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Supernatural

샘딘 / 황금나침반au 2.Pilot(2)

콩식빵 2016. 1. 14. 16:47

2.
"아침 먹을거야?"

샘이 임팔라 안에서 고개를 저었다. 뒷자리 시트를 전부 차지하고 누운 헤일은 하품을 했고, 주유구 옆에 서있던 마일리는 딘이 던져주는 햄을 공중으로 뛰어 받아먹었다. 기본적으로 데몬은 음식을 먹지 않지만 마일리는 햄 종류라면 맛을 보기 위해 가끔 받아먹고는 했다. 칼로리바를 대충 뜯어먹은 딘이 오일건을 뽑아내고 운전석에 탔다. 마일리가 운전석 시트 아래로 들어와 딘의 옆으로 고개를 뺀다. 

제리코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샘은 아직도 신용카드 사기를 치냐며 딘을 나무랐고 마일리가 대신해서 어깨를 으쓱였다. 사냥꾼이라는게 벌이가 좋은 직업은 아니잖아. 헤일이 뒷좌석에서 코웃음을 쳤다.

"카세트 테이프부터 업데이트 하지 그래."
"카세트 테이프가 어디가 어때서?"
"메탈리카에 모터 헤드랑 블랙 새비스? 쓰레기 록들이잖아."
"말 조심해, 새미. 그리고 규칙 알잖아. 선곡은 운전수가 하고-"
"-조수는 입 닥치고 있는다."

샘과 헤일이 불만스럽게 얼굴을 구기는 동안 딘과 마일리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시동을 걸자 AC/DC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새미라고 부르지마. 어린애 같잖아. 투덜대는 목소리에 딘이 귀 옆에 손을 붙이고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 음악소리가 커서 잘 안들려! 샘이 됐다는듯 반대쪽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는 동안 마일리가 키득댔다. 2년이나 지났는데 도통 바뀐게 없다. 헤일도 같은 생각인지 눈을 감고 체념한 듯이 시트에 턱을 얹었다. 차를 꽉 채우는 음량을 약간 낮춘 딘이 웃는채로 샘을 힐끔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샘이 입을 비뚤게 틀었다. 행복하게. 마일리가 언짢은 얼굴로 시트를 넘어가 헤일을 습격했다. 등에 올라타 머리를 발로 꾹꾹 누르자 헤일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뒤로 돌렸다. 앞발로 헤일의 주둥이를 막은 마일리가 물리기전에 키득대며 시트 아래로 뛰어내렸다. 딘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우회전을 했다.

"자세히 말해줄만한건 없어? 제리였나? 여자친구 얘기 좀 해보던지."
"제시카야. 할 얘기 없어."
"딱딱하게 굴지 말고. 2년만인데."

시트에 얼굴을 얹은 마일리가 헤일의 얼굴을 장난치듯 크게 핥는다. 벌써 두번째로 한숨을 쉰 헤일이 느리게 마일리의 얼굴도 핥았다. 목적 달성 후 다시 앞좌석으로 넘어온 마일리가 시트에 기댄 딘의 등 뒤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머리만 샘 쪽으로 쏙 빼냈다. 어서 말하라는듯 저를 빤히 쳐다보는 마일리를 노려보던 샘이 다시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시카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 없어. 같은 과고 조별 과제하면서 만났었어. 헤일을 신경 쓰지 않는척 해줬었고."
"맞춰볼게. 똑똑하고, 아량 넓고, 이해심이 많은데다 엄마처럼 챙겨줬지?"
"물어보는 저의가 뭐야?"
"한 대 치겠다? 동생 애인이잖아! 소개 받아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그리고 데몬이 보더 콜리였으니까.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

딘의 말투도 얼굴도 별다른 감정이라고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동생을 놀리는 즐거움이 담겨있는 정도다. 샘은 그게 화가 났고, 그 사실에 화가 난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화가 났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마일리가 딘을 쿡 찔렀다. 힐끔 샘을 쳐다본 딘이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신호등이 임팔라를 멈춰세웠다.

"나도 2년 동안 잘 지냈어. 궁금하진 않겠지만."

화제를 돌리려는 노력에도 샘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왜저렇게 민감하게 구는거야? 어린애처럼 입이 나오려는걸 억누른 딘이 정면을 주시했다. 엄마처럼 굴어서? 혹시 '그 일'때문에 물어보는거라고 생각하는거라면-

딘은 고개를 털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대신해서 마일리가 딘의 등으로 더 파고들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신호등이 바뀜에 따라 딘이 엑셀을 밟았다.

"아버지는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샘은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헤일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였고, 차 안은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딘이 말을 덧붙였다. 행복한 삶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임팔라가 약간 거칠게 속도를 올렸다.







3.
"저번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죠?"

보안관은 인상을 구기며 둘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옆에 서있는 헤일에게 향하는 눈을 가로막듯이 딘이 뱃지를 들어보였다. FBI입니다. 보안관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요원을 하기에는 젊어보이시는데요. 여전히 헤일을 힐끔거리는 보안관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딘이 현장을 둘러보며 질문을 반복했다.

"네, 1마일쯤 위에서요."
"피해자가 아는 사람이었나요?"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서로 모를 수가 없죠."

그의 데몬인 페렛이 옷 안에서 쑥 얼굴을 내민다. 보안관은 마일리에게 시선을 던진 후에는 경계심을 약간 푼 것 처럼 보였다. 군견을 데몬으로 가지면 이런점에서 혜택이 있었다. 딘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동안 헤일과 마일리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모든 유령사건이 그렇듯이 피해자의 체취만 약간 감돌 뿐이다. 냄새를 쫓아서 다리 끝 쪽으로 가던 헤일을 마일리가 급하게 물었다. 뭐냐는듯 짜증스럽게 절 쳐다보는 노란 눈을 마일리가 경고하듯 노려봤다. 눈을 돌리자 꽤나 멀리 떨어져버린 제 인간들이 보였다. 드러냈던 이를 닫은 헤일이 조사를 포기하고 마일리를 따라 샘과 딘에게 돌아갔다. 뭔가 건진게 있냐는듯한 시선에 고개를 젓자 딘이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 같은 경찰에게 기대는 말아야겠군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발 신경 좀 쓸 수 없어?"

경찰들이 멀어지자마자 마일리가 이를 문채로 목소리를 낮췄다. 헤일은 답이 없었고 샘은 눈썹을 휘어올린채 마일리를 쳐다봤다. 대답은 딘에게서 나왔다. 또 허용치 이상으로 멀어졌었어. 샘의 입이 일자로 다물어졌다.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진짜 FBI 요원들에게 태연하게 인사한 딘이 임팔라에 타 시동을 걸었다. 클래식 카가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동안 마일리가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런식으로 해서 어떻게 대학생활을 했던거야?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데몬도 없었을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대학 생활하면서는 냄새 따위에 집중할 일이 없었다고!"
"오 그래? 그것 참 새로운 소식이네! 참 편하고 재밌었겠군!"

데몬들이 뒷좌석에서 싸우는 동안 샘과 딘은 말없이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데몬과의 거리. 딘과 마일리는 아직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아직 마일리가 족제비니 사나운 핏불이니 하는 것들로 변하기를 좋아했을 시절에, 둘은 혼자 남아서 블럭을 갖고 노는 샘을 발견했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정말 좋지 않은 일.

작은 동물로 변해서 옷 속에 숨어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헤일은 보이지 않았고, 그건 딘과 마일리를 상당히 불안하게 했다. 헤일은 어디있어? 마침내 근처에 숨어있을 헤일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 물었을 때, 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버스 정류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가방에서 뭔가를 떨어뜨렸는데 그걸 가지러 갔다는 이야기였다.

샘도 물론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갑게 질린 딘의 얼굴과 털이 바짝 선 여우의 눈. 샘은 딘과 마일리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순진하게 깜박여지는 눈을 보고 마일리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당장 헤일 불러들여. 당장! 불호령에 놀란 샘은 블럭을 떨어뜨렸고, 딘도 소리를 질렀다. 누가 보기 전에 당장 불러들이라고!

샘은 몰랐다. 존과 아퀼라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존이나 딘은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딘과 마일리는 항상 붙어다니기는 했지만 그건 둘의 사이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샘도 헤일이 좋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옆에서 떨어뜨려놓고 싶지는 않았으니 그냥 그런거라고. 보통 사람들은 데몬과 떨어지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몰랐다. 샘은 그냥 제 느린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보다는 새로 변한 헤일이 혼자 갔다오는게 편할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헤일이 아무리 멀어져도 샘은, 아무렇지 않았다. 정말로.

아버지한테 들키면 안돼. 딘은 거의 아플 정도로 샘의 어깨를 쥐고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고, 샘이 무서워할만큼이나 두려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뒤늦게 돌아온 헤일은 샘보다도 호되게 혼이 났다. 절대로 샘을 놔두고 혼자 나다니지마! 숫사자로 변한 마일리가 갈기를 곤두세우며 그렇게 소리를 질렀고, 헤일은 영문도 모르고 쥐로 변해 샘에게로 숨어들었다. 이후로 헤일이 일정 거리 이상으로 벗어날때마다 딘과 마일리가 그것을 막았다. 데몬은 동물과는 달랐다. 셰퍼드 무리에 마일리가 껴있다고 해도 모두가 마일리가 데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 떨어져다니는 데몬을 말할 것도 없었다. 분리 훈련을 한 데몬들은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어렸을 때는 형태를 바꿀 수 있으니 괜찮았지만 샘이 14살 무렵에 헤일이 늑대로 정착하고 나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늑대 데몬을 한 번 보고 잊어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딘은 일정거리 이상으로 데몬이 벗어나면 끈이 당겨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아주 아프고, 모든 신경이 데몬에게 쏠려 당장 거리를 좁히지 않고는 못배긴다고. 샘은 혹시 헤일과 저의 유대가 약해서 그런건지 불안했지만 사실을 확인시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샘과 헤일도 웬만해서는 정해진 거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오늘처럼 헤일이 뭔가에 집중할 때면 잊어버리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그때마다 딘과 마일리는 필요이상으로 신경질적이게 굴었다. 

"...미안."

거의 으르렁대던 데몬들의 소리가 멈췄다. 마을쪽으로 차를 몰던 딘이 샘을 힐끔거렸다. 뭐가. 간단한 대답에 샘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냥, 여러가지. 얼버무렸지만 딘은 샘이 무엇을 사과하는지 알았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딘이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런걸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거 알지?"

샘은 답이 없었다. 마일리는 귀를 뒤로 눕혔다가 앞좌석으로 건너와 시트 아래에 몸을 파묻었고, 헤일은 세웠던 다리를 굽히고 뒷좌석에 엎드렸다. 딘과 마일리가 화를 내는 것은 걱정 때문이다. 샘과 헤일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둘을 피했다. 늑대인 것 까지는 그런데로 괜찮았다. 드물기는 해도 이상한 일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데몬과 훈련없이 분리를 한다는건,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었다. 딘은 그런것에 샘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 동생이 얼마나 평범해지고 싶어하는지를 아는 이상 더더욱.

차가 마을로 들어왔다. 적당히 주차할 곳을 찾아 임팔라를 멈춰세운 딘이 문을 열자 마일리가 먼저 뛰쳐나갔다. 딘이 내리고, 샘이 내리고, 헤일이 열린 창문으로 몸을 빼내 마지막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딘이 입을 비뚤게 틀었다. 그럼 에이미라는 사람부터 한 번 찾아볼까. 마일리가 호기롭게 한 번 짖고는 앞장섰다.







4.
[허위 신고라니, 새미. 불법이라는건 알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샘이 웃으며 헤일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칭찬 고마워. 얘기 좀 하자는 딘의 말을 시작으로 그간 알아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헤일 때문에 기자라는걸 믿도록 설득하는데 조금 걸렸지만 어쨌든 콘스탄스의 남편은 부정을 저질렀고, 상대하는게 백의의 여인인 것은 확실했다. 의문인건 왜 존이 시체를 진작에 태워버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남편의 말대로라면 존도 시체가 옛 집의 뒷뜰에 묻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다. 이유야 어찌됐건 샘은 그 쪽으로 임팔라를 몰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그곳에 있을거라는 말에 번번히 말이 끊겼던 딘이 역정을 냈다. 아까부터 말하려던거잖아! 아버지는 제리코를 떠나셨어. 조수석에서 털을 고르고 있던 헤일이 인상을 구기며 전화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아버지의 일기를 갖고 있거든.]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으시잖아."
[이번에는 그러셨는걸.]

헤일과 샘이 눈빛을 주고 받았다. 뭐라고 써있는데? 어디로 오라고 지시하실 때랑 똑같은 힌트라는 말에 샘이 골치가 아프다는듯 입 안을 씹었다. 좌표. 어디냐는 질문에 딘이 아직 모른다는 답을 냈다. 존이 아직까지 제리코에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했던게 멍청했다. 헤일이 대신하듯이 한숨을 쉬었다. 고생길이군. 동감한다는듯 입꼬리를 내렸던 샘이 휴대폰에서 들리는 잡음에 얼굴을 구겼다. 딘. 딘? 휴대폰을 툭툭 치며 이름을 반복하는 동안 헤일이 갑자기 털을 세우며 핸들에 앞발을 뻗었다. 동시에 뭔가를 친 임팔라가 도로에 급정거했다. 눈을 크게 뜬채 숨을 몰아쉬던 샘이 백미러에 잡히는 여자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넣었다. 데몬이 없다. Shit.

"집에 데려가 주세요."

헤일이 위협하듯 목울대를 울렸다. 상대하는게 데몬이거나 동물이었다면 즉각 효력이 있을 법한 무시무시한 소리였지만, 안타깝게도 늑대의 울음은 유령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집에 데려가 주세요. 갸냘프다기 보다는 화가 난 듯이 단호한 목소리였다. 마른침을 삼킨 샘이 부정의 답을 냈다. 여자가 고개를 기울이자 문의 잠금장치가 잠겼다. 멋대로 눌러지는 엑셀과 돌아가는 핸들에 샘이 입안쪽을 씹었다. 하필 딘도 없을 때.

여자가 손을 젓자 덤벼들던 헤일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높은 소리를 냈다. 헤일! 덩치 큰 늑대가 꼼짝없이 늘어지는걸 급하게 감싸안는 새에 임팔라가 낡은 주택 앞에 멈춰섰다. 확인하지 않아도 콘스탄스의-여자의 집인 것 같았다. 전 집에 돌아갈 수 없어요... 슬픈 목소리에 이를 악문 샘이 여자를 노려봤다. 집에 돌아가기 두려운가보지?

여자가 순식간에 샘의 위로 자리를 옮겼다. 손이 닿은 부분부터 얼어붙어가는 것 같았다. 샘이 아직 늘어져있는 헤일을 계속해서 곁눈질 했다. 잠깐 기절한 것 뿐인 것 같았고, 데몬은 회복력이 빠르니 금방 일어날 것이다. 시선이 돌아가는게 마음에 안드는지 여자가 손에 힘을 넣었다. 저를 안아주세요. 속삭이는 듯이 낮은 목소리다. 너무 추워요. 트랙터가 몸을 짓누르는 것 처럼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생경한 고통이 흉곽을 뚫듯이 퍼졌다. 

"날 죽일 수는 없을 걸...! 난 부정을 저지를 생각 없어,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에 여자가 불쌍하다는 듯이 입을 비틀어 웃었다. 뺨에 닿는 손가락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Oh Deer, 하지만 그런 기분이잖아. 안그래?"

뱀처럼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샘이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힘을 줬다. 시야 구석에서 헤일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소용 없다는걸 알면서도 발톱을 세워 허공을 휘두르자 전파가 불안정한 TV 화면처럼 여자의 모습이 지직거렸다. 화를 돋군듯 이를 드러낸 여자가 더욱 무게를 싣는다. 샘이 터뜨리듯 비명을 내지르기 무섭게 총소리가 들렸다. 두 세번의 총성에 여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총성. 마일리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린다. 여유를 찾자마자 허리를 일으킨 샘이 운전대를 잡았다. 원한다면 집에 데려다 주지. 딘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한채 샘이 엑셀을 밟았다.







5.
"좌표에 쓰여있는건 여기야. 콜로라도의 블랙워터 릿지."

Sounds chaming.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시트를 도는 셰퍼드의 목을 눌러 제지시킨 딘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마나 멀어?

백의의 여인을 멋지게 처리한 뒤의 임팔라는 공기가 덥혀져 있었다. 샘도 딘도 분명 허리께니 등이니 하는 곳에 멍이 들어서 제대로 앉아있기도 아픈 상태였고, 운전석 쪽의 유리는 깨져있었지만,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어찌되도 상관 없는 것 같았다. 호흡을 맞춰본지 2년만이었는데도 나름 훌륭하게 잘 해냈고, 객관적으로도 멋들어진 마무리였다. 존의 다이어리에서 다음 목적지도 찾았고. 마일리도 신나 있었지만 헤일도 훌쩍 뒷좌석으로 건너간 마일리의 장난을 기꺼이 받아줬다. 덩치가 커서 겨우 차의 뒷좌석에서는 크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오늘 새벽과 비교하자면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차 흔들리니까 적당히 해 마일리. 꾸중 같지도 않은 딘의 나무람에 거의 키득대듯이 웃은 샘이 아까의 질문에 답했다. 600마일 정도 걸려.

"괜찮네. 내일 아침 쯤에는 도착할거야."

불쑥 시트 위로 얼굴을 내밀며 말한 마일리가 딘의 무릎으로 뛰어내려왔다. 야, 야! 순간적으로 가려진 시야 때문에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좀 얌전히 있으라는 호통에 마일리가 자리가 좁아서 그런거라고 노래하듯 말했다. 한동안 둘이서만 다녔으니 조수석은 항상 마일리의 차지였는데 이젠 존이랑 다닐 때보다도 공간이 없다. 딘이 픽 웃어버릴 동안 샘이 초조하게 입술을 핥았다. 저, 딘. 헤일이 뒷좌석에서 한쪽귀를 옆으로 돌렸다. 뭐냐는듯 올라가는 눈썹에 샘이 망설이는 목소리를 냈다. 난... 마일리가 핸들을 쥔 딘의 양 팔 사이로 훅 고개를 내밀었다.

"돌아갈거라고 하는건 아니지?"
"면접이 10시간 후에 있어. 가야해."

헤일이 고개를 들고 샘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상기 되어있던 공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얼굴을 구긴채인 딘이 샘을 힐끔거렸다. 헤일이 곧 시선을 거두고 평소처럼 엎드렸고,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일리가 먼저 팩 고개를 돌리고 딘의 무릎 위에서 몸을 말았다. 딘이 신호등을 무시하고 핸들을 꺾어 좌회전을 했다. 마음대로 해. 데려다줄테니까.

"딘, 이해 해 줘야 해."
"이해라는게 언제부터 그렇게 강요적인 단어였냐?"

빈정대는 어투에 샘이 입 안쪽을 씹었다. 말이 다시 반복 되지는 않았다. 딘은 딱딱한 표정으로 차를 몰았고,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샘은 눈이 감기질 않았다. 헤일은 평소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제리코에서 스탠포드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샘은 시트에 기대 억지로 바깥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사냥을 다니던 시절에는 매일 있었던 일이지만, 오랜만이라 그런지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유령의 손이 닿았던 곳이 화상을 입은 듯 욱신댄다. 침묵의 밑에서 아까의 목소리가 기어올라온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잖아. 안그래?

임팔라가 약간 거칠게 멈춰섰다. 눈을 감고 있던 헤일이 멎은 엔진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켰고, 샘도 내려놨던 짐을 집어들었다. 마일리는 여전히 등을 돌린채였다. 아버지 찾으면 연락 할거지?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딘이 약간 쓰게 웃었다. 차에서 완전히 내린 헤일이 열린 창문에 앞발을 올렸다. 나중에 도우러 갈게. 꼬리가 축 쳐진 마일리가 꾸물대며 몸을 돌렸다. 그래. 늘어진 귀가 퍽 미련을 남게 했다. 한참이나 마일리와 마주보고 있던 헤일이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망할 유령이 한 말 때문에 이러는거면, 넌 천하의 답 없는 멍청이야."

쓰인 단어치고는 차분하기만한 목소리에 샘이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임팔라는 샘의 등이 사라지자마자 시동을 걸어 길을 빠져나갔다. 그런거 아니야. 안믿는다는듯 콧방귀를 뀐 헤일이 먼저 계단을 올라가 문 앞에 섰다. 열기나 하라는듯한 고갯짓에 샘이 더플백을 어깨에 매고 열쇠를 꺼낸다. 잠금쇠가 풀리는 동안 헤일이 눈을 가늘게 하고 문 밑으로 코를 디밀었다. 왜 그래? 몇 번 코를 킁킁거리던 헤일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떨떠름한 얼굴에 샘이 인상을 구겼다. 뭐 잘못 됐어? 답답하다는듯 재촉하는 소리에 헤일이 약간 멍한 목소리를 냈다. 믹의 냄새가...

"당장 문 열어."

낮은 목소리에 샘이 즉각적으로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빠르게 풀린 잠금쇠에 문고리를 돌려 열자 헤일이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제시카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간 집은 기괴한 정적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 제스? 불안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걸음을 뻗던 샘이 탁자에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 쿠키 위에 얹어져있는 익숙한 필체. 보고 싶었어! 사랑해!

잉크가 눌러붙은 메모를 쥔 샘이 헤일이 사라진 침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끝에서부터 빠르게 몸을 타고 올라오는 기시감. 속도를 올리는 박동이 채찍질하듯 샘의 걸음을 독촉했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잡아 끄는듯 쉽사리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걸음씩 위태롭게 뻗던 걸음이 침실에 닿았다. 멍하니 위쪽을 쳐다보고 있는 헤일의 모습이 보였다. 

샘. 허망한 목소리였다. 하얀 시트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올려다본 천장에는 제시카가 있었다. 배가 갈린 채 샘을 내려다보는, 놀란 그대로 굳어버린 시체가.

"안돼..."

그건 차라리 신음에 가까웠다. 안돼! 비명을 신호탄으로 제시카의 시체에서부터 불이 뻗어져나왔다. 헤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입으로 샘의 옷을 잡아당겼다. 가야 해! 타오르는 화마가 비현실적이다. 바깥에서 문을 차서 여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렸다. 샘! 연기 때문인지 콜록이는 소리와 함께 마일리가 먼저 뛰쳐들어왔다. 일순 천장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어금니를 문 채 헤일을 도와 샘의 옷을 물어 힘껏 당긴다. 뒤늦게 들어온 딘이 아예 샘의 몸을 들쳐업다 싶이 집에서 끌고 나왔다. 안돼, 제스! 제스! 처절한 목소리가 타오르는 재들에게 먹혀들었다. 손에서 떨어진 제시카의 메모가 불에 닿아 순식간에 타버렸다. 버티려고 몸부림 치는 샘을 억지로 끌고 나오며 딘이 119를 호출한다. 아래나 옆에 사는 이웃들이 천으로 입을 막은채 밖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완전히 나오자 유독가스 탓인지 죽을듯이 기침이 터져나왔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도로 들어가려는 샘의 어깨를 붙든 딘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정신차려 멍청한 새끼야! 이가 망가질 정도로 악다문 샘이 욕을 씹어뱉었다. 젠장, 구해야 한다고! 당장 놔! 

"이미 늦었어! 데몬이 없었다고! 다시 들어가는건 미친 짓이야!"

뱉어지는 말들이 수직으로 내려꽂혔다. 몸부림을 치던 샘이 울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젠장, 제기랄, 망할- 휘청거리는 몸을 떠안은 딘이 입안쪽을 씹은채 타들어가는 건물을 바라봤다. 신고를 받은 구조대가 울리는 사이렌이 점점 가까워진다. 마일리가 다가와 딘의 다리에 몸을 바짝 붙였다. 군견의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날과 똑같다. 메리가 죽었던 그 때와-

"우리 때문이야..."

새어나오는 소리에 딘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가지만 않았어도. 헤일이 허망한 눈으로 집을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일리가 입을 열었지만 샘이 딘의 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빨랐다. 야, 새미- 한 번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성큼성큼 뻗는 걸음이 임팔라로 향한다. 잡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보던 딘과 마일리가 시선을 마주쳤다. 어쩌면 위로를 하는게 가장 최악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뜻은 아니었어."

임팔라의 트렁크에서 무기를 챙기던 샘이 아래쪽으로 흘끗 시선을 돌렸다. 못 돌아올거라고 했던거. 늑대의 목소리는 재를 들이켜 바짝 말라있었고, 답지않게 어수선했다. 장전되는 샷건 너머로 소방차가 도착한다. 정말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허망한 목소리가 공중에 뜬다. 난 그냥... 딘을 만나면, 제시카한테 돌아가지 못할거라는 뜻이었어. 쉬어버린 소리가 고해를 하듯이 작아졌다. 샘은 묵묵히 다른 총을 집어들었다. 늑대가 젖은 바닥에 다리를 굽히고 몸을 말았다. 아무것도 보기도 듣기도 싫다는 듯이 머리를 집어 넣고 최대한 작고 꼼꼼하게, 마치 스스로를 가두듯이.





에피 하나씩 골라서 이런식으로 쓰고 나머지는 건너뛰고 그럴듯. 1편에 몰아넣어야했던 내용들인데 길어서 나눔. 기본적으로는 슈내 스토리라인과 똑같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