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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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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만 출근 안하면 안될까... 오늘만..."

배게에 얼굴을 파묻은채 내는 좀비 같은 소리가 퍽 서글프다. 옷까지 전부 갖춰입고 커피마저 든 채인 샘이 난감하게 침대를 내려다봤다. 알람이 울린지 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건 지금이라도 일어나지않으면 꼼짝없이 지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딘, 일어나야 돼.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맨채 죽어가는 동물의 소리를 낸 딘이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어제까지 포함해 무려 사흘 동안 밤을 샜으니 이런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예사는 아니었다. 어제는 심지어 샘이 임팔라를 운전해 집으로 왔다. 웬만하면 재깍재깍 일어나는 편이었지만 그정도 수준이라면 세상이 또 한 번 멸망한다고 해도 잠을 자야한다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샘부터가 아직 자고 있겠지. 

결국 커피를 내려놓은 샘이 딘을 거의 안듯이 일으켜 세웠다. 세상을 살면서 들어볼 수 있는 가장 험한 욕들이 불경처럼 흘러나왔다. 샘, 진짜 죽는게 아닐까. 내 말은, 반 백 번도 더 죽을 뻔하긴 했지만, 이번엔 진짜로 말이야. 죽을지도 몰라. 죽을거야. 혼미한 정신으로 쏟아지는 오열을 달래듯 커피가 들이밀어졌다. 포션이라도 되는양 사약 같은 물을 들이킨 딘이 그제서야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딘은 그러고도 거의 5분 동안을 침대 헤드에 널브러진 채 회사에 저주를 퍼부었다. 샘이 미리 치약을 짜놓은 칫솔을 내밀자 포기한 듯 칫솔을 입에 넣으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는 통에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옷을 챙겨든 샘이 딘의 뒤를 쫓았다. 널찍한 집은 깔끔한 편이라고 보기에는 약간의 결함이 있었다.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나 단검, 낱장으로 된 프린트들이 이것저곳에 흩뿌려져 있었고, 비뚤어진 러그의 밑에는 악마의 덫이 반쯤 빠져나와 있다. 발에 채이는 권총 때문에 샘이 비명도 못지르고 몸을 구겼다. 며칠 안들어왔다고 이런 상태라니, 하기사 샘이 집에 못들어온다는 것은 딘도 정리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얘기기는 했다. 그 고생을 했는데 임무성공과는 별개로 허탕이었던걸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원래 이런 일이라지만, 위쪽에서 질책이라도 하면 딘이 어떻게 나올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한 일이 있으니 해고 당할 일은 없겠지만 또 시말서라도 쓰게 되면 정말 스트레스로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딘의 마인드는 군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뭣도 모르면서 예산이나 계속 들먹이는 상사는 상사로 쳐주지도 않았다. 그놈의 돈. 때려치우고 카드사기나 치면서 돌아다니자는 농담이 수시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충 씻고 나온 딘이 거리낌 없이 옷을 벗어 던지며 새 옷을 받아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속옷차림으로 셔츠를 꿰입는 딘을 뒤에 두고 핸드폰과 총을 자켓 주머니에 끼워넣은 샘이 짧은 시간 동안 거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러그를 위치에 맞추고 단검을 케이스-세네개의 단검과 네댓개의 총이 있는 서류가방-에 던져넣거나 옷가지들을 줍던 샘이 셔츠 아래 깔려있던 술 병을 집어들었다. 텅 빈 스카치 병을 얼마간 노려보던 샘이 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바지까지 입고 손목시계를 차던 딘과 눈이 마주친다.

"이걸 다 마셨어?"
"음..."

대답을 미루며 괜히 손목시계를 절걱대는걸 노려보자 딘이 대놓고 시선을 피했다. 그냥 기분상 좀 마시고 싶어서... 샘이 기가 막힌다는듯 숨을 뱉는다. 혼자 있을 때는 안마시기로 약속 했었잖아. 따지고 드는 음성에 재빠르게 자켓을 껴입은 딘이 차키를 채왔다. 먼저 가있을테니까 천천히 와. 뻔뻔하게 뺨에 입까지 맞춰가며 도망치는걸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쳐다본 샘이 병을 대충 쇼파에 던졌다. 분명히 다 치워버렸던 것 같은데 아직도 남은 술이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청소 겸 집안을 다시 털 계획을 세운 샘이 밖에서 들리는 클락션 소리에 신발을 구겨신었다. 




5.
리더기에 카드를 읽히자 엘레베이터가 움직인다. 위쪽으로는 평범한 회사가 있었지만, 뒷문 쪽에 있는 엘레베이터는 고장 표시가 붙어있는데다 버튼도 없었다. 지하로 계속 내려가는 상자 안에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딘이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술 때문에 단단히 골이 난건지 샘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TOSE UP의 본부는 기본적으로 지하에 있다. 애초에 비밀기관인데다가 노출 되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지부가 지하에 지어졌는데, 사원들은 갇혀서 노동하는 기분이라며 이 환경을 극도로 싫어했다. 채광 좋은 고층 빌딩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염원은 어느부서나 컸지만 하는 일이 일이다보니 근무시간 중 햇빛을 보는 사람들은 현장요원들 뿐이었다. 어차피 현장요원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갈등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환기 시스템이라도 고장나면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국장인 바비는 빗발치는 청원에 대해 '고층빌딩이 좋으면 옥상 난간에 올려줄 수는 있다' 고 대답해 원망을 끊어낸 전적이 있었다. 바비의 발언 이후 대놓고 항의서를 올리는 일은 없어졌지만 무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는 농담은 여전히 자주 쓰였다. 불만이 많아봤자 지하에 있는 본부를 위로 끌어올릴 능력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그럭저럭 다니고 있다.

도착을 알리는 전자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여전히 휴대폰을 보고있는 샘과 기지개를 펴는 딘이 거대한 악마의 덫을 익숙하게 밟고 지나갔다. 로비에는 출근으로 바쁜 사원들이 계단과 엘레베이터로 엇갈려 뛰어가고 있다. 지하에 있다는 것과 곳곳에 악마 방지용 주문이나 오컬트 상징들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극히 평범한 회사 풍경이었다. 다만 여기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반절은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심히 편한 옷차림에 더해서 눈 그림자를 달고 있다. 입고있는게 죄수복이었다면 사실 회사보다는 수용소에 가까울 것이기는 했다.

억지로 왔다는 티를 팍팍내며 걷던 딘이 리더기에 사원증을 읽혔다. 가상 스크린에 정보가 떴다가 꺼진다. 이동용 엘레베이터에 탄 후에는 사냥 부서가 있는 버튼이 눌려졌다. 이어서 탄 사람들도 각자 맞는 버튼을 누르자 자동문이 닫혔다. 함께 탄 사람들이 딘과 샘을 힐끔거린다. 아포칼립스 이후로는 언제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꼭 이걸 나눠야 할까? 그냥 출입용에 버튼만 달면 되잖아.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딘의 투덜거림에 샘이 어린애 같이 징징대지 말라고 일갈했다. 대놓고 아직 화나 있다고 광고하는 말투였다. 머슥해진 딘이 층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엘레베이터에서 내린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인사를 대충 받아준 딘이 공용 테이블에 올려진 간식들을 채며 데스크로 향했다. 현장요원의 데스크는 규정상 파트너의 것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샘도 언짢은 얼굴로 딘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중요한 브리핑이 있으니 바로 나갈 수도 없고, 쌓여있는 딘의 물건들을 신경질적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한 샘이 하도 안써서 거의 삐걱대는 의자에 앉았다. 분위기가 불안해서인지 부서 사람들이 둘을 힐끔거렸다. 부팅 된 컴퓨터를 붙잡은 딘이 어제 읽다만 서류들을 가져오며 입으로 잼쿠키의 포장을 뜯었다. 꼰대들한테 브리핑 하고, 할당량 검색하고, 항의서 내고, 이메일 확인하고, 들어온 조사요청 해치우고... 할 거 더럽게 많군. 스케줄을 속으로 외우며 혀를 찬 딘이 서류를 던지고 의자를 밀어 샘의 옆에 붙었다. 브리핑 자료를 훑어보는 눈이 퍽이나 서늘하다.

"데이트 할래?"
"아니."

단호한 거절이다. 아랫 입술을 내밀고 턱을 당긴 딘이 다시 의자를 원위치했다.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겠군. 애교를 피운다고 화를 풀 사안도 아니었다. 보통 때라면 술병 따위는 진작에 밖에 버렸을텐데 계속 밤샘이 이어지다 보니 그런걸 챙길 정신이 없었다. 사실 언제 마셨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틀 째에 마셨던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느껴지는 한기를 최대한 멀리내며 폴더를 열자 끔찍하게 죽은 시체 사진들이 모니터를 빼곡하게 채운다. 감흥없이 잼쿠키를 먹으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누군가가 데스크 벽을 두드렸다.

"좋은 아침-"

거스가 해맑게 웃는 얼굴을 한 채 책 한 권을 내밀며 서있다. 쿠키를 입에 털어넣고 책을 받아든 딘이 우물대느라 바쁜 입 대신 손으로 인사를 돌렸다. 저번에 부탁했던 지역자료를 구해온 모양이었다. 회사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은 백업요원은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현장 요원들에게 자주 부탁을 띄우고는 했다. 약간 해진 표지를 넘겨 대충 내용을 훑던 딘이 잼쿠키가 넘어간 입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하마터면 플로리다까지 갔다와야할 판이었는데. 어차피 가는김에 구해온거라고 특유의 무해한 웃음을 지은 거스가 다른 곳보다 온도가 10도는 낮은 듯한 샘의 데스크를 보고 입꼬리를 양옆으로 당겼다. 싸웠어? 직구로 던져지는 질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어깨를 튀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말끝을 흐린 딘이 책의 페이지를 성의없이 넘겼다. 샘은 아예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둘을 번갈아서 바라보던 거스가 눈을 가늘게 했다. 보통 같이 출근하는 날에는 샘이 딘의 성질을 막아주니 부서가 훨씬 평화로운데 오늘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래서야 퇴근할 때 쯤이면 온 부서 사람들이 어깨에 담이 걸릴 지경이다. 헛기침을 한 거스가 아침은 먹었냐고 새로운 대화주제를 꺼냈다. 딘이 잼쿠키를 들어보인다. 샘은? 역시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먹었다는 답이 들려왔다. 딘이 눈썹을 한쪽을 휘어올렸다.

"대충 먹었다고? 뭘 먹었는데?"
"스카치가 아닌거."

부서 사람들이 단체로 들리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또 술 때문이구만. 거스도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주변 반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샘은 자료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딘이 입을 여닫다가 머리를 헤집고는 의자를 아예 샘 쪽으로 돌렸다. 꼭 일하는데 이래야겠냐? 샘이 눈을 감고 입안을 씹더니 딘의 쪽으로 돌아 앉았다. 그럼 꼭 술을 마셨어야 했어? 미간을 눌러잡은 거스가 부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술 창고를 털어온줄 알겠다? 겨우 스카치 한 병이거든?"
"스카치 한 병은 술 아니야? 안마시기로 맹세까지 했잖아!"
"그래! 잘 지키고 있었잖아! 한시간에 한 병씩 비우는 것도 아니고 거의 한 달만에 딱 한 병 마신건데 그것도 못봐주냐!"
"마신건 마신거지! 그거 의존성 알콜중독이라고! 한 두번도 아니고 한 달 전에도 다시는 안마시겠다고 해놓고는 이러는데 화 안나게 생겼어?!"

죄송합니다. 나중에 돌아올 때 간식거리라도 사올게요.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하는 거스에게 괜찮다고 웃어보이는 얼굴들이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딘과 샘은 TOES UP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들이었고, 그만큼 사냥 부서를 비롯해 온갖 부서의 크나큰 방패막이였지만, 비등하게 악명도 높았다. 주는 영향력이 큰 만큼 이런식으로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말릴 사람도 없었다. 꼼짝없이 사랑싸움 따위를 들어야하는 사냥 부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자긴 했지만 기분파인 딘이 저기압으로 돌변하면 다른 부서 사람들도 한 번 들을 욕을 두 배로 먹고는 했다. 그와중에도 열 명이 할 분량을 둘이서 해치우는데다 도와달라고 비는 건 힘 닿는데까지 모두 해결해주니 욕을 하기도 애매한 것이다. 가끔 왈왈대며 싸우는걸 듣는게 대가라면 사실 밑지는 장사기도 하니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듣기 괴로운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특히 딘의 알콜 중독 문제 같은 경우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벤트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포칼립스 이후 샘이 딘에게 금주를 권했을 때, 딘을 포함해 누구도 그것이 성공할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딘은 근무시간에도 데스크 아래에 버번병을 다섯개는 쟁여놓고 사는 심각한 알콜 중독자였고, 본인의 개선 의지마저 희박했다. 웬만하면 취하는 일도 없었고 물이 싱거워서 마시는 수준이었지만 건강에 안좋은건 물론이고 근무태도 평가에서 매번 마이너스를 찍었기 때문에 딘도 헬스장에 가는 사람마냥 한 번 해볼까, 싶은 태도로 샘과 약속을 했다. 이런식으로 끈질기게 싸워댈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거절했을 것이다.

"나도 한 번에 끊는게 힘들다는거 알겠는데-"
"아는 놈이 이렇게 빡빡하게 구냐!"
"노력도 안하잖아!"
"한 달이나 안마셨잖아!"
"기록이 무슨 훈장이야?! 잘못해놓고 뭘 그렇게 당당하게-"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둘의 고개가 동시에 앞으로 숙여졌다. 강타당한 뒤통수를 부여잡고 책상에 엎어져 죽는 소리를 내는 둘의 뒤에서 바비가 욕을 뱉었다. 하여간 지랄맞은 것들. 회사가 너희집 안방이냐? 거스가 허리를 깍듯이 숙인다. 오셨습니까 국장님.

"이것들 좀 에덴 동산에 버리고 와라. 전직 구세주라는 것들이 이따위로 행동하니까 천사고 악마고 우릴 살붙은 뼈다귀로 밖에 안보는거 아니냐."
"아 무슨 축지라도 쓰세요? 오면 온다고 티 좀 내주면 안됩니까?"
"나불나불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구만. 브리핑 준비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고하라고 한게 언제인데 쳐싸우고 앉아있어? 네 눈에는 내가 갓 입사한 인턴 나부랭이로 보이냐? 다 늙은 국장이 오라고 부르면 재깍재깍 와야할거 아니야, 재깍재깍."

서류철로 딘의 머리를 내려치며 화를 내는 바비에게 성질이 꺾여버린 샘이 공손히 브리핑 자료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쪽은 제 때 사과를 하니 편하다. 자료를 받아든 바비가 마지막으로 딘을 한 대 더 때리고는 데스크에 늘어놔진 잼쿠키를 채와 뜯었다. 니들 싸운다고 이번 브리핑 망치면 구세주고 뭐고 얄짤없이 잘릴 줄 알아. 세금 도둑짓도 얌전히 해야 봐주지. 자료를 넘기며 투덜대듯 협박하는 바비의 앞에서 샘과 딘이 얌전한 개처럼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 국장이 악마에게 살해당한 이후 거의 반억지로 맡은 직위지만 바비는 투덜대면서도 전 국장보다 200배는 일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전 국장과는 다르게 30년이 넘게 직접 활동 했고, 샘과 딘을 도와 멸망까지 막아냈던 사람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주정뱅이 낚시꾼 같은 차림으로 설렁설렁 부서를 돌아다녀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바비가 국장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상사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TOES UP에서 깍듯이 인사를 받는 유일한 사람이다. 당연히 일일이 브리핑에 대한걸 검토하러 오지는 않았지만 이번 브리핑은 특별하기가 지나쳐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자료를 끝까지 본 바비가 샘의 데스크에 종이뭉치를 던졌다.

"좀 부풀려서 말해. 피해자 수 뒤에 0 하나쯤 더 붙이고. 지옥의 왕이랑도 계약서를 쓰는데 그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딘과 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윗선들에게 브리핑을 자주하는 팀은 따로 있었지만, 이번건은 둘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이었다. 제발 성질 좀 죽이고, 이놈아. 마지막으로 딘을 한 번 더 내려친 바비가 그럼 수고하라며 부서를 나선다. 전 국장이었다면 죄다 일어나서 인사했어야겠지만 바비는 유독 그런걸 싫어하는 통에 목소리만 나왔다. 아직 앞에 서있던 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싸우는거 들으니 딘이 잘못했고, 샘도 고집스럽고, 내가 보기엔 둘 다 아주아주 바보 같았어. 그럼 난 플로리다로 돌아갈테니까 브리핑 잘 해! 나중에 보자-"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한 거스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던 샘과 딘이 닫히는 자동문에 그냥 서로를 마주봤다. 30초. Bitch. Jerk. 한마디씩 뱉고 나서 다시 등을 돌린 두명이 알아서 할 일을 시작한다. 한시름 놓은 부서 사람들도 각자 업무로 돌아갔다. 






6.
"그래서 그쪽을 중점적으로 조사해서..."
"잠깐, 그러니까 그 '용'들이, 연옥을 열려고 한다는거지. 고대에 아서왕한테 죽임 당했던?"
"...조사에 의하면-"
"걔들이 연옥을 열어서 뭘 어쩔 계획인데?"
"바베큐나 구워 먹겠죠, 물론."

샘이 딘의 발을 지긋이 밟았다. 빈정거림을 들은 소위 말하는 '윗선'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속으로 한숨을 쉰 샘이 PPT를 넘겼다. 화면에 뜨는 끔찍한 시체의 사진에 윗선들이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이런 것 좀 빼면 안되겠나? 올 때마다 이런걸 봐야하니 원. 딘의 이마에 힘줄이 올라오는걸 곁눈질한 샘이 절차상 어쩔 수 없다고 사과를 입에 담았다. 절차고 뭐고 죽은 사람들 사진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그따위라니 좋아할래도 좋아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헛기침을 한 샘이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들어 괴물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몇 괴물들이 자신들의 알파에 대해 언급하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일삼고 있어요. 저희는 그들이 연옥에서 꺼내려는 것이, 그러니까 탈출 시키려는 것이 그 어머니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알파?"
"모든 괴물들에게는 시초가 있죠. 뱀파이어든 웨어울프든 용이든 스킨워커든, 처음 생겨난 시초. 별로 동족의식이 없는 괴물들도 그런 알파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세기 동안 동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어머니에 대한 일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한걸로 추측됩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 뭐 때문에 우리가 돈을 대준다고 생각해? 가서 죽이고 오라고. 모가지라도 댕겅 잘라서 로비에 장식해놓으면 되는 일 아니야?"

샘이 다시 한 번 딘의 발을 밟았다. 열었던 입을 도로 다문 딘이 마른 세수를 했고, 샘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서요.

"첫번째로, 괴물들의 무조건적인 복종이 문제가 됩니다. 의지로 거부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알파가 원한다면 자살무장이나 엇비슷한 것도 무릎 쓸 수 있구요. 평범하게 사람만 죽이려는 괴물들도 상대하기 힘든데 그런식으로 나오면 저희 요원들도 막기가 쉽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이들은 군대를 조직하려고 하고 있어요. 스킨워커의 경우 개로 위장해 있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저를 키우는 사람들을 물어 변하게 하는 수법으로 이미 집계된 것만 세자리에 가까운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이런식으로 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기관이 설립된 이후로도 처음 겪는 일이라 애를 먹고 있고, 직접적인 피해자를 줄이는게 우선이니 알파들에 대한 조사도 느려지고 있죠. 자길 보호할 군대도 만들고, 동시에 저희 시선까지 돌리고 있는겁니다."

윗선들의 얼굴이 드디어 심각해졌다. 이어서 알파에게는 평범한 사냥수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과 사실상 죽이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말이 나오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확실한거냐는 물음에 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알파를 잡아야죠. 저희가 요청드리는건 천사의 그릇에 대한 지원의 확대와 크라울리와의 계약에 대한 허가입니다."
"크라울리? 콜트를 넘겨줬다는 그 교차로의 악마?"
"이제는 지옥의 왕이죠. 여기 계시는 분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겠네요. 네, 좀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나쁜 점은 이 '크라울리'가 아주 다른 차원의 개자식이라는 것이고, 더 나쁜 점은, 새로운 지옥의 왕이 비즈니스맨이라는 겁니다."

지옥의 왕이라는 말에 파리하게 질렸던 얼굴들이 의문으로 일그러졌다. 샘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도 없던 의자에 갑자기 인영이 생긴다. 윗선들이 기겁해서 의자를 물리자 크라울리가 옷을 정리하며 일어나 아주 밝은 웃음을 지었다. Hello boys.

"크라울리입니다. 지옥의 왕이시죠."

딘이 소개하며 칼을 들어 금방이라도 크라울리를 찌를듯 등에 가져다댔다. 걱정마세요, 악마 전용 칼이니까요. 허튼짓을 하면 바로 죽여버릴 수 있습니다. 놀이기구 안내를 하듯 가볍게 나오는 말에 임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금니를 물었다. 칼이 등에 닿든말든 셰익스피어 연극마냥 팔을 벌리고 허리를 숙인 크라울리가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꺼냈다.

"사전 공지없는 등장에 대해서 사과의 말씀을 먼저 드리죠. 미리 알리면 누구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걱정과는 다르게, 말을 안듣거나 무례하다고 해서 터뜨리지는 않을테니 너무 쫄지 마세요. 어차피 한 20년 후에는 아주 자주 보게될텐데 좀 일찍 본다고 탈 나지는 않을겁니다."

크라울리가 눈을 깜박여 검은눈을 보이자 윗선들의 얼굴이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 샘은 자리에 앉아 천사의 칼을 던졌다 받았고, 크라울리가 손을 튕겨 회의실의 문을 잠갔다. 그럼 신사분들, 브리핑을 이어볼까요. 


예전에 썼는데 포스타입에는 안올려서.... 지금이라도 올림. 더 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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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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