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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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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연은 장장 30분간 의사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장저우로 옮긴 이틀째날 근언이 건네준 명함의 주인공이었는데, 실력은 좋은듯 보였지만, 아니, 깁스를 한 사람이 부주의하게 구르는 바람에 구급차에 실려왔다면 어느 의사든 30분 정도는 잔소리를 했을것이다. 훈연은 고개를 숙이고 쏟아지는 잔소리를 맞았다. 뒤에 선 근언이 미안했는지 자꾸 시선을 힐끔댔다.


총을 피하려다 넘어졌다고는 당연히 말할 수 없었다. 신발 밑창이 미끄러워 넘어졌다는 변명은 정말 그럴듯 해 보였다. 어쨌든 실제로 총상이 있는게 아니었으니 넘어져서 다친게 맞기는 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총탄과 총은 근언의 침대 밑으로 들어갔고, 그제서야 안 사실이지만 근언이 사는 층에는 입주자가 없었다. 새건물이라 입주가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게 다행중의 다행이었다. 구급대원들은 넘어졌다는 훈연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창백히 질려서 구급차까지 따라오려는 근언에게 이걸로 죽지는 않는다면서 만류했다. 근언의 얼굴만 봐서는 훈연이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사람 같았다. 구급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총에 맞을뻔 했으니 틀린말도 아니긴 했지만.


만류에도 불구하고 근언은 꿋꿋하게 구급차를 같이 타고 병원으로 왔고, 처치는 제 때 끝났다. 다행히 뼈가 전부 어그러졌다거나 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예정 됐던 것 보다 한 주 정도 더 깁스를 해야한다는 말에 훈연의 어깨가 쳐졌다. 완치는 그렇다쳐도 깁스는 앞으로 3주면 풀 수 있었는데. 근언의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같이 있었으면 좀 잡아줬어야지 대체 뭘 했어요?"


의사는 불시에 화살을 근언에게 돌렸다. 근언은 눈을 피했고, 훈연은 근언은 나중에 온 거라면서 손사레를 쳤다. 못마땅한 듯 혀를 찬 의사가 처방을 내렸다. 어디가 아프다 싶으면 바로바로 오세요. 물리치료 꼬박꼬박 오고. 훈연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가봐도 괜찮다는 말에 훈연이 일어섰다. 정말 긴 하루다.


"...미안합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에서 다시 사과가 들려왔다. 훈연은 내려가는 숫자를 쳐다보다가 근언에게로 눈을 돌렸다. 단정하게 서있지만 눈도 고개도 한없이 내려가 있다. 픽 웃어버린 훈연이 고개를 저었다. 사격 실력이 형편 없던데요.


간단한 기계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상자를 벗어나자 평소와는 달리 근언이 훈연의 뒤를 따라오는 모양새가 되었다. 차에 도착하자 훈연이 뒤를 돌았고, 근언은 앞으로 빠르게 걸어가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문 안으로 몸을 구겨넣은 훈연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내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있다가 차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근언은 차에 타고도 얼마간 시동을 걸지 않았다. 시트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훈연이 슬그머니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근언은 복잡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얹어진 손가락이 불규칙하게 핸들을 두드렸다. 훈연은 지금이 옳은 타이밍임을 알아챘다.


"왜 총을 가지고 계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시겠지만 제가 경찰이라서요. 덧붙인 말에 근언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죄책감 탓인지 아까부터 마주치기가 영 힘든 눈이다. 민간인의 총기 소유는 불법이다. 지금은 조수역을 하고 있긴 하지만 말마따나 훈연은 경찰이었다. 훈연도 공무중이 아니면 가지고 다닐 수 없는 것이 근언의 침대 밑에 있다는건 보통 중요한 문제였다.


미국에서 살았을 때 허가 받았던 총기에요. FBI의 자문이어서. 목소리만큼은 변함없이 깔끔하다. 훈연은 왜 FBI의 자문이 총기를 갖고 있는지나 총기를 어떻게 중국에 반입했는지 까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아주 중대한 문제였지만, 어쨌든 그 총으로 죽었을 뻔 했는데도 훈연은 아직 신고를 넣을 생각은 없었다. 추문이 이어질거라고 생각했는지 근언이 훈연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없었던 사이에 신변의 위협이 될만한 사건을 맡았나요?"


그래봤자 길이 갈린지 2시간 남짓이다. 그랬을리 없다는걸 알면서도 훈연은 일단 그렇게 물었다. 근언은 약간 망설이는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훈연은 넘어갔을테지만, 거짓말을 모를 정도로 둔감한 사람은 아니다. 훈연은 눈을 굴렸다.


"그럼 악몽인가."


혼잣말이었지만 좁은 차안에서는 크게 들렸다. 어차피 몰래 말할 사항도 아니었다. 훈연은 뱉어놓고 조심스럽게 근언을 살폈다. 반쯤은 추론이었다. 훈연은 근언이 총을 쏘기 전에 그가 침대에 누워있는걸 봤고, 이른시간이긴 했지만 서춘오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둘의 수면패턴은 엉망이 된지 오래였다. 워낙 예민한 사람이니 훈연이 20분간 문앞에서 서성였다면 인기척 때문에 반쯤 깼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 외의 근거는 좀 터무니 없는 것들이었다. 부축당할 때 본 팔의 흉터. 한쪽에 크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마치 난도질 당한듯한 모양새로 있었다. 그리고 간요가 말했던 유령저택에 관한 것도. 간훤의 얘기는 말도 안되는 것 처럼 들렸지만 그냥 과장됐을 뿐이라면 이상할 건 없었다. 기묘하게 마른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해골처럼 보이기도 한다. 훈연은 수사 첫날에 근언을 봤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직 살이 덜붙어서 약간 패인 듯 했던 눈주변은 응당 그래야하는 것 보다 어두웠다. 지금은 괜찮아보였지만 아마 아직도 정상체중에는 못미칠 것이다. 다이어트를 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심한 스트레스의 반작용이라고 보는게 근언의 이미지에 들어맞았다.


억지로 끼워맞추는 느낌이 강했으나 훈연은 그것들이 근언이 총을 가지고 있는 이유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훈연은 근언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했다. 메릴랜드 대학 최연소 박사학위 취득자이니 월반을 좀 했을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여러번 반복했듯이, 훈연은 감이 좋았다. 근언이 눈을 감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말해줄 생각까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따져도 괜찮았다. 일일이 캐묻거나 화를 내도 되었다. 사실 훈연이 지금당장 조수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근언은 할 말이 없었다. 훈연은 신변에 위협을 당했고, 구두뿐인 장담은 믿기가 어렵다. 총에 위협당하는 것은 절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훈연은 잠시 근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저녁은 먹고 들어가죠."


생선으로. 가벼운 말에 근언의 눈이 떠졌다. 훈연은 시선을 모른척 했다.






*





근처의 시장은 시끄러웠다. 한 시간 만의 쾌거에 훈연의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아무렇지 않은척 하며 지금이라도 차를 가져오는게 낫지 않겠냐고 세 번이나 물었던 근언은 무릎이라도 짚고 싶은 얼굴이었다.


근언은 훈연이 진짜 시장을 찾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근언이 아는 근처의 '시장'은 음식을 살 수 있는 5층짜리 대형마트와 백화점이었고, 그곳은 걸어서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훈연은 시장을 찾아야한다며 위치를 모르냐고 물었다. 근언은 눈을 깜박이다가 휴대폰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검색해 보죠.


위치는 나왔지만 아주 이상하게도 길을 잃었다. 약간 거기서 거기같아 보이는 건물들과 길도 한몫 했지만 시장이 넓어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훈연은 꿋꿋하게 걸음을 옮겼고, 근언은 30분 전 부터 약간 지쳐서 훈연의 뒤를 따라갔다. 헤매서 그렇지 시장도 얼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의기양양하게 들어가는 훈연을 억지로 따라가며 근언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꼭 시장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훈연은 식재료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었고, 음식의 품질을 알아챌만큼 입맛이 예민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마켓이 어디있는지 몰랐을 때는 인터넷으로 식재료를 주문했다. 부득불 시장에 가야한다고 길바닥을 헤맨 이유는 근언을 메어두기 위해서였다.


훈연은 근언이 자신을 피할 것을 알았다. 총에 맞을 뻔한 날,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훈연이 시장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피곤하긴 해도 못갈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죄책감이 남아있던 근언은 거기에 대고 안간다고 말할 수가 없었고, 물론 그것까지 예상한 처방이었다.


근언은 오히려 놀란 표정이었다. 훈연이 먼저 피할거라고 생각했음이 당연했다. 훈연도 그래야한다는걸 알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근언이 총을 쏜 것은 실수고, 다시 그러지 않을거라는 것 정도는 빌라의 복도에서 눈치챘다. 훈연은 경찰이었고 범인이나 용의자가 총으로 위협하는 상황에 대한 훈련은 질리도록 받았다. 무서워하길 바랬다면 수류탄 정도는 들고왔어야 했을 것이다.


증거로, 훈연은 오늘 아침 아주 태연하게 근언의 집에 열쇠를 꽂았다. 근언은 지난 밤 전혀 자지 않은듯한 얼굴로 입을 멍청하게 벌렸다. 평생에서 세 번 정도나 지었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너무 일찍 왔나요? 가볍게 웃으며 하는 말에 근언은 입을 다물었고, 곧 노트북을 닫았다. 준비하겠습니다.

 

"맛있을까요?"


훈연이 사과를 들이밀었다. 장 볼 목록을 적기는 했지만 꼭 그것만 사야하는건 아니었다. 근언은 인상을 살짝 구긴채 사과를 노려봤다. 너무 귀찮게 구나. 근언은 살 것도 없는데 훈연이 가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여지없이 시장을 헤매고 있었다. 머슥하게 치우려는 찰나 근언이 사과를 제 손으로 옮겨왔다. 손으로 두드리자 맑은 소리가 났다.


맛있을겁니다. 사과를 돌려주자 가판대에 서있던 주인이 당연히 그렇다며 맞장구를 쳤다. 전부 최상품이니 걱정하지말고 사가라는 홍보에 입꼬리를 올린 훈연이 몇 개를 골라냈다. 껍질째 먹어도 상관없으니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가판대에서 멀어지며 훈연이 사과를 두드린 이유를 물었다. 맑은 소리가 나면 신선한거라는 대답에 훈연의 입이 동그래졌다. 아는게 많은줄은 알았지만 사과 감별법 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 사야할 것 중에 가장 중요한건 식기였다. 군것질거리나 구경거리들을 그냥 지나치며 제일 첫번째로 보이는 식기판매점에 몸을 구겨넣자 근언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나무젓가락으로 쓰레기통이 넘칠 지경이어서요. 젓가락들이 걸려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하자 근언이 물음표를 띄웠다. 계속 나무젓가락을 쓰고 있었습니까?


"어차피 집에서 먹는 음식이야 배달음식이나 테이크아웃이니까요. 산다고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는데, 편의점에서 파는건 조금 그래서."


무늬가 없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 세 쌍쯤을 든 훈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통시에 있을 때는 훈연을 불쌍하게 여긴 간요의 어머니가 간훤을 시켜 음식을 가져다 주었지만, 비행기를 타야하는 거리이니 제대로 된 음식을 보내주는 것에는 한계가 조금 있었다. 사람은 먹어야 한다면서 택배로 장조림 따위를 보내주겠다는 통화를 하기는 했어도 오려면 아직 삼사일은 남았을 것이다. 안그래도 바쁜 간요에게 음식을 부탁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고, 결국 선택지는 좁다. 제대로 된 식기들은 아직 통시의 집에 있었다. 이사를 온게 아니었고 식기 정도야 사면 되는 일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내친김에 그릇들도 둘러보려는데 근언이 뒤늦게 사과 봉지를 가져갔다. 가볍게 목례를 한 훈연이 물결무늬가 있는 접시를 집어들었다. 처음 자취 했을 때 샀던 접시보다 두 배 가량 비쌌다. 경찰의 박봉으로는 조금 무리인가. 도로 내려놓는데 시야에 스친 근언의 표정이 이상했다.


"무슨 문제라도."


떨떠름한 목소리에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말 할 생각은 없었습니까? 훈연은 얼굴을 구겼다. 뭐를? 근언이 훈연의 손에서 젓가락과 그릇을 뺏어들더니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오랜만에 나온 무례한 행동에 훈연의 얼이 빠졌다. 뭐하시는... 근언의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여분은 제 집에 있습니다. 훈연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서너개 떠올랐다.


"깁스를 뺄 때까지는 저희 집에서 지내죠."


아주 뜬금없는 주장이었다. 훈연은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수습하지 못했다. 어쩌다가 그런 문장이 튀어나왔는지 짐작이 안됐다. ㅇ,왜... 멋대로 걸음을 옮기는 근언을 따라가며 훈연이 말을 더듬었다. 불시에 멈춰선 근언이 훈연을 돌아봤다. 식사 때마다 올라오는 것보다 편할 테니까.


"ㄱ,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아예 집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인지 근언이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좀 벌어진 탓에 목소리가 커졌다. 치이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통과하며 따라잡으려니 어이없음도 커졌다. 정말이지 요리를 해줄 필요는 없었다. 일이 일이다 보니 혼자 살 때도 하루에 한끼 이상은 밖에서 먹었고, 한 주를 더 하고 있어야하긴 했지만 깁스를 풀기 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일단 깁스를 풀면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밥을 챙겨주는건 차를 탈 때 조수석을 열어주거나 장을 볼 때 짐을 들어주는 정도의 배려가 아니었다. 거기다 같이 산다니. 어떻게 논리가 비약하면 그렇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팔을 다친건 제 문제고,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제가 당신한테 총을 쐈죠."


훈연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것에 대한 사죄로 하죠. 뻔뻔한 얼굴이다. 어제 차 안에서 눈치를 보던 사람이 맞나 싶어 훈연이 기함을 토했다. 근언은 더 들을 것 없다는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훈연은 제자리에서 머리를 뒤섞었다. 말들이 입안에서 빙빙 돌았다.


어차피 아래층에 살고 있으니 식사시간 때 마다 올라가는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지, 근본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식사를 대접 받아야할 이유 자체가 없었다. 총은, 근언의 잘못이긴 했지만, 하여튼 이런식으로 갚을 필요는 없다. 뒤늦게 쫓아가며 훈연이 몇 번 목소리를 내었다. 선생님, 선생님! 다리는 제가 더 긴대도 길이 복잡해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대체 왜 식사따위를 챙겨주고 싶어하는거지? 간요의 어머니가 훈연의 식생활을 걱정하는 것은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훈연과 간요는 거의 같이 자라다 싶이 했으니까. 하지만 근언은. 거기까지 생각한 훈연이 불시에 걸음을 멈췄다.


근언은. 가까운 사이인가?


뭔가에 맞은 것처럼 머리가 조금 얼얼했다. 그런가? 갑자기 생각이 복잡하게 꼬였다. 아주 먼 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장저우에 와서는 하루에 적어도 6시간은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까. 하지만 훈연도 근언도 서로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었고, 사적인 대화라고는 훈연이 책을 빌려가거나, 뭐 겨우 그정도가 다였다. 훈연이 매끼를 밖에서 사먹고 있다는걸 이제서야 안 것만 봐도 결론은 뚜렷했다.


하지만 훈연은 아까까지 근언의 옆에서 걸었다. 총으로 위협당한 이틑날에.


심지어 훈연은 자신이 총으로 위협당한 이유도 알지 못했다. 총이 무섭지 않은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럴만한 사이였나? 근언의 머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수 일을 그만두지 않는건 그럴만 했다. 하지만 시장에 끌고 나오는건? 훈연은 그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근언이 거리를 둘 걸 알아서였다. 그건, 보통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둘은 일만 하면 되었다. 근언도 훈연도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있었고, 근언이 훈연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뭔가가 바뀔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공과 사를. 훈연의 입술이 먹혀들어갔다. 다시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그걸 구분하며 근언을 대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근언은 그렇게 하고 있었던가. 질문이 돌고 돌았다. 강등 당하거나 계속 통시에 있는 서에 있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에 조수로 골랐다고 했다. 능력을 높게 봐줘서. 이제와서 그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훈연은 근언이 했던 다른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단순히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고.


근언이 저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것은 명확했다. 그렇게 잘해주는데 눈치도 못챌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럼 자신은?


둘은 함께 수사를 한다. 근언은 훈연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다. 훈연은 아무렇지 않게 근언이 열어주는 조수석으로 들어간다. 훈연은 근언의 책을 읽는다. 근언은 훈연에게 총을 쐈다. 훈연은 근언을 시장에 끌고왔다. 거리를 두기 싫어서.


누군가가 어깨를 치고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훈연이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근언은 안보이게 된지 오래다. 머리를 뒤섞은 훈연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빌라로 돌아가는 길이 생각에 묻혀버렸다.




두룹두뚜 뚜룹두

Posted by 콩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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