권총을 겨눴다. 겁에 질린 라스가 손을 들어올리고는 잔뜩 물음표를 띄운다. 샘이 반사적으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종이봉투 때문에 그 이상의 행동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라스의 멱살을 잡은 딘이 머리 끝까지 열이 뻗친 소리를 질러댔다.

"무슨 연기를 하고있는 건지는 몰라도 다 알고 왔으니까 허튼 수작 부릴 생각마! 에로스가 소환이 안되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려줘? 나야! 내가 그새끼를 덫에 가둬놨다고! 네가 그 타이타닉 주인공을 소환해서 사람들 멋대로 조종한거 다 들켰단 말이야! 머리통 날아가기 싫으면 당장 에로스랑 했던 계약 무르고, 내 동생 원래대로 돌려놔. 당장!"

총구를 들이밀며 소리치는 통에 라스는 거의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벌벌 떨며 신을 찾던 라스는 딘이 총구를 더 들이밀때 마다 어깨를 움찔거렸다. 샘은 드디어 종이봉투를 살짝 벗었다. 보이는게 상담실 구석이라서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려야하긴 했지만, 상상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라스는 이제 울면서 빌고 있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맹세해요. 에로스니 뭐니 하는거 전혀 모른다니까요.

"딘."
"넌 빠져있어, 새미! 당장 계약 무르라니까!"
"딘, 거쓰가 계약자의 오른팔에는 문양이 새겨져있을거라고 했잖아. 기억해?"

조심스럽게 어깨를 잡으면서 하는 말에 딘이 샘을 쳐다봤다가 라스를 노려봤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의자에 밀쳐 앉혀놓고 딘이 곧바로 라스의 소매를 걷었다. 말라서 핏줄이 도드라진 팔은 좀 타긴 했지만 아무런 문양도 없었다. 샘과 눈을 마주친 딘이 떨떠름하게 라스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니까..."
"사람 잘못 짚은것 같은데. 난 형이 실수할 때가 제일 귀엽더라."

딘은 보지도 않고 샘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라스는 대화와 분위기를 보더니 곧 벌떡 일어났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길길이 화를 내는 라스에게 진정하라는듯 손바닥을 들어보인 딘이 이빨을 내보이며 네번째로 무해한 웃음을 지었다. 당연스럽게도 전혀 먹히지 않았고, 라스는 경찰을 부르겠다며 휴대폰을 들었다. 재빨리 휴대폰을 뺏어든 딘이 샘과 눈을 마주쳤다. 샘도 이번에는 그 터무늬없는 시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딘은 도망치듯 상담소를 나오자마자 샘의 손에 도로 테이프를 붙이려고 했지만, 라스를 묶는데에 테이프를 다 써버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종이봉투도 라스에게 씌워주고 나오는 길이라 마찬가지였다. 자유가 된 샘은 딘에게 엉겨붙어왔고 딘은 거의 체념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서지를 않았다. 분명히 그 상담소에 모든 피해자들이 다녔던게 맞는데. 유일한 공통분모를 잃어버리다니.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는 딘의 손을 샘이 안타깝게 말리며 임팔라로 향했다.

이 상담소는 주차장 위치가 너무 거지 같았다. 딘은 꼭 이런 더러운 골목을 지나야만 하는지 같은 사소한 문제에도 짜증이 일었다. 그것도 이런 커다란 어린애를 달고서. 새미, 어깨에 손 치워. 샘은 또 강아지 같은 얼굴을 했다. 아 진짜 못살겠네.

"스티브 윌시씨?"

딘과 샘은 고개를 들었다. 골목을 가로막은 인영에게서 긴 그림자가 뽑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딘이 인상을 구기는 새에 인영이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나온다. 눈을 가늘게 하고 앞을 쳐다보자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낯이 익은데.

"안녕하세요. 캐시라고 해요. 우리 구면이죠?"

빛을 받는 빨간머리. 딘은 눈을 깜박였다. 아까 그 상담소 대기실에서 옆에 앉아있던 여자.

높은 하이힐과 향수 냄새, 머리색 만큼이나 선명한 색의 코트. 딘은 샘이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넣는걸 느끼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한 몸짓이다. 샘은 딘의 취향을 알았다. 샘은 사랑에 빠진거지 기억을 잃어버린게 아니었으니까. 딘이 바에 앉아 있었다면 당연히 윙크를 보냈을 외모와 몸매였고, 아무리 딘이 지금의 샘한테 학을 뗀다지만 작은 동생의 불안을 가라앉혀주기 싫은 정도는 아니었다. 딘이 어깨에 걸쳐진 샘의 손을 붙잡았다. 샘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걸 확인한 딘이 캐시를 향해 웃었다. 저 쫓아온거에요? 엄청 영광인데.

캐시는 또각거리면서 더러운 골목길을 걸어왔다. 구정물이 곳곳에 고여 썩은내가 나는 곳이었다. 샘과 딘은 주춤 물러났다가 캐시가 딘과 불과 한걸음의 거리를 남겨두고 멈춰서자 눈짓을 주고 받았다. 캐시는 경계어린 남자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유쾌하게 웃었다.

"나한테 반하기라도 하셨나. 너무 가까이 서있는것 아닙니까?"
"눈치가 빠르시네요."

딘은 샘의 발을 밟았다. 그가 제 어깨를 거의 부술듯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샘은 반사적으로 힘을 풀었지만 절대 딘에게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딘은 입꼬리를 당겨 웃으면서 샘을 고갯짓 해보였다. 죄송한데 파트너가 있어서요. 아까 종이봉투 쓰고 있던 애인이 이 사람이라.

"그정도는 덩치를 보면 알아요. 이름이 뭐였더라. 빌리 글래머?"
"그리어인데요. 무슨 볼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쪽하고는 상관 없는 볼일이에요. 전 골키퍼는 신경쓰지 않는 주의거든요. 특히 애인 눈을 멍들게 하고 테이프에 손이 묶여서 심리 상담소에 끌려오는 골키퍼는."

샘은 코웃음을 쳤다. 딘은 어깨를 으쓱였다. 종이봉투와 테이프가 수상해서 힐끔대는줄 알았더니 목적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이놈의 인기. 딘은 샘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만약 골이 공을 원하지 않으면요? 캐시는 붉은 쉐도우가 발린 눈을 접어 웃었다. 라스 선생님의 치료가 굉장했나봐요.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죠.

캐시가 갑자기 거리를 좁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샘의 한 팔은 딘에게 둘러져 있었고, 허리는 딘의 팔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반사신경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캐시는 딘의 입술에 제 입술을 뭉개면서 손을 들어 딘의 눈을 가렸다. 1초도 안돼서 캐시가 바로 얼굴을 떼었고, 딘의 얼굴을 우악스레 잡아 샘에게로 돌려 둘이 입을 맞추게 만들었다.

샘은 자신을 쳐다보는 생생한 초록색 눈동자를 보았다. 샘의 눈꺼풀에 닿을듯한 속눈썹이 눈의 깜박임에 따라 그림자를 만들었고,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던 주근깨가 눈이 아플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최초의 입맞춤. 입이 열리거나 이빨이 부딪히는 것도 없이, 그저 여러장의 꽃잎이 겹쳐져있는 듯한, 약한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은 키스였다. 둘은 천천히 멀어졌다. 샘은 물들인 손톱 같은 색을 한 딘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샘의 광대에 주먹이 꽂혔다.

샘은 골목 바닥에 쳐박히면서 이마를 부딪혔다. ? ?? ??? 영문을 모르고 얼굴 반쪽을 감싸쥔 샘이 자세를 갈무리하고 딘이 있을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샘은 멍하니 동작을 멈췄다.

샘이 본 것은 혐오였다. 그 표정을 그런 단어 하나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샘은 차라리 기뻤을 것이다.

딘은 거칠게 입술을 문지르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샘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다가 다시 딘의 시선을 받았다. 딘은 샘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딘의 시선에는 순수한 혐오와, 그보다 더한 무언가들이 들어있었다. 샘은 기능을 잃은 것 같은 눈을 돌려 여전히 몇걸음 뒤에 있는 캐시를 보았다. 샘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캐시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무슨 짓 했어."
"꺅, 이게 무슨 짓이에요! 경찰에 신고할거에요!"

능청스레 연기하는 얼굴에 샘이 주먹을 쥐었다가 곧 캐시의 오른팔을 억지로 끌어 소매를 걷어냈다. 하얀 피부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문양. 모텔에 돌아가 찾아볼 필요도 없다. 샘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캐시의 왼손목을 빼내어 비틀었다. 작은 비명과 함께 손 안에서 차가운 화살이 떨어졌다. 납 화살. 샘은 멱살을 잡은 그대로 캐시를 벽에 밀쳤다.

"이걸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어."
"어머, 에로스가 말 안해줬어요? 사랑의 화살은 에로스가, 증오의 화살은 내가. 그런식의 딜이었거든요. 전 제가 이야기를 끝내는걸 좋아해서."
"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지?"
"라스 선생님은 상담실 관리가 게으르셔서요. 도청기가 반 년 동안 붙어있어도 영 알지를 못하신다니까요. 상담사들이 가장 신경써야하는 부분인데, 뭐 아시다싶이 썩 좋으신 상담사는 아니셔서. 종이봉투에 테이프에, 멍에, 겉으로만 봐도 알만해서 극적으로 다시 사랑하게 만들면 아름다운 사랑얘기가 될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도청기를 켰던건데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줄줄 나오더라구요? 어쩐지 소환해도 안온다 했어. 그럴 애가 아닌데."

픽 웃는 캐시를 더욱 벽으로 밀어부친 샘이 말을 짓씹었다. 당장 계약 물러. 캐시는 아까 샘이 한 것 처럼 코웃음을 쳤다. 에로스를 먼저 풀어주면요.

샘은 망설임없이 총을 집어들었다. 다시 반복되는 명령에 캐시가 지루하다는듯 눈알을 굴렸다. 아까 라스 선생님에게도 그러더니, 당신들은 대체 왜그래요? 뭐가 잘못틀어지면 무조건 총 들이대고. 툭툭, 캐시가 총구를 몇 번 두들기자 샘이 공중에 총을 발포했다. 넌 내가 널 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아주 큰 착각이야. 난 지금 뵈는게 없다고. 바로 턱끝까지 들이밀어지는 총에 캐시가 웃었다.

익숙한 사이렌이 들렸다. 골목 근처에서 멈추는 차소리. 샘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새에 캐시가 힘을 가득 실은 무릎을 샘의 명치에 꽂아넣었다. 주춤한 새에 총을 뺏어 던져버린 캐시가 샘의 얼굴을 쥐고 절 마주보게 했다. 캐시의 눈은 시리도록 파랬다. 더러운 골목길에서 안광이 날 정도로.

"아폴론이 되어봐요. 당신의 사랑스러운 사람을 월계수로 바꿔보라구요. 그렇게 해줄거죠? 저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샘이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에 캐시가 소리를 질렀다. 보안관님! 여기에요! 골목쪽으로 이동하는 발소리들에 샘이 욕을 씹으며 캐시를 밀쳐내듯 내팽겨쳤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딘이 없었다. 이름을 외쳐도 대답이 있을리 없다. 이를 갈던 샘이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들에 급한대로 방향을 틀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캐시는 골목에 주저앉아 우는척을 하다말고 샘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기대하고 있다니까. 푸른 눈이 구정물에 반사된 빛을 받았다.



공미포 7600자.

사실 캐시같은 싸이코를 좋아한다. 그냥 저주 풀고 끝낼까 했는데 아폴론과 다프네 얘기가 생각나서... 보안관들이 타이밍에 온건 캐시가 샘딘 상대하기 전에 미리 악질 스토커한테 시달리고 있다고 신고를 넣었기 때문. 퍼펙잡을 하는ㄴ이블빗취 취향 때문에 발암 일으켜서 죄송한...

스티브 윌시와 빌리 그리어는 Carry on my wayward son을 부른 Kansas의 보컬과 기타. 가명을 대부분 올드락 가수들이나 영화 콤비 이름에서 따온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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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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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딘 Crush on

연성/Supernatural / 2015. 9. 28. 07:12



샘딘인지 딘샘인지 샘+딘인지 커플링은 맞는지... 그냥 에피소드 하나 쓴다는 느낌으로.


시즌8이지만 스포 하나도 없음. 스포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도 신경쓰이는 분은 뒤로.






"딘, 사랑한다니까."


딘은 임팔라의 트렁크를 소리나게 닫았다. 신경질적인 소리에 사슴 같은 눈으로 거의 빌고있다 싶이 하던 샘이 어깨를 튄다. 눈을 부라리며 돌아보는 얼굴에 샘이 다시 눈썹을 누그러뜨렸다. 사랑해 딘, 진심이야.


차 문이 닫힌다. 샘은 입에 붙여져있는 테이프를 노려봤고, 딘은 한결 낫다는 표정으로 될 수 있는 한 오디오를 크게 틀었다. 테이프가 둘둘 감긴 손하며. 노려보는 눈이 원망에 차있었지만 딘이 시선을 던지자 금방 헤실거리며 풀어졌다. Oh God, 제발. 머리라도 감싸쥘 기세로 절망스러운 목소리를 낸 딘이 차를 잠시 멈추고 뒷자리에서 샘에게 씌울만한 봉투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딱 4시간째였다. 샘이 저 상태가 되어버린지. 둘은 신문에서 일어난 있을 수 없는 결혼과 그들의 죽음에 대해 보았고, 그대로 임팔라를 몰아 사우스 다코타에 왔다. 둘은 마녀에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술 주머니 포함한 그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아 며칠째 난항을 겪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세 명이고 세 명 모두 애인에게 살해당했다. 맺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상대가 미칠듯이 싫어져서 죽였다는 증언이었다. 심지어는 죽인걸 후회하지도 않았다.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다나. 이상한 것은 세 커플 모두 전에 만난적도 없는 사람과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 준비 까지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딘과 샘은 바에서 죽치거나 모텔에서 랩탑을 두드리면서 비슷한 일-애인을 죽이는 것 말고, 만난적 없는 사람과 갑자기 사랑에 빠진 일-이 없나 조사했다. 총 여섯 커플 정도로 수사망을 좁혔고 가짜 FBI 신분증을 들이밀며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두 커플 정도는 허탕이었지만 나머지는 사랑에 빠져 행복해지기 전 만났던 남자에 대해 입을 모았다. 금빛 고수머리가 눈과 같이 흰 목과 진홍색의 볼 위에서 물결치는, 감히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묘사에 샘과 딘이 서로를 마주봤다. 이젠 디카프리오가 연애사업도 도와주나? 샘은 고개를 저었고, 끔찍한 치정 살인의 가해자들에게 찾아가 물어보자 그들도 같은 증언을 냈다.


실질적인 진짜 가해자의 정체를 밝힌 것은 언제나 그렇듯 샘의 랩탑이었다. 딘은 에로스라는 단어에 맥주를 마시다 말고 얼굴을 구겼다. 그거 무슨... 큐피드 친척 쯤 되는 애 아니냐? 샘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는 정보를 읊었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고, 금빛 머리를 가졌다고 묘사되며, 맞으면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는 화살과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화살을 갖고 다닌다.


"하지만 걔는 완전 어린애잖아. 포동포동하고, 조그맣고 귀여운 날개에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고. 어디의 삽화에서 봤는데."

"그건 프쉬케랑 사랑에 빠지기 전의 이야기야. 아프로디테가 프쉬케를 추남과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시켰는데, 프쉬케가 너무 아름다워서 놀란 나머지 자기가 사랑의 화살에 찔려버렸데. 그리고는 펑, 청년으로 변한거지."

"그러니까 뭐야, 예전 그리스 신의 아들이, 사우스 다코타에 와서는 그냥 무작위로 사람들한테 화살을 쏘고 다닌다고?"

"그것도 사랑의 화살이랑 증오의 화살을 번갈아서. 시트콤 하나 만드는 것 같은데."


딘은 맥주를 마저 마시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거 소환하고 죽이는 방법은? 샘은 어깨를 으쓱였다. 마저 알아보지 뭐.


그리고 정확히 15시간 후에 둘은 에로스를 만난다. 가해자와 미래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들이 했던 묘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후드를 쓰고 있는데도 미모가 가려지질 않았다. 과연 비너스의 아들인데. 옆구리를 찌르는 딘을 못말린다는듯 흘긴 샘이 덫에 갇힌 에로스에게 다가갔다. 에로스는 눈을 크게 굴리며 완전히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희 완전 헛수고 하고 있는거야."

"그것 참 깜직한 등장대사구나, 큐피드 친척."

"너 그 큐피드라는게 내 이름의 영어 발음이라는건 알아? 난 걔네 친척이 아니라고. 걔네 조상에 가깝지."


에로스의 불평에 딘이 무안한듯 코를 긁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샘이 낡은 칼과 등불을 보여주자 에로스의 얼굴이 굳었다. 딘이 비웃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프쉬케의 칼이랑 등불이잖아. 그거 어디서 구했어."

"우리 아버지가 이것저것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서. 대답이 좀 필요한데. 왜 그 불쌍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지?"


에로스는 이를 갈다가 곧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뒤집던 에로스가 어깨를 늘어뜨린다. 나도 원해서 그런게 아니야. 웬 싸이코패스한테 소환당한 것 뿐이라고. 투덜투덜. 큐피드의 조상이라는게 뭐가 저리 불평 가득인지. 딘이 샘에게서 칼을 건네받아 덫 앞에 섰다. 그럼 그 소환한 놈 이름을 대. 에로스는 칼을 노려봤고, 곧 몇 걸음을 뒷걸음질 쳤다. 적당히 거리가 벌려지자 딘과 샘의 얼굴이 구겨진다. 에로스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후드 안에서 둘을 쳐다보다가 말문을 뗐다.


"너희가 멍청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그러니까, 그 칼을 구하고는 이 덫을 그릴 때 말이야. 꽤 잘그렸거든. 엄청 공들인 것 같은데. 몇 번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을거야. 안그런 것 같지만."


복잡한 덫을 꾹꾹 밟으며 혼잣말 마냥 이어지는 얘기에 딘과 샘이 서로를 마주봤다. 지금 허세 부려서 좋을거 없을텐데. 소환한 사람이 누군지 안불면, 그냥 널 죽여도 상관 없거든. 네가 없으면 어쨌든 그 망할 화살의 효과도 없어질테니까. 딘의 맞대응에 에로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내가 허세 부리는걸로 보여? 나가지도 못하는 덫에 갇혀서 하는 말 치고는 기개가 있어서 딘이 어깨를 으쓱였다. 에로스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직감이 이상한지 샘이 살짝 뒷걸음질을 친다. 


딘. 경계하라는 뜻이었던 이름에 딘이 뒤를 돌아보고, 찰나를 놓치지 않은 에로스가 후드의 뒤쪽에서 화살을 뽑아들어 그대로 딘에게로 던졌다. 동작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딘을 끌어당기던 샘의 손등에 화살이 꽂혔다. 꽂혔다기 보다는 스쳤다는 말이 어울리긴 했다. 쇳소리를 내며 화살이 떨어지고, 이번엔 딘이 급하게 샘을 끌어당겼다. 손등이 화끈거리는지 쥐고 있던 샘이 고개를 들어 딘을 마주했다.


"화살은 원거리 무기잖아, 멍청이들아. 활이 없거나 덫에서 못움직여도 던질 수 있지롱."


두 손을 들어보이는 에로스를 노려보던 딘이 설 수 있는 샘을 내버려두고 놓쳤던 프쉬케의 칼을 집어들어 성큼성큼 에로스에게 다가갔다.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에로스가 비실비실 웃는다.


"구하느라 고생 좀 한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걸로는 못죽여. 엄청 아프고 움직일 수도 없게 되기는 한데 말이야, 죽이는 도구는 아니거든. 잘못된 도구로 목을 베어버리면 주인한테 돌아간다는건 알고있지, 선샤인?"

"거짓말."

"오, 그래? 그럼 그걸로 내 목을 베어보던가.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딘은 눈을 부라렸다가 그대로 칼을 들었다. 딘은 정말로 에로스의 목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딘은 에로스의 조롱에 화가 나있었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어차피 반반의 확률이었다. 뒤에서 저를 구속하는 팔만 아니었다면야 당장 실행했을 계획이다. 딘은 하마터면 프쉬케의 칼을 뒤로 휘두를뻔 했다.


"샘?"

"딘-"


급하게 칼을 쥔 손에 제동을 걸고 옆을 쳐다본 딘이 입을 뻐끔댔다. 커다란 덩치로 완전히 딘을 감싼 샘이 등딱지마냥 딘에게 밀착 되어있었다. 에로스가 휘파람을 분다. 급하게 바닥으로 시선을 향하자 황금색 화살이 조롱하듯이 시멘트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미친- 딘이 욕을 하던 말던 샘은 딘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오리마냥 뒤뚱뒤뚱 걸었다. 억지로 붙들린 딘도 강제로 뒤뚱뒤뚱 제자리에서 한바퀴를 돌았고, 이건, 정말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샘, 새미! 허리를 제대로 조이고 있는 팔을 어떻게든 풀려고 애쓰며 소리치자 샘이 얼굴을 휙 들어 딘과 눈을 마주했다. Holy... 다급하게 샘의 애정 넘치는 눈을 손으로 막아버린 딘이 웃겨서 죽어가는 에로스를 노려봤다.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아 그게, 내 소관이 아니라서 말이야. 나랑 프쉬케 얘기 들어봤지? 나도 한 번 찔린건 어쩔 수가 없어. 내가 죽거나, 이경우에는 계약자를 찾아서 내가 받은 명령을 철회하게 하고 내가 돌아가게 해줘야겠지."

"그럼 계약자 이름을 대라고, 망할! 좀 떨어져!"

"그건 안돼. 계약자의 정보를 발설 안하는 것도 계약의 일부거든. 너희가 찾아서 날 풀어줘야 해, 도날드 덕과 데이지."


경례까지 하는걸 이를 박박 갈며 쳐다보던 딘이 기어코 샘의 배에 팔꿈치를 꽂아 자신에게서 떨어뜨렸다. 배를 감싸쥐고 정신을 못차리는 샘을 놔두고 프쉬케의 칼을 들어 에로스의 허벅지에 꽂아버린 딘이 비명을 지르는 에로스의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말을 씹었다. 내가 맹세하는데, 계약자니 뭐니 하는 그 빌어먹을 놈을 찾아 계약을 풀면 네 목부터 날아가게 할거다. 목 닦아놓고 기다리라고 망할 새끼야.


그리고나서의 4시간은 아주 끔찍했다. 샘은 끊임없이 딘에게 사랑고백을 해댔고, 그 커다랗고 순진한 눈망울에 간절한 빛을 넣어 자신을 봐주지 않는 제 사랑을 쳐다봤다. 딘은 가쓰에게 전화해 에로스를 죽이는 방법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고, 그 뒤에 탐문 수사를 하는 동안 정말 목을 매달고 지옥인지 연옥인지에라도 떨어지고 싶었다. 조사는 안하고 옆에 붙어서 그놈의 간절한 시선만 보내는 바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둘의 사이를 오해했고, 참다 못한 딘은 샘을 임팔라에 쳐박아두고 혼자 조사를 나갔다. 그것도 한 번만 안아주고 가면 안되냐는 부탁을 들어주고 나서야 할 수 있던 일이었다. 딘을 안은 샘은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고 딘은 총을 제 머리에 겨누지 않으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조사에서 건진게 있었다. 성사된 네개의 커플 중 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심리 상담소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해는 전부 져버렸고 매우 긴 하루였으며, 상담소의 영업시간은 지난지 오래였기 때문에 딘은 임팔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딘이 오자마자 샘은 반색을 했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심지어 샘은 딘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었는데, 딘은 딘에게, 까지만 읽은 후 편지를 바로 여섯갈래로 찢어 라이터로 태워버렸다. 상처 받은 샘은 시무룩해 하다가 또 간절한 사랑고백을 시작했던 것이다.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채 종이봉투를 쓴 샘을 모텔에 밀어넣자 가쓰에게서 연락이 왔다. 죽이는 방법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계약자의 오른팔에 에로스의 문양이 새겨져 있을거라는 말에 딘이 고맙다는 말을 돌리고는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던졌다. 너무 피곤해서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딘은 샘을 노려보다가 종이 봉투를 벗기고 입에 붙였던 테이프를 한 번에 떼어주었다.


"입만 벙긋 해봐, 재갈을 물려서 화장실에 쳐넣어줄테니까."

"하지만, 딘-"


딘은 즉각적으로 휴지를 뭉쳐서는 샘의 입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급하게 테이프로 묶인 손을 들어 그걸 제지한 샘이 알아서 제 입에 지퍼를 잠궜다. 차라리 증오의 화살을 맞은거라면 사정이 나았을 것이다. 딘은 어렸을 때 과자를 숨겨뒀던 날 이후로는 본적도 없는 시선을 받아내면서 샘을 두들겨 팰 수가 없었다. 자켓을 대충 벗어던진 딘이 침대에 쓰러졌다. 샘이 슬슬 눈치를 보며 제 침대에 앉는다.


"딘."


딘은 답이 없었다. 샘이 제 손에 감긴 테이프를 보다가 다시 딘을 봤다. 풀어주면 안돼? 딘은 역시 답이 없었다. 그래, 겨우 손에 테이프 붙어있는 건데 뭐. 그냥 잘게. 중얼거린 샘이 그대로 침대에 모로 누웠다. 그 때까지도 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랑의 화살인지 뭔지 정말 빌어먹게 짜증나는 물건이었다. 풀어줄테니까 그만 울어! 딘의 외침에 샘이 얼굴을 환하게 폈다.


"눈이 뜨인 기분이야. 생각해보면 어떻게 형을 사랑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어. 형은 내 모든 것이었잖아. 안그래? 어렸을 때 부터 계속 말이야."

"그런 놈이 대학에 가겠다고 가뿐히 짐 싸서 나갔었냐? 입에 침은 바르고 말해라, 샘."

"중요한건 지금의 내가 형을 사랑한다는거야. 원한다면 무릎을 꿇을 수도 있어. 어렸을 때 부터 형이 내 모든 것이었다는거 거짓말 아니야. 형은 완벽하잖아! 매일 정크푸드를 먹고 재미없는 개그를 쳐대는 것만 빼면."


딘은 질린다는듯 눈을 위로 굴렸다. 날 사랑하는 상황에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구나. 테이프를 칼로 끊어 구속을 풀어주자 샘이 덥석 딘을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 딘. 나한테 해줬던 그 모든것들 말이야. 딘은 허공에 손을 띄워놓고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그래. 알아주니 고맙다. 이제 그만 놔주지 않을래? 샘은 딘을 놔주고나서도 한참이나 딘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샘? 어색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 팔을 툭툭 치자 샘이 다시 딘을 끌어안았다. 이걸 원한건 절대 아니었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무릎치기를 먹여야하나 고민하는 새에 던져놨던 핸드폰이 울렸다. 떠있는 가쓰의 이름에 당장 샘에게서 벗어나 휴대폰을 챈 딘이 생명줄이라도 되는양 휴대폰을 붙들었다.


"제발 성과가 있다고 해. 나 진짜 창문으로 뛰어내려버리고 싶다고."

"미안, 성과가 있는건 아니고, 아까 해주려고 했는데 까먹었던 말이 생각났어. 샘이 에로스의 황금 화살을 맞은거라고 했지?"

"불행하게도?"

"에로스나 그의 라틴어 이름인 쿠피도는 추상명사를 그대로 갖다 쓴건데, 그리스 고대의 신들은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 아니면 단어를 신의 이름에서 따오거나, 그의 아내인 프쉬케의 이름도-"

"본론만 말해, 가쓰."

"그게, 원래 단어가 가리키는 뜻이 사랑이기는 한데, 굳이 사랑들 중에서도 분류를 하자면 욕정을 뜻하는거라서-"


나 같으면 방을 따로 잡을거야. 엄숙한 말에 휴대폰을 떨어뜨린 딘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샘에게 시선을 돌렸다. 샘도 통화를 들었는지 입을 뻐끔거렸고, 곧 자신이 무해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지만, 당연스럽게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딘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방을 나가버리는 것을 잡지도 못한 샘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손을 들었다가 놨다. 우는척까지 해서 테이프 풀어놨더니. 중얼거린 샘이 곧 다 포기한듯 침대에 누워 스탠드를 껐다. 







저주를 푸는게 2편 내용이 되어야하겟지만 쓸지는 모르겠군ㄴ요... 슈내 재밌..음..ㅠ 에로스에 대한 지식은 위키에 나와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라면서... 슈내 이교도 신 죽이기 정말 마음에 안드는데 생각나는게 없어서. 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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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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