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연성, 썰 백업용 콩식빵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8)
(8)
연성 (42)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공지사항

태그목록

최근에 올라온 글

지미윈이래

카테고리 없음 / 2016. 10. 17. 19:39


그 발언은 완벽하게 부적절했다.

카라는 영문을 모른채로 끊임없이 아니, 아니, 네가 왜 그런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절대 아니야, 따위의 말을 뱉어내고있는 윈에 의해 강제로 사람 없는 복도로 떠밀리고 있었다. 바닥에 질질 끌리던 카라의 단화는 유리문을 넘어서야 겨우 멈췄고, 물음표가 가득한 파란 눈은 이제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절친한 친구에게 향해있었다. 윈은 할 수만 있다면 발이라도 구르고 싶은 것 처럼 보였다. 대신에 윈은 볼륨을 죽여서 카라에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한거야!

카라는 당황했다. 말 끝을 늘이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생각할 동안 파란 눈이 이리저리 굴려다녔고, 약간 패닉한 상태의 입에서는 끊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어 그러니까... 설마 너...?

거기까지였다. 윈은 용감하게도 말이 더 이어지기전에 외계인의 입을 제 손으로 막아버렸다. 윈의 거한 한숨을 통해 드디어 상황을 파악한 카라의 눈썹이 쳐졌다. 땅 끝까지 쳐질 기세로 윈이 팔을 늘어뜨리자 카라가 어쩔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미안해. 윈은 그냥 손을 휘휘 저었다. 괜찮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괜찮지 않았다. 전혀.

카라는 정말 그렇게 큰소리로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제임스를 좋아해? 목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카라는 자신이 그런말을 하고 있는줄도 몰랐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둘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윈은 죽고 싶었다. 그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말을 부정하며 카라와 자신을 그 시선들에게서 밀어내는 것 정도였다. 어쩌면 모두가 신경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에 띄지 않게 일 또는 비디오 게임이나 하는 지루한 기술부 직원에 대한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임스의 사무실 유리가 카라와 자신의 목소리를 줄여버렸을 수도 있었다. 윈은 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는 지금 과민반응 중이다.

윈은 그냥 검은 모니터의 각도를 조절해서 그 끝내주는 뒷태를 반사시켜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너무 많이 집중해서 뒤에서 카라가 오는지도, 그녀가 그를 지난 1분동안 열 번은 넘게 부르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뿐이다. 사실 윈은 거의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비록 의자에 기대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카라는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서 윈이 대체 뭘 보고있는지 궁금했고, 윈이 보이는건 카라도 보였다. 카라의, 그러니까, '제임스를 보고 있는거야?' 질문은 타당했다. 검은 화면에서 움직이는거라고는 물론 제임스 뿐이었다. 문제는 윈의 반응이었다. 그는 거의 의자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고, 모니터를 의미없이 휙 돌려버린 다음 말을 더듬었다.

카라는 그녀의 탐구본능을 좀 더 깊게 묻어둬야만 했겠지만, 불운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몇 번의 추궁-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 일은? 제임스가 뭔가 했어?-과 몇 번의 더듬거림은 그 후 몇 분간 이어졌는데, 윈은 바보같은 목소리로 그게 그러니까를 열 번 넘게 말했고, 아무리 카라라도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추론할 수 있었다. 사실 그건 추론이라기 보다는 감이었다. 카라가 그걸 '추론'했다면 그렇게 무신경하고 큰 목소리로 문장을 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미안해. 그냥 보고 있길래, 그게..."
"나도 알아, 카라. 그냥... 내가 미안해. 과민반응한거."

카라는 아니라며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좀 더 사려깊었어야 했거나 아니면 눈치가 좋았어야했다. 윈은 벽이 제 머리를 집어삼켜 목에서 깔끔히 절단시켜 줄 것마냥 정수리를 붙이고 있었다. 큰 일은 없을 것이다. 힐끔 쳐다본 사무실의 안쪽의 제임스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 카라가 소리치는 동안에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윈이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쉬며 정수리 대신 등을 벽에 붙였다.

윈이 제임스 올슨을 좋아하는 것은 지나치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나?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려 '지미 올슨'이었다. 슈퍼맨의 친구에, 퓰리처 상을 받았고, 데일리 플래닛의 수석 사진기사였고, 벌어진 어깨에 복근과 근육을 가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웃는다. 그는 심지어 체취마저 좋았다. 윈은 그가 일 관련으로 캣 그랜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바람에 섞이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건 거의 고문이었는데, 그 냄새를 맡기 위해 고개를 빼거나, 숨을 들이키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죄책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변태가 된 기분이었지만 단지 그 체취는 너무 달았다.

사실 표현하기를 달다고 할만한 냄새는 아니긴 했다. 그한테서는 민트와 사향의 냄새가 났다. 지난 시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외계인과 같이 보냈기 때문에-일주일 전까지는 그냥 베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윈은 알파의 체취라는게 그렇게 매력적인 것인지 거의 잊고 살고 있었다. 그는 제임스가 캣코에 발령받은지 이틀이 지났을 때 그 냄새를 처음 맡았다. 솔직히말해 그의 냄새는 윈이 맡아봤던 그 어떤 알파의 것보다 완벽했다. 저번 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중요한건 윈이 토끼구멍에 끌려들어가는걸 저항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매우 불운하게도.

"말은 걸어봤어?"
"그럼, 서로 농담도 하고, 번호도 교환하고, 저녁도 먹고, 그의 집에도 가봤지."
"정말?"
"아니! 그는 내 존재도 몰라! 사장님과 이 회사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듯이 매일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어도 있는지도 모른다고!"

카라는 윈의 분노 섞인 외침에 턱을 당겨 입꼬리를 내렸다. 윈은 바로 사과하고는 제 머리를 마구 뒤집어대며 정신 사납게 서성거렸다. 윈의 말은 과장된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제임스는 윈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아마 제임스가 지나다니면 저도모르게 어깨를 숙이며 존재감을 극한으로 지우려 든 탓도 좀 있겠지만.

Posted by 콩식빵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