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Maze Runner
민톰늍갤 Emptiness
콩식빵
2015. 5. 28. 23:48
뉴트의 눈은 굶주려 있었다. 토마스의 눈은 그것보다는 절박한 것에 가깝다. 갤리와 민호는 그 바짝 마른 진흙같은 감정들을 무시하는 법을 알았다. 모른척 지나친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긴다. 뉴트와 토마스는 제 감정들을 토악질 할 곳이 필요했다. 구멍 뚫린 쓰레기통. 악취나는 국물을 흘려보낼 구덩이.
뉴트와 토마스의 키스는 사실 키스라기 보다는 짐승들이 서로 혀를 물어 뜯으려는 행위와 더 비슷하게 보인다. 만약 뉴트와 토마스가 각자 자신들의 파랑새에게 키스를 한다면 훨씬 부드럽고 애정이 담기겠지만, 그건 배려일 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키스가 얼마나 부드럽던 두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상대의 혀를 물어뜯어 삼키는 것이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상대의 일부분이라면 어딘가의 신화처럼 전부 집어삼키고 싶었다. 그렇게하면 도망가거나 거부당할테니까 부드럽게 할 뿐이다. 그러나 뉴트와 토마스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도망간다거나 거부한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둘은 진정으로 원하는 키스를 했다.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할 정도로 이를 세워 물어뜯고, 질릴 때 까지 상대를 취한다.
뉴트가 토마스에게 쏟아내는 것은 폭력에 가까웠지만 토마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토마스가 받아내는 것은 민호의 폭력이다. 기쁘지 않을리가 없었다. 뉴트는 갤리를 마음대로 다루고 싶었고 토마스는 민호가 저를 마음대로 다뤄줬으면 했다. 뉴트는 토마스가 관계중에 시선을 돌리거나 피하는 기색을 보이면 망설임 없이 뺨을 갈기고 이를 드러냈다. 토마스가 그것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관계가 끝난 후 뉴트가 약을 던져주거나 미안해 하는 일도 없다. 둘의 이해관계는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다른 그림의 퍼즐이 어쩌다가 귀퉁이가 끼워맞춰진 듯이.
관계가 끝난 후에 남겨지는 것은 토마스의 쪽이었다. 여운을 즐기거나 같이 풀밭에 누워있는 경우는 없었다. 그건 일종의 불문율이었는데, 관계가 끝나면 같이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대부분 토마스가 제대로 일어나서 걷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뉴트가 알아서 떠나는 것이었다.
새빨갛게 부어오른 뺨과 터진 코피나, 엉망진창인 하체를 두고 토마스는 온갖 애액이 튄 풀밭에 길게는 몇 시간이고 누워있고는 했다. 뉴트와 토마스가 숲에 들어간 이후에 토마스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글레이드의 누구도 숲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물이나 비료를 퍼오는 일이라면 정가운데를 통과하는 루트만을 이용했다. 직접 말이 나온적은 없지만 글레이드 안에서 네명의 관계를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토마스가 숲 밖으로 나오면 어김없이 척이 달려나와 부축해주려 힘쓰고, 토마스는 그걸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고마워 척. 해사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 뒤의 시선은 언제나 민호에게로 향한다. 하던걸 멈추고 못박힌듯 서서 자신을 무표정으로 쳐다보는 그에게 토마스는 눈웃음을 짓는다. 안녕. 그러면 민호는 다시 못본척 시선을 돌리고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것이다. 상태가 심한 날은 제프와 클린트에게 갈 때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해먹으로 향한다.
척은 상냥한 아이였다. 토마스를 부축 한 뒤에 따라오는 민호의 은근한 압박에도 꿋꿋이 토마스를 도와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척은 제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척은 넷 중 누구도 사랑하고 있지 않았고, 그 사실은 토마스를 말리거나 뉴트를 찾아가거나, 민호와 갤리에게 이 일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보이는 부분마다 자줏빛으로 물들어있는 토마스를 보고도 태연히 제 일을 할만큼 무심한 성격이 되지도 못했다. 토마스는 항상 고맙다는 말을 남기지만 척이 그런 토마스를 나무라거나 답을 돌리는 일은 없었다. 척은 방관자였고, 글레이드의 모든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어쨌든 구원을 바라지 않는 것은 네 명이었으니까.
어느 날에는 숲에서 나온 토마스의 목에 손자국이 나있던 적이 있었다. 누가 봐도 목을 졸렸던 흔적이었고, 척은 대번에 놀라서 감자를 깎던 것을 팽개치고 토마스에게로 달려와 화를 내며 입을 열려고 했다. 계속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거라고, 처음으로 척이 타르 구체에 망치를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러너 장비를 고치는줄 알았던 민호가 보폭을 크게 해 다가오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토마스도 척도 망연히 민호를 올려다봤고, 민호는 망설임없이 토마스의 목을 틀어쥐었다.
척의 비명에 다른 아이들도 놀라서 뛰어왔다. 기겁한 알비가 둘을 힘으로 떼어놓자마자 바닥으로 주저앉은 토마스가 헛구역질을 쏟아냈다. 진심으로 화를 내는 알비를 신경도 쓰지 않고 민호가 한마디를 뱉었다. 두 번은 없어. 끝없이 기침을 토해내던 토마스는 충혈된 눈으로 민호를 올려다봤고, 흐려진 헤이즐에는 분명한 증오가 담겼다.
그 때의 민호의 표정이란. 토마스와 가장 가까이에 서있던 척은 할말을 잃고 마른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 희열. 그 끝도없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검은 눈에 들어찬 만족감. 상황이 달랐다면 토정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토마스는 기어코 바닥에 토악질을 쏟아냈고 민호는 자리를 떠났다. 웅성대던 아이들은 민호를 따라 자리를 뜨거나 속을 게워내는 토마스 곁에 남아 토마스가 제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그런 용기있는 아이들은 척과 알비를 포함해 4명 정도였고, 토마스는 이번에도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것이 토마스가 민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라는걸 척이 아는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민호와 갤리는 뉴트와 토마스의 끝없는 애정을 전혀 받아주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공통점의 이유는 전혀 달랐다.
갤리. 갤리는 어떠한가. 갤리는 뉴트를 싫어했다. 단순히 싫어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갤리는 뉴트에게 무관심했고, 뉴트가 무엇을 하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것이 뉴트를 가장 상처줄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여서 썩어가는 증오의 출처는 오래된 글레이더들이라면 모두가 쉬쉬하는 어떠한 일 때문이었고, 그걸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갤리나 뉴트 본인들 마저도 그랬다. 갤리와 뉴트의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다. 치프빌더의 실력은 과연 훌륭해서 그 골짜기는 매우 견고하고 튼튼했는데, 갤리에게 삽을 쥐어준 장본인인 뉴트로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민호는 어떻게 다른가. 일단 전제부터가 달랐다. 놀랍게도 민호는 토마스를 싫어하지 않았다. 토마스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같았으나, 그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한하는 이야기였다. 어째서 그렇게 하는가 하는 목적까지는 갤리와 같다. 그렇게 하면 토마스가 상처받을 테니까.
민호는 토마스가 처음 자신을 동경 이상의 감정으로 바라보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오의 햇볕보다 더욱 반짝이던 그 투명하고 곧은 눈. 자신이 몸을 움직일 때 마다 기적을 보고 있는 듯 경탄에 차던 시선. 민호는 그런 눈부신 감정들을 내비칠 수 있는 다갈색을 가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손가락을 넣어 눈알을 파낼 수준으로. 글레이드에는 룰이 있고 그중에서 다른 글레이더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항목은 1순위다. 거기다 토마스는 러너였으니 눈이 없어서는 달릴 수가 없다. 민호는 어쨌든 다른 방법을 추구해야만 했다. 손에서 직접 촉감을 굴리는 것보다 훨씬 확실한 방법.
사실 이제 토마스의 눈은 반짝이지 않았다. 다갈색에 담기는 것은 햇볕이 아니라 민호의 검은 머리였고, 누군가는 토마스의 눈에 기름때가 꼈다고 표현했다. 다갈색은 도저히 다른 색을 눈에 담으려하지를 않았다. 한곳에 박힌 시선이 말하는 감정들은 민호의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진다. 봐줘. 봐. 나 좀 봐줘. 사랑해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심한 그 소리는 비올라에서 콘트라베이스까지 음역이 낮아진다.
상관 없었다. 어차피 같은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감정들이다. 보이는 것이 어떻든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다갈색이 담는 감정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자신을 향했으면 했다. 다양하면 다양할 수록 좋다. 민호는 토마스가 하루빨리 망가지기를 바랬다. 민호가 없으면 움직이지는 것 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그러니까, 지금의 민호는 말하자면 인내중이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토마스가 뉴트를 자신의 대역으로 생각하고 섹스하는 것은 허용범위였다. 뉴트마저 토마스를 갤리의 대역으로 생각하니 더할나위 없다. 애초에 뉴트에게 귀띔을 넣은 것 자체가 민호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몇 번은 직접 보기까지 했다. 남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제 이름을 불러대는 토마스의 목소리.
토마스도 민호의 의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숲에서 엉망인 상태로 나올적마다 민호가 저를 쳐다보는 눈을 마주했을 때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민호는 토마스를 싫어하는게 아니었다. 다소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민호는 토마스를 사랑했다.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어쨌든 민호가 원하는 수준까지 자신이 망가진다면 민호와 함께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이 관계에서 토마스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다.